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우량아 선발대회
‘동양방송 백경분유 주최 전국 우량아선발대회 왕중왕전!’
모두가 부러워할 부모님이 되실 기회! 백경유업에서는 장차 이 나라의 동량이 될 꿈나무들의 건강한 생육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우량아 선발대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이쁘고, 귀여운 아기들의 많은 참가를 바랍니다
참가자격 ‘만 6개월 이상~24개월 미만의 아기.’
서울, 부산을 비롯한 12개 지역 방송에서 접수 받습니다.
이번 우량아 선발대회는 출판계 영업직원들과 MSG 홍보팀까지 총동원된 엄청난 규모였다. 총천연색의 풍선과 하늘을 나는 에드벌룬이 결합한 광고에 삐라까지 살포하자, 세간의 눈이 한쪽으로 쏠렸다. 두 명의 유명 텔런트가 나온 공익광고 역시 큰 이슈가 되었다.
“김씨 이거 들었슈?”
“뭐가?”
“생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애기들 중에서 왕중왕을 뽑는다네?”
“아휴, 그거 말인가. 정부에서 생색내기로 하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당께. 이번에는 달라요. 달라.”
“그게 뭔 소리고?”
“이번에는 시나 도 수준이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한다는구먼. 거기다 최종에 뽑히는 8명한테는 등수에 따라서 학자금을 차등적으로 지원하는데, 거기다 1등은 대학까지 학자금 전액 지원한다네?”
“아니, 말이 되나? 그게 한두 푼도 아닐 텐데. 에이 개뻥이지 뻥!”
“말이 되니까 하는 소리지. 이 양반아. 백경이 무슨 구멍가게인 줄 아나? 스폰서 빵빵하지 애들 홍보모델까지. 이만한 기회가 어디 있나?”
“아무리 그래도 아 팔아서 돈 버는 거 같아서 좀 껄쩍지근하구만.”
“이 사람이 나중에 소 팔아서 대학 보낼 건가? 밑져야 본전이니 함 나가 봐.”
이렇게 나온 광고는 전격적이었다 TV는 물론이거니와 신문 잡지를 도배하다시피 한 광고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국민적 관심을 환기하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그 덕분인지 참가 당일 포대기에 아기를 안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 냄새! 대체 애한테 뭘 먹인겨! 어서 치우지 못하겠소?”
“거 줄을 섭시다 줄을!!! 차례좀 지켜요.”
첫 대회에 출전한 아기의 수는 무려 1만 명. 각종 예방 접종을 빠짐없이 맞았는지. 기능 발달이 아이의 적령기에 맞는지 간호사들의 심사가 이어졌고 그때마다 실랑이가 있었다.
“아니. 애기가 머리가 너무 큰데. 9개월 맞소이까?”
“맞다니까요?”
“아니 생후 이것 보세요. 9개월짜리가 체중이 9킬로라니. 상식적으로 이렇게 큰 게 말이 됩니까? 게다가 무슨 유치가 전부 나 있어요?”
“아니,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요. 엇! 여기서 싸지 마!!”
상금과 보상이 탐이 났는지 종종 허위내용을 기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까다로운 심사에 걸려 죄다 예선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호적상 등본 표기와 생후일자까지 정확히 맞지 않으면 신청 자체가 거부된 것이다.
서울지역 예선을 위해서 빌린 장충체육관은 아이가 까륵꺼리는 소리와 칭얼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젖내가 물씬 풍기는 체육관의 분위기에 광필이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야, 생각 이상으로 열기가 뜨거운데요? 이거”
“이 정도로 성황일 줄이야. 다른 지역은 좀 어떤가?”
“고무적인 수준입니다. 일단 적령기 웬만한 아이들은 죄다 신청한 것 같더군요.”
“그럼 심사를 한 단계 더 늘리는 거 어때? 중간에 결심을 한 번 더 추가해서.”
“예. 그러면 일 개월은 길어질 텐데요?”
“사정이야 바꾸면 되지. 물 들어왔으면 노를 저어야지.“
단상으로 올라간 강태준이 마이크를 잡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뭐야 저거 강 사장 아닌가?”
“뭔 중대발표라도 하는가?”
그 순간 주위를 돌아본 강태준이 입을 열었다.
