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버개스 공장
개구리알이 들어간 것 같은 음료와 색의 조화가 오묘했다. 향긋한 냄새에 끌린 사람들이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오호? 보라색이 신기하네요.”
“밑에 깔린 게 개구리알 같구먼.”
“일단 먹어 보라고.”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었다.
무엇보다 타피오카와의 조화가 그만이었다. 설탕의 당분에 말랑하고 쫄깃한 식감에 중독성이 있었던 것이다.
“쫀득쫀득한게 맛나네요.”
“펄 말고 아몬드나 코코넛 같은 걸 넣으면 더 고소해지지. 그보다 어때 맛은?”
“충분히 상업성이 있어 보이네요. 요 빨대도 빨아 먹는 재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타로의 단맛도 좋았지만 홍차를 넣은 맛도 호평이다. 삶아서 캐러멜화된 타피오카가 홍차의 쓴맛과 떫은맛을 중화시켜 준 덕인지 더 부드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다만 타피오카볼을 흡입하기 위해서는 시중에 있던 빨대보다 더 큰 점보 빨대를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플라스틱 공장과 협력해야 했기에 업체를 수소문했다.
“어떻게 되었나?”
“일단 빨대는 현지에서 수급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매장은 어디 낼 겁니까?”
“수디르만 쪽으로 알아보고 있지 그래.”
“거긴 많이 비싼 곳 아닙니까?”
“일단 여론의 관심을 끌려면 이왕이면 제일 비싼 곳을 노려야 하지 않겠어.”
일단 이슈를 선점하는 게 중요한 만큼 마케팅에 돈을 아낄 필요는 없다는 생각.
인도네시아의 수도에서 비싸기로 유명한 수디르만 지역에 버블티 매장을 열었다.
가게의 이름은 버블칩스. 간단한 스낵과 함께 차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주 메뉴는 흑당을 넣어 만든 흑당 밀크티와 아쌈티, 그리고 타로 밀크티 세 가지.
토핑으로 코코넛과 타피오카 펄이 있는 단출한 구성.
타피오카 펄이 막 떨어지는 듯한 거대한 음료수 조형물로 시선을 끌었다.
“허, 밀크티에 토핑이라고? 별걸 다 파는군.”
“요거는 알인가. 좀 꺼림칙한데 그래?”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든 겁니다. 쫄깃하고 맛있어요. 설탕을 입힌 거라 달달하고 식감이 아주 괜찮습니다.”
현지 직원들이 홍보를 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은 처음 마셔 보는 음료의 맛에 문화충격을 느꼈다.
“Aswsome!”
“이 쫄깃쫄깃한 게 진짜 맛있네.”
한번 버블티 매장을 찾은 사람들은 새로운 음료에 순식간에 중독되었다.
무엇보다 달달한 맛과 쫄깃한 식감으로 무장한 버블티는 정확하게 동남아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했던 것, 수도에의 인기 덕분일까. 금세 핫한 아이템이 된 것이다.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뭔 줄이 이렇게 길어?”
“하하. 너무 인기가 좋아서 원 예약제로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인가?”
매장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입소문이 난 이후로 10여 분이 지나자 대기자는 80여 명으로 늘어났다.
“먹으면 살찌는 거 아냐?”
“걱정 마. 타피오카 자체는 별로 칼로리가 안 높다는군.”
핫하다고 소문난 대로변마다 버블티 매장이 하나둘 자리 잡자 무서운 속도로 번졌다. 보세의류점, 샌드위치 등 소형 외식업체 점포들 사이에 버블티 체인점으로 속속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맛과 창업비용이 적은 것도 인기비결.
곧 인기를 입증하듯 몇 달 만에 다른 음료수들을 누르고 왕좌에 등극했다. 날이 더워질수록 판매량이 늘어나며 매상 판매도 수직으로 치솟았다.
오픈 3개월 만에 늘어난 매장만 15개.
문제는 업무부하도 크게 가중되었다는 것. 가맹점을 계약할 때마다 직원들을 교육하고 시스템이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던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것이다.
