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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271화 (271/361)

271화 컨테이너 사업

그러자 차대응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유조선과 벌크선의 폐선 가격은 각각 LDT(선박 해체를 위해 지급하는 선가 단위)가 계속 하락하는 중인 만큼 빨리 해체할수록 이득이긴 하지요.”

“그래. 투자 여력이 없어 수년간 방치된 노후 생산 설비를 전면 개보수하고 시설 합리화가 필요하겠어. 주요 시설 중 선각공장과 산소공장을 신축하고 조립장도 확장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그럼 규모가 너무 커지는데요? 자력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아니지. 기존에 카발 쪽에서 담당하던 파트를 합쳐야 하지 않겠나.”

“사업구조를 개편 한다라…… 신조선 외에 플랜트랑 철도 차량으로 확대하면 분사해서 전문회사 위주로 간다는 소립니까?”

“그렇지. 기존에 신규조선 제작 업무는 대광이랑 연계해서 진행하는 게 좋겠군. 인력은 스왑해서 처리하면 되지 않겠나, 그쪽이 규모 상 수주하기 어려운 대형선박 물량 위주로 말이야.”

“그렇게 되면…… 부지도 확장이 필요할 거 같은데요.”

“그러게요. 조선소 인근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러면 확장성이 좀……”

“거제 옥포 쪽으로 설비 이전을 추진하면 되지 않나. 그건?”

그러자 이번에는 오재갑이 다시 지적했다.

“일단 영도조선공사에 물린 금액도 문제입니다. 일본으로부터 320만 달러의 차관에 추가 25억 원이 빚인데, 현재와 같이 차입금에 과도하게 의존한 상황에 이자 부담이 증가하면 수익을 올리기는 요원합니다.”

그러나 강태준의 의견은 단화했다.

“시설을 현대화하지 않고서는 운영상 적자에서 벗어날 수 없어. 일부 자금은 카발에서 50프로 정도 투자하고, 나머지 부족한 자금은 선사에서 융자를 받아야지.”

“어디서요?”

“시위드(SEA-WEED)쪽과 연락해 보자고. 대리점 계약으로 해상운송 관련 업무를 대리하는 게 빠를 거야.”

“시위드 사라면 컨테이너 선사 말입니까?”

“맞아 정기선사에 연락해 한국 내 대리점이나 합작법인을 세워야겠어. 이미 그쪽에 제안서를 넣어 두었네.”

작업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며칠 후, 시위드(SEA-WEED)사 대리인인 데이빗 오코너가 백경그룹을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이미 서류상으로 기본적인 내용은 숙지한 뒤였기에 협상은 곧바로 진행되었다.

“그러니까 그쪽 말은 우리와 함께하고 싶다는 말이시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쪽서 줄 수 있는 제안은?”

“수에즈 운하 폐쇄로 유조선 및 광석전용선 같은 전용선 수요가 급증하였으니 앞으로 대형화물선이 일반화되겠죠. 운임 절감과 수송권 확보 측면에서 지역 거점이 있는 편이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강태준이 미리 준비해 둔 계획서를 건넸다. 서류를 확인한 데이빗이 상세하게 내용을 훑어보았다.

“흠…… 계획서는 그럴듯하지만 몇 가지가 걸리는군요. 우리 SEA-WEED와 합작하려면 물량확보와 협력 조건과 어느 정도 맞아야 하는데 한국서 유통되는 물량만으로 조건 충족이 가능하겠습니까? 한국 내 물류량만 해도 아직 10만 톤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더욱이 영도조선공사는 상당 기간 적자를 거듭해 온 회사인데다 컨테이너 선적화를 추진하기에는 그럴 만한 여력이 안 되어 보이는데요?”

“그건 표면적인 부분만 본 것이죠.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물류 유통에 유리한 위치에 있고 이미 한국전쟁 때 사용한 Conex(Container Express) 컨테이너부터 시작해 컨테이너 사업에 대해서 꽤나 많은 이해도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강태준은 한국의 의지를 역설했다. 여기서 철도와 해운을 연계해 서울과 부산항 하카타, 시모노세키도쿄 등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선을 확립하면 충분히 상업성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데이빗은 완전히 납득하지 못한 듯했다.