-열화와 같은 성원에 감사합니다. 다만 선발인원이 예상치를 웃도는 관계로 심사가 지연되어 일정을 일 개월 연장될 것 같다는 점 미리 양해말씀 드립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고.”
“일 개월 연장이라니. 뭔 소리고.”
갑작스런 일정 변경에 동요하는 사람들에 강태준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아, 대신 우승 시 상금 수급과 대상을 대폭 변경할까 합니다. 예전 효행비를 세울 때 지역민들에게 혜택이 들어갔던 것처럼 우승 아동을 배출한 해당 읍면동을 대상으로 분유와 통조림 선물 세트를 배급하고 해당 지역에 특별 지역우선 직원 채용을 실시할까 합니다.”
“직원 우선채용이라고? 그럼 특채 말인가?”
“오 그러면, 취업까지 한 번에?”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동요하자 체육관 내가 시끄러워졌다. 눈치 빠른 이원준도 함께 앞으로 나섰다.
“예. 천경 역시 국민 건강을 지원하는 취지에서 동참하겠습니다.”
“저희 오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판이 커진 선발대회는 어린이날을 앞둔 4월쯤 예선을 거쳤다.
본선은 서울 동양방송 스튜디오서 실시할 예정이었고 대회 진행은 생중계로 진행되었다. 중간 중간에 방송사고도 있었지만 덕분에 대회는 더 투명하게 진행되었다.
영양 상태는 물론이거니와 두상과 몸의 균형, 혈색, 피부 근육과 골밀도, 치아 수, 젖을 뗀 시기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보며 품평하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머리통이 약간 짱구라서 좀 그렇네.”
“아니, 우리 아가 생긴 게 어때서요?”
“귀엽긴 한데, 이렇게 뒤통수가 눌린 게 좀 아쉽구먼. 도너츠 베개라도 해 주지…… 쯔쯔.”
약간의 농이 섞여서일까 심사장 분위기는 굉장히 유하게 진행되었다. 아이의 발육을 확인한 전문가들은 이것저것 육아와 관련된 팁이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최종심을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스케치와 장난감 같은 소정 참가상이 주어졌다.
치열한 경합을 거쳐 선발된 아이들은 엄마의 손에 의지해 카메라 앞서 사진을 찍었다. 울거나 딸꾹질을 하는 아이들도 있고 뭣도 모르고 방긋거리는 아이도, 장난감에만 정신이 팔린 아이들도 있었지만 모두들 그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아이들이 심사에 통과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마침내 최종심에서 합산 결과가 발표되었다.
“1등상은 수원대표입니다!”
“짝짝짝!!”
“백경의 강 사장님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1등상을 받은 아이는 우량아는 강태준이 직접 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단상에 올라온 강태준이 아이의 목에 금메달을 씌워 주자 아기가 거추장스럽다는 듯 버둥거렸다. 손가락 힘에 놀란 강태준이 덕담을 건넸다.
“이야. 튼실하네요. 힘이 아주 장사인데요. 이름이 뭡니까?”
“이호창입니다.”
“예? 호창이라고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둑기사의 이름에 깜짝 놀란 강태준.
다시 보니 눈썹이 특히 거뭇한 것이 미래의 누군가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눈이 아주 똘망하네요. 아주 애가 똑똑하겠는데요.”
“그렇습니까?”
“바둑 시키면 잘할 거 같아요.”
강태준이 두뇌 발달에 좋다며 바둑 예찬을 늘어놓고 나왔다. 하루 후 오성일보 1면에는 토실토실한 남자아이가 귀여운 아기옷을 입은 사진이 나왔다.
신문에 정신이 팔린 복만이가 노란 병아리 같은 아동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걸 점례가 디자인했다는 말입니까? 믿기지가 않는데요?”
“샤브리나 선생이 도와줬겠지. 그럼 걔가 이걸 혼자 만들었겠냐.”
“거 용 됐네 그래. 요새 촌티 좀 벗더니 아주 사진이 딴 사람이야.”
에리카 쟝이란 예명으로 등장한 점례가 아이를 안은 채 표지모델로 등했다. 탈색인지 가발인지 모를 머리에 옅게 화장을 한 모습이 무척 잘 어울려서인지 사람들도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광필이가 복만이의 뒤통수를 딱 쳤다.
“아야. 뭡니까. 형님.”
