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73화 (273/361)

273화 계열분리

[태동산업 경영권 분쟁 가시화되나? ……차기 주총 앞두고 전운.]

이달 21일 회사 對 소액주주 격돌 예고……오재갑 전무 구원투수 등장 주목.

국내 수산업계 1위인 태동산업에서 때 아닌 전운이 감돌고 있다. 태동산업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호실적을 기록했으나 최근 공모선 발주와 신규 투자 방향을 두고 사내 임원진 간 극심한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주목되는 건 태동의 전 부사장인 강태준의 행보다. 백경그룹 오너이기도 한 강태준은 근래 베트남 군납 사업에 집중하며 급격하게 세를 넓혀 왔던 바, 이번에 특수관계인 해소를 천명하며 태동의 경영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특히 강 전 부사장이 보낸 이번 주주제안서에는 3명의 사외이사 후보와 추가 배당개선 등 획기적인 경영 개선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제안서의 경우 일반 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의안을 직접 제시해 주주총회 6주 전까지 요구사항을 회사에 제출하면 해당 안건을 표결하게 된다.

태동산업 관계자 측은 아직은 제안서를 수령 하지 않아 구체적인 정황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제안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법적조치를 강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신제 기자.

한 마디로 경영권 분쟁을 시작하겠다는 엄포였다. 강태준이 획기적인 사업구조 개편과 경영진, 이사회 개편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경영권에 도전하자 사정을 전해 들은 양재문은 본인이 한 짓도 잊고 노여움을 참지 못했다.

“강태준이 이 녀석이 감히 내 등에 칼을 꼽아? 사외이사 해임안 통과는 어떻게 되었나?”

“그게 보류 중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사들이 기권을 해서요. 강선장과 척지는데 부담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사내 이사들 상당수가 추이를 관망하는 거 같습니다.”

“이 자식들이…… 지금 장난하는건가 뭐야?”

광분한 양재문이 흥분하자 한 이사가 걱정스럽게 간했다.

“사장님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며칠 새 주가가 8%나 빠졌습니다. 이대로 사태가 장기화되면 경영권 방어는 물론이고, 대외적인 평가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겁니다. 차라리 강태준 사장을 다시 만나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니 지금 와서 나보고 숙이고 들어가라는 건가?”

“그래도 어떻게든 만나보셔야 합니다. 강태준이 사안에 끝까지 반대하면 공모선 사업은 물론이거니와 경영권도 보장 못합니다.”

분노를 삭힌 양재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긴 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그 말이 틀리지 않다. 강태준은 사외이사이지만 태동산업 주식 12.5%에 보유하고 있는 2대 주주로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치면 지분율만 30프로를 보유하고 있는 거물이다. 경영권을 뺏지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양재문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것이다.

“알았네. 그럼 이야기를 해 보지”

강태준은 수소문해 찾아간 곳은 해운대 쪽이었다. 백사장에 축대가 보이고 장산의 줄기와 와우산이 보인다. 방파제의 뒤편을 끼고 강태준이 한가로이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잔뜩 뿔난 채 자리에 도착한 양재문은 그 한가로운 모양을 보고는 뭔가 맥이 풀렸다.

옆자리에 걸터앉은 양재문이 가만히 물었다.

“뭐 하고 있나?”

“감상 중이었습니다. 백사장이 참 좁아 보여서. 우리가 어릴 적만 해도 정말 넓었던 거 같은데 말입니다.”

“뭐, 세월이 가면 세상이 좁아지는 게 순리 아닌가. 게다가 열심히 갈아엎어서 그렇겠지.”

한국전쟁이 터진 후 미군은 해운대를 군사비행장과 군사시설지역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미군물자수송을 위해 부두시설로 변한 해운대는 예전과 사뭇 달라진 분위기였다.

“예전에 자주 오셨지요 여기?”

“그러믄. 여기서 등화관제를 자주 당했지. 멋모르고 돌아다니다가 경찰서로 가서 조사를 받고 벌금도 내고. 어떨 땐 마누라랑 같이 왔다가 빛이 꺼져 버리는 바람에 물에 빠질 뻔한 적도 있었거든.”

“하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웃지 마. 죽을 뻔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다 추억이로군.”

“여기보니까 탐나는 곳이 있네요. 저기 특히 와우산 자락이 널찍한 게 끝내주지 않습니까? 골프장 같은 걸 만들면 좋을 거 같습니다.”

