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05화 (305/361)

305화 게맛살

항구에서 무려 200km가 떨어진 어장.

날이 저물 무렵 항구에 도착하자 벤 캠프사 담당자가 마중을 나왔다.

함께 기다리고 있던 강태준이 김요한을 환영했다.

“조업은 대충 어땠어?”

“그럭저럭요.”

“탐지 장치 성능은 어떤가?”

“예전보다는 꽤 기능이 개선된 것 같습니다. 트랜지스터를 사용해서 그런가 확실히 가볍고 콤펙트해서 좋네요. 발열도 적고.”

“단점은?”

“대신 주파수 대역이 낮은 걸 빼면 딱히 괜찮네요. 12~30kHz 수준은 좀 아쉬워요.”

“그래? 메모해 둬야겠구먼.”

사실 당시까지 어군탐지기는 진공관을 쓴 관계로 열이 많이 발생했고 덕분에 해양에서 사용하는 것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어탐기 제조사에 클레임을 넣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자 뿔이 난 강태준은 자력 개발을 시도했다. 노하우 덕분일까. 산니 측과 합작해 개발을 시작한 지 일 년 만에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어군탐지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트랜지스터로 만든 어군탐지기는 종래보다 반 이상 크기도 작은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가격도 합리적인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소형어선에도 탑재가 가능해진 것이다.

“섬사람들이 인심이 참 좋아. 이 비싼 걸 그냥 사 주다니. 덕분에 테스트도 무한히 할 수 있었고 말이야.”

“그러게요. 고마운 사람들이죠.”

“그보다 갈 길이 멀구먼. 이참에 어종을 식별할 수 있다면 획기적으로 조업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 텐데.”

강태준은 한숨을 쉬었다. 드로빗이 통 크게 어탐기를 대량으로 구입해 준 덕에 개발비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기능이 마음에는 차지 않았던 것이다.

“가능하면 산란강도까지 파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거야 저도 그러면 좋겠지만.”

“걱정 마라. 니가 그간 밥도 제대로 못 먹었을 거 같아서 안 선생을 특별히 초빙했으니.”

“오 영광이군요. 그렇잖아도 집밥이 그리웠습니다.”

김요한이 화색을 지었다. 수개월간의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입맛이 당길 수밖에 없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린 밥상에 사환 두 명이 쉴 새 없이 음식을 날랐다.

입 안에 음식을 가득 넣은 김요한이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야, 역시 이 맛이 안 난다니까. 안선생이 최곱니다.”

“며칠 굶은 사람도 아니고, 다 먹고 말해라. 그보다 도선사 시험 준비는 잘돼 가나?”

“어렵더군요. 항해학은 자신 있는데 나머지는 좀 어렵군요. 일단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되는데.”

“그럼 해양대 쪽에 들르는 것은 어때? 이번에 특강도 할 겸 바람 좀 쐬고 오던지.”

“말도 안 되는 제가 무슨 강의입니까?”

“이번에 방학 기간 중 해외교수를 초빙해서 법정 단기교육을 실시한다더군. 사우스햄스턴 항에서 현직 도선사가 온다는데 선박운용술이랑 통항규칙 등에 대해 전문가라는군. 자료라도 받아 오라는 거야.”

“오, 그거 좋은데요? 꼭 참고하겠습니다.”

뭍에서 일한다는 혜택 덕분에 도선사는 경쟁률이 높았다.

실무능력만큼은 자신 있는 김요한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턱을 괸 강태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방랑벽 심한 니가 결혼을 하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구먼.”

“하하 저도 신기합나다만 이제 정착해야죠. 근데 해파리 냉채는 없습니까? 그게 제 취향인데.”

“죄송하지만 이번에는 염장한 물량이 똑 떨어져서요. 근해에 해파리가 씨가 말랐어요.”

미안한 듯한 안연복의 대답에 김요한이 토끼눈을 했다.

“네? 작년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많이 잡히지 않았습니까?”

“네. 갑자기 온도가 금감하기도 했고, 너무 마구잡이로 잡아서 국내 매물은 완전 씨가 말랐답니다. 그나마 있는 물량도 홍콩에서 싹쓸이해 가서 그만. 물량이 별로 없어요.”

“아 안타깝네요.”

수온이 널뛰기를 하면서 번성하던 해파리 떼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덕분에 식자재 업체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소리에 오재갑이 물었다.

“그냥 외국에서 수입하면 되잖아요. 설마 중국산만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그게 해파리라는 것이 신선도나 냄새보다는 색깔에서 호불호가 갈려서요. 보통 동남아에서 나는 건 피어 타입이라고 불리는 거라 색상이 약간 노르스름하고 어둡거든요. 품질상 차이점은 없지만 팔고 나면 상한 것 같다고 클레임이 많아서 수입하기가 영 꺼림칙하더군요.”

