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01화 (301/361)

301화 타피오카

그렇다고 해서 3,000에이커를 단번에 인수하다니. 어지간한 통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여길 바로 인수하셨다고요?”

“모로족들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더구먼. 적당히 돈 좀 쥐여 주니 좋아하던데? 어차피 팔고 나서 계속 일할 수 있으니 불만도 없고 말이야.”

“거참 뭐 할 말이 없네요.”

“뭐 고무나무라는 게 사실 고급품이니 용도는 많아. 목재로서 최고급 중에 하나니까.”

뒤에서 나타난 것은 용당목재 차강진 회장이 있었다.

그 헉헉거리는 최달건이 따라와 붙었다.

“스승님도 참. 그렇게 먼저 가시면 어쩝니까?”

“젊은 놈이 체력이 그래서야 쓰나?”

간만에 만난 차강진은 어째 더 젊어 보인다. 꾸벅 인사를 올린 강태준이 미소를 지었다.

“설마 여기까지 날아오실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아무리 강사장을 믿는다지만 현지답사도 안 하고 투자하기는 그렇지 않나.”

“그래서 소감은 어떻습니까?”

“좋구먼. 나무들이 아주 질이 좋아 생각 이상으로 고품질이더구먼.”

“그러게 내 모시느라 힘들었네. 말이 3천 에이커지. 진짜 어마어마하게 넓더구먼.”

땀을 훔치는 모습에 강태준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시원한 것부터 드시는 게 좋겠네요.”

“뭐 일단 공장부터 돌아가자고.”

그렇게 모인 일행은 곧장 생고무 가공시설로 향했다. 처음 도착한 고무장갑 공장에서는 1차 도장 작업을 마친 고무장갑들 위로 흰색의 고무옷이 입혀지고 있었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신기해서인지 자꾸 눈이 가는 강태준이었다.

“벌써 작업 시작했을 줄은 몰랐네.”

“그러게요. 색깔이 딸기 우유 같네요.”

“먹어도 돼. 식용향이라서.”

“아 정말요? 진짜?”

“뭐. 한번 시도해 볼 텨?”

“아니요. 사양하겠습니다.”

천연고무로 만든 장갑은 착용감이 부드럽고 신축성이 좋아 오래 사용할 수 있고 가소재가 첨가되지 않아 환경호르몬이 용출될 우려가 적고 피부 자극이 덜해 사용하기 좋다.

고무장갑 공장 옆에는 매트리스 공장도 있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뜨거운 공기가 훅 하고 들어왔다.

“더워. 아주 한증막이 따로없어.”

“직원들이 힘들겠어요.”

잠시만 있었는데도 땀이 주룩주룩 나올 것 같다. 매트리스 공장에서는 식빵에 굽듯이 핀이 달린 틀에 넣고 뜨거운 증기에 쪄 내는 방식으로 매트리스를 쪄 낸다.

시루떡처럼 윤기가 흐르는 매트리스를 손으로 떼 낸 다음 지게차에 실어 옮기면. 세척에 탈수를 거쳐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 건조시키는 것이다. 창고로 가니 메트리스가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에 건조가 끝난 매트리스 위로 올라간 복만이가 몸을 뒹굴어 보았다.

“푹신푹신한 게. 여기서 잠 잘오겠는데요.”

“이거 만드느라고 차 소장이 고생했지.”

“근데 타이어는 안 만듭니까.”

“그쪽도 개발 중이긴 한데. 아직은 수요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까. 좀 두고 봐야지.”

전문가를 모셔서 계속 연구 중이었지만 타이어 개발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일단 경쟁자도 한둘이 아닐 뿐더러 타이어코트와 금속선을 여러 겹 붙이고 설계해야 하고, 성형에 가황까지 동시에 해야 하는 만큼 손이 많이 갔던 것이다.

더욱이 가성비 좋은 합성고무 덕에 질 좋은 천연고무들도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은 가격 경쟁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강태준이 고무에 투자한 것은 당연히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

‘석유값이 폭등하면 당연히 가격이 폭등할 테니 말이지.’

합성 고무는 석유에서 열분해로 얻는 클로로프렌 등이 주원료다. 거기에 필리핀 최대의 고무 산지인 만다나오의 고무 재배면적은 2만 1천 에이커.

거기다 고무나무는 수확량 예측이 가능하고 관리도 쉽다.

