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장어 양식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복만이가 물었다.
“아놔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감?”
“뭐. 누구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 찔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건 생각해 볼 일이지.”
“아놔. 안 본 새 사람이. 능글맞아졌구먼.”
“누구 덕에 내 고생을 죽쌀 나게 해서 말이요.”
틱틱대는 두 명의 눈빛에 불똥이 튀겼다.
상황을 보던 강태준이 슬쩍 웃으며 끼어들었다.
“하하. 고만들 하지. 근데 오면서 보니까 많이 변했네. 여기도.”
“이쪽이 목포에 편입된 이후로 꽤나 커졌습죠. 그래 봐야. 겨우 깡촌은 이제 벗어난 정도지만요. 그보다 제가 보낸 서류는 받으셨습니까?”
“사업 보고 받았네. 그동안 꽤나 견실하게 운영했더군. 고생 많았어.”
무안에서 시작한 여객산업은 순항 중이었다.
무안페리는 무려 10척이 넘는 여객선을 운용하며 순항 중이었다.
“다 사장님 덕분이죠. 뭐 지가 시키는 대로 말고 딱히 있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그게 경영인의 덕목이지.”
무안페리 사무실로 돌아간 그간 사업 동향을 살피는 한편으로 밀린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그래서 무안군수가 신월항에 선착장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고?”
“예…… 여기 입안서입니다.”
“이거 비용이 꽤 높군. 차라리 운항 횟수를 증편하는 편이 낫지 않나. 게다가 굳이 선착장을 개조할 필요까지 있나? 예전부터 군에서 지원하는 화물선이 멀쩡히 다녔던 걸로 아는데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안전 관계상 설계변경이 필요하긴 하더군요. 기존 선착장은 물이 빠지고 나면 물 때 때문에 굉장히 미끄러워서요. 더욱이 이끼가 껴 있을 때는 정말 위험하더이다. 전에는 트랙터로 물건 옮기다 미끄러져서 익사할 뻔했거든요.”
“흠…… 근데 그거야 군에서 알아서 할 일 아닌가?”
“아무래도 군수가 고이도 출신이다 보니 임기 내 제 업적으로 남기고 싶은가 보지요. 만약 도와준다면 버스터미널 사업에 대해 입찰 우선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버스터미널 사업?”
“예, 여기 이번에 호남권 경유지로 유력한 곳입니다. 위에서 허가를 추진 중이지요.”
흥분한 황 서방이 지도를 보여 주었다.
“선착장과 연계하면 여객사업에서 절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무안 군청 같은 지자체 청사도 있고 번화가도 있어서 관광객이 꽤 끌어 올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흠…… 투자가치가 나쁘지는 않군. 일부 면 소재지에 있는 작은 경유지를 제외하고 다른 목포시 같은 도시로 나갈 수 있고.”
무안군의 특성상 이런 여객터미널이 생기면 교통의 중심지로 급부상할 수밖에 없다. 무안군에서 운영하는 대부분의 대중교통은 이쪽을 지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초기 자본은 꽤 들겠지만 괜찮은 생각이야. 좋아…… 이쪽으로 예산 편성해 보지.”
“감사합니다.”
“그보다 소개시켜 준다는 사람은 어디 있나?”
“곧 도착할 겁니다.”
박해 보이는 남자 하나가 뒤뚱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여기, 국립수산과학원 내수면양식연구소장인 부현덕 씨입니다. 여기는 아시겠지만 강태준 사장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강 사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키가 크고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는데 손이 무지하게 컸다.
“부현덕 씨는 장흥군 최고의 수재 중 하나죠. 이번에 민물장어협회 조합장을 맡고 있는 양식전문가입니다. 해양수산 조정의원직도 맡고 있는데 아마 국내에서는 손가락에 꼽히는 인재라고 할 수 있지요.”
“전문가는 무슨…… 아직 명함 내밀 정도도 못됩니다.”
“하하. 그렇게 겸손하실 필요 없습니다.”
부현덕이 일행을 안내한 곳은 거대한 뱀장어 양식장이다. 사실 전남 무안군 명산리는 일제강점기 장어통조림 공장과 장어구이로 명성을 떨친 곳이다. 하지만 천년 푸른 소나무가 없는 것처럼 60년대 이후 구진포에 밀려 조금씩 도태되면서 예전의 명성을 차차 잃어 가는 추세였다.
그러던 중 정부의 뱀장어 양식 진흥책을 펼치며 양어장 시설에 대해 보조금과 융자를 등을 지원하자 양식 장어로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큼직한 지주식 수조 안에 큼직한 뱀장어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에 춘삼이가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야. 여기가 양식장이구만요.”
