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42화 (242/361)

242화 산니의 방문

[경제성장률 14%! 기적을 만들다]

[짜빈동 대승, 우리는 해병이다!]

67년 초 한국의 모습은 예년과 달리 활기가 넘쳤다. 베트남 특수가 몰려들면서 경기가 살아나고, 간만에 숨통이 트였던 것이다. 10퍼센트를 넘는 경제성장률에 한껏 고무된 정권에서는 수출 증대에 열을 올렸고, 그 최선두에 놓인 기업들은 제품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백경 그룹 역시 산니 사장단의 방문을 앞두고 분주하기 짝이 없었다.

“자자. 지금 모리타 사장님께서 오신답니다. 다들 준비되었지요?”

“옙!”

“준비된 대로만 하세요. 자연스럽게. 절대로 책잡혀서는 안 됩니다.”

점검이 끝나기 무섭게, 차량 석 대가 등장했다. 모리타 사장단이 내리기 무섭게 지시를 받은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며 목청을 높였다.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

박이 터지면서 안에서 플래카드가 흘러나왔다.

-축, 펠립스&산니 카세트테이프, 국제 표준 등극!

빰빰빰빰빰~~~

폭죽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풍악을 울리면서 주변인들이 별 가루를 뿌렸다. 마치 유명 온천에서나 볼 듯한 환영식에 사장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아니 뭘 이런걸.”

“그룬디히와 DC-인터네셔널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으니 이제 진정 세계를 제패한 게 아니겠습니까? 선전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과한 말씀이십니다. 이제부터 시작 아니겠습니까?”

말은 겸손하게 했지만 은근 기분이 좋아졌는지 모리타의 입가는 절로 씰룩거렸다. 강태준의 칭찬이 체면을 제대로 세워 준 듯 다들 우쭐한 기색이었다.

“절반은 여기 강 사장의 공이지요. 카세트테이프가 이렇게 빨리 보급되지 않았다면 더 힘겨운 싸움을 했을 테니까요.”

“아휴, 제가 한 게 뭐 있겠습니다. 자 들어오시지요.”

서로 덕담을 하던 두 사람이 공장 내로 들어갔다. 차폐실처럼 생긴 입구에는 똑같이 생긴 흰색 옷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자 이걸 하나씩 입어 주십시오.”

“아니, 이건 방진복입니까?”

“예. 여기서부터는 에어샤워를 거친 뒤에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뭔 요란을 떠나 싶었지만, 모리타가 두말없이 옷을 입자 다들 말없이 주섬주섬 방진복을 챙겼다. 복도를 따라 들어가니 기계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신품 테이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모습에 사람들의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건 대체? 엄청난 규모군요.”

“저희가 알기로는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규모일 뿐 아니라 시설 역시 최신식입니다. 저희는 제품의 불량률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공장 안은 매우 쾌적했다. 적당히 온기가 흐르는 실내에는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설비의 규모에 놀라는 사이, 모리타 사장의 시선은 장비 자체보다 고성능 필터와 바닥에까지 설치된 공기 순환 구조에 고정되어 있었다. 숨을 들이쉬던 모리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확실히 공기가 아주 깨끗하네요. 저희 회사도 이 정도까진 아닌 거 같은데, 청정 관리가 철저하군요.”

“하하. 그건 미국에서 박막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팹(FAB) 공정을 방문했던 적이 있거든요. 깜짝 놀랄 정도로 깨끗한 환경에서 생산이 이루어지더군요. 그걸 참고해 회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전기 방지를 위해 상시 습도도 조절하고 있습니다.”

“하긴, 전자제품이라는 건 외부 환경에 민감한 물건이지요.”

모리타의 표정이 만족스러운 것을 보니 가산점을 딴 거 같다.

오성과 백경의 자본이 결합한 카세트 공장은 그야말로 당시로서는 최첨단이었다.

공테이프 공장으로는 세계 최초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작업장을 돌던 가운데, 불현듯 힘찬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월남의 하늘 아래 메아리치는 귀신 잡던 그 기백 총칼에 담고…….”

