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28화 (228/361)

228화 회수 작전

강태준을 들여보낸 윌리엄 대령이 의아한 어조로 말했다.

“여긴 왜 왔나. 계약관과 하역 협상 중인 걸로 아는데…….”

“그쪽과는 말이 잘 안 통해서요. 웨스트모어랜드 사령관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그분은 지금 아주 바쁘시네. 안타깝지만 자네랑 이야기할 군번이 아니야.”

“그럼 의사라도 전달해 주십시오. 오 투하한 보급품, 저희가 회수해 보겠다고요.”

윌리엄 대령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거긴 교전 지역일세, 자네. 그 말 책임질 수 있나?”

“예. 대신. 저희가 성공하면 수송계약은 여기 퀴농항 물자 수송은 수의계약으로 받는 걸로 해 주십시오.”

“만약 실패하면?”

“못 하면 두말없이 짐 싸지요. 어차피 미군이 손해 볼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강태준의 설명에 윌리엄 대령도 머리를 굴렸다. 군을 투입해 보급품을 회수하다 사상자라도 나오는 날에는 골치 아파지지만, 민간공조를 하다 사고가 나면 책임 문제에서 자유롭다.

강태준이 지적한 부분도 바로 그것이었다.

“뭘 믿고 이러는지 모르지만 지원은 많이 못 해 주네. 혹시 고립되더라도 구원은…….”

“걱정 마십쇼.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알았네. 그럼. 위쪽에 의견을 물어보지.”

윌리엄이 직보를 올리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허가가 떨어졌다.

미군으로서도 마침 상황이 다급하던 중이 반가운 소식이었던 것이다.

보급품을 회수하러 간다는 말에 광필이가 기가 찬 어조로 말했다.

“형님, 미치셨습니까? 거긴 교전 지역이에요.”

“어차피 혼자 가는 것도 아니다. 미국 연락 장교도 붙는다고 했으니. 걱정 마라.”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게 뭡니까? 돈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저승보단 이승이 낫잖소.”

“임마, 니 이번 사업 규모가 얼마짜린지 아나?”

“얼만데 그러쇼?”

“근 천만 달러짜리 계약이야. 임마 사업가가 이런 걸 놓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실제로 이 베트남전에서 얻은 이익을 고려하면 10억 달러가 넘는 만큼, 수송 과정에서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올 부가 수익을 생각하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다.

전쟁 특수야말로 회사의 체급을 올릴 절호의 기회. 천조국의 검은돈을 진공 흡입기처럼 빨아올릴 타이밍인데 이 정도가 대수겠는가.

강태준은 사람들을 모집하고 한바탕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은 보급품 낙하지점을 찾아서 갈 예정이다. 함께 갈 사람은 손을 들어라. 지원자는 후대하겠다.”

구구절절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썰렁했다……

전쟁터에 나간다고? 그때 핸더슨이 먼저 손을 들었다.

“보스가 아무 생각 없이 지원하진 않겠지. 난, 보스 명을 따르겠소이다.”

“나도 갑니다. 간만에 몸 좀 풀겠구먼.”

최 중사를 비롯한 몇몇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자원했지만 나머지 인원은 주저할 뿐 쉽게 나서지 못했다. 생각보다 저조한 지원자에 강태준이 침착하게 물었다.

“7명이라, 럭키 넘버이기는 해도 너무 적은데, 그 외에는 없나?”

“강 사장님. 이건 좀 아니죠. 저희가 칼밥을 오래 먹긴 했지만 이제 현역인 것도 아니고, 저희도 목숨 아까운 줄은 압니다요.”

“가미카제도 아니고, 특공대라니, 자살 취미는 없소이다.”

“지도 가늘고 오래 살고 싶습니다.”

강태준이 고개를 저었다.

“목숨 걸라는 이야기는 안 했네. 그렇게 위험하지 않을 거야. 미군에서도 엄호하기로 했어.”

“그럼 지들이나 가라고 하십쇼. 지금 죽으러 가라는 말이 아니고 뭡니까. 베트콩 놈들이 로켓포 들고 쏘다니는 곳을 들어가다니. 이건 좀 아니죠.”