“닌 언제까지 딴 짓만 할 거냐. 신혼여행 돌아왔음 좀 양심이 있어야지.”
“거, 고문관 노릇 좀 고만하십쇼 그래. 어차피 저야 아직 공식직함도 없지 않습니까. 그보다 아기 사진이 귀엽잖습니까? 물론 제 아들한테는 상대도 안 되겠지만.”
“허 이 자식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데 아들 타령은 김칫국부터 마시나?”
광필이가 눈을 흘기자 복만이가 뻔뻔하게 대꾸했다.
“왜요? 원래 혼혈아 1세는 무지 이쁘답니다. 우리 마리아가 좀 미인입니까?”
“어느 유전자가 우성일지는 모르는 거지. 임마. 딸이 니 닮을 수도 있어.”
“아니, 그런 끔찍한 소리를, 무슨 악담을 그렇게 하십니까?”
“되도 않는 자신감 부리지 말고. 비방이 있으니 이거라도 시도해 보는 게 어때. 우리 이 도사가 알려 준 건데…… 이 부적을 붙여 놓기만 하면….”
“아니 형님아 내가 바보 같아 보입니까?
내심 솔깃한지 자꾸 둘러보는 강태준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둘 다 아주 생쇼를 하는구먼.”
“요새,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주역이랑 풍수를 진지하게 배운다는군요. 사람의 운명이란 게 정해져 있다나?”
그 말을 들으니 내심 광필이가 불쌍해 뵈는 강태준이었다.
“차인 충격이 컸나 보구먼. 쯧쯧. 인간이 헷까닥 해가지고는 정상으로 돌아와야 할 텐데.”
“냅두십쇼. 세월이 약이니. 그보다 이번에 우량아 선발대회 효과가 교육계에서도 칭찬이 자자합니다.”
무엇보다 대회는 저번 대회와 꽤나 차별화된 부분이 여러모로 많았다. 그중 하나가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기가 우량아라는 공식을 깬 것이다. 덕분에 오로지 머리둘레 위주로 선발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비율이 균형 잡힌 아기들을 선발한 덕에 비만에 대한 경각심도 커졌다고 했다.
“뭐, 그거야 의사 양반들이 할 일이고. 중요한 게 매출이지. 그래서 효과가 어때?”
“꽤 좋은 성과입니다. 벌써 점유율을 10프로나 더 확보했습니다.”
“뭐야 에게? 고작 그거밖에 안 늘었어?”
그러자 노기철이 정색하며 말했다.
“엄청 늘어난 겁니다. 다른 회사들은 아주 쪽도 못 썼습니다. 원래 분유 시장이 엄청나게 보수적인 곳입니다. 애기들은 처음 맛 들인 분유만 먹으니까요.”
“담양이 쎄긴 쎄구먼. 그래.”
“아무래도 전통의 강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니까요. 이번 마케팅도 아주 영악하게 나오더군요.”
백경에서 우량아 대회로 이슈몰이를 하자 담양도 재빠르게 편승했다. 아이광고는 물론 신제품 출시와 함께 영양플러스라는 제품으로 강화판을 냈는데 아기들을 불러서 시식회를 열었는데 그게 또 대히트를 기록했다.
덕분에 전체 파이는 크게 늘었지만, 비율 면에서는 굳건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흠…… 10프로라 애매하구만. 생각보다 효과가 별론데…… 아직 흑자전환은 못 했지?”
“예. 마케팅에 비용을 너무 퍼부어서 아직은…… 뭐 전반적인 매출이 오르는 추세니 좀 기다려 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어느새 자리로 돌아온 김광필이 투덜거렸다.
“그거야 라인조절만 했으면 해결되었죠. 솔직히 수율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놈의 특수분유 생산만 없었어도 벌써 흑자 전환했겠죠.”
“그거 제수씨 부탁인데 어쩔 수 없잖나?”
“취지야 좋지만 그게 대체 얼마짜립니까. 손실이 수천만 원대라는 걸 빼면…… 차라리 집을 주는 게 나을 뻔했어요.”
강태준이 특별히 생산하는 특수 분유는 페닐케톤뇨증(PKU)이란 용선천성 대사 이상 환아들을 위한 분유였다. 일반 분유와 달리 원료만 20가지 이상이 더 필요한 데다가 제조할 때마다 생산 설비를 세척해야 했던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