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75화 (275/361)

275화 어분 시장

식사가 끝나자, 강태준이 주위를 돌아보며 의견을 구했다.

“어떤가요? 안 선생, 꽤 사업성 있을 거 같지 않습니까? 이걸 전국에 지점화하면 꽤 괜찮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괜찮네요. 종묘 1kg당 출하량은 800~1,000kg 정도라면…… 수익성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겠습니다. 치어랑 사료만 안정적으로 수급된다면 말이죠.”

“그러게…… 솔직히 굽는 거야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도 없으니 말야.”

“다만 치어 수급이랑 사료가 문제긴 하네요. 양식원가의 절반 이상이라니……”

가만히 음식 맛을 음미하던 노기철 역시 그 점에 동의했다.

“맞습니다. 수질 관리 면에서 지수식 수조는 불리하니 투자비가 좀 들더라도 순환여과식 시스템으로 바꾸고 극동산 이외에도 다양한 지역에서 양식이 가능한지 실험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흠……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차 부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노기철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차대응이 의견을 올렸다.

“저는 열원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열원?”

“보아하니 수온 관리용으로 보일러를 쓰는 거 같은데 이건 전력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비닐 사이에 방열재를 끼워 넣으면 3~5도 정도 올리는 건 일도 아닐 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거 참 좋은 의견이군. 그럼 복만이 니는 양만장이 들어설 만한 곳이 있는지 수소문해 봐.”

“아니, 성님 제가 또 왜 이걸 합니까?”

“왜긴 이 지역은 니가 젤 잘 알잖아 안 이사랑 같이 경제성 분석해서 어디에 투자하면 좋을지 알아보고. 양식업 할 사람들이나 만나보라고. 난 일단 사료 수급차 갈 데가 있으니.”

“아니, 남한테 일 다 맡겨두고 또 어디 갑니까 어디로요?”

“남태평양.”

* * *

남태평양 페루.

지구 반대편으로 24시간

강태준이 도착한 곳은 피우라주의 항구도시인 빠이따.

드넓은 해안가에 갈매기와 펠리칸이 수없이 날아다니고 있는 이곳은 고대 잉카제국의 중심지로 깔끔하게 정비된 도로와 유럽풍의 건물들이 널려 있는 곳이다.

“바다사자가 돌아다니다니 신기하군요.”

“어족자원이 풍부하다는 거지. 근데 이 인간은 왜 이렇게 늦나? 비행기에서 그렇게 많이 잤으면서……”

그때 판쵸를 입고 어슬렁거리면서 나타난 광필이가 보였다.

“그건 또 왜 입고 왔어?”

“이왕 남미에 왔는데 국룰 아닙니까? 어때요. 카우보이 같지 않아요?”

“인간이 챙피하게, 너 나랑 아는 척하지 마라. 나랑. 저기 멀리 떨어져서 걸어.”

“나 참…….”

혼자 뻘쭘하게 멀찌감치 선 모습에 강태준이 고개를 흔들었다.

“다 커도 아직 애라니까. 변신 로봇이라도 있으면 아주 눈이 돌아가겠어.”

“꿈에도 그런 소리는 마십쇼. 진짜 그러실까 두렵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한국인 하나가 나타났다.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던 해양과학기술공동연구센터 연구원인 배재민 과장이었다. 강태준을 본 배 과장이 먼저 인사를 올렸다.

“강 사장님! 오셨군요.”

“양 사장님께 설명 들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사업상 현지 답사야 당연하죠. 근데 여기는 위도상으로 매우 더워야 할 느낌인데. 아주 덥지는 않군요.”

“아, 이쪽 해류는 훔볼트 한류의 영향을 받아 건조하거든요. 원래는 우중충한데 사실 오늘 정도면 좋은 날씹니다. 하늘도 우리 강 사장님을 환영하나 봅니다.”

“오 그래요? 그보다 곤살레스 씨는?”

“아 사정이 있어서. 곤살레스 씨는 이 지역 조합장을 맡고 있는지라 주변에 좀 인사드릴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 저기 오네요.”

그걸 본 강태준은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다잡았다. 판쵸를 입은 광필이는 약과였다. 꽃무늬에 숭숭 난 가슴털을 그대로 드러낸 곤살레스는 강태준을 보더니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반가워했다.

“오 미스터 강! 이거 예전에 한번 뵈고 처음이군요.”

