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파병 부대
다른 한편, 발해 해운 사장실
“후후후후후~~~”
며칠째 미친놈처럼 웃고 웃기를 반복하는 형에 조울증으로 의심될 정도
어이없는 텐션에 이억기가 물었다.
“사업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식에 호재가 생긴 것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 기분 좋으십니까?”
“백경 강태준에게 엿 먹일 거 생각하니 기분이 째지는군. 그래.”
“강태준이가 엿을 먹어요? 베트남에서 미군이랑 짝짜꿍해서 엄청난 규모의 계약을 따낸 걸로 아는데…….”
“그렇긴 했지만 지 뜻대로 안 될걸. 예인선 없이 수송작업에 들어갈 수 있나?”
“네. 예인선을 잡아 두다니 그게 뭔 소립니까?”
“예전 미쓰시오에서 중고선 도입할 때 좌파 빨갱이 놈들하고 엮였었거든. 그놈들 통해서 사세보 쪽 베평련 회원들에게 돈 좀 뿌렸지 우익들 부추겨서 민족감 정도 자극해 주고 말이야. 덕분에 사세보 쪽에서 출항 길이 막혀 버렸지 뭐야?”
“에, 그게 그 정도로 될 일입니까?”
“그 정도까지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세상일이 웃기지 않나. 군중이란 조미료만 조금 쳐 주면 불붙은 돼지처럼 날뛴다는 거지! 크헤헤헤헤!”
1960년에 일어난 안보투쟁 때 일본과 미국 간의 군사협정에 항의했던 시민단체들이 커진 것이 베평련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시민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좌파와 정파들과 관계가 강해지고, 소련 KGB가 접근해와 그 공작금이 유입되면서 점차 좌익색이 강해진 것이다.
“근데 쓸데없이 돈 쓴 건 아니겠습니까?”
“100일 안에 수송을 시작 못 하면 하루에 1.5만 달러씩 위약금을 매긴다고 했으니 죽을 맛이겠지.”
백경에서 한두 달만 늦어져도 수십만 달러 박살 나고, 신용도는 쑥 내려갈 테니, 십 년 묵은 체증도 쑥 내려가겠지. 그러나 영 형이 미덥잖은 이억기는 작심한 듯 쓴소리를 했다.
“형님 남 일에 신경 쓰기보다 경영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지난 몇 달간 세무 조사 때문에 자금 사정도 그렇고 회사 분위기가 말이 아니에요. 이대로는 대출 제한에 고사할지도 모릅니다.”
“걱정 마라. 이 형님이 어떤 사람이냐. 이번 북태평양 진출만 성공하면 노다지다. 쓰가루 해협의 혼마구로 같이 큰 큼직한 연어들이 개떼처럼 몰려 있다니까?”
북위 45도의 북해도 근해와 북위 40도 이남의 태평양에서 연어 조업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이 규모가 컸다. 100톤급 10척으로 된 선단으로 800톤급 냉동운반선과 저인망어선까지 끼어 있었다.
“그거 상업성 있는 겁니까?”
“양재문이가 태동 내부 임원회의 때 발표한 내용이니 확실할 거다. 설마 지들이 시험조사차 쓴 내용인데 거짓말을 쓰겠나? 연어 조업만 성공하면 이 정도 문제야 그냥 해결할 수 있어.”
이억수는 자신했다. 연어는 산란기가 9~11월 사이니 회유성 어종이다. 이번에 시험조업까지 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으니 타이밍만 잘 맞추면 충분히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잘하면 천진이랑도 한편 들어먹을 수도 있고.’
천진도 지금에야 강태준 눈치를 본다며 답을 보류하는 중이지만 제 위대함을 깨닫는다면 생각을 고쳐먹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그의 망상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비서 하나가 들어온 것이다. 심호흡을 한 여비서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사장님. 천진에서 협력을 거절했습니다.”
“뭐? 왜! 왜 마음이 바뀐 건데?”