갑작스럽게 흘러나온 행진가에 어깨를 들썩거리는 직원들.

파견직원이 뭔가 궁금한 듯 물었다.

“아니, 이건 설마 군가인가요?”

“예. 맞습니다. 청룡부대 군가입니다. 구정 직후에 청룡부대 11중대가 짜빈동(Tra Binh Dong)에서 월맹군 2연대급 병력 246명의 적군을 사살하며 격퇴했거든요.”

“호오. 그런 일이. 엄청난 전과로군요.”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다룬 덕분에 파병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도 많이 올랐죠. 특히 청룡부대가 인기 폭발이더군요. 덕분에 카세트 판매량이 꽤 늘었습니다.”

표창식이 있던 날, 청룡부대 군가를 붐박스로 틀어 준 것이 발단이었다. 마크가 나온 것은 고작 1초 남짓한 시간이었고, 일종의 방송사고였지만 본의 아니게 홍보가 되자 불티나게 팔려 나갔던 것이다.

“하늘이 도와주는군요. 요새 등이 따땃하시겠습니다.”

“하하. 그러니 이왕이면 시류에 편승해야지 않겠습니까. 사실 카세트테이프는 파병군 장교들 사이에도 꽤 인기가 높습니다.”

“무슨 연유로 어학교육이 열풍이랍니까?”

“베트남 현지인과 의사소통이 되어야 확실히 피아를 구분해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 테니, 주월 미군에서도 사이공에 월남어 교육대를 설치해 운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회화 녹음이나 어학 녹음용으로 월 판매 수량 10만 개 넘게 나갑니다.”

“회화용 테이프가 그렇게 많이 팔린다고요? 다들 학구열이 대단하군요.”

“파병부대도 파병부대지만 군무원으로 뽑히려면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한 편이 유리하지 않습니까? 파월 한국군 예하부대에도 베트남어를 전문적으로 배우게 하는 추세였다.

“그럼 어학용 외에 다른 테이프들 역시 이쪽 라인에서 생산합니까?”

“아닙니다. 그건 별도로 생산합니다. 아무래도 노멀 테이프은 저음역대용으로 나온 제품이다 보니 음악 감상용으로는 좀 아쉽죠. 그래서 여기 말고 감마 산화철의 순도나 첨가제를 달리함으로써 그 성능을 개선한 물건도 있습니다.”

그 말에 구미가 당기는 듯, 모리타 사장이 눈을 빛냈다.

“호오, 첨가제라 어떤 걸 넣습니까?”

“크롬이나 코발트나 에이블린 등등 많지요. 일단 이것저것 넣어 보면서 자성체의 특성을 향상시키려 노력 중입니다. 테이프 자성체를 굳이 삼산화 제이철만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동감입니다. 확실히 사용처에 따라 제품을 다양화하고 고품질 수요가 늘어나고 있긴 하지요.”

“예. 현재 테이프의 음질은 음악 감상용으로 듣기엔 고음 특성이 떨어지니까요.”

“그래서 성과는 좀 있었습니까?”

“직접 들어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한번 이걸 써 보시겠습니까?”

펠립스에서 나온 최신형 라디오 데크 옆으로 간 강태준이 건넨 헤드폰을 건넸다.

부드럽게 흘러나온 음악은 다름 아닌 베토벤의 운명이었다.

중저음의 부드러움과 고음의 매끄러움이 함께 느껴지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다.

잠시 소리가 끊기자,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던 모리타 사장이 눈을 떴다.

“음질이 깨끗하고. 고음역 감도가 매우 높군요. 약간 치찰음 같은 게 있기는 하지만 릴테이프 정도 되는 거 같네요.”

“하하. 아무래도 시험용 데크로 재생한 거라서 잡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완성품은 아니니 더 좋아질 겁니다.”

“호오, 그렇다면야 환영이죠. 근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강태준이 테이프를 꺼내 보여 주었다. 필름을 보니 보통의 테이프는 갈색이었지만 약간 색깔이 달랐다. 호기심이 생긴 사장단이 테이프를 돌려 보며 유심히 살폈다.

