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04화 (304/361)

304화 나우루 공화국

소국의 대통령이긴 하지만 일국의 지도자라서일까.

태도에서부터 여유와 품격이 묻어져 나왔다.

“강태준입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어이 차. 허허. 멀리서도 오셨군. 배 모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더군.”

“뭐 원래 본업은 선장이니까 말입니다.”

“선장?”

옆에 있던 소곤소곤 크리스가 귀엣말을 하자 토끼눈을 하는 드로빗이었다.

“이거 이거 대단한 유명인이셨구먼. 암튼 여기는 인광석 수입 때문에 오셨나 그럼?”

“물론 그것도 관심이 있지만 사실 다른 부분이 더 관심이 갑니다.”

“무엇을 말이요?”

“나우루와 투발루 어장에서 조업이 가능한지 여쭙고 싶어서 말입니다.”

사실 투발루와 나우루 사이의 어장은 남태평양에서도 황금어장에 속하는 지역이지만 아직 미개척 지대나 다름없었다. 조업을 하지 않는 사모아에서 거기까지 출항을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이다.

강태준이 내민 사업 계획서를 훑어본 드로빗이 흥미를 가졌다.

“흠…… 규모가 꽤 크구먼. 어분 공장에 필렛트 제조 시설까지 설치하겠다?”

“인광석도 좋지만 어업은 지속 가능한 자원입니다. 후일 인광석이 고갈되었을 때를 대비해. 장기투자사업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 것인지 대통령이 고개를 들었다.

“장기 투자라면 그게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인가?”

“나우루의 인광석 자원은 축복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무한한 자원은 아니지 않습니까. 2000년대쯤이 되면 고갈이 될 텐데, 그렇다면 그때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튼소리. 적어도 내 생전에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을 거 같은데. 지금 투자한 부동산만 생각해도 적어도 10대는 먹고살 수 있다네.”

“세상일이란 게 혹 모르지 않습니까? 지금 금본위제가 붕괴할 거라 누가 예측했겠습니까. 혹시 투자한 은행이 파산한다거나 경제 제재를 받는다는가 하는 일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흐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하는 말이 있지요. 수입원이 여러 군데인 편이 안전합니다. 더욱이 어업 수입은 현금화가 쉬우니까요. 국민들 입장에서도 놀고먹는 것도 좋지만 가능하면 소일거리라도 하면서 노동의 즐거움을 배워 가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정확히 의표를 찌른 말에 해밀 드로빗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실 몇 년 새 돈벼락을 맞은 나우루 사람들은 몹시 나태해졌다.

각 집안에서는 넘치는 돈을 주체 못해 가정부와 집사를 고용했고, 먹고 놀기만 반복하다 보니 몸매는 후덕해졌다.

보다 못한 정부가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일자리 제공을 했지만 나태해진 사람들 중 일부는 벌써부터 약이나 향락에 의존하는 등 징후가 보이고 있었다.

“듣자 하니 공무원들도 모두 외국인으로 충당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보아하니 다들 비만이나 당뇨 문제가 많다고 하던데 건강을 위해서라도 적당한 일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노동이란 개념이 실종되어서 좋을 것도 없을 건 없지.”

“예 맞습니다. 일이란 사람에게 활력을 주는 요소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천국이라도 할 일이 없어지면 지루할 수밖에 없지요.”

“나도 동의하지만 이런 문제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듯싶소이다. 국민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는 듯싶군.”

“걱정 마십시오. 제가 설득해 보지요.”

“어떻게 말인가?”

“일단은 일에 흥미를 느끼게 해야지요. 취미 위주로 접근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차근차근 낚시의 즐거움부터 가르쳐 준다면 국민들도 좀 더 의욕이 생기겠지요.”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소리에 흥미를 느낀 듯 대통령이 빙그레 웃었다. 잠시 후 표정을 고친 드로빗이 부드럽게 말했다.

