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95화 (295/361)

295화 샤크 어택

내심 귀가 솔깃해진 편집장. 하지만 너무 대놓고 좋아하다가는 나중에 불만을 토로하기라도 하면 골치가 아프다. 잠시 표정관리를 한 녀석이 신중한 어조로 대꾸했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판매량이 적다면 손해 보실지도 모르는데요?”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요. 하겠습니까. 말겠습니까?”

“좋습니다. 딴말 없으시기 바랍니다.”

“저야말로.”

노스텔지아 사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주의였던 만큼 그대로 싸인하기로 한 것이다. 계약 조건을 확인한 설유하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선인세가 25만 불이라 좀 애매하네요. 판매량이 부진하면 처음 조건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뭐 많이 팔기만 하면 됩니다. 저희도 유통체인을 세웠으니 도서 코너를 두면 그만이고요.”

남들이 보기에는 무모한 도전이라 보일지 모르겠지만 강태준은 자신이 있었다.

예전에 출판했던 작품은 천만 부를 우습게 넘긴 베스트셀러였으니까.

전문 작가진의 도움을 얻어 미국식 입맛에 맞게 버무린 글이 아닌가.

다만 판매량을 극대화하려면 유통망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잠시 고민하던 강태준이 L마트 쪽 관계자에게 연락을 넣었다.

전화를 들자, 지점장으로부터 궁시렁 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미스터 강. 마침 잘되었군. 타일 하나 가지고 너무한 거 아닌가. 그 스파 광고는 뭔가. L마트는 사절이라니 자네 이렇게 치사하게, 매니도 짤렸는데 좀 풀어 주지 그래.”

“됐고. 본론부터 말하지, 그쪽에서 책 좀 팔아 줄 수 있겠나?”

강태준의 제안에 L마트에서는 코웃음을 쳤다.

“장난하나. 우리가 무슨 자네 하청업체인 줄 알아?”

“싫으면 하지 말고. 그럼 계속 아쉽게 살던가.”

“아니 잠깐!!”

강태준이 끊으려고 하자 다급히 말했다.

“휴전하지. 그래. 페어플레이하자고. 그놈의 스파 광고는 내리는 걸로.”

“그럼 그쪽에 우리 물건도 들어가는 걸로. 그리고 다시는 그딴 장난하지 말아.”

“그거야 당연한 말씀을. 그럼 직원들 제한도 풀어 주게.”

“하는 거 봐서.”

L마트와의 휴전이 마무리한 강태준은 다시 출판사 쪽에 연락을 넣었다.

“저번에 잊고 말하지 못한 게 있는데, 표지는 저희 쪽에서 만들 테니 맡겨 주십시오.”

“그쪽에서 말입니까? 괜찮겠습니까? 저희 쪽에 포스터 전문가가 있습니다만?”

“걱정 마십시오. 저희 쪽 전문가도 실력이 못지않습니다. 일단 보고 나서 판단해 보시죠.”

“거참…….”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원작자가 강력히 요구하는데 별수 있는가.

그러나 며칠 후 의뢰를 맡긴 그림을 본 노스텔지어 사는 의구심이 사라졌다.

아래턱을 벌린 채 잠수부를 삼키려는 백상아리와 절박감에 손을 벌리는 잠수부의 모습은 오싹함을 절로 자아냈던 것. 노스텔지어 관계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시무시한 솜씹니다. 색감이랑 구도가 끝내주는데요?”

“마음에 드셨다니 감사합니다. 작가 본인이 상어를 그리는 건 간만이라 좀 어색할지 걱정이라던데. 좀 부족하면 다시 그리겠다네요.”

“무슨 말씀을. 아주 맘에 드네요. 누군지 모르지만 저희도 소개시켜 주십쇼.”

백종섭 특유의 거친 붓터치가 생동감을 배가시킨 덕에 다들 만족감을 표시했다. 피가 흘러내리는 듯한 붉은 빛의 폰트를 더하자 그야말로 시선집중이 아닐 수 없다.

인쇄소에서 초판으로 인쇄한 물량은 10만 부. 푸른색의 표지에 피가 번지는 듯한 느낌이 섬뜩하리만치 리얼하다. 진열대에 올려진 샤크 어택은 곧장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책을 든 사람들은 곧 내용에 빠져들었다.

