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03화 (303/361)

303화 금본위제 붕괴

사탕수수의 장점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목재랑 비교하면 성장 속도로 빠르니 한 해에도 여러 번 수확할 수 있다. 게다가 토양에서 금방 분해되니 친환경적이기까지.

“목재 연료나 단열재로도 활용할 수 있고 말입니다.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것인 만큼 설비를 제외하면 원료비도 거의 들지 않고요.”

“그렇다면야 시도해 봄직 하구만 그래.”

강태준의 설득에 차강진도 마음을 열고 투자를 약속했다. 그렇게 버개스 공장과 관련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강태준은 사탕수수 펄프 제조에 필요한 인력 공급을 위해 해외 인력을 충원하기로 했다. 그사이 재정비를 마친 MSG 팀도 반격에 돌입했다.

“최만수 중사가 이렇게 일을 잘할지는 몰랐네요.”

“그러게. 방첩대 일보다 이쪽이 더 적성에 맞을지도.”

렌포 쪽에서 힘을 쓴 탓일까. MSG 사업과 관련된 제약이 풀린 것이다.

새 회사를 차린 강태준은 밀림부터, 전쟁지역은 물론 근해의 선상교역까지 시도하며 경쟁적으로 발을 넓혔다. 아닌 말로 사장이 직접 경비행기까지 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순시를 다니고 있으니 군기가 바싹 든 직원들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점유율이 쑥쑥 올라가자 강태준은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제 슬슬 달러를 처분할 차례야. 꼭 필요한 액수만 놔두고 금이나 현물로 바꿔”

“아니 왜 갑자기 그러십니까?”

“요사이 서독 분위기 못 봤나? 유럽 중앙은행들이 금을 돌려받고 있다는군. 미국의 경상수지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중에 달러를 무한정 계속 찍고 있다는 거야.”

“그게 큰 문젭니까?”

“큰 문제지. 아마 금융시장에 지각변동이 생길 거야. 우리도 방 뺄 준비하자고.”

슈베흐 사를 통해 확보한 전언이었다. 멀쩡히 돌아가던 금본위제가 삐걱거린 것은 당연히 베트남전 때문. 전쟁 대금이랍시고 달러를 마구 찍어 내는 것을 불안하게 보던 유럽에서 미국놈들이 달러를 바꿔 줄 만한 금이 충분히 있을지 의문이 생겼던 것이다.

‘아니, 왜 저렇게 달러를 많이 쓰지?”

‘저거 수상한데 진짜 갚아 줄 담보가 있나?”

따서 갚을 곳도 없는데 계속 돈을 쓰고 있으니 의심이 가는 것도 당연지사.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진 미국은 막대한 재정적자를 기록하며 실업률이 치솟고 있었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달러를 찍어 내자 참다못한 독일이 먼저 나섰다.

-달러를 돌려줄 테니, 약속한 대로 금으로 바꿔 주시오.

독일이 먼저 나서자 국채 보유국을 중심으로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금보유고가 급감하자 위기감에 느낀 미국은 결국 최종카드를 빼내 들었다.

“투기꾼들이 미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35달러를 1온스로 교환해 주는 정책을 당분간 중지하겠습니다.”

교환해 줄 금이 없으니 배를 째겠다는 소리에 재계는 패닉에 빠졌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했던 미국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

하지만 각국의 반응은 격렬했다.

“그럼 우리보고 죽으란 소린가?”

“이건 자본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이 가장 먼저 대응에 나섰다. 엔화가 평가절상이 되면 수출경쟁력이 약화된다. 일본에서는 급히 달러화를 풀매수했고 외환 보유액은 고작 삼 주 만에 70억 달러를 돌파했다.

물론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은 각국도 결코 가만있지 않았다.

관세보복은 물론 수입할당, 수입허가와 등 비관세 정책이 남발되었고. 각국이 인플레이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쓰나미가 몰아닥쳤다.

“아니, 수입품 관세를 갑자기 10%나 올리겠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현물을 더 이상 안 받겠다니 무슨 소리요!”