“골프장이라니 그런 스포츠가 충분한 수요가 있겠나?”

“온천지대에 있다는 게 큰 메리트 아니겠습니까. 민간에 개방하면 인기가 끝내 줄 거 같은데요. 모래야 널려 있으니 공사비도 아끼기도 좋고요.”

“허가를 받는 게 문제겠구먼.”

한참 지역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강태준이 본론을 꺼냈다.

“왜 지금 단계에서 굳이 위험한 선망업을 하시겠다는 겁니까?”

“꼭 지금 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내게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 아니겠나?”

“마지막 기회라니 너무 비장미 넘치는 거 아닙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지금은 타이밍이 아닙니다.”

“자네는…… 날 이해 못해. 남이 걸은 길만 걷다 보면 갑갑해지는 거지. 단지 남의 뒤를 따라가는 삶이 얼마나 무료한 줄 아나. 내 나이가 벌써 50이 넘었어. 어느 날 깨달아 보니 남들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나만 혼자 여기 있더군. 이 자리에 앉아 보니 고인인 심 사장께서 정말 대단한 분이란 걸 깨닫게 되더군.”

“창업자에게 필요한 덕목과 후계자의 덕목은 다릅니다. 회사를 창업하는 것보다 원래 가진 것을 수성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쥐 죽은 듯이 살 수는 없잖은가. 그늘에 머무는 건 성미에 맞지 않더군.”

양재문이 강태준을 똑바로 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이건 내 인생 사업이야…… 자네가 우려하는 부분도 물론 충분히 인지하고 있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다네. 충분히 이 사업을 궤도에 올릴 수 있다는 말이야. 여기서 한 번만 더 날 도와줄 수 없겠나?”

강태준은 말없이 양재문의 눈동자를 주시했다. 눈가의 주름이 생기고 머리는 희끗해졌지만 눈 안에 담긴 열정만큼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강태준은 한숨을 쉬었다.

갑갑함에 다시 찌를 집어던진 강태준이 말했다.

“선배, 선배랑 제가 얼마나 오래 일했죠?”

“글쎄, 한 10년이 넘었나?”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군요. 선배도 저도…… 많이 변했죠.”

“그래. 나도 많이 늙었지. 허허.”

때마침 손을 타고 올라오는 감각이 찌르르한 감각이다. 벵에돔 한 마리가 걸려 올라오자 흥분한 양재문이 소리를 질렀다.

“어어!!”

“어여, 잡게!!”

고무공처럼 통통 튄 고기가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펄떡거리는 녀석을 잡는답시고 낑낑거리다 온몸에 물에 흠뻑 젖은 두 사람.

그 순간 둘은 사업이나 앙금도 잊은 채 껄껄 웃었다.

그렇게 한참이 흘렀을까.

웃음기를 거둔 강태준이 상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형님.”

“나도.”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된 거 같다.

사이가 더 나빠지기 전에.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시간이다.

* * *

[태동그룹 분사, 계열분리 전격 선언! 갈등 극적 봉합.]

[백경유통, 떨어져 나와, 동업이 잡음 없이 청산.]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던 태동산업의 갈등이 극적으로 끝났다. 갑작스레 촉발된 갈등처럼 화해 역시 극적이었다. 그룹 내부 직원들은 계열사가 어떻게 나눠지고 있는지 전혀 모를 정도로 분할 과정에서의 힘겨루기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계열 분리로 축소된 태동그룹은 그룹 모태인 원양어업 사업 부문 전반을 총괄하고 새로 출범한 백경유통은 대광조선과 함께 백경 계열사에 편입되어 강태준 사장이 독자적인 경영을 맡게 됐다.

이번에 백경유통 총괄 부사장에 오른 오재갑은 앞으로 태동의 주력사업인 원양어업 업종에는 진출하지 않겠다는 신사협정을 맺었다고 말했다.

태동산업 분사는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소문을 접한 이억수는 곧장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허어.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 강태준 그놈이 참치산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백경유통은 지주회사 체제로 이행한다는군요. 서로 잘할 수 있는 업종에 경쟁력을 집중한다고……”

태동이 참치조업을 전적으로 맡는 대신 통조림 등 제조나 유통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않는다고 정했다. 비록 동업 관계는 끝났지만 양자의 협력이 지속될 것이라는 이야기에 이억수는 해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게 무슨 꿍꿍이야?”

