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97화 (297/361)

297화 스쿠알렌

기념차 특별히 전문 요리사까지 불러와서인가 맛이 기똥차다.

샥스핀 수프에 상어 부침, 껍질까지.

마치 전시회에 나온 박제마냥 입을 벌린 거대한 상어 머리도 눈요깃거리. 호화로운 식사를 즐기던 그때 그러던 중 안연복이 나타났다.

“자자. 다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이거 쭉 들이켜세요.”

안연복이 가져온 것은 투명한 액체로 된 무언가. 점액질 같은 액체를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아 보니 묘한 레몬향이 난다.

“이게 뭡니까? 뭐 기름 같기도 하고”

“간유입니다. 상어 간에서 짜낸 기름이에요. 간이나 폐에 특히 도움이 되지요.”

“엑 간유요? 이게.”

“어니 뭔 상어가 기름이 이렇게 많습니까?”

“다른 물고기는 부력을 얻기 위해 부레에 의존하지만, 상어는 가스로 채워진 주머니 대신 지방 기름으로 가득 찬 큰 간에 의존하거든요”

“어 그런가요?”

그래두 영 거시기한지 아무도 마시려는 사람이 없다.

꺼림칙한 눈을 하는 사람들이 망설이자, 안연복이 답답한 듯 독촉했다.

“헤밍웨이 소설 못 보셨어요? 야들 참 이런 엑기스는 현지 아니면 영영 못 구해요.”

“아따…… 이딴 게 뭐라고. 거 안 먹을 거면 나 주소. 내가 다 먹을게.”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광필이가 옆 사람의 컵을 뺏어 들더니, 벌컥벌컥 액체를 들이켰다.

광필이가 크으 소리를 냈다.

“아따 좋은 거, 정신이 번쩍 드네. 속까지 건강해지는 기분이야.”

“으으. 그게 안 비립니까?”

“맛으로 먹는 건가. 몸 좋으라고 먹는 거지. 자자, 다들 드어.”

“이건 좀…….”

“뭘 그렇게 머뭇거리나. 남자라면 이 정도는 원샷해야지.”

광필이의 패기에 질린 제작진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옆의 시선을 보니 이대로 물러서기엔 체면이 서지 않았던 것.

결국 비릿함을 각오하고 쭉 들이켠 사람들.

곧이어 목구멍에서 불어닥칠 비린내에 대비하려는 듯 다들 숨을 멈추고 있다.

한데 이게 웬걸 생각 외로 먹을 만했던 것이다. 신기한 듯 남은 액체를 들여다보았다.

“응? 신기하게 별로 안 비리네.”

“그러게. 상어 간유라는 게 원래 이상한 냄새가 난다지 않았나.”

어안이 벙벙한지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들에 안연복이 지그시 웃었다.

“그건 산유가 산패해서 그런 거지,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닙니다. 갓 잡아서 처리를 잘하면 괜찮아요. 아까 드신 튀김도 이걸로 튀긴 겁니다.”

“아 진짜요?”

강태준 또한 한잔을 넙죽 받아 마셨다. 습관적으로 마시던 물건이던 만큼 익숙한 맛이다.

입 안에 감도는 기름기를 물로 헹구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는 듯하다.

그러던 찰나 퍼뜩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이거 잘만 하면 돈 되겠는데?’

상어간에 든 오일을 상품화할 수 있지 않을까는 생각이다. 경제가 발전하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기능성 건강식품이 인기몰이를 하는 중이었다.

지금은 꼴랑 원기소 하나가 선전중인 영양제 시장이지만 서서히 사람들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는 중이다.

90년대 건강식품시장을 제패한 것이 바로 이 스쿠알렌.

특히 스쿠알렌은 상어 간에서 추출한 유지를 정제한 불포화지방산으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어 노화방지와 노폐물 제거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선물용으로 굴비나 갈비보다 더 인기가 있을 만큼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기도.

단일 상품으로 연간 약 2,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한 효자 상품이기도 하다.

‘상어를 그렇게나 많이 잡았으면서, 어떻게 이 생각을 못 했지?”

눈 앞에 달러가 아른거린 강태준은 마음이 바빠졌다.

“재갑아 니는 여기서 남아서 영화 마무리 좀 해라. 유하 씨랑 같이.”

“아니 제가 말입니까?”

“어차피 영화 촬영은 거의 마무리 아니냐. 편집만 끝내고 개봉일만 잡으면 되지. 휴가 낸 셈 쳐.”

