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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231화 (231/361)

231화 쇼 브라더스

약간 솔깃하긴 했지만 조호중의 표정은 곧바로 정상으로 돌아왔다.

현실적으로 수송계약을 해본 입장에서 선 계약자가 얼마나 유리한지는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조호중이 탐탁잖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뭐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기라도 하겠다 이건가?”

“뭔 말을 그렇게 하시나? 세상에는 만약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 하역 작업이 원하는 대로 잘 안 풀린다면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갈 수도 있지 않냐는 말이요.”

“뭐 이론적으로야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인데 그게 가능은 하겠습니까?”

상대가 실수한다면야 새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솔깃한 말이지만 도저히 그런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이억수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여유 있게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내가 이쪽에서 밥 벌어먹으면서 배운 게 뭔지 아시오?”

“뭡니까?”

“사업은 절반이 운이라는 거지. 아무리 뛰어난 능력자라도 시운이 맞지 않으면 말아먹는 게 세상이니까.”

“운도 실력 아니겠소?”

“그래. 하지만 사업을 흥하게는 못 해도 망하게 할 방법은 많다 이거지.”

의기양양한 듯 득의의 미소를 짓는 이억수에 아리송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 *

같은 시각, 홍콩.

홍콩 빅토리아 하버를 넘나드는 페리 위에 선 강태준은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홍콩섬에서 구룡반도를 운행하는 페리 위에서 한참 물결을 보던 강태준은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강태준이 재채기를 했다.

“엣취. 또 어떤 인간이 내 이야기를 하나?”

“에구, 감기 걸렸습니까?”

강태준에게 외투를 씌워 주었다. 옷깃을 여민 강태준이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그런가보이.”

“일교차 크니까 옷이라도 잘 입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다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까지 또 왜 날아와요.”

“임마. 직접 확인해 봐야지. 또 통수 맞고 걱정하는 건 사양이다. 그러니까 원래 교차 검증이라는 걸 해야 한다고. 그보다 왜케 춥나. 에취!”

베트남같이 따듯한 동네에 있다 보니 면역력이 약해졌나. 강태준이 으슬으슬한지 손수건을 들어 코를 문질렀다. 무리한 일정에도 굳이 홍콩으로 온 것은 일단 주문을 맡긴 바지선 제작이 제대로 제작되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그 말에 복만이가 쯧쯧거렸다.

“걱정도 팔잡니다. 형님 여기가 어딥니까. 홍콩 아입니까. 바지선 그까이 꺼도 제대로 못 만들면 나가 죽어야죠.”

“그러게 말입니다. 감시까지 안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팽 형님이 있는데. 공구리 쳐서 인천 앞바다에 던져지고 싶지 않으면 말입니다.”

광필이가 농담처럼 던진 말에 춘삼이도 쓰게 웃었다.

“미안하네만 요새는 그렇게 투박하게 처리 안 하네.”

싱긋 웃으며 나타난 팽호상이 홀연 미소를 지었다. 떡대 좋은 어깨들을 호위로 두던 옛날과 달리 날렵하고 세련된 인상이 된 것이 관리를 받아선지 외모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출항할 때 비용이 더 들거든. 그건 옛날 방식이지.”

“여기 타고 계셨습니까?”

“파트너 동선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놀래켜 줄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이야, 완전 변신하셨는데요. 이거 누구신지 몰라보겠습니다.”

“하하. 우리 강 사장 만난다고 힘 좀 줬지. 많이 다른가?

“요새 외모 관리 좀 받으시나 봐요. 양복 태가 끝내줍니다.”

강태준의 칭찬에 함께 온 복만이도 엄지를 추켜세웠다. 아부가 싫지 않은지 입술을 비틀었다.

“자자. 들어오시게. 저쪽 큰 거리에서 보이는 음식점이 내가 운영하는 음식점이야.”

페리에서 내린 구룡반점이라고 이름 붙인 곳이 나타났다. 대륙인이 좋아하는 붉은 빛깔로 치장되어 있었고 주차장도 빵빵하다.

지주 간판을 추가로 세운 곳에는 왕희지가 일필휘지로 갈긴 듯한 간판이 그려져 있었다.

