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51화 (251/361)

251화 김치 통조림

홍소복의 유연함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 방첩대원들 역시 하나둘 하드를 빨며 촬영장을 구경했다.

“저 체격으로 덤블링이라니 이건 반칙인데…….”

“그러게. 몸이 엄청나게 유연하구만. 무슨 연체동물도 아니고.”

“어떻게 단련한 건지 궁금하구먼.”

실전에 투입된 방첩대원들이 보기엔 보통 몸이 아니다. 몸은 육중해 보여도 온몸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동작 하나하나가 힘이 있었다. 더욱이 몸무게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좀 잘생기지 않았어요? 살만 빠지면 완전 훈남일 거 같은데?”

“잘생기긴 개뿔…… 헉!”

뒤로 돌아보니 점례가 와 있다.

피처럼 붉게 바른 루즈를 본 광필이가 기겁을 하더니 가슴을 부여잡고 컥컥거렸다.

“컥, 아따, 귀신도 아니고. 어째 넌 왜 애가 항상 인기척이 없냐?”

“뭐 그렇게 놀라. 심장에 문제있어요?”

“아니 그 옷차림은 뭐냐? 쥐잡아먹은 입술은 뭐고.”

“샤브리나 선생님이 의상실 들어간 기념으로 준 거예요. 어때 잘 어울리죠?”

뽐내듯이 원피스를 자랑하는 점례였지만 광필이의 반응은 시니컬했다.

“거 별꼴이구먼.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

“뭐예요? 사람이 이쁘게 차려 입었으면 칭찬을 해 줄 것이지.”

“몰라. 제대로 일 배우기로 했으면 의상실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여긴 쓸데없이 왜 와? 벌써부터 땡땡이야?”

“휴가지요. 휴가. 내가 누구랑 같은 줄 아나. 글구 이제부터 점례라는 이름 안 쓰기로 했어요.”

“그럼 뭐라고 부르는데?”

“이제부턴 절 브리트니라고 불러주세요.”

“풉!”

“아니 왜 웃어요?”

거드름을 피는 말에 간신히 웃음을 참는 춘삼이에 광필이가 실실거렸다.

“브리트니, 브리트니 점례? 졸라 이상한데?”

“그게 아니죠. 브리트니 반. 성이랑 이름도 구분 못 해요?”

“많이 이상해. 무슨 앵무새 이름도 아니고. 아님 셀리 어때, 셀리 와싯 돈룩백?”

말도 안 되는 드립에 표정이 구겨진 점례가 쯧쯧거렸다.

“그러니까 오빠가 아재 소리 듣는 거지. 앗 그보다 쉬는 시간이네 아무래도 가까이서 봐야겠어요.”

뾸뾸거리며 홍소복에게 다가간 점례가 기회를 탐타 슬쩍 물과 수건을 건네주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금세 깔깔대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는 광필이었다.

“이야, 저거 저거 친화력 하나는 역시 발군이구만. 천하의 샤브리나 양 선생을 어떻게 꼬셨나 했더니.”

“하하 그것도 재능 아니겠나? 혹시 모르지. 의상 쪽에 재주가 있을지.”

“말도 안되는 말씀 하지 마십쇼. 빨리 시집이나 보내야지. 저 철딱서니를.”

곰돌이 푸와 피글렛 커플처럼 은근히 잘 어울리는 것이 꽤나 인상적이랄까.

그러고 보니 홍소복이 첫 마누라가 한국인이었나.

‘복만이 시즌2는 사양인데.’

불안이 사람 잡는 법이라지만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는 일.

솔직히 인종을 빼면 반대할 이유도 없지 않나.

그러나 그런 걸 걱정할 여유는 없었다.

얼마 되지 않아 예상대로 통조림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 * *

[한국산 통조림에 기무치. 군납의 현실]

마침 TV에서 전 해병대 사령관의 월남전 참전기를 방영하던 중 일본산 김치통조림을 공급했다는 발언이 나오자 곧바로 전수 조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결과, 하와이에 있는 일본인의 제조공장에서 군용 통조림을 공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언론의 융단폭격이 시작되었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김치까지 일본에서 만든 음식을 먹어야 합니까?”

