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68화 (268/361)

268화 갱도 사고

광범위한 판촉 덕분에 조금씩 판매량이 개선되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광필이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미친, 광고비가 오지게 드는구먼요.”

“원래 마케팅이 반이지. 이번 요리 잡지에도 넣었어?”

“네네. 그런데 데카 스튜디오 이 자식들은 사진 하나 찍는데 단가를 엄청 세게 부르는데요. 지들이 상 좀 받았다고 무지 젠체하네.”

“그래도 실적은 확실하지 않나. 돈 아까워하지 말고 불러서 최대한 맛있게 찍으라고 해.”

강태준은 다시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도 라면 광고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꽤나 괜찮은 작사가에게 맡긴 작품이라서인지 운율을 가진 가사가 꽤나 중독성이 있었다.

그때 갑자기 치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작스런 속보가 흘러나왔다.

-급보입니다. 어젯밤 12시 20분쯤 강원도 삼척 황지탄광에서 붕괴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정부당국은 최소 10인 이상이 갱도에 고립된 것으로…….

“어히구야. 장난이 아니네요. 또 애꿎은 사람들만 죽어나가겠군요.”

결제를 받으려 온 광필이가 라디오를 듣더니 혀를 쯧쯧 찼다. 산업 현장에서 연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석탄인 만큼, 당시에는 한 해도 몇 번씩 이런 사고가 터지고 했던 것이다.

“요새 이쪽 사고가 좀 잦은 거 같은데?”

“아무래도 인력을 갑자기 많이 투입하니, 사고가 늘어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게 다 정부가 문제입니다. 뻔히 사고 날 줄 알면서 대비도 안 하고.”

“욕해서 뭐 하겠나. 우리도 빨리 구조지원을 보내야겠어.”

재난 지원에는 이골이 난 만큼 설비 투자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린 춘삼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형님…… 저…… 뭔가 문제가 생긴 거 같습니다.”

“응. 갑자기 왜?”

“그게…… 지금 집에서 철민이한테 연락이 왔는데 덕배가 갱도사고 현장에 매몰되어 거기 있답니다. 아무래도 갱도사고로 고립된 듯합니다.”

귀를 의심하는 발언에 광필이가 이마를 구겼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덕배가 왜 거기 있어?”

“그게 선배들 때문인 거 같습니다. 멋 모르고 이념 서클에 가입했는데 방학에 노동운동 한답시고 해서 얼결에 따라갔다는군요. 아무래도 몰래 그쪽에 지원했던 것 같습니다.”

“뭐, 그놈이 노동운동을 뭐가 아쉬워서?”

가짜 이력서를 끼워 넣고 서류심사를 조작해서 넣었다는 소리에 강태준은 기가 막혔다.

마침 내막을 확인하고 들어온 오재갑이 서류를 내밀었다.

“입사원서에 중졸로 적었다는군요. 이름도 다르게 적어서 미처 못 찾을 뻔했는데…… 이거 어이가 없군요.”

“아이구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이런 멍청한 자식을 봤나?”

“죄송합니다.”

면목 없어 하는 춘삼이가 고개를 푹 숙였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죄송하다고 말로 할 문제가 아니지. 경찰에 신고당하지 않은 게 용하군. 근데 그 샌님이 그 면상으로 어떻게 취업했지?”

“곧 성수기라 일손이 부족하니 뭐, 대충 눈감아준 거겠죠.”

“아무래도 그럼 더 서둘러야겠군.”

살아 있을 확률은 몰라도, 덕배를 그냥 매몰현장에 묻어 둘 수 없는 일 아닌가. 강태준이 긴급히 온천굴착팀 박형관 이사를 불러 구호물자와 굴착장비 파견을 지시했다.

강태준이 갱도 사고현장에 도착했을 때 현장은 검은색 지프들로 북적거렸다.

취재차량들이 몰려 있는 공간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마침 강태준을 발견한 김삼현 기자가 차에서 내렸다.

“강 사장님. 어떻게 이곳에?”

“조카 놈이 여기 갱도사고에 매몰되었다 하여 확인 차 내려왔지요.”

“그런 일이.”

“혹. 혹시 사고경위와 구출상황 좀 들은 바 없습니까?.”

“사건취재를 해 봤는데 작업 도중 갱도가 붕괴했다는군요. 승강기를 타고 작업장으로 내려간 직후 일이 터졌는데 탄질이 좋다는 이유로 위로 파고들은 것이 원인인 듯합니다.”

