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수의계약 타결
갑작스런 폭발에 우왕좌왕하는 베트콩들이었다.
“미군이다 미군이야!”
“미친! 도망쳐!”
다시 날아간 포탄에 처절한 비명이 울리자, 경악에 빠진 베트콩들이 사방으로 총탄을 난사했다.
투타타타타!!~
고개를 숙인 광필이가 투덜대며 손을 쏘았다.
“반응 한번 빠르군.”
“아니. 무슨! 이게 무슨 짓입니까? 민간인을 상대로 다짜고짜 공격이라니.”
당황한 연락장교의 표정이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예고도 없이 무기를 쏘다니.
그 말을 들은 강태준이 태연하게 반문했다.
“민간인? 무기 든 인간이 민간인입니까?”
“그건…….”
“인권은 나중에 따지시고. 원래 이럴 각오로 온 겁니다. 설마 적진에 침투하는데 얌전히 무기만 회수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습니까?”
강태준이 철컥 소총을 장전하고 앞을 향해 한 발을 갈겼다. 이쪽을 향해 총을 겨누던 베트콩 한 놈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전투에 돌입한 부대원들이 그대로 밀고 들어가자 사방에서 총소리가 터졌다. 강태준이 소리쳤다.
“사이렌 울리고 제압해. 선빵 필승이다!”
* * *
며칠 후, 퀴농항.
“성공했겠습니까?”
“확률은 반반이지.”
돌아오지 않는 강태준 일행에 미군은 초조했다.
강태준 일행이 닥또현으로 들어간 후, 며칠간 연락이 되고 있지 않았다.
이쯤 되면 작전 실패인가. 담배를 태운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이 꽁초를 지르밟았다.
입안이 썼다.
“정찰대 소식은 없나?”
“예. 죄송합니다. 이 정도면…… 이제 더 기다리는 건 안 될 것 같습니다.”
“거 참…… 쓸데없이 아까운 인재를 잃었군.”
수심이 가득해진 얼굴로 기다리고 있는 한국인들. 춘삼이는 나이가 어린 탓에 군영에 남았다. 윌리엄 대령 또한 강태준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혔다. 어차피 보급품도 가져오지 못할 것 같았으면 사지로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웨스트모어랜드 사령관이 먼발치를 지켜보는 사이, 기회라 여긴 계약관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아무래도 너무 지체되는 걸 보니 이젠 포기해야 할 듯합니다. 사령관님. 천진에서 물자 운송 용역계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백경에서 온 것보다 훨씬 좋은 조건입니다. 그쪽도 전문 수송업체고 장비와 시설 외 덩치나 실적도 훨씬 우세합니다.”
“이봐, 아직 확실한 게 아닐세. 복귀 기간도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초치는 건가.”
윌리엄의 지적에도 계약관이 얄밉게 혓바닥을 놀렸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절반 이상은 실패를 각오한 것으로…….”
“이 사람이 정말! 생사 여부를 확인한 뒤에 해도 될 거 아닌가. 자꾸 애새끼처럼 보채기는!”
버럭 성을 내려는 순간, 저 멀리서 먼지구름 비슷한 게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저, 저. 뭔가 보입니다.”
“뭔가? 갑자기, 적군인가.”
“보급품 회수용역팀이 귀환 중인 거 같습니다.”
망원경으로 미군 지프 모양을 확인한 미군이 헬기를 띄웠다. 저 멀리서 군용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눈을 크게 치켜떴다.
어림잡아도 15대는 넘는 듯한 규모.
반 이상 신형으로 보이는 차량에는 무기가 한가득 실려 있었다.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강 사장!”
그걸 본 윌리엄 대령이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반가운지 손을 흔드는 강태준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검은 가루가 묻은 대원들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누구보다 눈은 생기 넘쳐 보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살아 있었군. 근데 이게 어떻게 된 건가?”
“보급품을 찾으러 가 보니 이미 베트콩들이 지키고 있더군요. 급습해서 보급품을 탈취하긴 했는데 창고 안에 별도 물량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것도 마저 탈취해 왔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월맹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타 있었다. 비무장 상태에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이 내리는 모습에 사람들이 부축해 주고 있었다.
“그럼 저 뒤의 사람들은?”
