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34화 (234/361)

234화 잘 먹어야 잘 싸운다

전쟁의 포화를 겪은 세대들에게 있어 가난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베트남은 전장이라기보다 돈을 벌기 위한 일터라는 개념이 강했다.

사실 한국은 전쟁을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나라가 아닌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사는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1966년의 성장률은 두 자릿수에 돌입해 전반기의 두 배가 넘는 성장률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베트남 특수로 인하여 달러가 유입되기 시작하자 경기가 살아나면서 박정명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 마음…….”

그렇게 어디서나 ‘맹호는 간다’라는 노래는 방송은 물론 극장·마을 스피커에 연일 울려 퍼졌다. 이곳도 월남도 마찬가지.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난 사람들이 투덜거렸다.

“스피커를 부숴 버리든지 해야지. 시벌……. 아침마다 소음공해여 뭐요.”

“자자, 분노하지 말고 오늘 일당 채워야지.”

퀴논 주변의 막사에 일어난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도 곧바로 공사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제일 윗대가리라고 할 수 있는 강태준 역시 솔선수범을 위해 막사에서 먹고 자고 했기에 직원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물로 머리칼을 대충 정리한 강태준이 대충 세수만 마치고 나오자, 춘삼이가 트럭에서 대기를 타고 있었다.

“뭘 벌써 나왔나. 밤새 잠은 잤고?”

“그럭저럭요. 잠자리가 낯설어서 그런가, 빨리 깨네요.”

“그래도 제대로 자 놔야지. 자꾸 그래 버릇하면 낮에 힘들어.”

“괜찮습니다. 어렸을 때 이미 버릇이 되어서. 근데 사장님. 좀 문제가 있습니다.”

“뭔데?”

“제무시를 미래에서 빌려달라고 징징대지 뭡니까?”

“또?”

“아무래도 일본 트럭이 모양은 이뻐도 힘이 별로잖습니까. 우리 껄 보고는 많이 아쉬운가 봅니다.”

“무슨 소리를, 남에 떡이 커 보이는 거지.”

“그럼 어쩔까요?”

“좀 튕기다가 빌려줘. 우리도 한번 도움받을 때가 있을 테니.”

운전대에 올라타며 강태준이 문을 닫았다.

드릉 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제무시 트럭이 기세 좋게 구릉을 타고 올라갔다. 보병에게는 소총이 있지만 병참 부대한테는 2.5 톤 트럭이 바로 무기다.

제무시는 그야말로 실용성을 위해서 태어난 차였다. 앞바퀴 2개, 뒷바퀴 8개 등 바퀴가 모두 10개여서 웬만한 비탈길도 올라가는 데다 6기통으로 106마력에 엔진을 무식하게 때려 박은지라. 운전병 두 명 외에도 분대 병력의 각종 장비를 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가지 약점이라면 겨울에 시동 걸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라는 점이 약점이었지만 여기는 베트남이었기에 그 정도야 없는 약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래와 자갈을 잔뜩 실은 제무시 트럭을 뒤로하고, 먼저 도착한 작업자들이 둥글게 땅을 고르며 지반을 다지고 있었다.

“여기 작업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지?”

“한 10일요.”

“근데 작업 속도가 왜 이 모양이다냐. 제대로 지침 안 줬어?”

“그게, 의욕은 좋은데 좀 어설픕니다. 군대 갔다 온 놈들은 좀 나은데, 어린놈들은 영.”

강태준은 주위를 둘러보며 문제점을 파악했다. 한 눈으로 봐도 작업 진행 속도에 편차가 컸다. 현장 감독이 목청을 높였지만 돼지 멱따는 소리처럼 들릴 뿐이었다. 작업 시작 1시간 만에 헥헥 대는 사람들에 보다 못한 강태준이 삽을 뺏었다.

“이봐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우선 막대기 가지고 와 봐. 말뚝 박고, 줄 메고 팽팽히 당겨 아무래도 제대로 된 시범을 보여 주는 게 낫겠군. 어여. 숙련된 조교 나와!!”

옆에 있던 광필이가 앞으로 나서 시범을 보였다.

“잘 봐. 이 자식들아, 우선 삽질을 하더라도 똑바로 막대 줄에 맞춰서 간격을 90㎝ 띄고 이렇게 대략 사람 허리 정도까지 파는 거야.”

익숙한 모습으로 삽을 잡은 광필이가 삽질을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똑바로 절도 있게 삽질하는 모습에 구덩이 뒤로 작은 동산이 생기는 것이 순식간. 숙련된 조교의 현란한 시범에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오오오!”

