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45화 (245/361)

245화 선풍기의 진실

[선풍기의 진실, 선풍기인가 살풍기인가.]

-잠잘 때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면 돌연사 확률 높아…….

근래 선풍기의 위험에 대해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나와서 화제다. 연희대학교의 김모 교수는 근래 학술논문에서 수면 시 선풍기를 돌리면 체온 조절 기능에 이상을 초래하거나 호흡 곤란을 초래할 여지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바람이 체온을 뺏어가 혈관의 수축을 가져오면 저체온으로 인한 돌연사 위험이 커진다고…….

대비책으로 잠을 자기 전 선풍기를 꼭 꺼 놓던지 방문이나 창문을 열어 놓고 선풍기를 틀어야 질식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본 광필이가 콧방귀를 뀌었다.

“뭐야. 이 소설은?”

“원조는 어디 듣보잡 잡지에서 나온 찌라시라는데요. 요새 괴담처럼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답니다. 이게 나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네요. 이거 진짜입니까?”

춘삼이의 말에 강태준도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무슨 인간이 변온 동물이냐? 당연히 거짓부렁이지.”

“아, 그런가요?”

“나도 요즘 같은 열대야에 맨날 틀고 자는데. 안 그래 노 이사?”

“당연히 아니죠. 오히려 이런 말을 하는 놈들이 사기꾼입니다. 사실 소음을 막아 줘서 깊은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말을 씨부리는 놈은 솔직히 의학자가 아니라, 의료인을 자칭하는 돌팔이죠.”

“그보다 궁금하구먼. 이런 그지같은 기사를 쓰는 놈이?”

“그게 알아봤는데 김신제라고. 저희가 아는 사람이더라고요.”

“김신제? 또 그놈?”

예전에 지평호 출항 때 뭣 같은 질문을 했던 그 기자다.

익숙한 이름에 광필이가 혀를 찼다.

“아놔,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한동안 잠잠하더만. 이 자식은 입만 열면 죄다 구라라니까?”

“이 새끼가 남의 장사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나. 또 본때를 보여 줘야 하나?”

어깨를 돌리는 것을 보니 말리지 않으면 한판 제대로 뜰 기세.

그러자 강태준이 서둘러 말렸다.

“임마, 우리가 깡패야? 그런 잔챙이 잡아 봐야 뭐하나. 게다가 원래 세상엔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

“그게 뭔 소립니까?”

“또라이를 없앤다고 족쳐도 어디선가 또 다른 또라이가 생긴다는 거지. 세상에 그런 놈이 한 둘인가. 그때마다 족쳐 봐야 똥밖에 안 나와. 오히려 더 또라이같은 자식이 생길 뿐이지.”

“그럼 어쩝니까?”

“쓸데없이 일 키우지 말고. 함 불러와 봐. 대화를 해 봐야겠군.”

며칠 후, 김신제가 백경 본사를 찾았다. 백경을 찾는 그의 얼굴은 영 편치 않았다.

사실 기사를 쓰면서 설마 백경이 연관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개자식들이, 거 설계하려면 잘 좀 알려 줄 것이지. 하필 백경그룹이랑 엮이나?’

성운사 같이 젠체하는 양반네들 돈이나 뜯어낼 목적이었는데 하필 백경이 엮이다니.

일전에 박 여사로부터 조리돌림까지 당하며 크게 혼이 났던 김신제로서는 상대가 영 껄끄럽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운 없음을 탓하던 그때 강태준이 부드럽게 인사를 건넸다.

“거기 김 기자님? 자리 앉아요. 우두커니 서 있지 말고.”

“넵.”

소파에 앉으면서 보니 옆에서 부리부리한 인상이 장난이 아니다.

옆에서 인상을 팍 쓰는 것을 보고 다소곳하게 무릎을 모았다.

“좀 빨리 왔군요. 인터뷰는 삼십 분 뒤인 걸로 아는데.”

“당연히 빨리 와야죠. 이런 기회가 어디 있다고…….”

“우리 구면인데 편하게 말하세요. 그보다 요새 기사가 아주 흥미롭더군요.”

강태준이 보여 준 선풍기 기사가 앞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다.