“아. 저희가 막 구출한 사람들입니다. 월남 쪽 사람들 같은데, 아무래도 미군 현지 협력자들이었던 거 같네요. 모아 두었다 처형하려던 모양이었나 봅니다.“
강태준이 말한 전개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닥또현이 도착하는 즉시, 베트콩과 교전해서 무기 탈취, 이후 창고 점거 후 그 여세를 몰아서 적진을 급습. 덕분에 닥또현(Huyện Đắk Tô)베트콩 민병 부대가 와해되어 버렸으니 바리바리 노획물까지 가져온 것이다. 만화 같은 정황 보고에 어이가 없어진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이 되물었다.
“이게 다 사실인가? 그래서 거기서 한 발 더 가서 거점까지 털고 왔다고?”
“뭐 처음부터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총살당하기 전의 포로들이 있다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의외로 미군이 왔다고 하니까 바로 패닉에 빠져서는 베트콩이 도망가는 바람에 일이 많이 수월했습니다.”
“그러게요. 조종사 양반한테 고마워해야겠더군요. 상공에서 투하해서 그런지 차량 앞 유리가 조금 깨지긴 했지만 차체 자체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도 잘 던진다고 하는데 이렇게 기술적으로 떨구지는 못하거든요. 어떻게 충격을 최소화했는지는 모르지만 노하우를 좀 배워야겠습니다.
서로 칭찬을 해 대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계약관이 벙찐 얼굴을 지었다.
뒤에 실린 무기와 장비들을 본 미군의 입이 떡 벌어져 닫히지 않는 것을 보며, 강태준이 자신 있게 말했다.
“이 정도면 수송 문제는 없을 듯한데, 약속대로 저희한테 맡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퀵으로 배송해 드리겠습니다.”
그 뒤로 미군과의 하역 계약은 일사천리로 체결되었다. 적진으로 들어가서 보급품을 탈취하는 것도 모자라, 월맹군 포로까지 구출해 오는 활약을 벌인 것이 미군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던 것이다. 일단 수의계약을 받는 것이 확정되자 본격적인 단가 협상에 돌입했다.
“계약은 계약이고, 그러면 이제 세부 협상을 해야겠죠?”
“네네. 뭐 요율 계산이 불편할 거 같아서 이렇게 준비해 봤습니다.”
강태준이 내려놓은 단가표를 본 계약관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아니, 이게 뭡니까?”
“우리가 계산한 단가인데 이의 있으십니까?”
“아니 이보시오. 미국 브루클린 요율표의 4배로 하다니. 말이 됩니까?”
세계에서 가장 비싼 항구 요율의 무려 4배를 받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강태준은 태연했다.
“요코하마나 브루클린도 아니고.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가격입니까?”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야지요. 브루클린이나 요코하마는 운송용 크레인뿐만 아니라 각종 시설물도 모두 갖춰 있고 포탄이 날아다니지는 않잖습니까?”
“여기도 안전합니다. 퀴농항이 직접 타격받을 확률은 절대 없습니다.”
“허허, 퀴농항이야 그렇겠지만 어디 여기서만 운송합니까, 다른 곳으로 물류를 운송하려면 베트콩을 수시로 만날 텐데,”
“…….”
“전쟁 지역에서 상식은 없지요. 정글에서 총알이 날아오고, 폭탄도 투척되고, 비바람이 불고 하는데. 더구나 여기는 상시 전시상태 아닙니까. 이건 일종의 생명 보험료입니다.”
“아니. 하지만 이렇게 비쌀 수야.”
“비싸건 말건, 여기 투입되는 인력들도 이해해 주셔야죠. 미군이나 용역이나 사람 목숨은 한 개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전시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수치 아니겠습니까. 대신 저희가 차질 없이 배송할 걸 약속하죠.”
퀴농 항만은 365일 24시간 작업을 해야 하는 특수환경인 만큼 논리는 이쪽이 위였다. 그 사이 위에서는 어서 계약을 마무리 지으라는 압박이 계속되었고, 계약관도 더는 강짜를 부릴 수 없었다.
결국 사이공 주월 미군 사령부의 허락을 받아 강태준은 앵글러 중장과 계약서에 서명했다.
-수송 용역계약 시 계약자의 귀책으로 차질이 있을 경우에는 계약총액의 10%를 배상한다.
