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78화 (278/361)

278화 떼법은 안 통한다

모욕감에 박강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군. 그럼 저희도 실력행사를 하는 수밖에요.”

“허허. 얼마든지 해 보시죠. 떼를 쓴다고 항상 통하지 않는다는 거 아실 겁니다.”

“그 말…… 반드시 후회하실 겁니다.”

박강태가 자리를 빠져나가자 노조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당황한 진중보가 강태준에게 따졌다.

“아니 강 사장. 이게…… 대체…… 이게 무슨 일이요? 기본적인 대화는 해 봐야 하는 게 아닌가?”

“기본이 안 된 인간과는 타협할 수 없지요. 죄송합니다.”

“뭐, 그게 무슨?”

“당분간 부산 쪽에는 물류 차질이 있을 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강 사장! 강 사장!!!

진중보가 따라갔지만 강태준은 요지부동이었다. 협상이 실패한 직후, 노조에서는 신속하게 입장발표를 했다.

-항만 노조가 오늘 상오 12시 전면파업에 들어갔습니다. 박강태 노조위원장은 수차례 교섭 요청에도 백경 측이 성실히 나서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교섭 촉구를 위한 경고성 조치로서 파업을 속행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항만노조는 이날 전면파업을 한 뒤 성실교섭 촉구 기간을 설정하고 오는 20일부터 전면파업을 벌이기로.

협상이 파토난 지 고작 6시간도 되지 않아 집단행동에 돌입한 것이다.

굳은 얼굴로 성명을 발표하는 박강태의 모습에 광필이가 혀를 찼다.

“셧다운이라니 아주 작정하셨구먼. 이 자식들이 보자보자하니 이쪽을 아주 호구로 아나?”

“사용자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거군요.”

오재갑의 표정도 굳었다. 하지만 강태준은 덤덤했다. 언젠가 이런 일이 한 번쯤을 터질 거라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류 문제는 어떻게 처리했나.”

“일단은 급히 처리할 환적화물은 사전 반출입을 마쳐 당장에는 지장이 없고, 일부 물량은 조기에 배송하는 걸로 일정을 조정했으니 한 두어달 이상은 차질이 없을 겁니다. 다만 신선식품의 경우에는 유통기한이 짧아 처리가 곤란할 거 같긴 합니다. 창고에 있기는 한데 파업이 길어지면 아무래도 소비에서 문제가 있을 거 같습니다.”

오재갑의 말에 강태준이 대답했다.

“그러면 비용이 더 들더라도 어쩔 수 없지. 캐나다 밴쿠버나 미 동부항쪽으로 우회해서 배송해. 그리고 부산 사무실은 바로 직장폐쇄해.”

“진심이십니까? 노조에서 거품을 물 텐데요.”

“상대가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데 여기서 받아 주면 호구 되는 거다. 파업을 철회하지 않는 한 우리도 끝까지 간다.”

강태준 역시 절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백에서는 공장 정문에 통근버스들로 채우고. 노조원들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판을 붙였다.

베트남발 선적과 하역작업이 전면 중단되자 전쟁 특수를 제대로 누리고 있던 부산항의 물류량은 급전직하했고 일거리가 줄어들자 항만경기는 얼어붙었다.

백경측에서 곧 백기를 들 거라고 믿고 일치단결한 항만 노동자들이었지만 1개월, 2개월. 시간이 지나도 요지부동이었다. 경기의 여파는 곧바로 부산 일대로 떨어졌다.

“오늘도 허탕인가? 일감이 없구만 없어.”

“아주 씨가 말랐지 그래.”

“근데 백경 놈들 독하구먼. 이렇게까지 나오다니.”

탁재훈의 얼굴에도 수심이 어렸다. 부산에서 하역업을 한지 처음 겪는 불황이었다.

원맥 줍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얼어붙은 경기에 다들 불안감이 가득했다.

“노조위원장도 적당히 협상하고 말 것이지. 참…….”