“그러게 물 반 고기 반이네.”
수조 위를 빙글빙글 도는 고기떼를 보니 살이 찌고 퉁퉁해 뵈는 것이 건강 상태가 좋아 보인다. 옆에 있던 직원이 사료를 투입하자 미끄덩한 뱀장어들이 기세 좋게 물장구를 치며 먹이를 향해 와락 달려들었다.
“와따 힘 좋구만. 요놈들 자시면 몸보신 제대로 하겠네 그래.”
“다들 열심히네요. 근데 저건 뭐 하는 겁니까?”
광필이가 가리킨 곳에 시선을 주니, 우락부락하게 생긴 직원이 반복적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물고기를 통에 담은 다음 키로 수를 재서 기록하고 다시 뱀장어를 어딘가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아, 저거요? 크기별로 선별작업 중입니다. 사료를 먹을 때 큰놈들이 작은놈 걸 뺏어 먹어서 별도로 먹이를 줘야 하거든요. 가만두면 생육상태가 들쭉날쭉하게 돼서 상업성이 떨어지니 저렇게라도 걸러서 기르는 거죠. 그래서 매번 저렇게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요.”
“이야, 힘 약한 놈은 쫄쫄 굶는다. 그야말로 정글의 법칙이군요. 그래.”
“그러니까요. 야들이 또 먹이를 먹지 못하면 비실비실해져서 제대로 못 자라니 신경을 써 줘야죠. 그걸 방지하기 위해 선별을 거쳐 크기별로 호지에 넣어 놓는 겁니다.”
보는 것은 쉬워도 꽤나 신경 쓰일 부분이 많다고 부현덕 씨는 푸념했다.
심지어 어떤 멍청한 놈은 선별판에 들어가다 끼는 놈들도 있기 때문에 사람이 계속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말에 수조 한켠에 큼직한 장어를 들여다보던 강태준이 물었다.
“이쪽 놈들은 튼실한데 몇 개월 정도 키우면 이렇게 됩니까?”
“한 8개월 정도?”
“오 그렇게 빨리 크나요?”
“사료를 제대로 먹을 때가 기준인데. 3, 4개월만 되어도 꽤 큼직해집니다. 보통 이런 지수식은 1년에서 1년 6개월, 순환여과식 양식장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기르면 상품으로 출하할 수 있습니다요.”
빠르면 6개월 정도에 250g 정도 되는 개체로 성장한다는 소리니 생각보다 출하일정이 빠르다.
강태준이 다시 물었다.
“성년까지 다 살아남지는 않겠죠?”
“뭐 그렇지요. 아쉽지만 생존율은 8할 정도입니다. 옆 나라의 경우에도 20년간 경험이 있지만 8할 5푼 정도가 한계라더군요.”
양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꽤나 좋은 성과였다. 종묘를 양식장 내에 가져오면, 먼저 수송시와 같은 온도의 물을 채운 후 소금을 이용하여. 염수욕을 시키며 슬슬 적응기를 갖는다고 했다.
“그럼 치어는 어떻게 수급합니까?
“일단 강으로 올라오는 실뱀장어를 잡는데 보통은 1월부터 초여름까지가 성수기죠.”
보통은 안강망 어업으로 잡는데 반입한 치어는 소형수조나 간이물통 등에서 약욕을 한 다음에 선별 후 입식시킵니다. 거 보시겠습니까?”
검정비닐로 덮인 먹이 공급지 근처에서는 백열등으로 온도 조절을 하고 있었다. 타는 듯한 발열에 수온이 올라가자 뭉쳐 있던 실뱀장어가 흩어지거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벽면을 타고 유영하는 새끼는 크기부터가 몹시 조그마했는데 개중 큼직한 놈도 고작해야 새끼손가락 정도 크기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가느다란 수준이었다.
“이야, 이게 치어입니까?”
“입식 후 4~5일 정도 된 놈들입니다. 이제 입붙임을 할 놈들이지요.”
“입붙임이요? 그게 뭡니까?”
“실뱀장어가 먹이 냄새를 익힐 수 있도록 사육지 전체에 엑시스를 골고루 살포하는 겁니다. 그래야 요놈들이 학습을 해서 밥을 제대로 먹거든요. 에쿠 요놈 봐라. 왜 이렇게 맥아리가 없어?”
힘없이 돌아다니는 개체를 확인한 부현덕이 뜰채로 몇 마리를 건져 내어 통으로 옮겼다.
“그놈은 폐기하는 겁니까?
