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81화 (281/361)

281화 케네디 우주센터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 센터 (Kennedy Space Center)에 위치한 차량 조립 건물 (VAB).

미래건설과 스튜어트 대위의 소개로 현장 답사를 온 것이다.

“우와아…… 장난 아니고마. 스벌.”

“입 그만 좀 벌려라. 벌레 들어가겠다.”

“형님은 지금 진정이 되십니까? 세상에 우주선이란 말입니다. 우주선!! 달에 가는 거 말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침을 튀기며 광분하는 광필이의 모습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들. 약간 쪽팔려진 강태준이 안내인인 론델 박사에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임마가 촌놈 출신이라. 영 신기한가 보네요.”

“하하. 저도 텍사스 출신이라서 공감이 가는군요. 사실 저도 처음 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우주 개척이란 게 사실 남자의 로망 아니겠습니까?”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여기 진짜 내부 면적이 엄청난데요?”

“크긴 크죠. 성 수십 개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하더군요.”

“진짜 엄청나네요.”

“사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리적으로도 로켓 발사에 유리하거든요. 적도 부근에 위치해 동쪽에 로켓을 발사하면 최대 0.4㎞/s의 추가속도를 얻을 수 있지요.”

“오오. 그건 몰랐습니다.”

론델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주위를 구경했다. TV를 비롯한 매체에서 가끔 보긴 했지만 실물로 보니 그 대단함이 피부로 와 닿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인 VAB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로 그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이 실로 대단했다.

“부럽습니다. 우리 서울 본사도 꽤다 싶지만 여기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네요.”

“하하. 세계 최고니까요. 기술도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지요.”

론델 박사가 자부심에 찬 얼굴로 웃었다. 소련과의 자존심 경쟁 때문일까 과하게 크게 지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크레인들이 로켓의 여러 거대한 파츠를 하나로 조립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납득할 수준이었다.

작업장의 크기가 어마어마해서인지 그 행동만으로 마치 소인국 주민이 된 느낌이었다.

“로켓은 어떻게 이동시킵니다?”

“저거 보이는 궤도식 이동 차량에 로켓을 올려서 이동시킵니다. 속도가 느리긴 해도 대충 수천 톤짜리 물건도 배달할 수 있지요.”

“대단하네요. 이걸로 미사일도 발사하는 겁니까?”

“뭐 논리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지요.”

론델 박사가 흥분한 광필이와 죽이 맞아 떠들자 강태준은 맞장구를 쳐주며 작업이 진행되는 곳을 면밀히 살폈다.

‘어디 보자, 어디 쓸만한 게 있나?’

현장 답사는 명목이고 사실 쓸만한 설비를 반출하는 게 목적이다.

그렇게 현장시찰을 하던 강태준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옥상인 하이 베이 도어에 몹시 거슬리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약간 성기게 체결된 볼트의 머리 부분에 강태준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평소 가지고 다니던 레벨 게이지로 보니 아래와 위의 축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피사의 사탑마냥 기울어져 있는 로켓의 모습에 말을 열었다.

“아니, 저기 볼트 말이지요. 저거 시공이 제대로 된 거 맞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뭔가 각도가 안 맞는 듯한데. 좀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은데요.”

“에이 설마 잘못 보셨겠지요, 그거.”

“아닙니다. 약간 이상한데요. 이걸로 한번 보시지 그럽니까. 제 눈이 틀린 것 같지 않습니다만.”

강태준이 레벨 게이지를 넘겨주자 론델 박사가 게이지로 축을 자세히 살폈다.

그걸 본 박사가 뭔가를 깨달은 듯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이런 젠장, 즉시 하자 보수팀을 부르게. 현장 소장도 즉시!!”

다음날 시공회사 직원들이 현장으로 와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를 보고받고 난 론델 박사가 허탈한 듯 웃음을 지었다.

“강 사장 아니었으면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뻔했군요. 엔진을 지지하는 프레임이 무려 3인치 이상 틀어졌답니다. 세상에 이게 말이 되나.”

“3인치라면 76mm 정도 아닙니까. 그게 큰 겁니까?”