“와 진짜 넓군요.”

휘황찬란한 음식점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천장에 풍등이 보였다. 웅장하지만 격식을 차린 공간에 짜이오가 나올 느낌이랄까.

창문 뒤로 구룡반도에서 홍콩섬을 향해 흐르는 물결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미리 예약된 룸으로 들어갔다.

“근사하군요. 이건 사장님 겁니까?”

“뭐. 그렇다네.”

“거제에서 사업 정리하시고 나가신다길래 의아했는데 이건 신의 한 수네요. 영화사업이 엄청나게 잘되나 봅니다.”

“그러게 나도 이렇게 잘 풀릴 줄이야 몰랐지. 난 그냥 솔직히 의리나 지킬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지분을 주지 뭔가. 이번에 대취협도 그렇고, 쇼 브라더스 쪽이 은근 영화를 잘 찍더라고,”

60년대부터 아시아에서는 홍콩영화가 급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중 두 축은 화교 자본인 소씨형제유한공사와 국제전영무업유한공사(전무, 國際電影懋業有限公司, Motion Pictures & General Investment, LTD)였다.

이 두 회사는 이 두 영화사는 홍콩영화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피 튀기는 혈투를 마다하지 않았다.

쇼 브라더스의 란란쇼 사장은 외인부대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중 한 축을 담당한 것이 리햔상으로 <강산미인>(1959)을 연출한 리한샹 감독이 연출한 양산백과 축영대였다. 경극 형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일종의 뮤지컬로 여배우인 능파가 남자인 양산백 역을 맡았는데 이게 대히트를 치며 홍콩영화의 사극 붐을 불러왔다.

대만에서도 상영되며 무려 70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이런 양강 체계가 끝없이 지속될 줄 알았건만 당시로써는 팽팽했던 이 경쟁은 전무의 회장이었던 육운도가 1964년 대만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완전히 쇼 브라더스 넘어가 버렸다. 덕분에 팽호상은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학생왕자(學生王子)라던지. 같은 영화가 흥행했지만 앞으로는 무술 영화가 대세가 될 거거든. 지금 제작 중인 영화도 그렇다네. 할리우드 쪽과는 궤가 다른 진짜 액션이 주가 되겠지.”

“액션 영화라 눈요기 좀 되겠다는데요.”

“배우들은 적응하나요?”

“액션을 잘하는 사람들을 무작정 끌어모으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솔직히 괜찮은 사람이 많지 않으니 혹 추천해 줄 사람 있으면 소개나 해 주시게. 지금 감독이고 배우고 엄청 기근이야. ”

순간 강태준은 노란색 체육복을 떠올렸다. 쿵푸 스타로 유명한 이소룡이었다.

유명했던 그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를 앞세워 영화에 진출한다면 혹시나 숟가락을 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소란이 일었다.

“뭔가?”

“시위대입니다.”

“아무래도 큰일이 일어난 거 같은데요.”

-페리 요금을 정상화하라! 정상화하라!

소란이 커지면서 목소리가 높아지자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던 팽호상이 이마를 짚었다.

“골치 아프구만……. 저거.”

“저 사람들 누굽니까?”

“구룡반도 주민들일세. 요사이 페리 요금이 인상되어서 불만이 많거든. 근데 하필 여기서 시위를 하지 뭔가.”

당시까지만 해도 홍콩 지하철도 없고 크로스하버 터널도 없어서 홍콩섬-구룡반도 간 연락을 스타페리가 독점하던 시절이었다.

“식사는 다했으니 아무래도 이쯤에서 헤어져야겠군. 보기 싫은 장면이 벌어질 수 있으니. 양해해 주게.”

강태준이 음식점을 떠나기 무섭게 총독부에서 나온 병력이 도착하더니 시위대를 때려잡기 시작했다. 평화롭게 시위를 하던 시위대를 두들겨 패는 모습은 야만인이나 다름없었다.

‘경제적으로는 부를 누리는 선진국이지만 빈부격차는 여전하군.’

자본의 양면성이란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는 철저하게 남의 나라다.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강태준 일행이 호텔 방으로 들어오자 긴급 타전이 들어와 있었다.