“아니요. 귀한 놈들인데 어째요. 일단 할 수 있는 대로 살려 봐야죠. 일단 요렇게 비실비실한 놈들은 따로 수용해서 약액에 넣어서 치료합니다. 옥소린산이랑 옥시싸이클린을 1대 5 비율로 넣고 며칠 경과를 지켜보지요.”
“오. 그렇습니까?”
보통은 가져올 때 문제가 없는 멀쩡한 개체를 수급하기 때문에 생존율은 꽤 높다고 했다. 다만 약욕은 뱀장어 스트레스를 감안해야 한다.
입식 후 입붙임 사료를 공급하기 전에 환수를 실시하는 만큼 빨리 건져야 한다고. 유심히 그 모양을 지켜보던 강태준이 말했다.
“수차나 에어블로워는 가동하지 않습니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서요. 일단 입붙임 후 먹이를 제대로 먹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수차와 에어블로워를 병행합니다.”
강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때 꼬르륵하고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홍당무처럼 얼굴이 붉어진 복만이가 중얼거렸다.
“저 배고픈데 밥부터 먹으면 안 되겠습니까?”
* * *
자글자글……
망사철을 숯불 위에 올려놓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면서 흰 장어살이 구수한 냄새를 내며 오그라든다.
껍질의 기름기가 빠지면서 연기가 솔솔 올라오자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살점에. 흰 생선살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자 사람들이 군침을 삼켰다.
“자 여기, 생강채에 와사비, 간장소스 좀 바르고 상추 쌈에 사서 드십쇼. 거기 배고프신 분부터.”
“아 감사합니다.”
침을 꿀떡 삼키던 복만이가 사양하지 않고 상추쌈에 장어를 넙죽 받았다. 생강 상추쌈에 싼 장어를 오물오물 음미하던 복만이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거 흙냄새도 안 나고 담백한 게 맛있네요. 느끼하지도 않은 게 자연산보다 훨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러게 잡내가 없네요. 이거 맛이 아주 좋네요, 무슨 품종입니까? 부산에서 먹던 붕장어랑 다른데. 완전 맛이 고급스럽네.”
“네, 이놈은 앙퀼라 자포니카 품종인데 한국인 입맛에 그만이죠.”
장어구이에 더하여 전통음식인 낙지 탕탕이와 불맛을 품은 호롱구이
간결한 밑반찬과 생강 그리고 속을 따뜻하게 해 주는 된장찌개까지.
기름져서 많이 먹기 힘들다는 민물장어였지만 모두 호불호 없이 잘만 먹었다.
“장어가 기름지다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맛있는 물고기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게 매콤한 양념을 발라 구워 낸 것도 별미로구먼.”
바삭할 정도로 익혀진 껍질에 장어의 쫄깃한 식감이 어우러지자 입맛이 살아나고 감칠맛이 돋구었다.
연이은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 부현덕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무래도 엄선된 사료로 키우니까 질이 다르죠. 돼지도 멧돼지보다는 사료 먹인 집돼지가 맛있는 게 순리 아니겠습니까. 수질을 잘 관리하고 엄선된 사료만 먹이니까요. 특히 가용 공간이 넓어지면 장어의 운동량이 많아져서 고기 맛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뭐 그렇게 키우려면 공간이 많이 필요하겠군요.”
“그렇긴 하지만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보통 제곱미터당 400~500마리 정도는 키울 수 있습다요.”
추가 메뉴로는 장어탕이 나왔다. 통째로 간 장어에 시래기를 듬뿍 넣은 다음, 하얀 쌀밥을 넣어 자글자글하게 끓인 물건이다. 진한 국물을 한술 뜨니 소주가 쑥쑥 들어갔다.
“캬아…… 이 맛이군, 간만에 몸보신 하는군요.”
“취향이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강태준이 상대에게 잔을 따라주며 다시 물었다.
“양식 연구하느라 고생 많으셨는데 제일 어려운 점이 뭐였습니까?”
“일단은 수질관리가 제일 곤욕스럽죠. 특히 이 장어란 놈들이 생각보다 온도에 까다로운 놈들이거든요. 유통처야 없어서 못 먹지만 사료가 좀 아쉽습니다.”
“그래요? 사료는 주로 어디서 조달합니까?”
“제가 직접 만든 배합사료를 쓰지요. 일단 어분에 대두박이랑 여러 가지를 섞어서 만들었기는 하는데 좀 아쉽습니다. 일제 사료는 값이 너무 비싸서 단가가 잘 안 맞아 어려움이 많거든요.”
“흠. 그거는 개선이 필요하겠군요.”
일본에서는 원료 가루를 수입 어분과 어유 및 일본산 생이와 혼합 분쇄해 펠렛화하는데 덕분에 이료 공급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양식업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려는 강태준 입장에서는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할 시장인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