최악의 경우 정 뭣하면 껌이나 운동화로도 쓸 수 있지 않은가. 강태준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원래 사업이란 게 끝까지 버티면 승리하는 거야.”

“네?”

“그냥 해 본 말이여. 용도는 많으니 고무 판매는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데 풍미 판매는 어떻게 되고 있어?”

“일단 현지 업체 쪽에 연락을 넣긴 했는데 답이 없네요. 아무래도 뭔가 좀 싸한데요?”

“그러게요. 너무 답변이 늦는데,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건가?”

이런 일을 자주 겪다 보니 이제는 대충 감이라는 게 온다.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곧 노기철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사장님, 아무래도 말레이시아 쪽에서 법적인 대응이 필요해 보입니다.”

“무슨 일인가 또?”

“아지노모토 쪽에서 방법 특허 문제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아지노모토 현지 법인에서 백경을 견제하기 위해 로비를 통해 공장가동을 중단시키려고 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키우기 전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그래서 영업정지가 떨어졌다고?”

“확정은 아니고 가처분이랍니다. 제법상 같은 박테리아를 쓰기도 하고 저희랑 제조 방법이 비슷해서 판단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우리를 어떻게 알고 그런 대응을 하지. 총 책임자가 누군데?”

“임태웅입니다.”

임태웅은 오성과의 MSG전쟁 때 아지노모토 측 책임자였던 사람이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때만 해도 관심 밖이었던 인물.

그런데 고작 몇 년에 사장급으로 승진하다니. 한국인이라는 페널티를 감안하면 엄청난 승진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이야, 벌써 대표이사 겸 사장이라고?”

“예. 원래는 좌천되었는데 오히려 실적을 크게 올리는 바람에 이쪽 사업규모가 더 크답니다.”

수라바야 공장을 거점으로 삼은 임태웅은 수도 자카르타는 물론 인구의 과반 이상이 밀집해 있는 자바섬을 집중 공략했다. 이렇게 틈을 봐서 밀어 넣은 것이다.

“우릴 이미 예의 주시하고 있었군. 마트들 반응은?”

“아무래도 상표권 문제도 있고 이미지가 좋지 않아 마트에서도 물건을 들여놓기가 그렇다는군요. 몇 달은 개점휴업 해야 할 거 같습니다.”

“허허, 이거 한 방 먹었군 그래.”

“첫 끗발이 개 끗발인데. 이렇게 되면 판매망 구축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겠군요.”

“아니 어차피 맞을 일이었다면 차라리 잘되었어. 소송은 전문가한테 맡기고, 일단 현지 조사부터 하자고.”

어차피 거쳐 갈 분쟁이라면 차라리 지금이 안사다. 매형인 설인모에게 법률 대응을 위임한 강태준은 자카르타에 가서 시장 상황을 분석을 시작했다.

“이야 대단한데요. 아지노모토 놈들 점유율이 무려 53%라네요 53%.”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듣자 하니 조미료를 싣고 직접 소비자들을 만나는 저인망식 판매전술을 도입했다는군요.”

자동차에 조미료를 가득 실은 차량이 재래시장을 순회하며 홍보를 했다고. 더욱이 현지인을 대리점주로 받아 책임의식을 고취시킴으로써 급속하게 능력을 넓히고 있었다.

“호별 판매제도를 벌써 도입할 줄이야.”

“뭘 걱정은. 각 도매점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굳이 거기를 손 안 댄 이유가 뭐겠나. 다도해로 이루어진 지역에서는 대면 판매만큼 좋은 방식이 없어.”

아지노모토는 압도적인 위치를 점유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위인 사사와도 사실 표면적으로만 경쟁관계일 뿐 주식을 서로 교환하고 판매제휴를 맺는 등 사이좋게 시장을 나눠 먹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건 완전 독과점 아닙니까? 나눠 먹긴데요?”

“아무래도 시장에 진입하려면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힘들 것 같군. 현지 유력자와 합작관계를 맺고 도전하는 수밖에 없겠어.”

“합작회사라 말은 좋지만 그러려면 뭔가 그쪽에 관심을 갖게 할 아이템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현지화 전략이 필요할 거 같은데.”

문제는 임태웅이 강태준이 초창기 구상하고 있던 영업 방식을 전부 적용해 버렸다는 점이다.

