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지옥 불가마
“정말 두 배를 준다는 말입니까?”
“이 단가에 맞게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 주십시오.”
고급 타일을 외벽에 아낌없이 쓰는 만큼 공기단축이 최우선. 어차피 매몰 비용 따위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뚝딱뚝딱 완성된 사우나 방은 그야말로 으리으리했다.
“아 이거 신전 아니냐?”
“예…… 하하. 그렇게 되었네요.”
“저기 앞 여신상은 니 취향이냐? 응?”
은근히 제 마누라와 비슷해 보이는 천사상을 본 강태준이 지적하자 복만이가 딴청을 피웠다.
“하하. 제가 만든 것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긴 이 자식이가 또. 돈 낭비를.”
“아니라니까요. 형님. 이건 우연의 일치일 뿐. 아앗!! 형님 귀 찢어져요!”
그렇게 완성된 건물은 꽤나 고풍스러워 보이는 외관은 절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지중해 신전을 연상시키는 외관이 돈을 처바른 듯한 고급스러움에 한 번씩 시선을 줄 만했던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제일 반가워한 것은 한국인들.
“사우나가 생기다니 세상에.”
“코리안 스파 그뤠잇! 컴온!!”
동양인만 국한되지 않았다. 옆에서 호객행위를 계속하는 중 핀란드 출신의 남자 하나가 용기를 냈다. 아늑하고 맑은 실내 분위기에 어디선가 은은한 솔향이 풍기는 듯.
코를 벌름거리던 매키낸이 약간 몽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근사한데?”
“그러게 돈을 어마어마하게 썼구먼. 테마별로 방을 꾸미다니. 대단하구먼 그래.”
같이 따라온 동료 또한 주위를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입장료는 15달러.
그렇게 싼 가격도 아니지만 인테리어를 보니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고급 벽제를 쏟아부은 탓인지 인테리어는 정말 고급 일색이었던 것이다.
자재만큼은 오성급 호텔 못지않을 수준.
지옥과 천국이라는 컨셉에 맞게 분위기도 꽤나 그럴듯하게 양극화되어 있다.
매키낸이 주섬주섬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직원 하나가 갈아입을 옷을 내주었다.
“처음인데, 어디로 가면 됩니까?”
“아 그래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처음 안내된 곳은 온통 옥으로 도배한 방. 맥반석을 달구어진 공기가 기분 좋게 코끝으로 스며들자, 얼굴과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체내의 노폐물이 빠져나가자 시친 오장육부가 노곤해지는 기분.
뜨거운 열기에 몸도 식힐 겸 밖으로 나올 무렵. 매키넨과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수건으로 양머리를 한 채 식혜와 수정과를 빨고 있었던 것이다. 양쪽으로 수건을 만 것이 뭔가 따라 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참을 수 없었던 매키낸이 물었다.
“저거 뭔가?”
“코리안 쉽 스타일입니다. 한번 따라 해 보시겠습니까? 자 이렇게.”
친절하게 양머리 하는 법을 가르쳐 준 직원이 모자를 만들어 주자 덮어쓴 둘이 서로 피식 웃었다. 묘한 만족감도 잠시 직원이 식혜를 내왔다.
“이건 뭐요? 시킨 적이 없는데.”
“네 서비스입니다. 처음 오시는 분들한테는 꼭 대접하라고 하더군요.”
식혜와 같이 구워진 맥반석 달걀을 즐긴 사람들은 숯방으로 안내되었다. 은은한 한약 냄새가 퍼져 있는 방에서 훈훈한 열기를 쐬고 있자니. 기분도 한결 상쾌해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온 전문 지압사가 시원하게 근육을 풀어 주자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신세계가!”