“허허. 자신이 있나? 만약 자네가 국민들의 생활 태도를 개선시켜 준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주도록 하겠네.”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럼 당연하고 말고. 나로서도 국민들의 삶이 좋아진다면 그 정도 대가는 줘야 하지 않나? 다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걸세.”

“이거 의욕이 생기는군요.”

대통령인 드로빗 역시 국민들에게 어떻게든 의욕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했기 때문에 제법 적극적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한 데는 개인적인 야심도 적지 않았지만 국민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이유도 있었던 것.

그렇게 대통령의 지원을 얻은 강태준은 주민들을 모아 낚시대회를 열기로 했다.

[백경그룹과 함께하는 낚시대회]

처음 시작은 아무래도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좋지 않냐는 의도였다고 할까. 형형색색의 루어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처음 보는 이벤트에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음. 낚시대회라고?”

“유명 작가가 와서 함께 시연을 한다는구먼. 잘하면 할리웃 배우랑도 식사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데?”

“별걸 다 하는구먼.”

할리웃 배우와 직접 원양어선을 타고 낚시를 갈 수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솔깃했다.

코딱지만 한 섬인 나우루에서는 사실 즐길 거리가 흔치 않은 터.

유명 배우들과 함께할 기회에 욕심을 낸 사람들이 대거 지원했지만 막상 원양어선에 탑승한 사람들은 금방 후회를 금치 못했다.

“우우, 추워.”

“괜히 왔어. 그냥 집에 있을걸.”

“배고픈데. 거 여기 밥은 안 줍니까?”

“여기까지 나왔는데 아쉽잖아요. 싱싱하게 잡은 즉시 직접 떠서 드릴 겁니다.”

넉살 좋은 호프만이 쾌활하게 웃었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의 표정이 죄다 골이 나 있었던 것이다. 배는 고프고 입질은 없는데 하염없이 찌를 보고 있자니 열불이 난 것.

인내심의 한계에 이른 사람들에게 볼멘소리가 나오려던 찰나 낚싯줄 끝으로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왔다 왔어!!”

“왔다고?”

“줄 꽉 잡으세요.”

처음 느껴지는 감각에 어쩔 줄 모르고 오두방정을 떨었다. 여럿이 힘을 합쳐 건져 올린 생명체는 무려 1미터짜리 튼실한 물고기였다.

뜰채로 생선을 들어 올린 강태준이 현지인에게 생선을 넘기자 사람들은 얼떨떨해했다.

“자 들어 보십시오”

“제, 제가 말입니까?”

“그쪽이 잡지 않으셨습니까? 일단 사진부터 찍어야죠.”

“그 근데 이거 안 뭅니까?”

“하하 걱정 마십시오. 심해에 사는 물고기라 뭍에서는 쪽도 못 씁니다.”

오도카니 선 나우루 주민 하나가 얼결에 미끈거리는 생선을 넘겨받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맥동에 생선을 만져 본 녀석은 감전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음 타자 갑니다.”

곧이어 낚시에 꿰인 생선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조업이 끝나자 현장에서 생선을 회를 쳐서 대접했다.

그렇게 몇 달, 백경에서 파견된 사원들은 낚시의 재미를 전파하는 데 힘썼다.

무료했던 일상에 자극이 되었는지, 몇 달이 지나자 시큰둥하던 나우루 사람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일었다.

몇 달간의 조업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경쟁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누가 더 큰 고기를 낚는가. 유치하지만 그만한 재미도 없었던 것.

강태준은 그에 그치지 않고 다이빙과 윈드서핑 등 여러 가지 레포츠를 전파하는 데 힘썼다.

주민들도 소파에 앉아 감자칩을 까며 TV나 보는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둘 외부활동을 즐기기 시작했다. 죽었던 눈에 생기가 돈 주민들의 모습에 드로빗 대통령도 흐뭇해했다.

“고맙소이다. 덕분에 요 근래 주민들의 건강이 많이 좋아진 거 같군.”

“과찬이십니다.”

“저 그럼 조업을 시작한 후에도 계속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겠소이까? 가능하면 계속 부탁하고 싶은데.”