“뭐 계열사 지배구조로 보면 굳이 원양어업에 연연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참치산업에 관심이 없어진 건 아니겠습니까? 여기저기 벌린 사업이 많은데 굳이 리스크 있는 사업에 투자하기 어렵고 말이죠.”

“하긴, 그놈 입장에서야 그럴 수도 있겠구만.”

“어찌 되었든 잘된 거 아닙니까?”

막강한 경쟁자가 알아서 손을 떼 준다는데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더욱이 양재문이라면 상대적으로 해 볼 만한 상대가 아닌가.

“그래. 강태준에 비하면 양재문은 순한 맛이지. 좋아…… 그러면 이참에 트롤선이나 몇 대 인수하자고.”

“네? 선망선이 아니라요?”

“웃기는 소리. 너 설마 헬기 다룰 줄 아나?”

“그건 아니지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강태준이 그놈이 왜 양재문이를 손절했겠나. 여기서 발을 뺀 건 견적이 안 나온다는 소리지. 저쪽이 말아먹으면 그때가 기회야.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돼.”

“어, 그러다 의외로 잘 되면?”

“이런 멍청한 자식을 봤나. 그럼 그때 가서 따라 해도 늦지 않아. 그보다 강태준이 이놈 딴생각 못하게 아주 못을 박아야겠어.”

발해원양을 비롯한 주류 수산업체들은 대인배적인 행보를 찬양하며 강태준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억수 이 개시키 보게. 아주 신났네 신났어. 아주 똥꼬가 헐게 빨아 주는구만.”

“뭐라는데?”

“대의와 신의를 지킨 탁월한 결정이고 결단을 존중한다? 태동그룹 양 사장의 도전 의식을 높이 평가한다. 자기들은 트롤선에 집중하겠다는데요?”

“허허. 현명하구만. 그 자식이 입은 잘 털지 그래.”

그 말에 오재갑이 탐탁잖은 듯이 중얼거렸다.

“근데 계열분리라니 이게 최선입니까? 참치조업을 포기하다니.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솔직히 캄차카 어장 정도는 하나 받아올 수 있었지 말입니다.”

“아서라. 인간은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가 다른 법이야. 내가 참치어업을 계속한다고 하면 딴 놈들이 어떻게 나올 거 같아?”

“다들 거품 물겠죠. 뭐 뭐. 과당경쟁이다 뭐다 차관도 막고 안 봐도 비디오네요.”

“그렇지. 절대로 경쟁자가 늘어나는 걸 바랄 리 없으니까.”

하지만 오재갑은 미련이 남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장성량이나 이원석 의원도 있는데 비벼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습니까?”

“굳이 거기서 심력을 낭비하느니 다른 길을 찾는 게 나아. 거 황 서방한테는 연락 왔나?”

“예. 준비되었다네요?”

“그럼 가지.”

* * *

전남 무안군. 널따랗게 펼쳐진 갯벌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내리쬐는 햇빛을 가린 복만이가 신기한 듯 갯벌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게. 여기는 진짜 오랜만이구먼유.”

“그러게.”

“거의 10년 만인가?”

“별로 변한 게 없네.”

무안의 모습은 이전과 별다를 것이 없이 청정했다. 갯벌을 위로 낚지 잡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포근해 온다. 때마침 저 멀리 장화를 신은 중년의 남자 하나가 뒤뚱거리며 달려왔다.

“저기, 황 서방?”

“강 사장님? 어이하여 여기까지 행차하셨습니까?”

“뭐. 자네가 여기 있다길래 찾아왔지. 근데 예서 뭐 하는 건가?”

“낚지 잡이입니다요. 간만에 솜씨 좀 발휘해 봤습니다요.”

소쿠리 가득 찬 낚지를 자랑스럽게 보이는 황 서방에 강태준이 핀잔을 주었다.

“아니 뭔 사장이 이런 허드렛일을 하나?”

“에이, 맨날 사무실 지키고 있으면 지겨워서요. 가끔씩 이렇게 바닷바람 쐬면서 생물을 잡아줘야 살맛이 나지 않습니까?”

“사람 참…….”

“뭐. 이렇게 땀을 빼줘야 배때지에 기름이 안 끼죠.”

그 말이 찔리는지 배가 나온 복만이가 훽 돌아서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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