“이건 국권침탈에 비견되는 폭거입니다. 국방 예산이 친일파로 흘러들고 있어요.”

언론에서 민감한 사안을 다루자 곧바로 청문회가 소집되었다. 논란의 핵심은 어째서 일본인이 한국군 식량을 공급하느냐는 문제로 번졌다.

“아니, 일본 놈들이 통조림에 독을 넣어 뒀을지 어찌 압니까?”

“통조림 제작은 파병 전까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식량 공급이 빠듯한 관계로 공급처를 확보하는 방편으로, 거기에 미군에서 철저히 검수하고 있어요.”

“아니 그걸 변명이라 하는 거요? 통조림 정도야 6.25때도 만든 건데 왜 지금 못 만듭니까?”

“그건 아직 한국이 기술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국내전과 해외 수출용은 궤가 다르지요. 일단 수개월 동안 부식되지 않게 만드는 건 좀 어렵습니다.”

“변명은 그만두십시오.. 국군의 주부식만큼은 우리 것을 쓰는 게 맞지 않소?”

“맞소이다. 지금 북괴와 대치 중인 상황에 보급이 이래서야 어떻게 전투력을 유지하고 국권을 지키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계속되는 야당의 공세에 국방부 장관이 기무치 군납 건에 대해 사죄했고 정부에서는 월남 파병한국군의 통조림 공급계획을 빠른 시일 내 구체화하기로 발표했다.

앵무새처럼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앵커의 행동에 오재갑이 말했다.

“여론이 불타는 게 생각보다 빠르네요.”

“그러게 우리 예상보다 빠른데?”

“아무래도 야당 쪽에서 공세가 심해서, 공민당 석만춘 의원 주도로 정부에서 산은총재를 위원장으로 설립추진위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더라고요.”

“정부가 컨트롤 타워를 구성하겠다는 건가? 그건 언제부터 시행한데?”

“일단 아무리 빨라도 6개월은 걸릴 거 같습니다. 일단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니 주식회사부터 설립하는 게 우선이지 않겠습니까? 일단 정부 출자로 회사부터 세우고, 미군구매처랑 수의계약을 절충한 방식으로 납품하겠죠.”

미국의 병참규정상 원조국에서는 식량을 조달하지 못하게 규정되어 있는 만큼 일단 천만 달러 상당의 물품을 납품하고 그만큼 다른 물품을 받아오는 식으로 물물교환을 하는 것이다. 그 말에 춘삼이가 약간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근데 뭔가 좀 웃기긴 하네요. 그간 잘만 먹어 놓고는 이제 와서 못 먹겠다니 좀 뭔가 넌센스 아닌가요. 일본인이 만들면 입맛이 뚝떨어지기라도 하는 건가.”

“쓸데없이 생각하지 마. 원래 국가 관계란 건 이성으로는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지. 그리고 넌 입을 조심하는 게 좋겠다. 나가서 그런 말 하다간 정 맞아.”

노기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세라는 게 그런거지. 그보다 말실수한 그분께는 무척이나 고맙군요. 쓸 만한 자리라도 챙겨드려야 하나. 아니 혹시 사장님께서 장작 넣으신건 아니죠?”

“굳이? 난 그렇게 전지전능하지는 않네. 뭐 어차피 터질 일 조금 귀띔을 준 부분은 있지만. 언제라도 특종의 감을 잃지 않은 언론정신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귀감이 아니겠나?”

물론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고작해야 여론에 사실관계를 좀 더 자세히 알려 준 것뿐.

방송국 역량 강화와 해외 연수 프로그램 지원을 위해 예비 언론인들에게 하와이 쪽 학교들을 알선해 준 것이 굳이 잘못된 행동은 아니지 않나. 그 말에 광필이가 흐흐거렸다.

“흐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사업가로서 아주 좋은 덕목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보다 노 이사 통조림 설비 투자는 어떻게 되고 있어?”

“아 그거요? 일단 레오놀드 메탈 사에 의뢰해서 대충 가이드라인을 잡았습니다. 일단 동체 연곡기랑 내부 스프레이 기계부터 바꾸고 차츰 다른 기계들도 도입할 예정입니다.”

