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87화 (287/361)

287화 수영복 개발

“그래서. 그 말인 즉 수영복을 개량해서 경기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겁니까?”

“이제 나일론 소재는 구시대의 유물일세. 전신 수영복으로 근육을 압착하면 피로 유발물질인 젖산의 축적을 막고 저항을 줄인다는 연구가 나온 이래 이 부분에 대해 스포츠 의학계에서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 하지만 그동안은 소재를 몸에 착 달라붙게 만들기도 어렵고 물에 젖는다는 한계 때문에 실제로 도입하진 못하고 있었지.”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이 폴리우레탄 소재로 만든 신제품이라는 것이다.

완전히 몸에 밀착되는 데다 물도 먹지 않는 것이 구미에 당겼던 것이다.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관심을 두고 계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제한적이지 않나. 합법적으로 선수들의 기록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뭐든 시도해 봐야 하지 않겠나.”

“그럼 스피너 쪽에도 요구해 보시지 그러셨습니까? 수영복 제작이라면 그쪽이 전문가일 텐데요.”

그러자 웹스터는 쓴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해 봤지. 근데 일언지하에 거절하더군. 아직 개발인력도 없고, 당최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러던 중 자네 제품을 보고 확신을 얻었네.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지 그래.”

“그래서 저희보고 수영복을 개발해 보라는 뜻입니까?”

“조금만 개량하면 되지 않겠나. 뭐 시도해서 나쁠 것이 없을 거 같은데 ”

웹스터의 은근한 말에도 강태준은 바로 답을 주지 않았다. 스키너 같은 선도업체가 거절했다면 지금 단계에서 굳이 무리하면서 새 수영복을 개발하기에 현단계에서 리스크가 크단 이야기.

하지만 바이어 브랜드 수출을 하는 천경물산 입장에서는 보통 자체브랜드 보다는 주문자표시부착상표(OEM)방식을 택하고 있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이용해 기술력을 홍보할 수 있다면.

잠시 고민하는 강태준에 마음이 달았는지 웹스터가 다시 제안을 넣었다.

“막막하다는 건 나도 알지만 좋은 기회 아닌가. 성공하면 엄청난 홍보효과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제가 개발하면 확실히 국가대표 마크는 달아 주는 겁니까?”

“기능이 확실하기만 하면, 그 정도야 내 재량이지. 뭐 적어도 우리 센터를 다니는 사람들한테는 우선적으로 판매를 권유할 수도 있고 말이야.”

“좋습니다. 한번 도전해 보지요.”

국가대표팀의 이름을 달게 되면 최소한 현지 마케팅 용도로 쓸만하다. 하지만 고생하는 것은 실무진이다. 수영복 개량이라는 말에 노기철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하다 하다 기능성 수영복까지 개발하라고요?”

“어차피 화학은 자네 전공 아닌가? 차 부장도 있고 도와줄 사람은 많지 않나?”

“아니 그렇다고 대충 방향성은 있어야죠. 어디서부터 시작하라는 겁니까?”

“되도록 마찰계수를 줄이는 데 초점을 두고 만들어야지. 최대한 압축해서 몸에 달라붙게.”

“근데 굳이 전신을 감싸는 형태여야 합니까?”

“수영복을 밀착시키면 에너지 소비가 절감되거든 피부와 근육의 진동을 줄여 주니까”

“음…… 그거 겁나 불편할 거 같은뎁쇼.”

“물만 잘 타면야 불편한 게 대순가. 그리고 물속 속도에 관해선 상어에게 조언을 들으면 된다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태준이 손짓하자 방첩대원들이 낑낑대며 상어 한 마리를 대령했다.

큼직하게 생긴 상어는 제법 실해 보였다.

“오하후에서 잡아 온 놈이지. 공수해 오느라 힘들었어.”

“아따 겁나 흉악하게도 생겼네.”

“생긴 데 주목하지 말고, 피부에만 집중하게. 응? 근데 이놈 샥스핀은 어따 팔아먹었나?”

강태준이 살펴보니 꼬리를 빼고 지느러미가 다 잘려 나가 있었다. 강태준이 눈을 찌릿하자 다들 딴청을 부렸다.

강태준의 시선이 광필이를 향했다.

“이거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걸로 아는데. 설마?”

“제가 안 먹었습니다. 아니, 절 뭘로 보고?”

“됐고, 그냥 넘어가지. 한번 만져들 봐…….”