경제는 혼란에 휩싸였다.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관세 폭탄에 수출 비중이 큰 국가들이 직격탄을 받았다. 세계 곳곳에 풀린 화폐를 금으로 회수하지 못하게 되니 달러 가치 하락으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이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한국도 그 예외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운송업에 몰빵한 천진그룹 주가가 절반으로 폭락.

업계 28위 대륭그룹은 파산.

소식을 들은 광필이가 혀를 내둘렀다.

“금광이 신의 한 수였네요. 형님. 우리도 저 꼴 날 뻔하지 않았습니까?”

“원래 금이라는 게 안전자산 아니겠어. 위기 대비용이지.”

“근데 수출이 완전 쫑인데요. 이거. 분위기 살벌하네요.”

“기존 사업들은 홀딩해 놓고 투자처부터 알아봐야지.”

무엇보다 1온스당 35달러 하던 금값이 1.5배 이상 오르는 덕에 앉은 자리에서 천만 불 이상을 번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투자 동력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급했다. 일단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군수물자 운송이 끝날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이를 대체할 사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말에 광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근데 적당한 투자처가 있기는 합니까? 전 세계 경제가 동반으로 망하고 있는데.”

“뭐 구관이 명관이라고 원래 잘하는 일로 돌아가야지.”

“어업 말입니까? 그래서 어디로 간다는 겁니까?”

“나우루 공화국이지.”

“아 그 인광석으로 유명한 곳 말입니까?”

면적 21㎢, 인구 약 14,000명, 섬 일주 도로 길이 18km, 지구상에서 모나코나 바티칸을 제외하고 3번째로 작은 섬나라로 유명한 곳.

멀리서 산호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중.

과연 피나클이라고 부르는 하얀 기둥들이 소금기둥처럼 솟아난 가운데 몇 제곱킬로미터에 걸쳐서 늘어서 있었다.

공항에 나오자 마중 나온 백인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훤칠한 생김의 남자는 하와이풍의 난방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를 본 복만이가 손을 흔들었다.

“헤이, 브라더!!”

“왓썹?”

마치 올드한 친구처럼 주먹을 교환하는 두 사람에 광필이가 눈을 흘기자 민망한 듯 손을 거둔 복만이가 중얼거렸다.

“아 너무 반가워서 그만. 이 친구가 저희 사랑의 큐피드거든요.”

“그래?”

“네. 강 사장님. 크리스 번천입니다. 브리티시 포스트리트 커미션 소속의 트레이더로 인광석을 비롯한 광물을 주로 판매하는 일을 하지요.”

“마리아한테 전해 들었습니다. 굉장한 능력자라면서요?”

“하, 그 정도는 아닙니다.”

산호초가 융기해 이루어진 섬은 코코야자, 판다누스 각종 열대성 식물과 활엽수로 가득했다.

해변의 가파른 길 사이로 도로들이 잘 정비되어 있었고 곳곳에 호화롭게 만든 주택들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관심을 끈 것은 차원이 다른 부유함이었다.

놀랍게도 흔하게 보기 힘든 외제차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고작해야 18Km인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외제차에 눈호강을 한 복만이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조그만 데 곳에 롤스로이스라니. 여기가 지상 낙원이구먼요. 이야.”

“없는 게 없구먼. 대단한데.”

“근데 나우루 사람들은 어디 있나요? 별로 안 보이는데?”

“다들 본토로 놀러 나갔지요. 이번에 투자한 뮤지컬이 시연하거든요.”

“그럼 업무는 어쩌고요?”

“그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지요.”

그러면서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독립한 지 고작 2년. 코딱지만 한 나우루가 급부상하게 된 것은 인산염 덕. 순도 100프로에 가까운 구아노가 나오는 나우루는 20년대 초 나우루는 노천광산이나 다름없었다.

매장량은 무려 5억 톤. 브리티시 포스트리트가 철수한 자리를 메꾼 것은 국영사업이었다.