“일부러 그러는 건지도 모르죠. 그래?”

“그게 무슨 소린가?”

“사실 말해서 간부들이야. 잃을 게 없잖습니까? 일 안 해도 전임자라고 임금도 꼬박꼬박 나오고 협상이 제때 타결되면 격려금까지 챙기니. 등 따시고 배부르니 배 째라 나오는 거지요.”

“설마, 그럴 리가…….”

“그딴 소리 말게…… 우리끼리 싸워서 되나.”

말은 그렇게들 하지만 다들 속으로는 불만이 쌓여 있는 것은 확실했다.

줄기차게 라디오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 덕분이었다.

-작금의 항만노조는 박강태의 사조직으로 변질되어 노동자들의 권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노조를 정상화하고 공정한 입찰 경쟁으로 고용을 확대해야 합니다.

-인력 공급권을 독점한 항만노조는 무소불위의 권력단체입니다. 이렇게 필요할 때마다 실력을 행사하면 항만 물류가 전면 마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조 파업 사태가 길어지면서 하역장내 노동자배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노동자들 간 불만과 알력이 쌓이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항만 운용사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두 노동자는 물론 세관브로커와 트럭 운전자들까지 사태의 해결을 적극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게 되자 당황한 것은 도리어 노조 측이었다.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위원장님.”

“버텨, 물러서는 놈이 지는 거다. 강태준이가 아무리 잘났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정말 그럴까요?”

“컨테이너 작업을 하려고 해도, 다른 곳에서 제대로 된 설비가 없으니 말이지.”

언론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노조위원장의 태도는 굳건했다.

-임금 인상 전에는 절대 타협은 없다.

-우리는 죽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는다. 비겁한 정치적 공세를 그만둬라.

하역 일이라는 건 목숨을 걸 만큼 험한 일이다.

그런 만큼 일단 뭉친 노조원들의 단결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노조원들은 백경에서 민자 운영권을 가진 하역장과 물류 창고까지 점거해 가며 더욱 기세를 올렸다.

양측의 양보 없는 대치가 계속되던 중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저거 백경 놈들 아닌가?”

“저, 저거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차에서 내린 직원 하나가 차에서 내리더니 공고문을 붙였다.

-노조가 무리하게 부당쟁의행위를 밀어붙이는 과정이 지속되어 본 회사에서는 더 이상의 협상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컨테이너 준설항을 변경하고, 창고에 보관된 화물을 모두 옮길 예정입니다.

부산항 내 항만 준설을 모두 중단하겠다는 선언에 놀란 것은 인부들이었다.

“아니, 컨테이너 준설 공사지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게 무슨 소리고?”

“그럼 부산항이랑 쫑내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거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설마 그냥 엄포일 뿐일세.”

다들 떨떠름해하지만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이었다. 헐레벌떡 뛰어온 동료가 비보를 전했던 것이다.

“이보게들 큰일일세. 큰일이야!”

“뭔 소리야?”

“백경에서 인천항에 대형 크레인을 설치했다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크레인 설치가 뉘집 개 이름이야?”

“내가 빈말하는 줄 아나. TV라도 켜보게 어서!”

비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가운데 거대한 크레인이 우뚝 솟아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백경그룹에서 컨테이너 부두사업에 앞서 새 크레인을 도입해서 화제입니다. 해당 물건은 미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로켓 발사대를 매입해 설치한 것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타 항만 운용사와도 긴밀히 협력을 강화할 것임을…….

인천항에서는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부산에 물류를 뺏긴 이래,

하역으로 먹고사는 입장에 이런 날벼락이라니. 때마침 파랗게 질린 사람들…… 박강태 쪽에서도 난리가 난 건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된 건가? 인천항이라니?”

“이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미래건설과 협약을 맺고 공사지를 바꾼 이후, 오성과 미래는 물론 대기업들이 줄줄이 물류를 줄인다고 통보했다. 언론에서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천진과 오성, 미래그룹 역시 향후 인천항에 물류를 10배로 늘리겠다고…….”