“이건 일반적인 재질이 아니네요. 필름에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네. 메탈 테이프입니다. 일반적인 테이프는 산화철을 뿌리지만 이건 산화되지 않은 순철로 만들었지요. 산화철 테이프에 비해서 음질과 자속 밀도가 높아서 저속 녹음이 가능하고, 덕분에 훨씬 많은 정보를 기록할 수 있지요.”

“호오. 가는 금속 가루는 산화가 잘 되는 걸로 아는데, 산화 방지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 그건 저희 쪽에서 식품 사업 쪽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입니다 원래 통조림 녹 방지를 위한 기술로 개발된 메커니즘을 이쪽에 적용한 것인데,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리타 사장이 그제야 이해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요. 그런 발상을 하시다니. 다만 원가가 원래 테이프보다는 상당히 높아질 거 같은데, 아닙니까?”

“사실 제조원가만 고려하면 현재로서는 노멀 테이프의 10배 정도 됩니다. 다만 설비를 확장하면 1/5수준까지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오. 생각보다 제조 원가가 싸군요. 이 정도 음질이면 확실히 하이엔드급을 원하는 고객들한테 어필이 될 거 같습니다.”

“그럼 추가로 데크에 가해지는 부담은 없습니까? 아무래도 재질 차이가 있으니……. 성능 외적인 문제가 있을 거 같긴 한데요.”

“예리하십니다. 메탈 테이프는 성능이 월등하지만, 보자력이 강해서 음 소거와 재녹음 시에도 더 많은 전류량을 필요로 합니다.”

“그럼, 데크에 부하가 많이 걸리겠군요.”

“네, 메탈 바이어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회로와 더 견고한 헤드가 필요합니다. 물론 기존 바이어스로도 충분히 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마모성이나 음질 면에서 아쉽죠.”

잠시 고민하던 모리타 사장이 대안을 내놓았다.

“흐음. 별도의 제품군을 만들어야 할 거 같은데 단가를 낮추려면 데크에는 메탈 포지션 녹음 지원기능을 생략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예. 혹 하이엔드 급을 만든다면 카세트 데크에도 고음용과 저음용 재생 기능을 따로 넣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앞으로 EQ 문제가 음반사의 수익률과 명성을 좌지우지하게 될 테니까요. 사실 전 이걸 차량에 이식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카플레이라. 이걸 자동차에 이식한다는 말입니까?”

“레코드 같은 경우는 차량 주행 시 차체 진동으로 판이 파손될 가능성이 커 험한 지역에서는 들을 수 없지요. 그래서 주월 미군에 시범적으로 판매하는 걸 고려해 보고 있습니다.”

모리타가 듣기에도 나름 괜찮은 소리였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군납이라…… 테스트로 괜찮을까요?

“월남의 미국군 상주 인원만 20만 명이니 테스트용으로는 사실 넘치죠. 처음부터 차량용 오디오시스템에 넣어서 판매하는 것도 생각 중입니다. 예를 들면 AM FM 라디오 수신기, 카세트테이프 데크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서 말입니다.”

“아, 차량에 옵션을 넣지 말고 아예 데크 자체를 표준으로 하자는 뜻입니까?”

“예. 아예 세트로 삼아서 차량 장비의 일부로 간주해 파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리타가 듣기에도 구미가 당기는 생각이었다. 차량 제조사와 연계해 카세트 데크를 차량의 기본 옵션으로 넣어 버린다? 그야말로 돈이 굴러들어 오는 소리였던 것이다.

“괜찮은 생각이네요. 근데 그렇다면 물량 소화가 가능하겠습니까?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 카플레이까지 모두 만들려면 공정이 너무 혼잡해질 거 같습니다.”

“간단한 부품은 외주를 주고 저희는 조립만 맡으면 되지요. 퀄리티와 관련해서는 검수팀을 따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게다가 여기 말고 팔복동 쪽에 대략 오천 평 정도 공장 터에 2층짜리 건물 3개 동을 올릴 예정이거든요.”

“호오. 아주 적극적이시군요.”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주위를 돌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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