인광석에 함유된 인산염은 최상급 비료로 식품에는 팽창제나 산도억제제 등 여러 군데 쓰인다.

나라 전체가 거대한 인광석 채굴장이나 다름없으니 졸지에 벼락부자가 된 것.

“덕분에 모든 국민들이 돈벼락을 맞았지 뭡니까? 그래서 이 조그만 섬에 자가용 비행기만 몇 대인지 모릅니다.”

“부럽구만요. 인생을 날로 먹다니.”

“인광석이란 게 대단하긴 하지요.”

국영인광석회사가 관리하는 인광성은 판매수입 중 절반은 중앙정부에, 나머지는 나우루 국민과 지방정부 및 장기신용기금으로 배분된다. 실질적 배분 비율은 상당히 축소되지만 그럼에도 고작 2만 명도 안 되는 국민들에게 혜택은 어마어마했다.

외국유학과 의료비 공짜에 결혼하면 방 2개가 딸린 신혼용 하우스와 가정부까지 지원할 정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오히려 국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나라. 그것이 지상낙원 나우루의 현주소였던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궁으로 갑니까?”

“아니요. 해안가에 계십니다. 인광석 수출만큼은 직접 감독하시거든요. 마침 선적 중이시니 그쪽으로 가 보시죠.”

고온에서 정제된 소광석은 해안가의 양고르 부근에서 선적되어 수출된다.

수익의 대부분이 인광석에서 창출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직접 감독한다고.

한데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자 컨틸레버와 컨베이어벨트는 휴업 상태로. 보아하니 저 멀리 배 한 척이 오도 가도 못하고 서 있다.

잠시 양해를 구한 크리스가 잠시 상황을 파악하러 갔다 돌아왔다.

“왜,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좀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배가 암초지대에 끼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버렸답니다.”

“암초에 껴요?”

“그게 아무래도 배를 가까이 붙이려다 실수한 거 같습니다.”

한동안 기다려 봤지만 지지부진하다. 답답해진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굴렸다.

“큰일이군. 곧 썰물이 올 타임인데.”

파고가 높아지는 와중 자칫했다가는 좌초하는 수가 있는 만큼 사람들의 신경도 곤두섰다. 하지만 들어오기는 쉬워도 나가는 건 어려운 일. 보다 못한 강태준이 나섰다.

“그럼 제가 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강 사장님께서요?”

“예전에 이쪽 지역에 와 본 일이 있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제가 해결해 보지요.”

강태준으로서는 점수를 딸 기회. 통역이 이야기를 전하자 자존심이 상한 선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뭐? 외인에게 키를 맡기자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잠시만 맡기자는 거지요. 이러다 좌초하면 저희만 덤터기 지는 셈이니까요?”

잠시 후 투덕거리는 항해사와 선장 사이 고성이 오갔다. 항해사도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는 만큼 쉽사리 키를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다. 상황을 정리한 것은 대통령이었다.

“그쪽이 책임질 수 있소이까?”

“맡겨 주시죠. 이래 봬도 현역입니다.”

고민이 길어졌지만 선적이 늦어지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터라 결국 강태준에게 키를 맡기기로 했다.

‘가항수역이 좁구먼. 까다로울 법도 해.’

강태준은 가만히 키를 잡은 채 바람과 해류를 살폈다. 불과 수백 미터 정도의 좁은 뱃길에 파고까지 높았으니 쉽게 움직이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육안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은 암초지대였지만 머릿속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다행히 강태준은 긴급 피항을 위해 이쪽으로 들어왔던 적이 있어 똑똑히 해역의 상태를 기억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프로펠러를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켜 후진시켰다.

“어어어어?”

그렇게 1시간 가까이 사투를 벌이던 배가 암초지대를 빠져나왔다. 위험지를 빠져나와 기관을 막 미속 전진으로 올리자 조마조마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십년감수했군. 정말 감사하오.”

“아닙니다. 도움이 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대단한 실력이구먼. 난 해일 드로빗이요. 대통령직을 맡고 있지.”

환한 얼굴의 드로빗이 악수를 건넸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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