뜨끈한 열기 속에서 단잠을 자자 모든 피로와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
전신 마사지에 세신 서비스를 함께 받을 수 있는 패키지로. 코리안 스파는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
그날부터 맥키낸은 사우나 죽돌이가 되었다. 고급스러운 외관에 명상을 연상케 하는 편안한 분위기. 휴식공간이 필요했던 도시민에게 그만. 사우나로 땀을 뺀 고객들을 위해, 피로회복 한약을 만들어 제공하기까지 했던 것도 인기몰이의 요인이었던 것이다.
동양에 대한 신비감을 최대한으로 자극하는 전략도 눈길을 끌었다.
-우리 마트에서 물건을 사면 입장료를 깎아 드립니다.
구매 후 3시간 내에 사우나를 방문하면 가격의 10프로를 깎아 주기로 하자 손님들이 한쪽으로 몰렸다. 사우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L마트의 매출은 급감했다.
“이봐 매니, 이게 어떻게 된 건가?”
“그게 좀. 저희도 예상치 못한 부분이라.”
“대책을 마련해 봐 대책을! 자네가 입안한 계획 아닌가.”
제가 짜라고 해 놓고 떠넘기기라니.
경쟁사였던 L마트로서는 한번 골탕이나 먹여 주려고 한 것이 도리어 경쟁사만 키워 주는 꼴이 된 것이다.
얼마 후 퇴사한 매니가 길거리를 찾았을 때 그를 슬프게 하는 것이 보였다. 항상 놓여 있는 팻말이었다.
‘L마트 직원 사절. 타사 영수증은 받지 않습니다.’
* * *
“클로렐라 판매량이 분기별 250% 상승했습니다.”
보고를 받는 자리. 사우나 사업이 생각보다 커지면서 강태준은 전략을 수정했다 사실 유통업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우나 인기가 너무 좋아지자 전국적인 규모로 스파사업을 키우기로 한 것이다.
“수요가 있으니 일단 스파사업은 계속하자고. 어르신한테 발주는 맡겨 뒀으니.”
“어디서부터요?”
“텍사스나,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부터, 한인이 많은 지역을 집중 공략하기로 하자고.”
유통 관련 업무는 로빈에게 맡겨 두고 강태준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하나 더 준비했다.
다름 아닌 해양 소설 출간이었다. 예전부터 미뤄 왔던 일이지만 이제는 더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강태준이 틈틈이 소설을 집필하겠다는 말에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저희가 경험한 수기를 소설화했다고요?”
“똑같이 말고 각색한 거야. 아무래도 범고래는 악당치고 너무 귀여워 보이지 않겠나? 이빨이 빼쭉한 게 생김새가 흉악한 놈으로 말이야.”
“호오. 그거 괜찮겠는데요?”
“사실 여기 재갑이 도움을 받았지. 무려 등단한 사람이니 말이야.”
“별말씀을요.”
소설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멕시코 서부 몬테레이 만 스페인 보물선이 있다는 소리를 발견한 헨리 포드는 오래된 보물이 발견된 곳이 있다는 소리에 탐사팀을 구축한다.
하지만 탐사팀은 전멸했고 탐사단 대표였던 헨리는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다리 없는 시체가 되어 둥둥 떠오른다.
범인은 다름 아닌 거대 상어.
아버지이자 투자자인 제롬 포드 경은 샤크에 대한 이야기를 숨기고. 전국의 해양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보물 인양작업에 나서는데…….
강태준도 영화사업을 하면서 꽤 보는 눈이 생겼고 최고의 드라마 작가들과 소설가들을 섭외해 자문과 각색을 거친 것인 만큼 꽤나 질이 좋았다.
“오 이거 꽤 읽을 만한데? 내용이 꽤 쫄깃합니다.”
“영문으로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일 거 같은데? 제목은 뭐로 할까요?”
“샤크 어택?”
“직관적이네요.”
“일단 가제로 정하려고.”
노골적이지만 저작권에도 걸리지 않으니 안전하다. 다음 수순은 어떻게 책을 팔 건지에 대한 전략이었다.
