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녹조라떼
자칫 잘못하면 조업 중단의 위기였으니 어떻게든 계약일에 맞춰 출고할 물량을 확보해야 했던 것이다. 밤새도록 쉬지 않고 기계를 돌려도 도저히 기일을 맞출 수 없다는 말에 강태준도 심각해졌다.
“정부에서는 뭐라 합니까?”
“아직 아무 대책이 없더군. 언론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끄럽게 떠드는 중인데 재원 문제로 말이 많아.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지 않겠나?”
“기다릴 시간이 없겠군요. 그럼 반 어르신께 연락해야겠네요.”
“뭘 어쩌려고?”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단은 황토라도 뿌려야지요.”
일단 녹조에 효과가 있을 황토와 고령토를 있는 대로 긴급 공수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자기용으로 쟁여 둔 황토가 충분했기에 대응은 쉬웠다.
제주도에 보낸 황토가 도착하자, 낙동강에 배를 띄운 강태준은 곧장 전격적인 녹조 소탕 작전에 들어갔다. 근처에서 휴업 중이던 선장들을 그러모은 강태준이 황토를 나누어 주며 말했다.
“대책은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이 황토 입자를 녹조류가 이동해 오는 쪽으로 살포하면 됩니다.”
물에 섞은 황토 분말을 살포하자 방제 효과는 확실했다. 살포 직후 정상적인 물 색깔을 회복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 끈적끈적한 콜로이드 입자가 녹조를 응집해 바닥으로 가라앉히자 지우개처럼 지워지는 녹색에 경이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효과가 엄청나네요.”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야. 댐 관리자에 수문을 열라고는 말했나?”
“예. 바로 연락했습니다.”
“수차라도 돌리라고 해. 녹조제거제를 공수하는 건 어려운가?”
“저희도 시도를 해 보고는 있지만 일단 물량이 문젭니다. 지금부터 통관을 하더라도 최소 수개월이라. 아무래도 시간을 맞추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그럼 날씨가 도와주는 수밖에 없겠군.”
황토의 효과는 일시적인 만큼 강태준으로서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총력을 기울여 황토를 있는 대로 쏟아붓고 있긴 했지만 확장을 멈추는 것이 고작일 뿐.
그러나 다행히 강태준의 바람을 들어 준 것일까.
작업을 시작한 지 이 주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다!!”
“십년감수했구먼.”
하늘에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사람들은 얼싸안고 환호했다.
비로 인해 유속이 빨라지자 녹조류가 모두 바다로 떠내려가 버린 것이다.
“아이구 힘들다.”
“한고비 넘겼습니다.”
밤새도록 배를 운행하느라 다들 곤죽이 되었던 만큼 떨어지는 비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쏴아 내리는 비가 이렇게 시원하게 느껴지는 건 처음.
녹조가 상류로까지 번질까 조마조마했던 섬유업계 사람들 역시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이었지만 강태준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 있었다.
“일단 급해서 넘어갔습니다만, 녹조라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나도 이상해서 살펴봤는데 아무래도 인산염계 방청제를 만드는 회사에서 다들 몰래 방류를 한 것 같네. 예전에도 조금씩 그래 왔던 모양이더군.”
이원준 역시 뭔가 촉을 느낀 것인지 원인을 면밀히 살펴보았던 것이다. 실사과정에서 폐수 처리시설의 운영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대책위가 소집되었다.
대책회의에 참석한 강태준이 말했다.
“녹조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걸 보면, 향후에 같은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대책이라니 그냥 황토를 계속 뿌리면 되지 않나?”
“일시적인 효과입니다. 한번 물에 유입된 영양염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염류가 남아 있으면 악순환이 되풀이되니 고리를 끊어 내는 것이 우선이지요.”
“그럼 어쩌면 좋겠는가.”
“향후에 강이나 호숫가에 식물을 많이 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수 처리장을 현대화해 방류수가 유입되는 곳부터 중점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추가적인 부담이 문제되는 건 사실이었지만 일단 지은 죄가 있는 만큼, 방청제 생산 업체들은 꽤나 고분고분했다. 신고로 추징금을 맞느니 자발적으로 내놓는 편이 더 나았던 것이다.
일단 한번 홍역을 치른 만큼 섬유업체들도 사태 예방의 필요성에 중지를 모았다.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주무관청인 대구시와 평가 위탁기관 한국환경공단이 종합하수처리시설을 발주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체는 강태준이 되었다.
“자네 말대로 이참에 종합 하수처리시설을 도입하기로 했네. 아무래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예산 따기가 장난이 아니셨을 텐데 고생하셨습니다.”
“뭐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 근데 이거 돈 깨질 일만 늘어 가는군그래.”
이원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회사의 규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질 일도 많다는 뜻이다. 더욱이 국회의원인 이원석으로서는 동생이 사장으로 있는 만큼 아무래도 천경물산에서 총대를 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근데 정말로 자네가 하수종말 시설까지 맡겠다는 건가. 취지야 좋지만 누가 봐도 돈이 될 만한 사업 같지는 않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덕분에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 생각났으니까요.”
“사업 아이템?”
“클로렐라를 도입하고자 합니다.”
하수 종말 처리는 사실 클로렐라 도입을 위한 밑밥에 불과하고 사실 진짜 관심사는 이거다. 강태준의 말에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짓는 이원석이었다.
“아니 그게 뭔가?”
“미항공우주국과 러시아에서 우주식으로 주목하는 미세 조류인데 오염물질을 제거함과 동시에 단백질 함량이 높아 가축사료와 어분으로도 쓸 수 있지요.”
이번에 낙동강에 번성한 녹조류를 보다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종전 클로렐라의 대량배양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된 것으로 바로 이때부터 국제적인 관심거리로 발전했다.