“한 삽당 3킬로 정도 푸는 게 최고야. 눈대중으로 이 정도 보이나? 어깨는 이렇게 하고, 허리는 너무 굽히지 않고…….”

흥이 난 광필이는 세세하게 삽질의 요령에 대해서 설명했다. 한동안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녀석들에게 시범을 보이던 광필이가 다시 외쳤다.

“알아들었나. 따라 해 새끼들아. 삽질은. 과학이다!”

“삽질은 과학이다!!”

광필이의 삽질에 매료된 사람들이 앵무새처럼 복창했다.

삽질 하나로 단숨에 분위기를 휘어잡는 광필이를 보며 강태준이 감탄했다.

“역시 군대 체질이라니까.”

“그래요. 말뚝 박으셔야 하는데. 장군감입니다요.”

“너 그 이야기는 앞에서 하지 마라.”

그러자 춘삼이가 웃으며 대꾸했다.

“암요. 머리 쥐어박힐 일 있습니까. 근데 군대 전술 기지라니 솔직히 이런 걸 왜 짓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점방어 전략이지 일단 참호랑 기관총이 결합되는 순간 보병으로 뚫기는 어렵지 않겠나.”

“그래도 방어자 입장에서 보면 사방에서 두들겨 맞게 생겼는데 그냥 버티라는 말 아닙니까. 이건 솔직히 지원군이 오지 않으면 딱히 도망갈 곳도 없지 않습니까.”

춘삼이의 대답은 나름 예리한 면이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대충 목적 정도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에 동의하듯 최만수 중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도주로가 없이 옥쇄를 각오한 시설이라니 좀 이상한데요. 게다가. 아군 포병과 보급을 전제로 한 편제잖습니까. 거기에 전략촌에 전술기지 간의 거리는 최소 10km를 둔다니. 이건 너무 소극적이지 않습니까.”

“그래 자네가 생각하는 좋은 전쟁이 뭔데?”

“속전속결로 끝내는 거죠. 지금처럼 압도적인 화력이 있을 때라면 말입니다.”

듣기에 지극히 합리적인 태도였지만 강태준은 되려 웃었다.

“이봐. 자넨 이 전쟁의 목표를 잘못 파악하고 있군. 이 전쟁은 필연적으로 오래 끌 수밖에 없어. 베트콩을 많이 죽이면 전쟁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네? 그게 아닙니까?”

“지금 월남에서는 베트콩과 민간인 구분이 없거든. 베트콩들을 상대하려면 기본적으로 민간인과 월맹군을 분리해야 된다는 소리지. 한국전쟁 때 빨치산들이 왜 그렇게 오래 버텼는지 기억 안 나나? 우리 상대는 정규군이 아니라 게릴라들이란 말이야. 게다가 무엇보다 전쟁이 빨리 끝나게 되면 한국이 돈을 못 벌지 않나?”

그때 어디선가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간만에 옳은 말을 들었군. 장교들이 자네의 반만 머리가 돌아가도 좋을 텐데 말이야.”

“아. 대령님!”

강태준은 곧바로 경례를 올렸다. 그 앞에 나타난 것은 맹호부대 사령관인 채 대령.

월남에 온 지 꽤 되었을 텐데도, 짧게 깎은 머리에 군복의 각이 제대로 진 것이 성격이 평소의 꼼꼼한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빈틈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채 대령이 강태준을 보며 농을 했다.

“듣자 하니 자네는 군 면제라 들었는데, 꽤 각이 살아 있는데? 이거 식견이 대단하구먼.”

“그저 군납을 하던 중에 몇 줄 주워들은 게 있을 따름입니다.”

“그래도 정확히 짚었네. 한국군은 미군에 비해 장비 수준과 기동력이 낮아서 미국처럼 대대급 운용을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거든. 무엇보다 우리는 정규전보다 후방과 중부에서 민사지원과 치안유지를 주목적이니 말이야.”

“그렇군요.”

채 대령이 춘삼이를 보며 강조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동맹의 피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라는 대의를 위해 온 것이지. 적군을 말살하려고 온 것이 아니야. 이건 남의 나라 전쟁일세. 이걸 유념해야 하네.”

“하긴 그렇군요. 베트콩을 죽이러 온 게 아니라 월남을 수호하러 온 것이니까요.”

“뭐. 명분상으로라도 그래야 한다는 말일세. 혹 어그로를 끌어서 저쪽에 원한만 적립하는 꼴이 된다면 그야말로 남 좋은 일만 하지 않겠나? 무엇보다 게릴라들이 가장 주요 목표로 해야 할 것은 등 뒤의 적이네. 세력 확장을 차단하는 것이지 혹여나 전황이 불리해지거나 수시로 뒤바뀔 때를 대비해야지.”