“그럼 유통방식은 어떻게 하는게 좋겠나. 우리가 직접 출판사를 세우는 게 좋을까?”
“그건 좀. 자력유통도 나쁜 생각은 아니지만 유통망 개설에 필요한 금액을 고려할 경우, 수지에 맞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세금도 그렇고 견제도 심할 거고요.”
“그래?”
“아무래도 현지업체와 협업하는 편이 안전할 거 같습니다.”
“좋아. 한번 유명 출판사와 접촉해 보도록 하지.”
굳이 알력 다툼을 할 생각이 없던 강태준도 고집을 부리진 않았다. 일단 책을 출판사들에 보낸 다음 에이전시와 연락해 판권 계약을 진행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벌써? 어딘가?”
“노스텔지어입니다.”
“꽤 괜찮은 곳에서 왔구만.”
맨하탄에 본사를 둔 노스텔지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 그룹인 베텔스만 소속으로 무려 60여 명이나 되는 노벨상 수상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명성이 대단한 회사가 거래를 청했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에 흥행성이 보인다는 방증.
강태준이 찾아가자 두꺼운 안경의 편집자가 신중하게 초고를 살펴보았다.
“검수를 해 봤는데, 확실히 내용 자체가 파격적이고 인상 깊네요. 눈 짝 하나가 날아간 샤크가 빌런이라. 그리고 형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동생과의 리벤지 매치라. 마지막에 주인공이 상어 대가리를 날려 버리는 것도 시원했구요.”
“감사합니다.”
“감정이입 부분도 속도감도 그렇고 스릴러 요소를 잘 버무린 거 같아서 꽤 흥행성이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10미터짜리 샤크라니 그런 괴물이 진짜 있긴 합니까?”
“뭐 있긴 하지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선배 중에 직접 맞닥뜨린 적도 있지요.”
“정말인가요 세상에?”
“실제가 뭐가 중요한가요. 소설이 재밌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뭐 그렇긴 합니다.”
일단 상업성에서는 합격점을 받았던 만큼 편집장은 꽤나 호의적이었다. 그렇게 협상장에 앉은 둘이 네고를 시작했다.
“일단 선인세는 20만 불 정도 어떻습니까? 인세는 8프로 정도.”
“20만 불?”
“크리쳐물은 솔직히 좀 마이너한 장르이니까요. 이 정도면 신인치고 상당히 선방한 금액입니다.”
“허허허. 그럼 여기서 인사를 올려야겠네요.”
마치 선심이라도 쓴 듯한 태도로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 같잖다. 강태준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미련 없이 짐을 싸려는 태도에 당황한 편집자가 강태준을 붙잡았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여기까지 온 시간이 아까워서 말입니다. 작품의 가치를 모르는 분 같아서, 그럼 저랑 더 볼일이 없겠군요.”
“농담입니다. 40만 불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바로 따블로 올리는 편집장이었지만 강태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태준이 미련 없이 짐을 싸서 나가려고 하자 상대가 다급히 붙잡았다.
“하하. 농담 농담이었습니다. 50만 불! 이게 저희가 제시할 수 있는 최대 금액입니다.”
그러자 강태준이 물끄러미 그를 보더니 다시 앉았다.
“이제 좀 협상할 생각이 있으신가 보군요. 계약 기간은?”
“5년 독점 계약에 자동 연장 조건입니다.”
“좋아요. 그럼 인세 비율은 2프로만 올립시다.”
“네? 그건 좀 곤란한데요?”
“대신 선인세를 낮추겠습니다. 25만 불 정도 어떻겠습니까?”
장고에 들어간 편집장은 고민에 빠졌다. 책 한 권당 가격을 2.99불에 퉁친다고 하면, 100만 부라 봐야 29.9만 불. 대략 100만 부당 6만 불이 조금 못 되는 금액 아닌가.
강태준의 조건대로라면 최소 500만 부 이상은 팔아야 처음 제시한 조건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