먹지 않았으면 백프로 어따 팔아먹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노기철은 매우 꺼림칙한 듯했지만 겨우 용기를 냈다.

갓 잡은 상어의 살점을 만지자 오톨도톨한 감각이 느껴졌다.

“느낌이 어떤가?”

“우으, 겁나 징그러운데요.”

“그거 말고 구조가 어떠냐고? 구조!”

“아. 삼각형 돌기가 꼬리 쪽으로 나 있네요.”

루뻬로 자세히 보니 비늘에는 작은 갈비뼈 모양으로 홈이 파여 있다.

“맞아. 머리에서 꼬리 쪽으로 만지면 미끈하지만, 그 반대로 만지면 사포처럼 거친 느낌이지 그래. 이 방패비늘 구조가 물을 밀어낼 때 표면마찰저항을 줄일 수 있네.”

“비슷하게라도 만들려면 겁나게 힘들 거 같은데요?”

“완벽하게 같을 필요가 있겠나. 원리만 참고하면 되지. 실의 굵기를 가늘게 하는 방법으로 원단의 조도를 작게 하는 방법도 있어. 부력은 증가시키되 항력은 감소하는 거지.”

“근데 몸통의 요 맨질맨질한 부분은요?”

그 말에 강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는 테플론 코팅을 적용하는 건 어떻겠나?”

“그건 프라이팬이나 쓰는 거 아닙니까?”

“저항 감소에도 도움이 되지. 기름이 프라이팬 위에서 뭉치는 거 못 봤어?”

“아 조리할 때 기름이 뭉치는 것처럼 말이죠?”

“맞아, 수영복의 겨드랑이에서 허리 아래까지 길게 오돌토돌한 줄을 길게 넣는 거야.”

강태준의 조언에 힘입어 제품의 제작에 들어갔다.

일단 방법을 알고 나니 나머지는 쉬웠다.

곧바로 시제품이 나오자 웹스터는 크게 놀랐다.

“아니 이렇게 빨리 만들었다고?”

“일단 시도해 보시죠. 일단 입어 보고 차근차근 개량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효과 검증 실험에 참여한 선수들의 반응은 남달랐다.

“오, 이거 확실히 효과는 있는데요?”

“좀 개선할 점은 없습니까…….”

“그게 입었을 때 좀 불편하기는 해요. 팔 쪽에 이물감이 있어서 당기는 기분이 듭니다.”

“흠. 그거 체크해야겠군요.”

팔 안쪽에는 실리콘을 삽입해 스트로크 때를 고려해 힘을 덜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떤가.

여러 가지 제안이 오고 가는 가운데. 수영선수들과 함께, 유의미한 결과가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 실험을 했다. 그러던 중 결국 원하던 대답이 나왔다.

“물과 일체가 된 느낌입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요?”

마침내 수백, 수천 번에 걸친 개량시험 끝에 겨우 만족할 만한 제품이 등장했다.

시제품 제작에 들어간 금액은 300만 불.

정신 나간 정산서를 본 강태준이 이마를 찌푸렸다.

“엄청나게 깨졌군.”

“그게 디자인 개발뿐만 아니라 제품테스트 제조 장비를 아예 새로 만들어야 해서요. 아무래도 실제 비용은 더 들어갈 겁니다.”

파워 당당한 노기철의 말에 강태준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다.

개발팀의 의욕을 과소평가한 것이 화근.

우주복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받겠다며 나사에서까지 전문가를 초청한 탓이다.

덕분에 인건비와 소재에 든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웹스터가 호언장담했다.

“걱정 말게. 투자비가 값이 아깝지 않게 해 줄 테니. 마침 데뷔전을 치를 곳도 적당하네.”

“적당한 데뷔 장소가 있습니까?”

“동독 수영 선수권.”

공산권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만큼 이보다 좋은 장은 없다. 도핑 문제로 벼르고 있었던 만큼, 이번에 한번 본때를 보여 줄 참.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기사가 났다.

[소련과의 평화무드 조성, 스포츠 외교인가]

[존 웹스터, 스포츠는 세계인이 즐기는 축제. 하나 된 지구촌을 위해 평화의 징검다리가 되겠다.]

겉보기에는 하하호호 즐겁게 손을 붙잡은 두 정상들이었지만 그건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뿐.