쪽지를 확인한 춘삼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갑자기 왜 그래?”

“오 상무님께 연락이 왔는데, 일본에서 예인선 발주가 많이 늦어질 거 같다는데요. 배가 규슈에 발목이 잡혔다는군요.”

“또 뭔 소리야.”

“그게 전공투들이 들고 일어나서 항구를 장악했다고 합니다.”

전공투, 일본의 60년대 초를 장식한 것은 안보 반대 투쟁과 베트남 반전운동이다.

특히 학생운동이 운동권과 결합해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번졌는데 유명한 것은 도쿄대학과 니혼대학의 전공투였다.

이들은 정부를 상대로 폭력까지 불사할 정도의 과격성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것이다.

그 말에 광필이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근데 왜 그 자식들이 튀어나온 건데?”

“전공투 내부에서도 파벌이 여러 개 거든요. 몇 개 단체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면 관심을 끌어야 하지 않습니까? 평화헌법에 반대되는 일이라면서 베평련 쪽과 연계해 시위를 벌였다네요. 처음에는 1,500명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시위대가 몰려들면서 갑자기 엄청나게 커졌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학생과 시민을 중심으로 한 반전운동이 득세하여 공산당과 사회당 등 기성 좌익이 맥을 추지 못하는 와중에 베트남 전이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는 반감이 커졌다. 특히 미국이 일본의 미군기지를 경유하여 무기와 보급품을 전쟁터로 수송하는 것에 대해 평화헌법에 위반된다며 소요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강태준이 침착하게 물었다

“그래서 상황이 현재 어느 정돈가?”

“신주쿠역 주변 데모에 참가한 대학생만 벌써 2~3만 명 수준이랍니다. 경찰에서도 다수의 기동대가 동원되어서 진압하다가 사상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항구에서 바리케이드까지 치고 대치 중이랍니다.”

“데모대가 벌써 항구까지 점거했다고?”

“예. 그뿐만이 아닙니다. 거기 우익 세력까지 끼어들어서.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바람에, 쇠파이프가 날아다니고 화염병도 던지고 난리도 아니라는군요. 지금 완전히 난장판인 거 같습니다.”

덕분에 항구 작업도 개점휴업 상태라고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니 예인선을 고쳐야 할 기술자들도 몸을 사리고 있다고. 사정을 파악한 광필이가 한탄하듯 읊조렸다.

“미친 것들.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아주 말세일세.”

“이거 싸한데요. 폭도 놈들한테 항구까지 점거당했을 정도면 사태가 추가로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겠어요.”

“아니 그래도 일본은 치안이 괜찮은 곳 곧 사태를 수습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춘삼이의 기대와 달리 강태준은 부정적이었다.

“그렇다면야 좋겠지만, 일본 놈들 입장에선 사실 시위가 발생하는 것 자체가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일지도 몰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항구랑 역이 봉쇄되니 손해 아니겠습니까?”

“그건 경제관점에서만 보는 이야기지. 대국적으로 볼 때 그놈들한테 이건 오히려 기회야. 그놈들은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니 미국의 전진기지 역할에서 벗어나서 자주성을 되찾고 싶어 한다고. 이제 경제적으로 자신감도 생겼으니 예전에 잃어버린 본전이 생각나겠지.”

“아니, 국익을 위해 반전시위를 이용한다는 겁니까?

“예를 들어 보지. 일본 입장에서 흠씬 두들겨 맞은 뒤에 앰뷸런스에 실려 가서 링거를 맞을 때야 모르겠지만, 이제 체급도 올렸고 나름 동양 챔피언 벨트도 딴 입장 아닌가. 아마, 베트남전을 이용해 오키나와 반환 문제도 영토에서 실리를 취하고 싶은 게 본심이지. 그렇다고 전쟁 특수에서 발을 빼기도 싫고, 북베트남과도 국교 정상화도 하고 싶다는 것이 일본 내각의 속셈 아니겠나?”

강태준의 말에 숙연해진 사람들.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자 광필이가 큰 소리로 투덜거렸다.

“거 양심 없는 자식들이구만!”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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