“가공하면 뭔 차이가 있다고? 민감하게 구는군요.”

“아무래도 경험이 없다 보니. 사실 지금은 그마저도 없어서 못 팝니다.”

태국산과 중국산에 익숙하다 보니 수입에 소극적이라고. 이미 여러 군데를 수소문해 봤다는 말에 강태준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해파리발이라도 수입해서 가공하면 되지 않나? 그 부분도 식감은 비슷할 텐데? 몸통이 아니더라도 먹을 만한 부위로 아는데 말입니다.”

“촉수 부위 말입니까?”

“일일이 손으로 뜯어내야 되고 자포 제거가 까다롭긴 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 말이죠. 아마 대부분 가공되지 않고 버리는 걸로 아는데 말입니다.”

“오 바로 알아보도록 하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아보니 정말 그랬다. 몸통만 식용으로 쓰다 보니 촉수 부위인 발은 독이 있다 하여 죄다 버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바이어를 통해 싼값에 해파리발을 대량으로 확보한 다음 염장을 해 보니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세상에. 이 좋은 걸 먹지 않고 버렸다니 고정관념이 무섭구먼요.”

“다행히 이번에는 어떻게든 문제없이 넘길 거 같습니다.”

불가피하게 메뉴를 없애지 않아도 되자 안연복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강태준은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참에 해파리 대체재도 개발해 봐야겠군요.”

“대체재요?”

“이번에는 요행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잖습니까? 타피오카같이 식감만 비슷하게 살리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인공물을 만든다. 가능할까요?”

“시도해 봐서 나쁠 것 없지요.”

애초에 해파리 자체는 겨자소스로 먹는 것이니 식감만 제대로 살리면 판매는 문제없다. 시제품 식감을 확인해 본 강태준이 노기철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했다.

“열심히 노력했네. 대충 비슷하게는 만들었구만.”

“한천을 섞어서 비슷하게 만들긴 했습니다. 다만.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뭐가 문제인가?”

“이게 비용이 좀 쎄더라고요.”

식감 재현은 그럭저럭 가능했지만 개발은 난관에 봉착했다. 들어가는 재료가 많다 보니 단가가 지나치게 높았던 것. 거기다 성분 자체가 열 때문에 쉽게 변질되어 버리는 것도 문제였다.

“이거는 유통기한이 너무 짧은데요. 만들다가 다 썩겠습니다.”

“아주 웃기는구먼. 원물보다 비싼 짝퉁이라니.”

“이래서야 아무 의미가 없지 말입니다.”

“기다려 봐야지. 노 이사가 뭐 어떻게든 개량하지 않겠어?”

개발은 지지부진했지만 강태준은 차분한 마음이었다. 애초에 제품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뚝딱 나오지 않는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도와줄 것이 없나 연구실을 둘러보던 강태준에게 묵처럼 생긴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뭔가?”

“냉동 수리미입니다. 이번에 만들려고 한 건데 식감이 해파리랑은 완전 다르더라고요.”

으깬 어육을 뭉쳐 급속 해동한 뒤, 다시 얼리면 어육에 함유된 수분이 녹아 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렇게 되면 마치 혈관이 생기는 것같이 굳게 되면서 탄성이 생기는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강태준도 관심이 갔다.

“오 그래? 신기하군. 그냥 얼렸다 해동시키는 것만으로도 식감이 전혀 달라진다고?”

“네. 아무래도 그냥 버리기는 아까운 거 같아서. 어떻게 응용할지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어디 한번 나도 맛보고 싶군.”

“아 그럼 한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돈냄새가 풀풀 풍긴다고나 할까. 씹히는 식감을 음미해 보니 부드러우면서 쫄깃쫄깃한 맛이 꽤나 먹을 만했다. 우물거리던 복만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묘한데요 이거?”

“뭐랄까. 해파리랑은 좀 다르긴 하지만 차라리 이게 좀 더 먹을 만한데?”

“마요네즈랑 잘 어울릴 거 같은데 그 뭐냐? 식감이 뭔가 게살 같군요.”

“맞아? 게살! 그거랑 식감이 똑같아요.”

“그래, 어묵에 응용하면 좋을 거 같군.”

당시 알레스카 대게가 인기이긴 했지만 과도한 남획으로 인해 점점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 게다가 잡은 물량은 왕게라면 환장하는 일본 쪽이 독식해서 쓸어 갔기 때문에 점점 가격이 비싸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게살 유사품을 개발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아니 갑자기 개발 방향을 튼다고요?”

“어차피 해파리보다 게살이 더 고급 재료 아닌가. 수요도 많고.”

기억에 게맛살 하면 꽤나 히트 상품 아니었나.