“확실히 일리가 있긴 합니다만 부두 건설용 기초설비로 2,000만 달러에 연안 건설비로 추가 1,000만 달러라 이건 너무 많습니다.”

“투자 회수가 문제라면 저희가 다른 항구에 비해 여러모로 비교 우위가 있다는 점을 알아주십시오. 특히 미국 해운국 쪽에서 MH-5 표준화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기업들에 지원금을 책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희와 협력하면 그 부분도 문제없이 해결됩니다.”

“그거야 그쪽이 아니라도 가능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거기서 파트너로 생각하는 항구가 브루클린이나 나고야 정도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저희는 그쪽보다 인건비가 훨씬 싼 데다가 이런 것도 만들 수 있습니다.”

강태준이 손짓을 하자 춘삼이가 무언가를 가져왔다. 그건 포대자루처럼 생긴 사각의 천이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FIBC 포대입니다. (Flexible Intermediate Bulk Container) 폴리에틸렌이랑 폴리비닐클로라이드 필름으로 만든 걸로 일종의 가방 개념이죠.”

“흐음…… 이게 포대라고요?”

“시멘트나 합성수지는 물론 곡물과 광물 등 원하는 대로 포장할 수 있는 물건이죠. 게다가 보다시피 재질 자체가 비닐이라 일정 부분 방수도 되거든요. 덕분에 옥외에도 저장할 수 있는 거지요.”

재질을 확인해 본 오코너가 의뭉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마치 헝겊 같은 느낌이군요. 쥐가 뜯어 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렇게 얇으면 혹 배송 중간에 터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하, 생각보다 튼튼합니다. 이미 인장 검사를 끝낸 물건이라서 품질은 보증합니다. 게다가 한 겹이면 모를까 단위로 포장하면 내용물을 보호하는 건 문제 되지 않지요. 봉제 부위가 적어 잘 뜯어지지 않고요.”

그걸 본 오코너는 곧바로 경제성을 알아보았다. 제법 오랫동안 선사에서 일하며 상품의 진가를 알아보는 눈썰미가 생긴 것이다.

“보아하니 지퍼백도 달 수 있겠군요. 품질 유지만 하면 꽤 괜찮은 생각입니다. 제조비는 어떤가요?”

“예. 구조적으로는 천 짜는 거랑 거의 같으니 단가도 비슷합니다. 폴리올레핀계 원사를 압출기로 뽑아낸 다음에 와인딩을 거쳐 촘촘하게 짜기만 하면 되니 말이죠. 튜브나 플랫한 형태로 만드는데 수송 시 위쪽에 고리벨트를 달아서 운반하기 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흠 직기를 이용한다면 인력 소모가 있겠는데요.”

“하하. 저희 회사는 이미 가발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 정도 인력은 확보해 두었습니다. 거기다 소형의 경우에는 히트 실링방식으로 눌려 붙일 수도 있으니 훨씬 경제적이죠.”

이미 봉제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니 큰 손해는 아니다. 물건을 다시 살핀 오코너는 세심한 박음질에 크게 감탄했다. 컨테이너의 표준화만 생각했지 그 안에 들어가는 포대의 표준화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아이디어였다.

상대의 마음이 흔들렸음을 알아차린 강태준이 서둘러 떡밥을 던졌다.

“현재, 씨위드 사는 12미터 컨테이너 표준화로 꽤 곤욕을 치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유개화차부터 브레이크 벌크 선박까지 한 번에 만들 수 있다면 다시 물류에서 우위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항만국장을 설득해서 씨위드에 적합한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을 세우도록 설득해 보지요.”

“흠.. 정말이십니까?”

“네. 저만 믿어보십시오.”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호환성 문제로 기존의 규격을 고집할 수 없게 된 시위드 사에게 있어 그 제안은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었던 것앋. Sea-weed와 국내 정기선사 총대리점 계약을 체결했고 인천항에 처음으로 컨테이너선이 입항하기로 했다.

“이야 확실히 정부 보증이 좋긴 좋군요. 이렇게 빨리 계약이 이루어지다니. 이래서 정치꾼놈들한테 알랑방귀를 뀌는 거였네.”

“옆에서 딴지 거는 놈들이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나.”

“원래 공무원 놈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거지.”

“거, 흰소리는 나중에 하고. 이번에 들어오는 물량 확인했어?”