광산보안법상 하층 갱도는 굴착 45∼50m가량 유지하면서 작업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수칙을 위반해서 무리하게 나섰다가 지지대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마침 굴착업자와 최응서 연구팀이 도착했다.

뒤늦게 구조대에 합류한 최응서 교수가 갱도 내 구조를 보여 주며 긴급 브리핑을 했다.

“채굴 때문에 하중 분배의 균형이 깨져 갱도 천장을 받치던 갱목이 무너진 거 같습니다. 사고지점 부근 갱도가 침수되면서 폐 갱도의 물이 터져 나왔을 겁니다.”

최응서의 말에 춘삼이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면 매몰자 모두 다 죽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확률은 모르지요. 다만 내부에도 대피소가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최악을 가정할 필요는 없지요. 일단 구조 시작합시다.”

매몰된 인원이 한두 명이 아닌 관계로 언론의 관심은 지대했다. 박정명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청와대 비서관을 현장에 보내 구조 작업을 독려했다. 언론사들은 특파원을 파견하여 매일매일 구조 작업 진행을 생생히 보도했다

-오늘 상오 15시. 백경 굴착팀에서 생존자 확인을 위해 굴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정은 좋지 않았다 갱도 붕괴로 죽은 시체들이 발견되기까지 했다. 점점 생존가능성이 희박해져 가는 사이 3일차. 아무 소식이 없자 춘삼이의 표정은 그야말로 거무죽죽해졌다.

“한국대까지 보내 놨더니 이렇게 허무하게…….”

“그렇게 자책하지 말아.”

“아닙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동생 단도리를 잘했어야 하는데…….”

분위기가 침울해지자 강태준도 문득 죄책감이 올라왔다. 좀 더 신경을 써 줄 걸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몰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구조대에서 쪽지가 올라왔다.

“사장님 이게…….”

-생존자 있음…… 전화 연결 바람…….

쪽지를 펼쳐 본 강태준은 곧바로 필체를 알아보았다. 익숙한 필체에 놀란 강태준이 곧바로 부산을 떨었다.

“당장 전선 연결해!”

-거기 누구 있습니까?

잠시 후,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덕배의 목소리에 경악한 춘삼이가 소리를 내려 하자. 강태준이 쉿 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잠시 후 목소리를 가다듬은 강태준이 아무도 모르는 척 가명을 불렀다.

“여기는 구조 본부, 최용배 맞나? 거기 어딘가?”

잠시 침묵이 지나가고, 사태를 파악한 반대편에서 잠잠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직갱 내 1천 킬로 지점 대피소입니다. 해병대에서 통신병이셨던 분이 있어 통신을 복구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생존자도 있는가? 지금 같이 있는 생존자는?”

“총 7명입니다. 건강상태는 대략 양호한 수준입니다.”

다친 사람 없이 건강상태가 양호하다는 말에 사람들은 환호에 휩싸였다.

언론에 전파를 타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출하라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루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구조작업에 만전을 기하시오.

청와대에는 발빠르게 지지를 천명했고 미8군 MARS 헬리콥터와 각종건설 장비가 지원되었다. 소방대원뿐만 아니라 새마을 회원들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인원이 동원되자 뉴욕타임스 기자도 급파되어 취재경쟁을 벌였다. 그사이 밖에서 구조본을 지휘하던 강태준은 전화선을 통해 갱내 상황을 파악했다.

“식량 상태는?”

“지참한 도시락이랑 비상식량이 삼 일치가량 있어서 나눠 먹고 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뭔가?”

“온도입니다. 이상하게 갱도 안은 한증막처럼 더웠는데 이젠 춥네요.”

침수의 영향이었다. 좋지 않은 소식에 강태준이 머리를 굴렸다.

“그럼 혹시 전구는 있나?”

“있긴 합니다.”

“그러면 전선 6가닥 가운데 4가닥은 전화선으로 쓰고 남은 가닥에 전기를 넣어 주겠네. 백열전구를 키고, 추우면 교대로 안고 있도록 해.”

완벽하지는 못하겠지만 다소의 보온이 되어 줄 것이다. 곧이어 미국의 구조 전문회사인 데비 사가 도착하자 본격적인 구조작전 수립에 들어갔다. 데비 사의 대표인 윌리스 씨가 구조 자문을 맡았다.