“루머치고는 꽤 자극적이던데요. 선풍기 살인사건이라. 기자님은 작가를 하셨어도 잘하셨을 겁니다.”

“그게…… 절대로 백경을 저격할 의도를 한 게 아니라…….”

떠듬거리며 항변하는 김신제.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강태준이 차를 내주었다.

“하하, 편하게…… 변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탓하자는 게 아닙니다. 난 김 기자의 언론관에 대해 매우 높이 평가해요. 소비자는 알 권리가 있지요.”

“아 그렇습니다.”

“오히려 이런 기사들이 자주 나와야 제품 홍보도 되고 사람들 관심도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되려 칭찬이라니 대체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가?

경계심을 풀지 않은 김신제의 모습에 강태준이 찻잔을 들었다.

“그렇지만 소비자는 정확히 말을 해 주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를 못 하죠. 정보라는 게 비대칭 관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몇 가지만 정정하면 좋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어떤 부분을 말입니까?”

“이걸 봐 주시죠.”

강태준이 내민 것은 영어로 된 논문이었다.

평소 영어에 자신 있어 하는 김신제였지만 어지럽게 적힌 내용이 도저히 읽히지 않았다.

“여기서 읽기엔 너무 길군요. 혹 이게 무슨 내용인지 간략하게만 설명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일반적인 선풍기는 밤새 켜 놓다가는 자칫 과열이나 과부하로 인체에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선풍기는 발열이 적은데다 역풍 기능이 있어서 밤새 켜 놓고 자도 안전합니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축전기의 퍼텐셜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지요.”

“아 그렇습니까? 그건 처음 들었습니다.”

강태준의 설명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김신제였지만 내심 자존심도 있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김신제에 강태준이 빙그레 웃었다.

“우리 김 기자님은 인텔리시니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일반 대중들은 모르지요. 그래서 밤새 켜 놓고 자도 안전한 점을 좀 강조해 준다면 좋을 거 같은데…… 어려울까요?”

“사장님, 그건 좀 어렵겠는데요?”

“곤란해요? 어떤 점이.”

“그…… 어제 기사를 낸 입장에서 바로 정정 기사를 내기에는 저도 좀. 입장이란 것이…….”

“아, 그래서 못 하시겠다고요?”

“그건 아니지만…….”

“하, 우리 김 기자님 많이 컸네? 저널리즘이란 게 그런 건가? 일단 질러 놓고 아님 말고. 그게 기자들 방식인가?”

껄렁한 말투의 광필이의 말에 주위에 있던 임원진의 표정도 미미하게 굳었다.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에 얼음이 된 김신제가 침을 삼키자 강태준은 미소를 지었다.

“정정을 하라는 게 아니라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자는 거지요. 듣자 하니 자녀분께서 대학 진학에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

“예…… 첫째가 고3입니다.”

“공부를 꽤 잘한다고 들었는데 자식 농사 잘 지으셨더군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강태준의 칭찬에 그 말에 긴장했던 김신제의 얼굴이 스르르 풀렸다.

“촌 동네에서 1등 해 봐야 뭐가 대단합니까. 대충하는 정도지 어디 내세울 정도는 아니지요.”

“하하. 혹 그거 아십니까? 우리 백경 출판에서 요사이 교육 사업을 키우는 의미에서 백경 장학회에서 장학생을 선발하고 있다는 건 아시는지?”

“그건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자 강태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이번이 1기니까요. 마침 우리 쪽에서 장학생을 뽑고 있는데 어때요. 김 기자님 자제분도 한번 지원해 보는 건? 잘하면 전액 장학금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정말이십니까?”

“공부를 잘하니 시도해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백경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전액 장학금은 물론 백경 계열사에 우선 채용 특전이 주어집니다. 뭐 특별한 인재들만 받는 특권이죠.”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 옆에 있던 광필이가 어깨동무를 하며 속삭였다.

“우리 김 기자님, 먹으려면 크게 먹는 게 좋지 않습니까. 쪼끼 몇 푼 용돈 뜯는 것보다 강 사장님 빽 한 번 쓰시는 게 좋잖아요? 우리?”