‘이쯤에서 투자자 쪽에서 입질이 올 법도 한데…….’
여러 군데서 러브콜이 쏟아졌지만 강태준은 진득하게 기다렸다.
그러던 중 마침내 기다리던 소식이 도달했다.
“렌포 은행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버블티 사업과 관련해서 할 말이 있다는군요.”
“드디어 대어가 낚싯바늘을 물었구먼.”
렌포그룹은 인도네시아 소재의 다국적 대기업으로 아시아부터 북아메리카 대륙을 석권한 인도네시아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중 하나.
은행을 포함해 금융사업에도 종사하는 업체로 유명하다.
놀랍게도 강태준을 직접 찾아온 사람은 라한 회장이었다. 굵은 안경알이 인상적인 라한 회장은 전형적인 화교 사업가로 깔끔하게 생긴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이 누추한 곳에 직접 찾아오시다니.”
“하하. 마음이 급해서 말입니다. 강 사장 정도 되는 인물을 그냥 홀대할 수는 없지요.”
과연 인도네시아 대표 재벌답게 돈 냄새를 맡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막상 사업 계획서를 확인한 회장이 흠칫했다.
“초기 투자비로 2,200만 불이 필요하다고요? 이거 금액이 너무 높은 거 아닙니까?”
“저희 버블 칩스의 목표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닙니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서 시스템 자체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를 구축해 내는 것이 목표지요.”
“흠 이 정도까지 목돈이 필요한 이유가 있소이까?”
“장기적으로 가맹점이 비교 우위를 갖기 위해서는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운영기법과 위생조건을 확립해야 합니다. 한때 반짝하고 스러지지 않으려면요.”
솔직히 버블티라는 상품은 그 자체로 핫한 상품이기는 하지만 비교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기간이 짧다는 것이 강태준의 생각이었다.
“다른 도전자들이 벤치마킹하기 전에 시스템적인 우월성을 확보한다라. 취지는 좋지만 그만한 투자 가치가 있을지는 의문이군요.”
“저는 확신합니다.”
“어째서입니까?”
“결국은 프랜차이즈의 본질은 부동산 사업이니까요. 목 좋은 지역을 장악하는 과정이죠. 결국 프랜차이즈를 오래 유지하려면 기본적인 품질과 위생, 접객 같은 기본 요소가 좌우하지요. 맛도 시간이 지나면 상향평준화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명품과 공산품은 마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까. 그 전에 브랜드를 선점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십분 일리가 있는 말에 공감한 라하디가 X표가 쳐져 있는 지역을 다시 살펴보았다.
“일리는 있는 소리군. 하지만 이 방식대로는 자네가 말한 지역을 확보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랄 거 같은데 말이오?”
“저희가 죄다 직영으로 운용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땅주인을 구슬려서 후순위 대출권을 기반으로 토지 임대사업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땅주인이 담보를 설정하면 건물을 1차 담보로 융자를 받은 다음, 다시 땅주인이 그 건물에 대해 후순위 대출권을 갖는 것이다. 그 말에 리한 회장이 호기심을 보였다.
“흠. 괜찮은 아이디어지만 과연 땅주인들이 응하겠나?”
“중심지는 몰라도 변두리 쪽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적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향후 이쪽 지역을 선점해 놓는다면 지가 상승만 고려해도 충분히 남는 장사가 아닐까요?”
일종의 선진화된 가맹점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이야기. 신박한 계획에 관심이 생긴 리한 사장이 턱을 쓸었다.
“흠. 앞으로 개발될 지역을 미리 선점하라?”
“네. 토지 소유주 입자에서도 최소한 맨땅을 놀리는 것보다야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단 사람을 끌어들인다면 은행의 재무구조개선에 도움이 될 겁니다.”
라한 회장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소상공인 담보대출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정부 지원금을 받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결심이 스셨습니까?”
“좋네. 투자하도록 하지.”
그로부터 얼마 후, 렌포 은행에서는 수백 명의 가맹점주들에게 대출 심사를 진행하기로 하면서 지원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인기가 좋구먼요. 덕분에 쓸데없는 수고를 덜었군.”