“미군이 나서는데 전황이 설마 불리해지겠습니까?”

“모르지. 전력상 우위가 있다고 반드시 이기는 게 아니야 여기는 개활지가 아니라 정글일세. 게다가 상대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외부인일 뿐이지.”

처음부터 정치·외교적으로 어려운 전쟁이 될 거라는 판단하에 전략적으로 행동한 것이지만 굳이 채 대령은 속내를 꺼내지 않았다.

“하하. 어려운 말은 이 정도로 하지, 아무튼 강 사장 덕분에 장병들도 사기가 높으니까. 참으로 고맙구먼.”

“혹 불편하신 건 없습니까.”

“아무래도 식량이지. 군복이나 탄약, 같은 보급품은 미군이 보내 주지만 한국인이 스테이크만 썰 수야 없지 않나. 벌써부터 제대로 된 쌀과 김치가 먹고 싶다 아우성이라네.”

“이미 쌀은 보급되고 있지 않습니까?”

“베트남 쌀 말인가. 푸슬푸슬한 안남미라서 싫다는 사람들이 많아. 쌀은 모름지기 찰기가 있는 자포니카종이어야 한다나. 그건 몰라도 장류 정도는 꼭 필요할 것 같아.”

일각에서는 느끼함을 참다못해 베트남 고추를 따다 먹는 경우까지 있다고 했다. C레이션만 주구장창 먹다 보니 완전히 질려 버렸던 것이다.

“쌀은 어떻게든 수급 가능합니다만. 장류는 좀…… 일단 미국법상 미국의 잉여 농산물을 받는 국가에선 식량을 구매할 수 없어서 번거롭지만 물물교환 형식으로 타결할 수밖에 없어서요.”

“그건 이해하지 우선 장류와 김치라도 좀 마련해 주시게나. 이렇게 시달려서야 사람이 살겠는가?”

“알겠습니다.”

그렇게 요구사항을 전달받은 강태준은 돌아오기 무섭게 오재갑을 불러서 명했다.

“벤 캠프 쪽에 가서 통조림 기술 이전에 대해 문의해 보게. 아니 문의보다는 시찰단을 보내 보는 것이 낫겠네.”

“통조림 제작 기술이라니요?”

“아마. 조만간 미국군 전투식량에 대한 원성이 커지면 한국 음식으로 구성된 C레이션을 보급하지 않고 못 배길걸? 우리도 그쪽에 발맞춰서 공장부터 설립해 놔야지. 광필이는 한국 쪽에 가서 통조림 공장이 있는지 알아봐.”

그 말에 광필이가 턱도 없다는 듯이 툴툴대었다.

“에이, 형님 그건 오버죠. 한국형 C레이션을 새로 보급한다 해도 우들까지 기회가 오겠습니까? 미제 놈들이 직접 만들려고 할 텐데?”

“그건 니 생각이고, 이봐 지금 전투식량을 어디서 만들지?”

“하와이에서요.”

“그럼 하와이의 전투식량은 누가 만드나?”

“거, 양키들이 만드는 거 아닙니까?”

은근히 자신 없는 대답에 강태준이 머리를 딱 때렸다.

“아, 아프게. 또 왜 때립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긴. 양키가 아니라 일본인들이 만들잖냐. 그쪽에 하청을 줄 테니까. 김치도 못 먹어 본 양키가 한국 음식을 보급할 수 있겠나?”

“그게 많이 중요합니까?”

오재갑이 당연하지 않냐는 투로 대답했다.

“아니 형님, 당연히 중요하죠. 하와이 일본인들이 만든 김치는 한국인 식성에 맞는 김치맛도 아닐뿐더러, 설사 장병들에게 배급되어도 기분이 더럽지 않겠습니까?”

“아, 생각해 보니 그건 좀 거시기하긴 하네. 목숨 걸고 파병된 군인들 음식 때문에 병사들 사기도 저하되고 일본 놈들 돈 벌어 주는 꼴은 보기 싫고 기분이 찜찜하겠어.

“그렇지. 우리나라 정서상 장병들이 그걸 알면 부글부글하지 않겠나? 그냥 안 먹는 건 양반이고 밥상 뒤집기를 시전할지도 모르지.”

당시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한국에서는 반일 감정이 극심했다.

더욱이 이번에 월남 출병과 관련해 시위를 방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느 때보다 반일 감정은 극에 달해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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