“이야. 이거 괜찮네. 오싹오싹한데 그래.”

“미친 이거 왜 이렇게 재미있어. 어 이 양반, 그 해양전문가 양반 아냐?”

“오 진짜. 사업가가 재능 미쳤네. 이번엔 책까지 쓰나?”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거라고.”

-금세기 최고의 서스펜스

-해양소설의 신기원. 소설 문법을 바꾼 대작.

책의 진가를 알아본 비평가들이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기 바빴다. 무시무시한 이빨에 삼각지느러미를 가진 이 동물과의 손에 땀을 쥐는 대결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전문가다운 필력과 빠른 템포로 이어지는 속도감.

자연재해와 같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상어가 발암 캐릭터를 사정없이 쓸어버리는 카타르시스까지.

서식지를 빼앗긴 식인 백상어에 감정 이입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였으니 그 인기를 알 만했다.

-상어에 감정 이입하면서 보기는 처음이네.

-헛소리, 착한 상어는 죽은 상어뿐.

-문명인이 무례한 것은 상어밥이 되지 않아서 무례한 것이다.

[출간 직후부터 무려 50주]

[샤크 어택의 독주를 누가 막을 것인가?]

한번 기세를 탄 샤크어택의 독주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베스트셀러 목록에 최상단에 머물더니 고작 삼 개월 만에 600만 부 가까이 팔려 나간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상어의 크기가 너무 크다며 현실성을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건 비현실적인데요. 어떤 상어도 선미 클리트로 배를 당길 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성급한 일반화는 금물입니다. 인간 중에도 특별히 힘이 센 사람이 있는 것처럼 상어도 마찬가지죠.”

“그럼 정말 저만한 상어를 맨손으로 격퇴할 수 있습니까? 물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상어 맷집이 생각보다 약하거든요.”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아, 그건 그짝이 직접 확인하면 되잖습니까. 궁금하면 직접 잡아 보시던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랄까 TV에 출현한 강태준과 패널간의 토론 배틀이 이어지면서 언론은 다시 불탔다.

해명 차 TV쇼에 나간 강태준은 핫한 TV 스타로 급부상한 것이다.

성공한 기업가라는 후광, 실제로 해양전문가라는 경험과 지성미,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가 미국 특유의 마초적인 감성을 자극해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거기에 강태준은 쓸데없는 썰을 계속 푼 것도 영향을 미쳤다.

상어 VS 고래라던지, 아니면 상어랑 참치 중 누가 빠른지 등등.

언론이 좋아할 만한 먹잇감을 계속 투하하자 하루가 멀다 하고 상어 관련 소재가 기사를 도배했다. 인터뷰를 통해 화제를 계속 양산한 것도 판매에 도움이 되었다. 대신 부작용도 상당했다.

“인터뷰가 몇 개나 남았지?”

“겨우 5개입니다.”

“미쳤나. 차라리 죽이라고 그래.”

뼈를 깎는 강행군에 강태준은 눈 밑이 거뭇거뭇해졌다.

“에이, 그냥 나가서 대충 웃어 주고 하하 호호만 하면 됩니다. 어차피 인터뷰야 요식행위죠.”

“이 자식이 순 거짓말은. 그랬다가 악평 쓰면 어쩌게.”

“형님이 그런 것도 신경 쓰십니까?”

“니도 바가지 긁혀 봐라 신경 안 쓰이나. 글고 이놈들 왜 이렇게 사생활에 관심이 많아?”

듣도 보도 못한 기자들은 승냥이처럼 마구 물어뜯었다. 연예 기사라니. 오재갑이 웃으며 강태준을 달랬다.

“유명인의 숙명이죠. 근데 영화제작은 어쩌실 건가요. 아키라 감독이 자기가 만들고 싶다던데.”

“미안하지만 그 양반은 안 되지. 제작비를 얼마나 잡아먹을지 모르니까?”

“아니 그럼 누구한테 맡기실 겁니까?”

“이미 정해 뒀지 그래.”

강태준이 내민 서류를 본 광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윌리를 찾아라에 나올 법한, 인상의 멀대 하나가 서 있었던 것이다.

“범생이같이 생겼구만요. 근데 약력이 좀 빈약한뎁쇼. 정식 영화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당연히 그렇겠지. 정식 연출작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TV영화? 그게 뭡니까?”