“아니 그거야 뭐 어렵지 않지만 뭘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나는 한국 쪽으로 내려가 봐야겠어.”

생각이 났으니 지체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영도회 출신의 고급 인력들을 고작 오징어나 멸치잡이 주구장창 시킬 수야 없지 않은가.

귀국한 강태준이 바로 노기철을 찾아 사안을 논의했다.

“그냥 간도 아니고 상어간 말입니까?”

“그래 간유를 상품화해 보는 건 어떨까 그래? 요새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수요가 꽤 늘고 있지 않나.”

“해외에 말입니까. 클로렐라가 잘 팔리는 걸로 봐서는 확실히 수요가 있는 거 같은데.”

“그러게…… 간 건강 및 해독작용에도 좋으니 숙취 해소용으로도 어필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호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간 보호라…….”

스쿠알렌 성분은 꽤나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알고 보니 헤어 컨디셔너는 물론 크림, 립스틱, 파운데이션 같은 화장품에도 많이 쓰인다고.

다만 전 세계적으로 상어의 종류는 무려 250가지가 넘는 만큼 어떤 녀석을 잡는 게 가장 효율적인지, 수급량은 어떤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울렌드 해양연구소에 수소문한 결과 곧 결론이 나왔다.

“표층에서 사는 상어보다는 심해 상어의 간이 효과가 그만이랍니다. 효율이나 질적으로 최상이라는군요. 그중 제일 물건은 인도양 수심 1천m 안팎에 사는 아이 상어는 녀석인데 무려 체중의 사분지 일이 이상이 간이랍니다.”

사료로 보낸 회백색의 간 사진은 실로 크고 아름다운 크기였다. 몸길이는 1.5미터 내외인데 튜브형으로 길게 포개진 간을 펴면 무려 자기 한 배 반이 넘는다고 했다.

“이야, 뭔 놈의 간이 그따구로 크냐 그래 완전히 간덩이가 부은 놈이네 그거.”

“이놈이 물건인 게 지용성분이 6할인데 스쿠알렌 함량은 무려 8할이 넘는답니다. 그야말로 보물을 품고 있는 셈이죠.”

“거 함량이 무지막지하구먼. 그래 어떻게 잡으면 된다나?”

“현지 어부들 말로는 보통 주낙으로 잡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심 1천 미터에 사는 심해고기를 바다에서 낚시로 잡는다?”

“네.”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구먼.”

상어 그림을 재차 확인한 광필이의 패기에 강태준이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눈은 연한 비취색의 눈빛이 영 거시기했다.

“별로 어렵지 않을 거 같은뎁쇼 형님. 다 자라야 1미터 50센티랍니다. 크기도 쪼마하고 상어치고 순하게 생겼네요. 눈도 초롱초롱한 게.”

“그럼 니가 해 볼텨?”

은근한 말에 광필이가 경기를 일으키듯 격하게 도리도리를 했다.

“아니요. 에이 형님도. 제가 바다일 손 뗀 지가 얼만데 어떻게 합니까. 이런 건 걍 전문가한테 맡겨야죠. 저 말고 그냥 재갑이한테 맡깁시다. 응? 그럽시다 형님.”

“싱겁긴.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미끼는 대개 숭어나 잡어를 사용한다고 하니 현지에서 공수하면 된다.

강태준은 곧바로 오재갑을 불렀다.

“당장 미국 해사자문기구(IMOC) 쪽에 연락해서 마크로네시아 쪽 조업쿼터 좀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조업 때문인가요?”

“응. 일단 시험조업 일정부터 잡게. 아무래도 최대한 빨리 땡기는 것이 좋겠어.”

“그럼 선장은 누구로 할까요?”

“요한이를 보내야지. 요새 멸치잡이는 더 못 해 먹겠다. 하겠다고 징징대던데. 영도회 애들 중에 자원자 몇 명 보내고 말이야.”

“흠. 그건 좀 곤란한데요.”

“왜?”

“갑판장은 어떻게든 될 거 같은데 일선 기관사가 수급부족입니다. 요새 경력자가 가뭄이라 자원자가 거의 없을 거 같은데. 다들 자동차 쪽으로 옮겨 가는 추세라서 말입니다.”

“돈 많이 주면 되지 않나. 정 안 되면 일선 보급창 출신이라도 끌어와.”

인력이 부족하면 태동 쪽과 딜이라도 해야 돼나. 인도양 출어라. 이런 식으로 본업으로 돌아가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았다.