“우주에서 엄청난 거죠. 진동 때문에 센서가 압력을 낮게 인식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러면 저도 모르게 스스로 엔진을 멈출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폴로 13호에 사용된 산소 탱크 및 그 부속 기기들은 사실 원래 아폴로 10호에 사용되어야 한 것을 재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진동과 전자파 간섭문제 때문에 부속기기를 다시 뜯어서 재활용하기로 한 것. 헌데 다시 재설치하는 과정에서 크레인으로 끌어올릴 때, 선반을 기체에 설치한 볼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덕분에 와이어로 끌어올리던 중에 선반은 원래 있던 장소에서 떨어져 버렸고 충격에 의해 탱크 안의 산소를 빼낼 때 사용되는 파이프가 원래의 위치로부터 벗어나 버린 것이다.

“아니 그러면 지금껏 지상 훈련은 어떻게 한 겁니까? 충전은요?”

“액화산소를 히터로 기화해 빼냈답니다. 내부를 확인해 보니 교반용 팬의 전선을 가리는 피막이 사라졌어요. 온도 조절 장치도 녹아 버렸고요.”

“그거 엄청난 위험한 거 아닙니까?”

“그대로 그냥 올렸으면 상상도 하기 싫군요. 상상도 하고 싶지 않군요. 그래. 그런 문제를 선장과 기술자 둘이서 입 맞추는 걸로 해결했을 줄이야. 믿기지 않아요.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이라도 탱크를 다시 설치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일단 로켓을 뜯고 진동억제장치가 설치하는 수밖에요.”

“그러면 발사는?”

“뭐 계획이야 한참 늦어지긴 하겠지만 로켓이 공중에서 폭발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이거 제가 괜한 일을 벌인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 나사에서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시간적, 물적 손실을 생각하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거듭 감사를 표하는 상대에 강태준은 문득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염치불구하고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뭡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크레인 기기를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강태준이 자초지종을 말하니 론델 박사가 흔쾌히 승낙했다.

“뭐 그 정도야. 예비 물량이 하나 남았으니 철값만 내고 가져가시죠.”

“정말이십니까?”

“예. 어차피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니, 근데 쉽지는 않을 겁니다. 예비로 남은 물량이, 900톤급이거든. 가져가는 일도 만만치 않을 거 같아서요.”

말 그대로 올려다본 크레인은 층고만 해도 110미터에 달한다.

“이건…… 엄청 나군요. 정말 이걸 주시는 겁니까?”

“뭐 플랫폼에서 쓰던 예비 설비인데 애물단지입니다. 애물단지. 아니면 남은 거야 30톤급 두 대도 있기는 한데 뭐 같이 가져가도 되고.”

론델 박사의 말에 강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무려 900톤 넘는 크레인을 받았다는 오재갑이 어이없어했다.

“지금 920톤짜리를 가져가겠다고요?”

“뭐 준다는데 찬물 더운물 가릴 수야 없지 않은가? 중량물을 최고 80m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만큼 효율은 확실하지.”

“아니 그런 건 설치가 문제 아닙니까. 거제 쪽 도크에 골리앗 크레인을 설치하려면 최소 2개월여는 설치 기간이 소요될 텐데요.”

무게만 해도 5천 800톤짜리인 만큼 분해 운반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폭 180m, 높이 90m의 골리앗 크레인이라니.

“아니야. 분해 안 하고 그냥 옮길 걸세.”

“어떻게요?”

“해상크레인으로 한 번에 들어 올리면 되지 않겠나. 도크에 병렬로 놓고 해상크레인을 이용해 원타임으로 바로 세팅하면 되지.”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 * *

그로부터 3개월 뒤 거제, 통영.

“독 내려.”

“줄 넣고 천천히 당기세요.”

“밧줄 팽팽히 중심 확인해!!”

입거 작업이 한창인 부두. 예인선 두 척이 400톤급 저인망 어선을 부두로 인계하는 중이다.

8개의 줄을 연결해 강한 파도에 출렁이지 않도록 특수 앵커가 단단히 고정했다. 미리 세워둔 받침목 위로 올라탄 배에 잠수부가 물속으로 들어가 받침목 아래를 살폈다.

“어때?”

“밑면이 개조되었더군요. 조금 떴습니다.”

“젠장. 또인가?”

개조된 선미가 선주가 제출한 도면 내역에 반영되지 않았는지 받침목과 배 사이에 올려진 틈이 생긴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잠수부들이 배와 받침목 사이 반목을 끼워 틈 사이를 메꾸고 다시 평형이 맞는지 확인했다.

“어디 봐, 됐나?”

“이제 오케이입니다.”

조종실에서 평형간이 맞는지 확인한 강태준이 명을 내렸다.

