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과달루페에서
명감독에 흔히 보이는 완벽주의 기질이었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욕이 나오는 법.
그렇게 감정이 쌓이자 쉬는 시간이 될 때면 틈틈이 감독을 까기 바빴다.
“낙하산 주제에. 뭘 저렇게 잘났어. 싹퉁머리 없는 놈이.”
“뭘 그렇게 깐깐한지 모르겠구먼. 그래.”
“거 확 상어가 물어 갔으면 좋겠네.”
“그래 맞아.”
히히덕 대는 목소리에 동조하는 스탭들. 그때 불쑥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다들 뭔 소리를 그렇게 험하게 하나. 그걸 면전에서 대고 할 소린가?”
“사…… 사장님.”
강태준의 등장에 뒷담화를 까던 제작진들의 표정이 희멀겋게 변했다.
무슨 호통이 나올지 긴장하는 순간, 점잖게 타이르는 강태준이었다.
“자자 다들 너무들 하는군. 이런 큰 건을 맡았으니 얼마나 중압감이 크겠나. 쯧쯧.”
“죄송합니다.”
“열받지들 말고 여기 요기라도 하시게.”
“예예.”
한 소리 들을까 긴장했던 녀석들이 군말 없이 흩어지자 강태준이 혀를 찼다.
“다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구먼.”
“형님, 근데 형님이 너무 오냐오냐하시는 것도 맞아요. 감독만 너무 싸고돈다고 다들 불만이 심각합니다.”
“알아 알지. 뭐 내 볼 때 감독이 꽤 잘하는 거 같은데.”
“엥 형님도 참.
거의 근거 없는 믿음에 가까운 맹신이랄까. 기가 막힌 오재갑이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싸고도니 숨겨진 자식이라도 되냐는 소문이 도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어쨌든 형님이 하는 일이니 믿어 주는 수밖에.
그렇게 갈등이 조금씩 봉합돼 갈 무렵, 이번엔 다른 곳에서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아 젠장 텄네?”
“뭔 일이야?”
“모형이 또 망가졌습니다. 젠장할.”
오일로 손이 시꺼멓게 된 제작진이 울상을 짓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이유를 알고 보니 물에 넣은 상어로봇이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다.
촬영 시작부터 물에 들어가자마자 고장 난 기계에 푸념하는 사람들이었다.
“뭍에서는 멀쩡했는데 개자식들. 대체 방수를 어떻게 한 거야? 여분은?”
“이미 망가져서 수리 중이죠.”
“차라리 토호사에 맡길 걸 그랬습니다. 이거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몇 번째입니까?”
계속된 고장으로 촬영이 늦어지자 제작진의 분노게이지가 마구 치솟았다.
그러자 슈피겔이 덤덤하게 말했다.
“상어가 나오지 않는 파트부터 먼저 촬영하고. 나머지는 연출과 음악으로 때웁시다.”
“방법이 없군. 그럼.”
좀 쉬는 줄 알고 기대했던 사람들의 표정에 어둠이 끼었다.
그러자 누군가 푸념을 했다.
“허, 차라리 로봇 상어 말고 진짜 상어를 쓰면 좋을 텐데.”
“진짜 상어라. 미치셨나? 상어밥 될 일 있어?”
“왜. 차라리 낫지 뭐 리얼리티도 있고?”
하지만 그 말에 솔깃한 것은 강태준이 끼어들었다.
“가만 꽤 괜찮은 방법 같은데. 그거?”
“아이……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사장님.”
“그게 아니라. 실제 상어를 쓰는 거 말이야.”
“네?”
* * *
며칠 후, 멕시코의 과달루페섬 근처. 참치배 한 척이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욱!!!”
“갓뎀!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참치배에 탄 스탭들은 파도에 질린 듯이 진저리를 쳤다. 반쯤 죽어 가던 제작진의 모습에 한심한 듯 지켜보는 강태준.
멀미에 반쯤 맛이 간 스탭들의 상태에 강태준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쯧쯧. 미련하기는. 쓸데없는 자존심 부리지 말고, 멀미약 좀 먹으라니까. 그보다 우리 감독님이 괜찮나.”
“보시다시피 괜찮습니다. 저는 체질상 멀미 안 하는 체질이라서요.”
뱃머리에 선 슈피겔 감독은 정말 멀쩡해 보였다.
감독이 멀쩡하면야 촬영은 문제없겠다는 생각에 강태준이 흡족함을 감추지 않았다.
“부럽구만. 나도 적응하는 데 꽤 걸렸는데. 그보다 다 온 거 맞나. 이봐 페르난데스 얼마나 남았나?”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선장을 맡은 페르난데스의 서투른 영어에 다들 표정이 짜게 식었다.