당연하겠지만 동독 내부에서는 대체 무슨 의도인지 분석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세계 선수권 출범을 위한 친선경기라…… 말은 그럴듯하다만, 양키 놈들이 아무 이유 없이 나올 이유는 없군. 이상하군. 뭐가 믿는 구석이 있나 그래?”

“특이하군요. 요새 그렇게 지랄하더니만. 갑자기 순한 양이 되니까 이상한데요.”

최근에 수영 협회에서 통합 경기를 출범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원래가 갈라파고스성향을 보이는 미국인들이 원정 경기에 총출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애초에 국내에서도 충분히 밥벌이가 되는데 올림픽이 아니고서야 해외 경기에 나올 이유가 없지 않나.

더욱이 최근 도핑 건을 문제로 보이콧하던 중에 갑자기 이렇게 태도를 바꾸다니.

뒤숭숭한 분위기의 선수들을 본 감독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저놈들이 그러는 게 하루 이틀인가. 우리를 우습게 본 모양이던지. 아니면 관광차 오겠다든지.”

“어느 쪽이든 열받는데요?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그래. 본때를 보여 줄 수밖에.”

감독들은 의도적으로 선수들의 호승심을 고취시켰다. 당연하겠지만 그들로서도 목줄이 걸린 경기니 당연히 중요하다. 스포츠이기 이전에 자유 진영 대 공산 진영의 자존심 대결이 중요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결기를 다지는 사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수영 선수권이 열리는 베를린 종합 경기장.

칼을 갈고 준비한 공산권 인사들은 경기가 열리는 당일, 무척이나 불편하게 생긴 옷을 입고 나선 미국팀의 모습에 관객들은 비웃기 바빴다.

“저게 뭐야? 병신들…… 쫄쫄이인가?”

“이젠 실력으로 안 되니 이상한 걸 입고 오는군.”

“그러게. 어이, 거기 해면 캐러 오셨나 그래?”

조롱하듯 지껄이는 관객들이었지만 딱히 제지하지 않는 사람들.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에

발끈할 법도 했지만 감독의 엄명을 들은 선수들은 차분했다.

‘그래 짖어라. 조금만 있으면 콧대를 뭉개 줄 테니…….’

어차피 독일어도 모르니 알 바 아니다.

쏟아지는 야유에도 다들 차분하게 야유를 무시한 채 아랑곳 않은 채 라인에 섰다.

탕!!

경기 시작과 동시에 사람들의 표정은 변했다. 시작과 동시에 확연하게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간 미국 선수들이 푸른 물을 가르며 재빨리 결승패드를 터치했던 것이다.

47초 21?

100미터, 신기록이었다.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고 기록 단축이 줄지어 쏟아져 나왔다.

“아니 대체 사람이 저렇게 물살을 헤치고 갈 수 있지?”

“발에 모터를 달았나……?”

그쯤 되자 비웃으려 나왔던 관객들의 표정도 조용해졌다. 장거리 경기에서도 미국의 독주는 계속되었다. 그나마 자국에서 열린 대회라서인지 동독 선수들은 그나마 선전했지만 금메달은 미국 선수들의 독식으로 귀결된 것이다. 메달을 쓸어 담은 미국 선수들이 시상대에 서자 각지에서 항의가 쏟아졌다.

“이건 엄연히 사기야!”

“심판, 이게 말이 되는가? 저 옷에 무슨 짓을 한 거 아닌가?”

“해당 의복은 착용 규정상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난처해진 수영연맹에서는 동종의 입장을 되풀이했으나 이쯤에서 눈치 못 챌 바보는 없다.

결국 관심은 웹스터 감독의 인터뷰에 집중되었다.

“해외 원정에서 이런 성과라니. 대단하신데요.”

“하하 재능도 있고, 훈련을 잘 따라온 결과죠.”

“일각에서는 이번에 선수들이 착용하고 나온 전신 수영복이 성적 향상에 큰 도움을 준 거라는데요?”

“그건 오해입니다. 엄연히 체계적인 훈련과 실력에 의한 결과입니다. 과학이 기여한 부분은 제한적이지요.”

“하지만 한쪽에서는 기술도핑이라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재까지 전신 수영복을 입는 선수들이 미국인들뿐 아니겠습니까? 자본력이 신성한 스포츠의 결과에 영향을 준다면 그건 불합리한 결과가…….”

웹스터 감독의 답변이 이어졌지만 질문은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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