“강태준 이놈이!!”

다들 할 말을 잃은 채 말이 없었다. 설마 이렇게 전격적으로 보복할 거라고는 몰랐던 박강태였다. 화를 삭이는 사이 그때 비서 하나가 다시 들어왔다.

“크, 큰일입니다. 노조사무실에 전경들이 급습했습니다.”

“뭔 소리고 그게?”

“백경 놈들이 강제집행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육시럴!!”

백경에서 불법파업으로 손해가 막심하다며 누적된 손실을 빌미로 압류 집행에 나선 것이다. 항만 노무자들이 사무실로 몰려갈 즈음 이미 집행관과 함께 온 경찰들이 억지로 문틈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어쭈, 이 자식들이 이거 공무집행방해인 거 모르나!”

“말도 안 되는 소리. 야…… 막아!!!”

소식을 듣고 다급해진 노조원들이 육탄방어전에 나섰다.

조합원 400여 명이 노조사무실 앞에서 꾸역꾸역 몰려들자 고성이 터져 나왔다.

“이런 시팔것들을 봤나 안 비켜!”

“못 비켜.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비킨다!”

몸싸움이 격화되자, 노조원들은 학깃대를 휘두르며 저항했다. 인원이 점점 늘자 광분한 노조원들의 행동은 거칠어졌고. 일부는 화염병을 던지며 방어에 나서기까지 했다.

“이런 빨갱이 자식들이! 감히! 뒈지려고!”

소식을 들은 탁재훈 사장이 다급히 목적지에 달려갔을 때는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였다.

여기저기 몽둥이찜질을 받은 듯 신음하는 노조원들의 모습을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별거 아닙니다. 짭새들이 막무가내로 실내로 돌입하려고 해서. 사소한 충돌이 있었습니다.”

“전경과 무력 충돌이라니! 이게 어딜 봐서 사소한 일인가?”

“피륙의 상처일 뿐이니 걱정 마십쇼. 상대가 영 거시기해서리.”

천연덕스럽게 지껄이는 박인차의 대꾸에 기가 막힌 탁재훈.

뭔가 훈계를 하기도 전에 밖에 있던 노조원 하나가 콧김을 뿜으며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흥분한 녀석의 손엔 구겨진 서류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이것 보십쇼! 백경측에서 이번 손실의 책임을 묻고 항만적체료를 추가로 부과하겠답니다.”

“개, 더러운 부르주아지들 같으니. 아주 씨를 말리려는 건가?”

“절대 물러설 수 없소!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줍시다!!”

격양된 노조 간부들이 언성을 높이자 노동자들도 함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그때 공교롭게도 찬물을 끼얹는 사태가 발생했다.

보고 있던 노동자 중 하나가 매고 있던 머리띠를 집어던진 것이다.

“젠장 못 해 먹겠네 그래.”

“무슨 짓인가? 엉?”

박 부장의 험상궂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나 상대도 내친 김, 주저하던 남자 역시 입술을 깨물었다.

“난 여기서 빠지겠네.”

“최 반장 여기까지 와서 뭔 소리야? 자네만 예서 쏙 빠지겠다는 건가?”

“그래. 못하겠소. 파업을 한 이유가 뭔가?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짓 아닌가! 근데 이게 뭔가. 집에서 돈도 못 갖다준 게 벌써 두 달이 넘었네.”

“참게나. 조금만 조금만 버티면.”

“대체 언제까지 말인가! 처자식을 굶일 수야 없지 않나! 노조에서 생활비가 꼬박꼬박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난…… 이제 때려치겠소!”

최 반장의 일갈에 눈치를 보던 노동자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최 반장이 묵묵히 자리를 뜨려 하자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동요했고 그러자 박 부장이 버럭 노성을 질렀다.

“거기 서지 못해! 배신자가!!”

최 반장이 움직이자 열불이 터진 박부장이 우악스럽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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