“물론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좋소. 그렇다면 조업은 언제부터 시작할 생각이요?”

“그거야 허락하시기만 하면 바로 가능합니다.”

“대신 어업 지도관들을 꼭 주민들 중에서 선출하도록 하시오.”

강태준이 나우루 측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VDS선박조업일수제도 방식으로 입어계약을 체결하자 한국 수산업계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원양업계에서는 그야말로 판도를 바꿀 법한 대사건. 베링해에서 소식을 접한 송규익이 서둘러 전보를 전했다.

“들으셨습니까. 백경그룹에서 다시 참치 조업을 시작했답니다.”

“그래, 설마 나우루를 뚫다니 대단하더군. 거기는 전혀 생각도 못 했어. 역시 강 선장다워.”

마치 득도한 스님처럼 달관한 양재문에 답답해진 송규익이 씩씩거렸다.

“아니 그렇게 단순하게 넘어가실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건 엄연히 계약 위반 아닙니까. 조업이라니. 이건 항의해야 합니다.”

“계약 무슨 계약?”

“분명 저희랑 계열분리할 때 참치조업을 안 한다고…….”

“허허. 어쩔 도리가 있나. 어차피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네 그래. 우리는 우리대로 잘하면 되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질투는 추한 걸세. 그쪽이 잘되는 거랑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같은 곳에서 경쟁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말문이 턱 막힌 송규익에 양재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장님.”

“일단 축전을 보내게나. 우리도 더 힘내야지. 새파란 후배한테 뒤처질 수야 없지 않나?”

의욕을 불태우는 양재문과 달리 이억수의 반응은 극도로 격렬했다. 곧바로 배반자니 쓰레기니 하는 논조를 써 가며 백경그룹을 공격했던 것이다.

“강태준의 참치조업 진출은 가뜩이나 포화인 원양어업 시장의 경쟁을 심화시키는 행위다!”

“백경그룹은 당장 조업을 중단하고, 원양어선협회에서 제명하라!”

발해원양이 그렇게 나온 것은 최근 출판업계의 사정이 녹록지 않았던 탓.

출판업 비중을 줄이고 수출 쪽에 가중치를 옮기던 발해원양으로서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이 달갑잖았던 것.

격양된 발해원양의 반응에 여러 회사들이 동조했지만 강태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되려 자극적인 멘트로 응수했다.

“사업에서 경쟁은 당연하다. 실력이 모자라면 포기하는 게 어떤가?”

쏟아지는 비난에도 강태준은 즉각 다음 행동에 나섰다. 보란 듯 자금난을 겪는 천진그룹 계열사를 인수하고 덩치를 키운 것이다.

단숨에 업계 5위권으로 올라선 백경그룹이 남태평양 일대에 도전장을 내밀자 사태는 급변했다.

왕년의 스타 선장이자 재벌에 오른 강태준이 어떤 사람인가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만큼, 원양어선 업계는 크게 긴장했다.

체급을 키운 라이벌이 돌아왔다!

바야흐로 참치전쟁 제 2라운드가 막이 오른 것이다.

* * *

그로부터 몇 달 후, 적도부근의 남태평양.

파랗게 굽이치는 물결 위로 포말이 솟아오르고. 몰려 있던 해무가 걷히면서 수증기 뒤로 바닷물이 출렁인다.

주낙이 올라올 때마다 1,400톤짜리 연승선 중앙으로 입술이 꿰인 참치들이 산처럼 쌓였다.

갑판 위로 크레인이 내려오자 선원들은 퉁퉁하게 살찐 참치들을 그물 안으로 던져 넣었다.

“이야, 풍어로군요.”

“그러게 이쪽도 장난 아니구먼. 사모아보다 고기가 훨씬 실해.”

이렇게 조업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나우루 일대에서 조업 허가를 받은 배가 드물었기 때문. 그렇게 참치를 가득 실은 참치 선단은 솔로몬 제도의 호나이라로 입항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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