그 말은 악마의 유혹처럼 들리는 것이 왜일까. 답이 곧바로 반사적으로 나왔다.

“언제까지 정정 기사를 쓰면 될까요?”

“뭐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요. 뭐 팩트에 입각해서 사실적으로만. 다시 말하지만, 소비자에게는 알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김 기자님이야 저널리스트 아닙니까? 실력 믿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물러서려는 김신제를 붙잡은 강태준이 봉투 하나를 넣어 주었다.

“이건 내 성의니, 식구들 소고기라도 사 먹이세요. 공부 잘하려면 체력이 좋아야지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는 폼이 몹시 급해 보인다. 반쯤 뛰어가는 행동에 그 꼬라지를 지켜보던 광필이가 같잖다는 투로 쯧쯧거렸다.

“거참 축지법 쓰나. 발이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는구먼.”

“아버지란 게 그런 거지. 아무리 개나발 부는 놈이라도 내리사랑은 다르다니까. 물론 개보다 못한 놈들도 간혹 있긴 하지만.”

“근데 저놈이 과연 밥값을 할까요?”

“뭐 그 정도 눈치도 없이 기자질 못 하지. 저격이나 홍보나 그게 그거 아닌가. 나는 뭐라 안 했어.”

그리고 며칠 뒤 청송일보에서 기자가 떴다.

[밤에도 걱정 없는 선풍기. 벡센! 자동 역회전 회로로 취침 걱정 없이.]

취침 중 선풍기로 인한 사망을 방지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선풍기가 출시되어 장안의 화제다. 미국 최초의 선풍기 제작사인 에이머사와 기술합작으로 만든 벡센은 전자식 자동 조절 장치가 있어 일정 주기로 바람이 돌아 나올 수 있는 기술이 적용되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훨씬 안전한 것으로…….

교묘하기 이룰 데 없는 기사에 4컷짜리 만평까지 실린 후속 기사가 풀려 나가자, 시장에 즉각적으로 반응이 왔다.

“니들 들었냐? 밤에 선풍기 틀면 죽는다는 거 그거 완전 개뻥이래.”

“진짜?”

“그래 이번에 정정 기사 났더구먼.”

“그거야 모르지. 개뻥인지 아닌지는 진짜 사람 하나 죽어 봐야 알지 않겠나? 굳이 몸으로 확인할 게 아니면 알 수 없지.”

“그럼 어떡하나 그래?”

“그딴 거 고민할 시간에 벡센 사 임마들아.”

“좀 비싸도, 이왕 살 거면 좀 안전한 게 낫다는구먼.”

한 번 돈 풍문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는다. 밤에도 안전한 선풍기라는 말에 벡센 표 선풍기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한 번 흐름을 탄 선풍기 판매량은 급증했다. 선풍기 하나 사려고 세운상가며, 동네 판매점엔 새벽부터 저녁까지 장사진을 이룰 정도가 된 것.

그런 행보에 보폭을 맞추듯 신문 칼럼에도 글이 실렸다.

[벡센, 선풍기의 신기원을 일으키다. 역풍에서 순풍으로]

[청정 바람의 혁명, 벡센 선풍기 시대가 선택한 기술.]

“이야. 김신제 이 녀석 야부리 잘 터네요.”

“와, 그래도 글밥 먹는 놈이라고 뭔가 다르긴 다르구만. 이것도 재능인데?”

“이 인간은 애초에 청와대 대변인 같은 걸 해야 적성인데 말입니다.”

“미친, 나라 말아먹을 일 있나? 말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선풍기 판매량이 급증하자 강태준은 연구진들을 데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쯤에서 색깔별로 에디션을 내놓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까?”

“색깔별로요 어떻게?”

“이번에 메탈 테이프를 만들면서 도료를 개발하지 않았습니까. 녹 방지 기능이 있는 걸로 발라 놓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색감과 다이얼을 좀 고급스럽게 만들어 놓으면 아무래도 판매량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제작 단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큰데 말입니다.”

걱정하는 연구원들의 반응에 사람들도 모두 동의했다. 기껏 확보한 점유율이 흔들릴 수 있다는 논지에서였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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