이원석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호오, 그런 게 있다니 신기하구먼.”
“원래는 우주선 속에 식량용으로 구상된 건데 이것만 먹어도 살 수 있거든요. 완전단백질이라는 거지요. 일본도 이쪽에 관심이 많아서 클로렐라의 대량 배양풀을 건설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흐음 신기하군.”
“건조시킨 클로렐라는 좋은 미생물 단백질원입니다. 중요한 건 호기성 세균과 함께 오염된 물의 정화에 쓰인다는 것이죠.”
“흐음 미생물 정화 기술이라 뭔가 대단해 보이긴 하는데 선진국에서 그런 기술을 쉬이 이전해 주겠는가?”
“일본이라면 몰라도 대만 쪽에 알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옥외배양 기술을 가진 업체를 수소문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강태준에게는 나름 치트키라고 여길 만한 사람이 있지 않은가.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사람은 다름 아닌 팽호상이었다. 강태준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간만에 뵙는군요. 따거.”
“하하 그러게. 요 근래 사업이 잘된다면서?”
몇 년 새 이제 노회한 사업가의 풍모를 보여 주고 있었다.
“밥 먹고 살 정도는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 오시다니 어떻게 된 겁니까?
“전문가를 섭외해서 바로 달려온 걸세. 자네가 원하는 미세조류 옥외배양 시스템 전문가야.”
팽호상과 함께 온 두꺼운 안경을 낀 남자가 서투른 한국말로 인사를 올렸다.
“유청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투자를 결심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이 사람 원래는 국영 기업 출신이었는데, 미세담수조류 연구에 매진하다가 클로렐라를 알게 된 이후 제품화 가능성만 믿고 박차고 나왔다는군. 이쪽은 제르거 본일세. 식품회사 출신이고 자네가 말한 세포벽 파쇄기술 전문가야. 식품업체에서 10년간 근속했지.”
“처음 뵙겠습니다.”
“이거 귀한 분이시군요.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하네요.”
클로렐라는 식세포벽이 두꺼워 그냥 섭취할 경우에는 소화, 흡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식용으로 사용하려면 반드시 파쇄와 관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 만큼 강태준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럼 설비는 언제쯤 도착합니까?”
“그건 바로 공수해 오기가 힘들더구만. 아무래도 감시의 눈이 많아서. 한 달쯤 뒤에 들어올 테니 뜯어보는 건 알아서 하게.”
“감사합니다.”
“고맙기는 진주 덕에 나도 재미를 봤으니 이 정도야 해 줘야지.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게나.”
강태준은 차대응과 함께 옥외 배양장 설치부터 시작했다. 담수미세조류 시험 배양을 위해 마련한 실외 배양장은 일반 농지를 전용한 시험시설로 3,000평 상당의 부지에 500톤 용량의 대형 비닐하우스였다.
배양풀을 설치하는 즉시, 강태준은 생산에 들어갔다. 애초에 클로렐라라는 건 내생포자로 번식하기 때문에 번식속도가 빠르다.
열수추출한 클로렐라 시제품이 나오는 날. 가루가 된 녹색 가루를 시식하는 자리가 열렸다.
“오오, 이게 완성품이라고.”
“예. 성공입니다.”
전문가가 참관한 자리 유청은 단백질 함량을 조절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초록색의 가루에 자신하는 얼굴을 본 복만이가 궁금한 듯 스푼으로 한 입을 그냥 털어 넣었다.
“아니 첨부터 그렇게 많이 먹으면?”
“윽. 이게 뭔 맛이야?”
순간 복만이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진저리를 치며 침을 뱉었다.
“맛이 좀…… 어…… 그렇게 좋지는 않군요.”
“상상을 초월하는 맛이군요.”
안연복은 말을 아꼈다. 눈치를 보는 행동에 강태준도 궁금해졌다.
“얼마나 맛이 없길래 그러나?”
별생각 없던 강태준도 입에 넣는 순간, 이유를 깨달았다.
맛이 별로 없는 수준이 아니다. 독특한 비린 맛에 특유의 향까지.
먹는 것이 거부감을 느낀 시식자들이 표정으로 욕을 했다.
“욱…… 이게 맛이 원래 이런가?”
“아무래도 배양이 까다로워서요. 폐사한 클로렐라까지 전부 원심분리를 하다 보니 비린내는 줄일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자 유청이 급히 변명했다. 그러나 개선된 맛도 그닥 차이는 없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지만 맛있게 만드는 건 죄다 실패한 것이다.
‘설마, 나중에 김맛으로 만든 건 그나마 개량한 거였다니.’
절로 썩소가 지어지는 맛에 강태준으로서도 후회막급이었다. 원래도 맛없다는 소리를 들어오긴 했지만 이건 정도를 넘은 것이 아닌가.
설탕이나 다른 걸 섞으면 더 괴랄한 맛이 되니 강태준도 자신했던 것이 조금 부끄러워질 지경.
물건을 팔기 전에 이제는 뒤처리를 걱정해야 할 판이 되자 연구진들의 얼굴에도 난감함이 어렸다.
“어떻게 이걸 팔지?”
“아무래도 그냥 먹기는 그렇고, 환약으로 만들던지. 연질 캡슐에 씌우는 거 외에는 답이 없겠습니다. 아니면 다른 제품에 섞어서…….”
“애초에 몸에 좋은 건 쓴 법이지 않나. 그냥 파는 게?”
“맛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형님, 이런 거 팔면 쌍욕 먹고 맞아 죽어요. 진짜.”
어떻게든 판매를 강행하려고 하자 기겁한 사람들이 극구 말렸지만 강태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맛이 없긴 해도 팔아먹을 수 있을까 하는 미련이 남았던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