“물론입니다. 다음 주까지 300톤급 컨테이너용 전용 크레인이랑 45톤급 지게차 30대, 60톤급 트레일러 10대, 스트래들 캐리어까지 주문했습니다.”

“장비 도착하는 대로 민간 항만용역업자하게 연락해야겠군요. 이거 의욕이 돋는데요. 어디 보자 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건가? 도선사 선임에 2도크 건설, 예선, 하역, 검수검정, 벙커링, 청수공급 선박관리업까지…… 추가 업무까지 고려하면, 이야…… 상당하구먼.”

“그러게 일을 너무 크게 벌이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

최창렬의 걱정스러운 말에 강태준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뭘 복잡하게 생각합니까. 해운선사 대리점 업무는 전 세계적으로는 똑같아요. 한 번 배워 두면 쉽습니다. 게다가 똑같은 업무가 반복되니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원칙은 하나입니다.”

“뭔가.”

“시간은 곧 돈이라는 것이죠.”

위위이잉!!

배에서 들어 올려지는 철판 한 장의 무게만 무려 1톤. 절단기가 뿜어내는 열기와 온몸으로 튀어 오르는 불똥 탓에 작업복에 구멍이 뚫리자 놀란 작업자들이 펄쩍펄쩍 뛰었다.

“아뜨뜨! 따거!”

“임마…… 두 겹으로 입으랬지? 함 사람들 하곤.”

폐선 처리반 총괄책임자가 된 박진환 이사가 인상을 쓰자 작업자가 서둘러 차렷 자세를 했다.

“거, 계속 일할 수 있습니다.”

“쓸데없이 고집부리지 말고 치료나 받아. 자 니들 덥다고 옷 얇게 입는 놈들은 다 뒈진다 그래. 눈뽕 맞기 싫으면 고글 쓰고!”

“예!!”

강태준은 선별된 장치를 보면서 안전 관리에 신경을 썼다.

“거기 최봉기 반장, 잡부들 안전 교육 좀 제대로 시키게나. 사고 나면 큰일 나.”

“네, 사장님!”

절단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배가 균형을 잃고 쓰러질 수 있는 만큼 해풍에 녹이 슨 배를 분해하는 건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아차 하는 순간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작업이 한창이던 무렵,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배달부들이 도착했다.

“커피 왔어요!”

“아니, 느그는 쓸데없이 왜 여기 왔어?”

“왜 오긴. 왜 와요. 헛소리 말고 이거나 들어요.”

쾌활하게 갑자기 등장한 점례의 모습에 툴툴대는 광필이였지만 점례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꿀꺽꿀꺽 찬 아이스 커피를 들이켜자 정수리까지 시원해진다. 헬멧을 벗은 박진환 역시 얼굴에 송송 맺힌 땀을 닦아 내었다.

“거참, 힘들구먼. 예전에는 이런 잡일 정도면 정도면 한 번에 했는데”

“그러게. 직접 하지 말라니까요? 근데 요새 또 내기 바둑합니까?”

그 말에 정곡이 찔린 박진환이 슬쩍 물었다.

“어케 알았냐?”

“거 형수님이 하소연해서요. 요새 외유가 좀 잦다고 하던데?”

그 말에 박진환이 가만히 털어놓았다.

“그냥 취미로 하는 거야. 나도 숨은 쉬고 살아야지.”

“적당히 하시지 너무 빠지면 골로 갑니다. ”

“알았어. 알았어. 나도 젊었으면 제대로 배우는 건데 말이야.”

“그 아 때문에 그렇소이까? 호창이.”

“그려. 재능이란게 참 불공평하지 않나?”

강태준이 주관한 우량아 선발대회에서 뽑힌 영재가 바둑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탓이다. 지능발달과 교육 효과를 홍보해 준 덕분에 학령기 바둑 인구가 크게 늘었던 것이다.

“천재는 천재죠. 덕분에 분유 홍보비가 굳었지 말입니다.”

“쩝, 이참에 아들 하나만 더 낳아서 바둑이나 시킬까?”

“하하. 꿈도 야무지십니다. 형수님이 협조하신답니까?”

“그렇게 만들어야지.”

그렇게 잠시 땀을 훔치던 찰나 춘삼이가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형님, 태동산업 이사회 소집이랍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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