“위치파악에 성공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거리입니다. 막장이 내려앉은 데다가 죽탄이 갱도를 메우고 있어 물과 석탄이 뒤범벅된 죽탄이 계속 밀려나오는 중이라서요.”

“저희는 밤낮 가리지 않고 밤새도록 팔 수 있습니다.”

박형관이 의욕을 보였지만 말했지만 최응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는 큰일 납니다. 지금 갱도는 물 위에 뜬 판 같은 상태에요. 잘못해서 파쇄대를 건드리면 폭삭 내려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전을 유지한 채로 속도를 내면 얼마나 걸리죠?”

“이 속도면 목표지점까지 굴진해 내려가려면 최소 7일이 더 걸릴 겁니다. 그것도 24시간동안 주야를 가리지 않고 작업했을 경우가 전제로 말입니다.”

“그렇게 머뭇거리다간 하다간 죽습니다.”

“그래도 안전이 우선입니다.”

강태준이 주위를 진정시키며 다시 말했다.

“흐음. 식량이 부족할 테니 급식 파이프로 죽이라도 보내는 게 좋겠군요.”

파이프를 연결해 음식을 전달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굴착 중 진동 때문인지 일주일간 뚫은 갱도가 무너지며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생존 확률이 희박하다는 비관론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하지만 강태준은 묵묵하게 구조작업에만 열을 올렸다 이 사고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면서 광산 근로자들의 열악한 실태가 재조명되었기 때문이었다.

-황지 광부, 무사귀환 기원

국민적 염원을 반영하듯 여기저기 교회와 사찰에서 기도회와 법회가 열렸다.

밖에서 그렇게 사투를 벌이는 사이 탄광 밑의 사정도 열악해지고 있었다.

* * *

땅 밑 수백, 수천 미터…… 숨이 콱콱 막히는 곳,

냄새도 빛도 없는 캄캄한 땅에서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광부 일행이 내려온 지도 어연 열흘.

사람들은 파이프에서 물을 받아 마시며 연명했다. 광부들은 처음에는 함께 의지하며 이겨나갔지만 시간이 지나 기력을 잃은 광부들은 점점 염세적으로 변해 갔다.

“대체 왜 구조가 안 오는 거야?”

“파이프는? 식량은?”

“그걸 믿소. 진작에 망한 거지…….”

이미 굴착 중 사고로 인해 전선까지 끊어진 상황이었기에 다들 희망을 놓아 버린 것이다.

광부 중 하나가 음울한 어조로 신음을 흘렸다.

“우리 다 죽을 거야…….”

“다 살아남을 테니 걱정 마세요. 저희 안 죽습니다.”

덕배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듯 확신이 차 있었다.

마치 신앙과 같은 태도에 광부 하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네는 뭐가 잘났다고 그렇게 확신하나?”

“위에서 저흴 포기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 정도면 거의 국가적인 재난 사태가 선포되지 않았겠습니까?”

“정부를 뭘 믿고?”

“백경이랑 강 사장님도 나서지 않았습니까? 한번 진득하게 기다려 보세요.”

사람들은 반박 대신 침묵을 택했다. 사실 궁시렁댈 힘도 없었다.

며칠 후 사람들은 배고픈 수준이 넘어 위가 등가죽에 붙을 정도가 무감각해졌다.

구조를 기다리며 누워 있는 것이 유일하게 체력을 보존하는 길.

햇빛 한 줌 들지 않은 공간.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덕배는 생각했다.

‘괜히 왔어. 춘삼이 형이 걱정할 텐데…….’

이복형임에도 친형제보다 더 잘해 준 형을 떠올리니 미안함이 앞선다. 이번 탄광행은 노동운동에 투신하겠다는 그런 거창한 생각으로 뛰어든 게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 후에 목표를 잃은 기분에 우발적으로 따라간 것뿐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일이 커졌지? 천장을 보던 덕배가 쓴웃음을 지었다. 진작에 균열이 발견됐음에도, 광산업체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원이 회사 측에 위험한 갱내 수리를 진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햇빛 한 줌 들지 않은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덕배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간 얼마나 자기가 혜택받은 삶을 살았는지…….

앞으로 나간다면 무조건 공부만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그전에 살아남아야 하지 않나. 배고픔에 눈이 가물가물해지려는 그때 어디선가 휘황한 빛이 내려왔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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