“발라스트 물 빼. 독 들어 올려!!”

“평형 유지! 평형 유지!!”

수리선의 배 하부의 받침대를 확인하면서 탱크에 물을 빼자, 독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물이 쑥 빠지자 예인삭으로 단단히 고정시킨 배의 하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부에 붙은 홍합무리가 눈에 걸리기는 하지만 외관상 특이점은 없었다.

“이거, 노후선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멀쩡하네요. 품이 덜 들겠어요.”

“다행이군. 발전기는 어때?”

“유압 장치 이상 무입니다. 엔진구동도 이상 없습니다. 조명기기 망가진 것을 빼면 꽤나 괜찮습니다. 오버홀까지는 필요 없을 듯합니다.”

“내부통신은?

“지금 확인 중입니다.”

“동력상태 확인하고, 이중으로 체크해.”

강태준이 고칠 점을 확인하고 바로 실무진에게 서류를 넘겼다.

사실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배의 녹슨 부분을 벗겨내고 다시 도색하는 칠하는 작업부터 엔진과 프로펠러 등 고칠 부분이 산더미같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꽤나 밝았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이게 되네요.”

“육상에서 배를 고치는 건 가장 원시적인 공법 아니겠나.”

물 위에 떠 있는 바지선에서 배를 수리하는 ‘플로팅 도크’ 공법.

‘디귿(ㄷ)’ 자 형태로 고안된 대형 구조물의 면적은 축구장 2개 크기 정도 된다.

도크 하나 파는 데 수백억이 드는 데다 파업으로 인해 밀린 공기의 압박 때문에 떠올린 고육책이었다. 선박을 수리한 뒤 물 아래로 가라앉힐 수 있으니 도크 위에 있던 배를 진수 절차 없이 그대로 물 위로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성님들한테 고마워해야겠군. 이건.”

“그러게 말입니다.”

원래 실패할 뻔했던 우주선 발사를 무사히 성공한 나사에서는 선심을 쓰려는 건지 쓰고 남은 장비들을 헐값에 아낌없이 내어 주었다. 덕분에 하역용 스트래들 캐리어는 물론 냉동 컨테이너 취급을 위한 시설까지 유치한 강태준에게는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선주들 반응은 어떤가?”

“처음에는 꽤나 소극적이었는데 한번 작업을 보고 나서 신뢰가 생긴 것 같습니다. 기존의 선가대 방식보다 밑면 파손 위험도 적고 안전하다고 하니 선호하더군요.”

플로팅 도크에서는 선박 건조를 완료하고 진수하는 과정이 생략된다.

입출거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배에 하부가 손상될 위험이 줄어드는 만큼 선급 검사를 받을 업체들의 예약이 쇄도하고 있었다.

“아쉽구먼. 여기다 해상 크레인만 완비하면 신조선 수주도 꿈이 아닌데?”

“에. 해상에서 조립을요?”

“왜 그렇게 놀라나. 원래 조선업이란 건 철판을 이용한 건설사업일 뿐이야. 그보다 공유수면사용 허가는 나왔어?”

그러자 춘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신청을 해 두긴 했습니다. 근데 항만청에서 좀 난처해하는 것 같아요. 육지부에 고정시키면 해상시설물인데 그 외는 선박이라 적용법규를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놈들도 복지부동이군. 법규가 없으면 비슷한 규정을 준용하면 될 일이지. 설 변호사한테 말해서 일단 확인받으라고. 세금 눈탱이 맞지 않게 말이야.

“하하. 어쩔 수 없지요. 헌데 이제 파업도 다 끝나서 다행이네요. 서부 항만 조업도 재개되었다니 곧 물류량도 회복되겠지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생각보다 빨리 끝났어.”

강태준으로서는 마음이 좀 놓인다. 그때 강태준에게 온 황 서방이 호들갑을 떨었다.

“사장님. 아무래도 와보셔야겠는데요 통영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노 사장이 날 부르다니 갑자기 무슨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일단 빨리 오시라고 독촉하더군요.”

“누가 상전인지 모르겠구만. 서두르자고.”

혹 양식장에 문제라도 생겼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강태준은 서둘러 작은 배로 옮겨 탔다.

그가 향한 곳은 통영만 일대.

한려수도의 중심인 통영은 크고 작은 섬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수질이 맑고 플랑크톤이 풍부해 양식장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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