1시간 전에도 금방 가면 된다고 이야기했던 만큼 다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 개자식, 잠깐이라니. 잠깐이 1시간이야?’
‘제발, 제발 이쯤에서 나와라.”
지칠 대로 지친 스탭들의 기원이 닿았을까. 그때 뭔가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뭔가 큼직한 무언가가 뱃전을 헤치고 나타난 것이다. 눈이 번쩍 뜬 스탭 하나가 소리를 높였다.
“저기…… 저기 보십쇼!”
그 말에 망원경을 들어 보니 저 멀리 상어 지느러미 하나가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위치를 확인한 강태준이 손을 저었다.
“오. 정말이네. 스톱. 이 근처인가 보이.”
“다 온 겁니까?”
“그래. 장비부터 내리자고.”
잠시 배를 세우고 스탭들의 상태가 나아지자 감독이 선수 앞으로 나왔다.
상어가 좋아하는 먹이를 던져 미끼로 유도하고 다가오는 백상아리를 근접 촬영할 예정.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싼 것이 비지떡이랄까.
공수해 온 인체 모형의 상태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감독이 보기에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이다.
“이건 인체 모형은 좀 리얼하지가 않은데 차라리 사람이 들어가는 게 어떻습니까?”
“샤크 케이지에 사람을 넣자고? 그냥 인형을 쓰지.”
“그건 너무 가짜 티가 날 텐데요. 들어가서 촬영하면 현장감이 살 거 같은데. 누구 지원자 없습니까?”
그에 감독이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스턴트맨들은 죄다 딴청을 피웠다.
상어를 정면에서 맞상대하라니.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그건 무리다.
오기를 부리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침묵이 길어지자 때마침 뒷짐을 지고 있던 광필이가 호기롭게 나섰다.
“뭐여. 쫄보들, 그럼 내가 하지 내가.”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건 좀.”
설마 임원진이 나설 줄 몰랐던 제작진은 급 당황했다.
“그냥 안에서 참치 먹이만 주면 되는 일 아녀. 뭐 그까이 꺼 쉬운 일이지 그래.”
“아니 그래도 혹시 문제라도 생기면.”
“괜찮아 괜찮아. 내가 전문가라니까? 믿고 맡겨 봐.”
한쪽에서는 계속 말리고 한쪽에서는 하겠다고 떼를 쓰는 상황.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자 강태준이 광필이를 따로 호출했다.
“너 미쳤냐. 왜 그래?”
“아따 형님도 날 못 믿으소? 걱정 마소. 이런 거 한두 번 하나?”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금발의 조연출이 머리를 꼬며 불안한 듯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은근슬쩍 상대를 염두에 둔 듯한 태도에 강태준의 혀를 찼다.
“너 이 자식이, 점례랑 또 싸웠냐?”
“무슨 소리요. 형.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요.”
“뻘소리 말고. 암튼 니가 자청했으니 책임은 지는 거다. 문제 생기면 바로 나와.”
“나 참 날 뭘로 보고. 형 나만 믿으소 나만.”
호언장담하는 광필이에 강태준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광필이가 케이지 안으로 들어가자 페르난데스 선장이 신호를 주었다. 커다란 참치 덩어리를 바다에 던져 백상아리를 유인했다.
하지만 상어들도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았다. 지능이 높지는 않은 놈들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불청객에 경계심이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미끼만 빼먹고 도망가기를 여러 번. 애꿎은 해달이 걸려 문제가 생긴 경우도 적지 않았다.
며칠간 밤샘을 하며 기다리던 중 마침내 기회가 왔다.
마침내 큼직한 놈이 물 앞까지 접근한 것.
물살을 가르며 유영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왔다. 왔어.”
“소리 죽이고. 카메라…… 찍고 있어?”
“예! 찍고 있습니다. 절대로 주의해.”
지느러미 크기를 보니 집채만 한 대어. 드디어 제대로 된 상어의 등장에 촬영팀에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참치를 보고 흥분한 백상아리가 곧바로 돌진해 버린 것.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케이지가 흔들리자 넘실거리는 배. 균형을 잃을 뻔한 사람들이 난간을 간신히 붙잡았다.
“어어!!”
“다들 난간 붙잡아!”
다행히 안전장비를 단단히 했기 때문에 별 탈은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숨이 덜컥 내려앉은 사태가 발생했다. 의욕 넘치는 상어가 철창을 뚫고 케이지 안쪽까지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아가미가 철창에 끼자, 제풀에 놀란 상어는 케이지를 빠져나가기 위해 발광했다.