그 반대의 경우 발주처 “미베트남 보급사령부”에서 계약자 “백경운송(주)”에 계약총액의 10%를 추가 지급한다.
중부 월남의 5만 미군에 대한 군수품과 식료품 하역 및 전략요충지 수송을 포괄하는 대형 계약으로 안케부터 플레이크를 경유, 듀코까지 운행하는 간선 운행을 포함한다.
1년 총액이 무려 1,200만 달러!
냄새를 맡은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긴급 타전했고 대서특필했다. 당시에 1,200만 달러라고 함은 엄청난 금액이었다. 고작 몇 년 전 수출로 1억 달성을 했다고 자축하던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국내 수출액의 10%에 해당하는 수치였던 것이다.
액수에 놀란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관심을 보이자, 이를 포착한 것도 대통령이었다.
마침 한미 간 정상회담이 열리자, 박 대통령은 미국을 상대로 거래를 청했다.
“국군 전투병을 3만 명 파견하는 조건으로 북한이 재남침할 경우 미국의 즉각적 개입과 한국군 현대화 지원을 해 주시오.”
박정명은 국제 개발처(AID) 차관 1억 5천만 달러 제공을 요구하는 한편 국군 전투 사단 파병이 이루어진 후 한국은 한미 정상 간 합의를 정식 외교문서로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은 1966년 3월 주한 미국 대사 G.W. 브라운을 통하여 ‘브라운 각서’의 형식으로 한미 간 합의 사항을 한국 정부에게 정식으로 전달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한미 간 합의 사항의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각서에 따르면 베트남 주둔 한국군 병력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원화로 지원하고 주한미군용 물자의 상당 부분을 한국 내에서 조달하며, 베트남 주둔 한국군 소요 물자와 베트남군 소요 물자 중 일정 품목도 한국에서 구매하도록 했다.
베트남 건설 사업에 한국 건설업체의 참여 자격을 부여하도록 했다. 그렇게 된 사이 강태준으로서는 물류수송 준비에 들어가기 위해 바빴다. 광필이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바쁘다 바빠! 돈도 없고 인력도 없고.”
“얼마나 더 필요하지?”
“계약금을 받기는 하지만 하역 운송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200만 달러가 들어가야 합니다.”
물류 용역비 1,200만 달러는 매 분기별로 정산되는 용역비지, 바로 지급하는 비용이 아니다. 선 투입 인건비와 장비 구입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운송용 차량과 장비구매 대금은 시중은행 담보 받고 명동 사채시장에서 쓸어 오게.”
“금리가 비쌀 텐데요?”
“지금 그게 문제인가? 돈 벌면 그때 틀어막으면 돼.”
강태준은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사업을 따냈다고 해도 수송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패널티를 물 수 있는 만큼 서둘러야 했던 것이다.
이때 한국에서 현금 부자라고 치면 생각나는 사람은 한 사람. 강태준은 일전에 카발 인수 시 투자자였던 백 할머니에게도 찾아갔다.
“그동안 강령하셨습니까?”
“오랜만이네, 이게 누구, 강 사장 아닌가?”
주름진 손으로 살갑게 손을 마주 잡은 백 할머니가 내실로 안내했다.
“어떤가. 사업은?”
“하하. 그럭저럭하는 중이죠.”
“하하. 잘하겠지. 이쪽도 소식 듣고 있다네. 바쁜 사람이 이 늙은이는 또 왜 찾았나?”
“할머님은 무슨. 여사님이죠. 사실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앉은 다리로 강태준이 내민 서류를 확인한 백 할머니가 뜻 모를 표정을 지었다.
“허어, 이 큰 걸 나보고 보증을 서 달라?”
“보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라서요.”
“미군 물자 수송 보증이라. 보증 요구하는 사람들을 많이 상대해 봤지만 이건 사이즈가 엄청나구먼. 근데 담보도 없이 달라는 건 좀 글치. 신용대출치고는 너무한 거 아닌가?”
“솔직히 내놓을 담보가 없습니다. 그래도 계약만 따내면 돈은 금방 들어올 겁니다. 저를 한 번 믿어 주십시오.”
강태준으로서는 이미 사업을 위해 대부분의 재산을 이미 담보로 낸 상황이었기에 달리 고개를 숙이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가만히 그 모양을 지켜보던 백 할머니가 그를 일으켜 세우더니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