애초에 MSG의 원조가 아지노모토인 만큼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나 자금력 면에서나 쉽지 않은 상대.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 복만이가 한 아름 뭔가를 들고 왔다.

“넌 또 어디 갔다 온 거야?”

“밥 좀 사 왔죠.”

“어디서?”

“죠기 포장마차에서 팔던데요. 뭘 그렇게 고민이 많습니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일단 먹고 합시다.”

밖에서 얼마나 싸돌아다녔는지. 주섬주섬 종이봉투를 열자 향긋한 냄새가 감돈다. 다들 군침을 삼키며 눈치를 보는 것이 배가 고픈 모양.

생각해 보니 아침부터 식사도 안 하고 돌지 않았나.

근처 두캉바소에서 가져온 음식이었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맛이다.

볶음밥인 나시고렝에 칩이 곁들여져 있다. 납작한 바나나를 튀겨서인가. 파삭하면서도 달달한 향이 그만.

“이야. 당이 올라가니까 좀 살 거 같네.”

“그르게. 이런 게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은근 취향이네요.”

“원래 튀기면 당도가 높아진다는군. 이건 새우칩인가? 미묘하게 맛이 다르네?”

“아 예. 끄루푹 우당이라는 건데 타피오카 전분에 다진 새우에 밀가루를 섞어서 칩이나 크래커처럼 만들고 기름에 튀긴 전통 음식이랍니다.”

“오 신기하구만.”

타피토카 전분을 넣어 준 다음 170도 정도 되는 기름에 2~3초 기다리면 부풀어 오른다.

그때 기름을 잘 털어 내어 꺼내 주는 것이다.

파삭파삭하게 익은 과자가 꽤나 짭쪼름하면서 맛이 있었다.

“입천장이 까질 거 같긴 한데 중독되는군요.”

“이거 괜찮은데? 여기 MSG를 솔솔 뿌려 주고 과자로 팔아도 될 거 같지 않아?”

“오, 감자칩처럼 간해서 팔자 그런 뜻입니까?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요?”

“그것도 좋고 아니면 MSG만 포장마차 쪽에 대충 소분해서 1g 정도 규격으로 팔면 괜찮지 않을까?”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1g 분량이면 낭비도 없고 편리할 거 같아요.”

“아니, 여러분, 여기서도 또 일 이야깁니까. 후식까지 드시고 말씀하세요.”

얼음이 동동 떠 설탕과 분리되어 나온 망고 주스는 머리가 띵할 정도로 달았다.

아이스티, 밀크티, 과일 스무디, 레모네이드 등등. 다양한 종류의 음료의 향연에 다들 고개를 흔들었다.

“우와, 장난 아니네. 여기 오래 살면 당뇨 걸리겠습니다.”

“그르게. 아 배불러.”

“에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요? 더 드십쇼.”

“인마 너는 요새 더 찐 거 같은데. 니 마누라가 뭐라 안 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험악하게 하십니까. 우리 마눌님은 통통한 게 귀여워서 좋답니다.”

아직 반도 안 먹었다 지껄이는 복만이에 혀를 내둘렀다.

포만감을 만끽하던 강태준은 뭔가 아이디어 하나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버블티 그래. 버블티를 파는 건 어때?”

“그게 뭡니까?”

“밀크티에 설탕이랑 감미료를 섞은 음료지. 타피오카 전분을 넣어서 말이야.”

“밀크티에 타피오카 전분을요? 그게 대체 뭡니까?”

“말로 할 필요 없고 직접 먹어 보는 것이 좋겠구먼.”

강태준은 생각이 난 즉시 곧바로 실행에 돌입했다. 버블티를 만드는 방식은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열수에 찻잎을 넣고 우려낸 다음 비정제 설탕과 소금을 넣고 다시 끓이면 그만.

그리고 시럽을 넣은 혼합액에 다시 찻잎을 넣고 혼합해 24시간 냉장 숙성하면 된다.

‘예전에 자주 만들어 봐서 다행이구먼.’

사실 선상 위에서 수 개월간이나 먹고 자야 하는 원양어선 선원 입장에서 이런 음료를 평소에 즐기는 건 사치다. 그러니 알아서 즐기려면 본인이 만들어 먹는 수밖에.

칵테일 셰이커에 넣은 음료를 잘 섞고 나서 삶은 타피오카 펄 위에 졸인 시럽을 붓자 향긋한 냄새와 함께 연보랏빛 음료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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