“가맹비는 어떻게 할까요?”
“그건 매년 월별 가맹비와 가맹점이 올리는 매출의 일정 퍼센트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어.”
렌포와의 협력은 강태준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사업자에게 일종의 유인동기를 제공하는 방식이랄까. 더 높은 수익을 낼 자신이 있다면 가맹비를 지불하던가, 아니면 자신이 없다면 매출의 일정 퍼센트를 지불하던가.
어느 쪽이든 중요한 건 고정 수입이 발생할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게 월 가맹비를 공식화하면서 수익이 궤도에 들어가자 수익에 놀란 광필이가 딸꾹질을 했다.
“이야. 이게 얼맙니까? 20만 불? 이거. 컨설턴트에 시간당 300이나 준 보람이 있네요.”
“뭘 그런 걸 갖고 놀라. 이제 시작인데.”
10만 불도 안 되는 납입자금이 1억 달러짜리 부동산으로 탈바꿈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만 해 가지고는 아쉽지. 기관 투자자들을 끌어들여야지. 보험사를 끌어들여야 돼.’
대출을 땡기려면 현지 공장이 필수다. 필리핀에서는 연간 2만t 규모의 사탕수수 공장이 착공에 들어간 것이다. 공사 감독을 맡은 차대응의 모습에 강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착공 속도가 꽤나 빠르구먼.”
“아무래도 다음 해 정도면 바로 상업발전을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설치된 설비 중 일부는 벌써부터 가동에 들어갔을 정도로 속도는 빨랐다. 그렇게 농장을 순시하던 강태준은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농장 한쪽에 즙을 짜고 버려진 사탕수수 더미가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져 있던 것이다.
새콤한 냄새를 맡은 것인지 근처에서 온 가축들이 뜯어먹고 있다.
“근데 저건 뭔가?”
“아. 저거요? 버개스라고 사탕수수 찌꺼기입니다.”
알고 보니 버려지는 대략 1톤당 280kg 이상.
생각보다 엄청난 수치에 강태준이 혀를 찼다.
“이걸 다 버린다고? 그런 아까운 짓을?”
“현지에서는 딱히 용도가 없어서 그렇죠. 제당 공장에서 원료로 쓰긴 하는데 추가로 가공을 해야 돼서 그냥 귀찮으니 버립니다.”
“뭐 따로 용도가 없긴. 가축한테 먹이면 좋을 거 같구먼.”
“그러게요. 가공해서 펄프로 써도 좋을 거 같은데?”
한우에게 짚풀을 먹이는 것처럼 버개스도 가축사료로써 훌륭한 영양 공급원 아니겠는가.
거기에 버섯재배나 유기질 비료로 쓰일 수 있고.
버려지는 버개스의 양을 확인한 강태준은 결심이 섰다.
“이거 이참에 아예 버개스 공장을 세우는 게 좋겠어.”
“여기에 말입니까?”
“그래. 폐기물을 싼값에 수거해서 팔면 농가도 그렇고 우리도 같이 이득이지.”
강태준은 버개스를 들고 냄새를 맡았다. 돈냄새가 풀풀 풍기는 것이 달콤하기 그지없는 냄새. 최근 사룟값 급등으로 축산 농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만큼 훌륭한 대체재도 없지 않은가.
더욱이 목재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가격이 높아지는 추세.
식물 폐기물을 이용하여 펄프를 제조한다면 더 이득일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은 전문가에게 알아보는 것이 우선. 차강진에게 찾아가 문의하자 몹시도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사탕수수 찌꺼기로 펄프를 제조한다라?”
“예. 어차피 섬유질 덩어리잖아요. 심지를 제거하고 섬유질을 수집해 연질화하면 펄프화가 가능할 거 같은데요?”
“오호, 그럴듯한 이야기구먼. 그거. 사탕수수를 기르면 공정 과정에서 화학 약품도 필요 없으니 말이야.”
옆에 있던 최달건도 쌈빡한 생각이라고 여겼는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