“쓰벅! 이런 미친!!”
“야. 빼 빼!!”
몸부림치는 상어에 갑판이 들썩거릴 정도. 잘못하다간 흥분한 상어밥이 될 수 있는 관계로 일행이 상어를 우리 밖으로 꺼내기 위해 호들갑을 떨었다.
케이지 위쪽 문을 열고 나오도록 유도를 했다.
하지만 케이지에 낀 백상아리는 괴로운 듯 펄떡거리면서도 좀처럼 나갈 길을 찾지 못했다. 아가리를 벌리며 흔드는 사이 사람들은 작살을 들자 강태준이 말렸다.
“자극하지 마십쇼.”
“이런 일루 나와! 거기가 아니야!”
학깃대를 들어 살살 백상아리의 주의를 끌기 위해 유도한 것. 십여 초가 지나고 몸부림치던 백상아리는 우리 위쪽에 달린 문을 통해 나와 다시 바다로 사라졌다.
우리 안에 있던 광필이가 다치지 않은 것은 천우신조.
겨우 케이지를 벗어낫지만 얼굴이 허옇게 변한 것이 거의 혼이 빠졌다.
볼살이 푸들푸들 떨리는 광필이에 복만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괜찮소? 형님?”
“뭐 괜찮기는. 니가 보기엔 괜찮아 보이냐. 이런 호로…….”
쌍욕이 나오려는 순간 걱정스러운 눈빛과 마주친 광필이의 태도가 급변했다.
“하하. 괜찮아. 봤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허허 물 들어갈 때부터 이 정도야 예상했지 그래.”
“진짜 정말 대단한 강심장이십니다.”
“하하. 이 정도야 내가 전장에서 땅크도 뿌수고 다닌 사람인데 말이야 하하!!”
과장되게 공포감을 떨쳐 내는 광필이에 다들 질렸다는 눈빛.
허풍을 떠나서 정말로 골로 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때 슈피겔 감독이 쭈뼛거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저…….”
“왜 그런가 우리 감독님.”
“그게, 좀 죄송하지만 영상이 너무 흔들려서, 한 번 더 갈 수 있겠습니까?”
“응. 뭐라굽쇼? 그건 좀.”
귀를 의심하는 광필이의 표정이 팍싹 짜그라든다.
핼쑥해진 광필이가 주춤거리자 모여드는 눈빛들. 뒤로 물러서는 녀석에 강태준이 어깨를 짚었다.
“어, 형님?”
“아무래도 니가 끝까지 책임져야겠다.”
* * *
으아아아아악!!!
서서히 다가오는 20피트의 거대상어가 몸통을 물어뜯는 순간,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는 남자! 그러자 뒤에 있던 남자가 뾰족한 창으로 상어의 콧잔등을 찔렀다.
감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컷! 잘했어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어요. 다들.”
“와우. 드디어 끝났구먼 그래.”
상어 몸통에서 기어 나온 배우들이 옷에 묻은 물감을 털었다. 야외촬영이 끝났다는 말에 제작진은 표정은 후련해하는 사람들. 영화 촬영이 끝나는 날에 맞추어 때마침 상어고기 파티가 열렸다.
“이야. 술안주로 돔배기라니 호화롭구만.”
“상어고기를 먹다니. 아무도 안 믿을 거야.”
“그러게…… 우리들이 직접 상어를 잡았다고 하면 사람들도 믿지 않겠지.”
“현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니겠나. 시장에 나가도 이만한 품질은 못 구하지. 평생 먹을 일이 별로 없을 거요.”
술자리에 모인 제작진은 흥분한 듯 왁자지껄했다.
처음엔 실물을 보고 못 먹겠다 질색하던 제작진도 이제 상어고기에 익숙해졌다.
부드러운 식감에 특유의 감칠맛이 나는 고기는 꽤나 별미.
하지만 정작 슈피겔 감독은 한 입도 입을 대지 않았다.
“어이 입맛에 안 맞으소?”
“전 되었습니다.”
“그렇지 빼지 말고 좀 드십쇼. 이거 보게 연골이 아주 쫄깃하구먼.”
“맞습니다. 요게 참 신통방통하다니까요. 닭고기도 아닌 게 부위별로 식감이 달라요.”
촬영의 일등공신이기도 한 광필이가 꼬치에 꿰인 돔베기를 베어 물었다. 그 앞에는 벌써 12개째. 앞접시에 꿰인 꼬치가 수북이 쌓여 있다. 냄새를 쫙 뺀 고기는 연육작용이 잘 되어서인지 육질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났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