“그게 백경 측 바지선들이 퀴농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발해와 협력하면 운송하청을 안 주겠다 엄포를 놨다네요. 자기들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사정상 양해를 부탁한다고.”
“그게 뭔 개소리야? 대체 어떻게 된 건데?”
이억수가 자초지종을 알아보라 윽박질렀다. 부리나케 다시 전보를 넣은 비서가 서류를 복사해서 들고 왔다.
“그게 알아봤는데 강태준이가 직접 바지선 선단을 끌고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입항 허가가 나서 바로 하역작업을 시작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홍콩에서 거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중간에 아무런 하자도 없이 그냥 도착했다는 말이야?”
“아, 태풍을 만나기는 했답니다. 거의 죽을 뻔했다고.”
이억수의 눈이 커졌다. 간절해진 이억수가 중얼거렸다.
“태풍을 만났으면, 손실은?”
“일단 인명 피해는 하나도 없었답니다.”
“그럼 바지선은, 대부분 난파되었나?”
“그게, 억세게 운이 좋았다네요. 32척 중 한 대가 반파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한 열흘만 수리하면 바로 투입할 수 있겠다고. 물품 손상도 거의 없었답니다.”
“바다를 넘었다고! 허허…… 대양을!! 바지선으로? 그게 가능한 일인가?”
강태준이가 아무리 선장으로서 유능하다지만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어떻게 한 척의 손실도 없이 퀴농항에 무사히 입항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건 사기야! 사기라고!!”
지랄병이 도졌다는 표정이었다.
분노를 피해 슬그머니 도주하는 이억기.
분노에 벌컥! 하는 소리와 함께 다른 비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또 뭐야?”
“미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미국 해안경비대 측에서 압력이 들어왔다고 연어잡이를 그만두고 당장 철수하라고…….”
“뭬야!”
* * *
발해 원양이 뒤집어진 그때.
퀴농항의 강태준은 춘삼이로부터 정황 보고를 전달받고 있었다.
“미국 상원에서 결의서를 발표했답니다. 북태평양에서 연어 조업을 계속한다면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를 삭감하겠다는 통첩을 해 왔다는군요.”
“미국에서 산란한 연어니까 공해라도 자원 보존 명분상 미국에 배타적 권리가 있다라. 역시 아메리카다운 발상이군.”
말도 안 되는 억지에 광필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게 무슨 외교입니까. 완전히 깡패짓이지. 허허.”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인 게 외교의 묘미 아니겠나. 이러니저러니 쓸데없이 포장하지만 국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뻔뻔해질 수야 있는 거 아니겠나?”
“그럼 한국이 어쩔까요?”
“연어 문제로 미국과 척을 지기에는 좀 수지가 맞지 않지. 일단 베트남전으로 받아 낸 게 많으니 이번 어업조치 정도는 체면을 세워 줘야 하지 않겠나?”
연어 문제는 어민 표와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미국의 정치인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 외에 차관이니 환율이니 해서 일방적으로 뜯어 낸 돈이 많은 만큼, 박통으로서도 그냥 묻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다……
“그럼 우리 원양어업은 북태평양에서 이렇게 빈손으로 철수하게 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겠는데요?”
“아마 북태평양 어장에서 철수하면 은행에서 대출을 회수하라 압박이 들어오겠지. 사채라도 빌리지 않으면 아마 갚기는 힘들걸? 뭐 지금까지 많이 잡아 봤자 1,000톤 정도나 되었을까. 기름값이라도 챙기면 다행이겠지.”
“이참에 확 망해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지 같은 자식. 뒤에서 수작질하고는.”
“그래도 그놈이 보통 놈인가. 발해가 아무리 뚜드려 맞긴 해도 여기저기 벌여 놓은 사업이 있어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야.”
그래도 카운터로 뚜까 패고 나니 좀 속이 후련했다.
사실 이번 일은 강태준이 양재문을 통해 벤캠프 사 회장에게 언질을 넣은 것이 주효했다. 국익에 민감한 미국이 이렇게 신속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럼 북태평양 쪽은 아주 진출이 막힌 건가요?”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아. 영해에서 거리 있는 곳에서는 조업이 잘 되니까. 그보다 컨테이너선 문제는 어떻게 되었나?”