그건 다름 아닌 정제시설이었다.

“현지에 공장 설립이라. 난이도가 높은데 어디서부터 손댈지 모르겠군.”

“뭐가 어렵습니까? 그까이 꺼 그냥 하면 돼지요.”

“잡는 즉시로 간부터 갈라 기름을 짜내야니까 문제지 그래. 안 그러면 바로 산패할 테니까 말이야.”

몸통이야 냉장 보관해 뒀다 레토르트용으로 가공하면 그만이지만 간에서 추출할 기름은 다루기가 까다롭다. 응고점이 낮아 쉽게 산패하기 때문.

공장으로 옮겨 단시간 안에 바로 정제를 해내는 게 문제의 핵심인데 캡슐에 담기 전에 스쿠알렌이 변질되지 않게 선도를 유지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참에 민관합동으로 어업교섭단을 파견하는 게 모양새가 좋은데, 이참에 현지 사무실이라도 둬야 하나?”

“뭐 이왕이면 상사를 세워서 시장조사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노기철의 제안에 강태준이 관심을 보였다.

“시장조사라니?”

“이참에 그쪽에 판매처도 뚫어 보자 이거죠. 요 근래 MSG의 국내 판매량이 답보 상태지 않습니까.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으니 돌파구가 필요할 거 같아서. 현지 시장조사도 할 겸 일단 영업사원을 파견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만?

노기철이 내민 보고서를 본 강태준이 자세히 살펴보았다. 태국과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정치 상황, 노동환경과 공업화, 그리고 MSG 소비에 대한 두툼한 보고서였다.

“흐음.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어? 그래 동남아 내 당밀 주요 생산국들을 진출 후보지로 삼아 시장 환경을 분석해 보자?”

“당밀의 국제가격이 폭등하고 있으니 대비해야죠. 영국과 일본계 기업들이 당밀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바람에 원료의 안정적 수급이 어려워지는 추세입니다. 안정적인 원료 확보 차원에서도 현장 조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군. 그럼 염두에 둔 사람은 있나?”

“뭐 점 찍어 둔 인재가 몇 있기야 합니다.”

“그럼 파견 명단 추출해서 보내 봐. 누굴 보낼지는 그때 결정하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일 처리를 마친 강태준은 다음 장소로 향했다.

강태준이 만나러 간 사람은. 미국국제개발처(AID) 극동 담당차관보인 씨는 루드웰 씨.

그는 AID 차장보로 취임한 대한 원조계획을 취급했는데 그때부터 한국에 눌러앉아 있었다.

강태준의 말을 전해 들은 루드웰이 흥미롭다는 눈빛을 했다.

“연질캡슐 제조설비를 들여오고 싶으시다고요.”

“네. 아무래도 영양제나 약 판매용으로 쓰려면 설비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영양제라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다면 판매처는?”

“일단 수출 위주로 생각 중입니다.”

“흐음 바로 수입은 어려울 거 같은데요. 요새 통관 절차가 까다로워져서 합작사나 기술제휴를 할 회사를 알아보는 편이 빠르실 겁니다.”

“협력사를 구해 오라는 뜻입니까?”

“네. 미국 쟌슨사에서 한국법인 설립을 추진 중입니다. 혹시 원하신다면 저희 쪽에서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좋은 징검다리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좀 생각해 보지요.”

외국기업들의 국내진출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마당이니 한번 해 보라는 권유. 소식을 들은 광필이도 그럴듯하다고 여겼다.

“조건이 나쁘지는 않은뎁쇼?”

“말로만 하는 소리지. 설비구축부터 GMP 승인을 완료하고 본격 생산까지 들어가려면 꽤 시간이 걸릴걸?”

일단 스쿠알렌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외국 제약사와 협조하는 게 유리하다.

특히 수요를 생각하면 유럽 쪽과 협조하는 게 좋다고 할까.

‘유럽 쪽 회사랑 기술제휴라…….’

독일이 이 분야에서는 알아준다고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계 기업보다 콧대가 높고 많이 까다롭다는 게 진입장벽. 생각이 길어지던 그때 어느덧 차량은 본사 앞으로 향했다.

간만에 본사로 돌아가는 길목 묘하게 바뀐 전경에 시선이 끌렸다.

“얼레…… 가로수가 생겼네.”

“어 진짜요. 언제 심었냐 이거. 아 근데 은행나무잖습니까?”

과연 정말일까 가로수 한쪽에 은행나무 잎이 무성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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