“그 정도면 거의 다 바꾸는 거 아닌가?”

“뭐 그래야죠. 아무래도 실사를 해 보니 대부분 업체들이 시설이 노후화되어서 정상 가동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단 기존 납땜관 설비를 접착관으로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3피스 캔 공정을 굳이 살려낼 이유가 있나. 가능하면 2피스로 전환하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

“차대응 부장이 실사를 해봤는데 2피스쪽으로 바로 교체하기엔 설비비용이 만만치 않답니다. 일단 3피스 캔이 설비 투자비가 적고 캔 종류를 교체가 용이하다네요. 무엇보다 고압살균이 편하니까요.”

“쩝, 그럼 어쩔수 없지. 품질은 어때?”

“점점 나아지는 중입니다. 일단은 동체 접합 기술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일단 거래처 확인해서 무주석 강판이나 알루미늄부터 오더 넣었습니다. 그런데 업체에서 D&I관도 도입할지 물어보던데요?”

“D&I? 그게 뭔가?”

강태준에게 가져온 것은 2피스 캔에 쓰는 공정 설명서였다. 설비목록을 확인한 강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체적인 설비는 비슷해 보이는데, 기존의 방식이랑 무슨 차이지?”

“기존 방식이 1차 타발로 끝나는 단순 공정이라 한다면 이건 캔을 1차 타발로 컵을 만든다음에 벽면을 얇게 다듬질하듯이 눌러 추가 성형을 하는 거죠.”

“흠. 그러니까 쇳덩이를 잡아 늘린다는 거구먼. 이거 품이 많이 들겠는데? 일단 재료값이 싸지겠지만 과정이 하나 추가되는 셈이니 말이야.”

“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설비비용이 증가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득입니다. 물량확보만 제대로 되면 경쟁력이 생길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알루미늄 강판 수급이 제대로 된다는 전제겠군. 알았어. 검토해 보고, 원터치 캔 문제는 어떻게 되었나? 알코아 쪽하고는 이야기가 끝났어”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풀텝이란 게 공임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서 단가 협상이 좀 난항이네요.”

원터치 캔의 원리는 고리를 뜯어내듯 뚜껑을 뜯어내는 방식으로 지렛대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때마침 피츠버그 양조회사가 한 번에 10만 개를 주문하면서 각광을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일단 캡을 뜯어낸 다음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재활용 문제도 있고요.”

“그래도 편의성 면에서는 압도적으로 낫지 않나? 게다가 많이 생산하면 단가도 떨어질 거 아닌가?”

“그게 아직 완벽하지 못한지 뚜껑 열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아서요. 불량률이 좀 상당해서 안 뜯기면 칼로 그걸 파내거나 해서 다치는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그래도 포기는 아쉽군. 그래도 탄산음료 쪽으로는 시범적으로 도입해 봐. 그리고 풀탭은 좀 개량을 해 보는 게 좋겠어. 뚜껑을 굳이 떨어지게 할 필요가 없지 않나?”

실제 이 기술을 최초로 도입한 피츠버그의 양조회사는 해당 제품의 매출이 무려 200%가 올랐다. 거기에 2년 만에 미국 캔맥주의 75%가 캔 뚜껑을 사용할 정도로 급속히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었던 만큼 강태준으로서도 발빠르게 움직일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광필이 이 자식은 왜 안 오나 근데? 한국에 들어온다더니.”

그러자 전문을 받은 춘삼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장님. 저 광필 형님이 감찰반에 잡혀갔다는데요? 복만 형님도…….”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뭐 깽판이라도 쳤어?”

“그게…….”

방첩부대 전체가 억류되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란 강태준은 곧장 퀴농항으로 날아갔다.

부대에서 순시 중이던 채 대령은 강태준의 등장에 한숨을 쉬었다.

“오, 강 사장. 드디어 오셨군.”

“저희 쪽 직원들이 잡혀갔다니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허허 빠르구먼. 사실 이거 때문일세.”

채 대령이 당번병에게 눈치를 주자, 옆에 있던 당번병이 포대자루를 흔들었다.

후후둑 소리와 함께 빨간 명찰 같은 것들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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