“아, 저를 아십니까? 실례지만 기억이……”

“이거 좀 서운한데요. 사실 제가 예전에 대사관 직원이었거든요. 지남호 출항할 때 먼발치에서 뵈었죠.”

“오, 그런 인연이 아는 척을 하시지 그랬습니까?”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이렇게라도 뵙게 되니 반갑군요. 이럴 게 아니다. 일단 식사부터 하러 가십시다. 마침 오늘이 그날이거든요.”

“무슨 날이요?”

“포요 아라 브리사를 먹는 날이요! 사양하셔도 소용없어요. 오늘은 무조건입니다.”

멋모르고 안타레스 씨에게 끌려간 일행은 외곽의 한 벽돌집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밖으로 스며 나오는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자 벨을 누르자 뚱뚱한 부인이 나와 맞았다.

“오 호세!!”

“마이 달링!”

서로를 마주보기 보기 무섭게 얼싸안는 부부는 부끄럽지도 않은 듯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그러더니 강태준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혔다.

“오 내 정신 좀 봐. 실례를 오늘 모신다는 손님인가요?”

“아주 큰 손님이지.”

“물론이죠. 자 이쪽으로 오세요.”

윙크를 한 호세가 식탁 앞으로 가니 장작불에 구운 페루식 통닭구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자 드세요. 어서요!”

안타레스 씨는 싱글거리며 닭다리를 찢어 한입 베어 물었다. 별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성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맛을 보니 깜짝 놀랐다. 고기는 부드러웠고 참나무 장작의 향이 배어 있어. 닭고기에 독특한 향이 풍겼다. 훈제 향에. 별로 한 것 같지도 않은 듯 미묘한 양념이 식욕을 돋구었던 것이다.

“맛있죠?”

“페루는 살테냐만 세바체만 알았는데 치킨도 장난이 아니군요. 소스도 그렇고.”

“그러게요. 베리 굿입니다. 이거. 전기구이보다 훨 나은데요.”

“비교하면 섭하죠. 그거.”

입안 가득 음식을 문 복만이가 행복한 표정을 짓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만큼은 복만의 식탐이 이해된다는 느낌이었다. 허브와 아이올리 소스로 맛을 낸 후아이카이 아이올리, 살사 크리올라, 매운맛이 약한 페루식 고추인 아히 판카 등 소스도 새콤달콤 각자 색다른 맛을 주웠다. 강태준도 한 마리를 통으로 비웠다.

“하하. 사실 우리 페루인만큼 닭에 진심인 사람들도 없을 겁니다. 오븐 구이, 간장 양념, 와인 양념에 향신료 범벅, 심지어 코카콜라에 재운 닭까지 없는 게 없지요.”

“오 코카콜라 양념이라니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요. 페루 정부에서도 매년 7월 세 번째 일요일을 ‘포요 아 라 브라사의 날(Día del Pollo a la Brasa)’로 정해 홍보 활동에 나서고 있는걸요.”

곤살레스는 마치 무용담처럼 이 닭고기가 국민 요리가 된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럼 포요 아 라 브라사가 국민 요리가 된 것은 현지인 출신이 아니라. 리마 근교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던 스위스 출신 양계업자 덕분이군요.”

“네. 양계산업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직접 농장에서 닭을 구워 팔았던 것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전국으로 퍼져 나간 것이죠.”

“확실히 인기가 있을 법하겠어요. 이게 닭이 통통한 게 먹을 곳도 많고. 한국 닭이랑은 천지 차이네 그래.”

쩝쩝거리는 복만이가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빨며 중얼거리자 곤살레스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거야 당연하죠. 이 닭에 쓰는 사료는 저희 어분으로 제조하거든요.”

“오 그래요? 그건 몰랐습니다.”

“어분은 영양학적으로 만점인 제품이지요 저해인자가 적어서 사료의 기호성을 증가시키고 생육 효율을 증대되는 효과가 있지요. 콩보다 단백질 함량도 높고 소화율이 95% 이상이니 비교가 되지 않지요. 그래서 양계용 사료는 옥수수에 어분을 2% 이상 혼합한 배합사료를 쓰고 있습니다.”

어분의 주 재료인 안쵸비는 남동부 태평양에 서식하는 멸치로 페루와 칠레 연안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로 페루 어업의 핵심이다.