“정체불명의 트럭에 쫓기는 운전사에 대한 영화야. 단편소설을 각색한 건데 몰입감이 엄청나더군. 카메라 워크며 연출이 아주 세련된 거더라고. 관객에게 긴장감을 주는 능력이 아주 타고났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제작비가 1,500만 달러짜리 영화를 이런 애송이한테 맡긴다고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나. 실력과 경험이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고.”

만 20세가 갓 된 신인에게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인선.

강태준과 접촉한 스티븐 슈피겔 역시 믿기지 않는 듯 계약서를 열 번이나 다시 들여다보았다.

“정말 저한테 이 영화를 맡기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니까?”

“아시겠지만 전 영화 연출을 그닥 많이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거 잘되었군. 이번을 경험 삼으면 되지.”

“뭐…… 기회가 되면 하고 싶습니다만 그래도 좀. 현실적으로 제가 감독하기는 힘들 거 같은데.”

“성공하고 싶으면 뻔뻔해지게. 이게 바로 기회라는 거야.”

“그래도…….”

“혹시 자신이 없는 건가?”

자존심을 건든 건지 잠시 고민하던 브루노가 입을 열었다.

“뭐 그렇다면 촬영과 관련해서 전권을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게. 감독은 자네니 각색이든 뭐든 캐스팅은 자기 맘대로 해.”

“진짭니까? 절 뭘 믿고.”

“내 사업가로서의 감각을 믿는 거지. 실력을 보여 봐.”

검증된 복권을 긁는 것은 도박이 아니다. 애초에 향후 할리우드에서 50년간 해 먹었을 정도면 전설 아니라 레전드를 찍은 감독이 확실하니 당연히 믿어도 되지 않나.

게다가 미래의 슈피겔 감독은 예산 내에서 최고의 수작을 뽑아내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관계자의 반발은 상당했다.

“20살짜리 코흘리개를 감독으로요? 아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저희 나라에서 20살이면 애 둘은 있는 애아버지였어요. 뭐가 문제입니까?”

“실력이야 좀 있는 것 같지만 굳이 빌리 와일더나, 레오네 같은 감독이 바란다는데 왜 거절합니까. 차라리 아키라 감독을 쓰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영화제작사인 위너와 노스텔지어 사에서는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며 강태준을 설득하려 들었다. 세상에 이런 영화에 검증되지 않은 신인 감독이라니.

반발이 극심했지만 강태준도 한마디로 일축했다.

“이건 내 작품이에요. 슈피겔이 아니면 영화제작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게 얼마짜린지 알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작품이 망할 경우 손실분은 제가 전적으로 책임지지요.”

“허…… 굳이 그렇게까지, 알겠습니다. 대신 연출진은 저희 쪽이 보태도록 하지요.”

강태준이 그렇게 강경하게 나오자 제작자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결국 나온 타협점은 총감독만큼은 강태준의 말을 따르는 대신에 베테랑 스태프로 혹시 모를 그 틈을 벌충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은 후일 명장으로 불리우는 슈피겔이 어떤 인간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 * *

촬영에 들어간 영화장.

고성이 터져 나오는 촬영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살벌했다.

“못 해 죽어도 못 해!!”

“아니 못 하시겠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똑같은 장면만 대체 몇 번째인가. 사람이 이렇게는 못 찍어!”

노발대발한 촬영감독이 발을 동동 구르다 분기를 참지 못해 자리를 떴다. 어린 감독과 제작진의 갈등으로 인해 촬영장 분위기는 폭탄을 맞은 듯 변했지만 그러나 슈피겔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고작 10분도 안 되어 다시 연출진을 부른 것이다.

“아니, 연출 감독님은?”

“아까 화나셔서 아예 집으로 가 버렸어요.”

“그래요? 차라리 잘 되었군요. 거기 스탭!”

“카메라 작업 가능하죠?”

“예?”

“지금부터 그쪽이 책임자입니다. 당장 찍어요.”

그날로 짐을 싼 연출 감독이 바뀌었다. 독재자나 다름없는 행보였지만 슈피겔에게 타협은 없었다. 쉴 새 없이 자기가 원하는 씬이 나올 때까지 계속 몰아붙인 것.

감독을 휘어잡기는커녕 오히려 쫓아가는 판이 되니 죽을 맛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