“일단은 장기로 선박 임차하고 나머진 예정대로 발주 좀 빨리 진행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 서두르지, 바지선으로 운반할 양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보다 기술자들은 도착했나? 재갑이가 데려오기로 했는데.”
“이게 곧 도착할 겁니다.”
사세보의 봉쇄가 풀리면서 주문했던 예인선이 도착하기로 한 날. 강태준은 퀴농항 앞으로까지 나가 오재갑을 기다렸다. 저 멀리서 파병 군인을 실은 수송선이 미끄러지듯이 도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수송선 뒤로 예인선이 한 대가 아니었다.
무려 5대의 예인선 뒤로 바지선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각종 건설 장비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소박한 인력을 기대했던 강태준은 눈을 의심했다.
“아니 왜 이렇게들 많아? 숫자를 착각한 게 아닌가?”
“그러게 말입니다. 저거 엄청 많은데요.”
예상의 세 배는 넘을 법한 엄청난 규모에 강태준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건 많아도 너무 많지 않은가. 그러자 배에서 내린 오재갑이 보였다.
“재갑이 자네, 이게 뭔 일이고, 저기 군인들은 뭐고?”
“아. 이번에 한국군에서 파병한 인력입니다. 일부는 공병군인과 전투지역에 배치될 군인들이고요.”
“뭐라고? 저게 많은 인력 모두가 다 지원자라고? 나눠서 보낸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사세보 사태가 커지면서 미국이 중재에 나섰거든요. 덕분에 일본에서 들어온 청구권 자금이 더 빨리 들어와서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예인선 문제로 수송에 차질을 빚을 뻔한 것이 알려지자, 미국에서는 일본에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동맹국의 파병 문제에, CIA가 개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반전시위에 소련 자금이 들어갔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일본 놈들이 핵을 처맞더니, 정신이 돌아 버렸나 보다
-은혜도 모르는 원숭이들을 도륙해라!
-좋은 잽스는 죽은 잽스 뿐!
-일본을 석기시대로!
일본의 미온적인 태도를 눈꼴사납게 여겼던 미국에서는 건수를 잡자 강경태세로 나갔다. 르메이의 명언이 회자되며 비난 여론이 득세하자, 당황한 일본에서는 총리의 이름으로 사죄 성명을 발표하며 한국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그래서 저게 다 청구권 자금으로 퉁 치기로 하고 준 거라는 거야?”
“뭐 그렇지요.”
“기술자들은 당장 돈 안 줘도 좋으니 그냥 배를 타게만 해 달라고 한 사람들도 절반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간절해서 거절하기 힘들더군요.”
사람들의 눈이 기대감으로 가득한 것이 초롱초롱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도 이게 얼마나 큰 기회인지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월급 400달러, 별도의 숙식비 200달러 포함해 총 600달러의 월급 지불.
강태준은 몰랐지만 1966년 오성일보에 실린 기술자 광고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이 정도의 월급은 당시 일반 노동자들이 받던 월급의 1.5배.
당시 선망받는 직업이라는 은행원의 초급이 3만원 정도였으니 실로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꺼림칙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전쟁터인데, 월남이라면 총 폭탄이 날아다니는 곳 아닌가?”
“그럼 어때 싸움은 미국이 할 텐데. 파월 기술자의 월급이 장관 월급보다도 더 많다더군. 월남에서 3년만 일하면 한밑천은 거뜬히 마련하고도 남지.”
“우리같이 무지렁이들이 갈 수 있겠나?”
“왜 못 가나, 내 아는 양놈에 물어보니 기본적인 영어 회화에 타자기만 칠 줄 알아도 전문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더군.”
별다른 기술이나 아무 능력도 없지만 무작정 떼를 써서 배를 타고 온 사람도 다수 있었다. 일단 도착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취직할 방법이 있지 않으란 생각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