혹시나 싶은 생각이었지만 시도해서 나쁠 것 없다. 결에 따라 압축한 다음 인산염과 대두, 글루타민산을 넣고, 식용색소와 섬유질을 첨가하자 그럴듯한 물건이 나왔다.

“색감이 맛있어 보이네.”

“코치닐 색소랑 흥국, 토마토 색소를 섞었어요. 맛도 비슷할 겁니다.”

한입 먹어 보니 크레이프처럼 여러 겹 압축한 살점에서 향이 훅 밀려 들어온다. 오돌오돌하면서도 통통한 촉감이 향긋한 것이 영락없이 게다리 맛이었다.

“어떤가요?”

“맛있는데 후미가 약간 텁텁한 게 아쉬워. 실제 게살을 안에 넣어 보자고. 그러면 좀 거부감이 줄어들 거 같은데?”

“흠. 진짜 게살을 넣으면 단가가 올라갈 텐데요.”

“향료로 맛 낸 제품은 몸에 별로 좋지 않잖은가.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지만 게맛살에 게가 없는 건 좀 그렇잖아.”

품질도 품질이지만 게살이라는 품목 자체가 꽤 고가에 속하는 물건이니 좋은 원료를 써서 승부하는 편이 이롭다.

문제는 원료인 수리미 가격에 비하면 싼 편은 아니라는 사실. 수리미 가격은 특제품 기준으로 ㎏당 300원이었는데 가공과 유통을 거치면 훨씬 비쌌다.

가공품을 국내에서 원가로 환산해 보면 수지가 맞을까 의심되는 수준에 노기철이 우려를 표했다.

“SA급은 좀 맛은 있는데 그냥 사 먹을 가격은 아닌데요. 국내 수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국내 판로를 개척하는 건 시기상조지. 북미 쪽 일식당에 우선 공급할 생각이야.”

“일식당에서 게살 수요가 있습니까?”

“무슨 소리, 캘리포니아롤에 많이 쓰지 않나. 로빈 말로는 서양인 입맛에 일식이 잘 맞는다고 하더군. 게다가 북미 일식당 입장에서는 대게 값 상승 덕분에 압박이 클 거야.”

캘리포니아롤은 날생선에 거부감을 가진 외국인을 위해 개발된 메뉴로 게살과 오이, 아보카도 등을 주재료 쓴다. 콜레스테롤 함량이 적어 최근에 인기가 높아지고 있었다.

현대로 치면 분식집의 김밥 가격이나 마찬가지.

다만 국내에는 최고급 수리미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선상 제조시설을 갖춘 회사가 별로 없는 만큼 안정적인 공급처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강태준이 염두에 둔 곳은 앵커리지에 본사를 둔 퍼시픽 폴락 사.

그렇게 홀연 듯 찾아온 큰손님에 퍼시픽 폴락 대표는 얼떨떨했다.

“명태살을 20년간 독점 공급해 달라고요? 일 년에 무려 1,800톤 이상 말입니까?”

“예. 최대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 싶어서요.”

“아시다시피 저희 회사가 어묵생산을 주로 하니까요.”

캘리포니아 롤 이야기는 쏙 빼놓았지만 대표는 두말없이 없이 승낙했다.

사실 선도 높은 100% 명태살로 북미 시장을 공략하고자 했던 퍼시픽 폴락 사는 생물에 대해 거부감이 심한 외국인들 덕분에 고전을 겪고 있었다.

비싼 돈을 주고 어획 쿼터를 산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구세주가 나타난 셈.

장기 계약에 성공한 강태준은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유명 일식당인 리틀 오사카에 납품을 타진했다. 리틀 오사카는 캘리포니아롤을 처음 개발한 식당으로 상징성이 있는 장소.

하지만 식당에서는 태준의 첫 제안에 대해 상당히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아니 우릴 뭘로 보고, 우리보고 가짜 대게를 팔란 말이요?”

“가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상품입니다. 게다가 알레스카 대게 값이 점점 비싸지고 있지 않습니까? 가성비 면에서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상품을 팔라는 말이지요.”

“흐음. 일리가 있는 말이네만 가공품을 파는 건 식당 이미지에 좀 마이너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럼 시식회를 열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판단은 소비자한테 맡기지요.”

리틀 오사카 측에서는 소극적이었지만 게살 단가가 지나치게 비싸지고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몇 번의 설득 끝에 시식회를 열자 소비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와우, 미친 이건 그냥 게살 아니냐”

“이게 인공이라니. 진품과 그냥 별 차이가 없는데.”

“가격도 싸고 맛도 비슷해요. 실제 게도 들어가 있다는군요.”

리틀 오사카에서의 우려와 달리 게맛살로 만든 캘리포니아 롤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실리적인 미국 사람들은 맛과 향이 비슷한 대체품에 열광했다.

그 결과, 시식평가 기간에만 한 달에 30만 불 가까운 매출을 올린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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