안쵸비는 무려 20센티까지 자라는 대형 멸치로 영양 염류가 많을 때는 부화한 지 6개월 만에 8센티가 넘게 자라기도 할 정도로 생육력이 우수한 물고기였는데 이 어분 시장의 규모라는 게 장난이 아닌 것이 무려 세계 어분 시장의 3할을 석권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강태준이 진심으로 말했다.

“부럽네요. 와우, 멸치가 그렇게 많이 잡히다니 대단하군요. 근데 그렇게 많은 물량을 어분으로만 소비하는 건 좀 아쉬운 일인데요. 신선한 생선을 조리할 방법이 더 많을 거 같은데요.”

“그래서 저희도 현지 소비증대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지요. 세바체 같이 생물로 소비하는 물량이 있긴 하지만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도 백경 같은 식품업체가 투자를 한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어분은 생산성은 좋지만, 부가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제사 강태준은 집까지 초대한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곤살레스 역시 피시 스톡이나 오뎅, 통조림 같은 가공 사업에 관심이 매우 많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멸치를 통으로 갈아서 만든 어분으로 나오는 수익보다 통으로 생물을 가공해 나오는 부가 수익이 훨씬 높으니 말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며칠간 탐색전이 이루어졌다. 며칠간에 걸친 협상 끝에 피곤한 얼굴로 나타난 노기철에 강태준이 커피를 내밀었다.

“꽤 빠른 걸 보니 대화가 꽤 잘 풀렸나 봐?”

“일단 저쪽에서는 투자의 의지가 강합니다. 무조건 합작회사 설립을 원하더군요. 곤살레스 씨가 이쪽 사료협회 조합장이기도 해서 현재 저희가 생산 중인 유기질 비료도 그렇고 한국에서 생산하는 멸치를 섞어서 만들면 단가를 훨씬 낮출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오 그래? 희소식이구먼.”

“현지 업체들이 많이 협조적입니다. 그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쪽 사람들이 이쪽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꽤나 점수를 딴 거 같아요. 사실 공장을 살펴봤는데 엘랑 놈들이 그간 설비 단가를 후려쳐서 판 모양이라 저희가 개발한 건조기 설치에도 관심이 많더군요.”

“거 참. 어디 가나 도둑놈들이 많지 그래.”

사실 이건 우연이었다. 곤살레스와 거래하던 엔지니어링 사가 그간 익스트루더 설비에서 10배가 넘는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거래한 기업이 뒤통수를 깠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페루 사람들은 꽤나 분노했고 덕분에 강태준이 반사 이익을 보았다.

며칠 후 계약서에 사인한 강태준은 현지업체 10여 곳과 협력해 10만 달러를 투자해 백경사료를 설립하기로 했다. 그쪽에서는 수산용 이료에 필요한 원료를 지원하는 대신 오뎅공장과 멸치액젓처리시설 등을 현지에 만들어 본격적으로 수출용 상품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홀가분해진 노기철이 말했다.

“덕분에 시간을 많이 아꼈네요. 뱀장어 먹이 문제도 해결되었고 그럼. 엔쵸비와 관련해 연안 어업 쿼터 배분 협의만 끝나면 끝인 겁니까?”

“그러게. 일 좀 하려고 했더니 시시하긴. 이렇게 빨리 돌아가서 아쉽구먼.”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이 밝은 것이 다들 돌아갈 생각에 표정이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강태준은 이걸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건가. 언제 돌아간다고 했어?”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한가지 더 하고 가자고. 곤잘레스 씨! 준비되었습니까?”

“예. 미스터 강! 물론입니다. 출항 바로 합시다.”

어느새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곤살레스.

항구로 나가보자 까무잡잡한 페루 사내들이 10일간에 걸친 식료품과 얼음을 가득 싣고 있었다.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아니, 지금 집 가는 거 아니에요?”

“여기까지 왔는데 직접 어장에 나가 봐야지. 니도 빨리 돌아가서 아쉽다며?”

“아니 그건 해 본 소리를…….”

“궁시렁대지 말고 어여 타.”

강태준이 작업복을 던져 주며 배 위로 올라탔다.

사장이 솔선수범하자 임원진 역시 어쩔도리가 없었다.

어군탐지기도 없이 망망대해로 향한 선박들은 정처 없이 해면을 내달렸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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