“그렇슴다. 저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역시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쪽도 미군과 직접 교전은 피하고 있지. 이번 일은 우리 회사의 명운이 달린 일이야. 역대급 규모일 테고, 위험한 일이 닥치면 미련 없이 포기할 걸세.”

“…….”

“좋아. 지원자는 5천 달러를 일시불로 주지. 아, 작전에 성공하고 나면 추가로 5천 달러를 더 얹어 주겠네.”

그 순간 머뭇거리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1만 달러라니.

당시 서울집 한 채에 많아야 100~200만 원이니 인생을 바꿀 만한 돈. 강태준이 이 일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여 주는 방증이였다. 강태준이 자극했다.

“제군들, 이 정도면 위험수당으론 차고 넘칠 거 같은데, 사나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봐야 하지는 않나?”

“글치요. 겁쟁이가 아니고서야 사리는 것도 정도껏이지. 나도 지원할랍니다.”

새파랗게 어린 춘삼이까지 나서자 자존심이 상한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았다.

“좋소, 난 가렵니다.”

“한 번 죽을 거 두 번 죽소?”

“나도 갑시다.”

한창 보급을 챙기던 중에 윌리엄 대령이 그를 불렀다. 옆에는 젊은 여성 장교 하나가 시립하고 있었는데 얼굴을 보니 혼혈인 것 같았다.

“누굽니까?”

“내 부관도 데려가게. 베트남 출신 재원인데, 남베트남군 소속이었는데 연락장교를 맡고 있지.”

귀화자인가? 강태준이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중위 견장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못 미더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귀찮은 감시자가 붙었다는 생각에 인상이 나빠지자 윌리엄 대령이 그를 달랬다.

“자네 일에 숟가락 얹을 생각은 없어. 이건 순수한 호의일세. 소위는 그쪽 출신이라 대민 접촉 시에도 유리하지 않겠나. 보급품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걸세.”

“응우엔 창입니다. 이번 일의 전권은 그쪽에 위임되어 있고 명령에 복종합니다. 회수 작전에 발목 잡을 일은 없을 겁니다.”

눈이 이글이글한 것이 뭔가 사생결단을 낼 기세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강태준도 거절할 방도가 없었다.

“그럼 뭐,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무탈하게 다녀오기 바라네.”

그렇게 총 지원자는 25명에 미군 장교 1명까지 포함이다. 여성 장교가 끼었다는 말에 툴툴거렸다.

“아니 쉬벌, 우들끼리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무슨 상관 모실 일 있나.”

“난 좋은데요?”

“저도 불만 없습니다.”

의외로 반응이 좋은 대원들의 태도에 광필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임마. 저번에는 여군은 딱딱해서 싫다더니.”

“저, 이쁘장하잖습니까? 중국계 혼혈인가. 특이한 이름이네.”

“얼어 죽을. 예쁜 게 밥 먹여 주나. 너 윗대가리들 경험 못 해 봤지. 여장교? 생리 터지면 뭣 되는 거야.”

전혀 공감하기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최 중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성급하게 일반화하지 맙시다. 지원한다는 거 자체가 든든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은근 챙겨 주는 걸 보아하니 뭔가 수상한데요. 사령관 이거라도 되는 건가?”

“에이 사람이 왜 그렇게 삐딱하게 생각합니까. 경력 한 줄이라도 쌓아 주려고 한 거 같은데.”

“그래, 인맥 하나 쌓아 둬서 나쁠 것이 없지.”

사실 강태준은 내심 이유를 짐작했다. 사람 사는 곳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귀화했다고 해도 텃세가 없을 리 없지 않은가. 굴러온 돌인 데다 베트남 출신이니 색안경을 끼고 볼 확률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뭐라도 성과를 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경계지대까지 간 인원들은 신호를 받고 일제히 지프에서 내렸다.

“아니, 여기까지 와서 왜 멈춥니까?”

“여기서부터는 길이 험한 데다 소리 때문에 차로 못 갑니다. 소리가 크면 베트콩들이 나올지 모르니까요.”

“그럼 걸어가란 말입니까?”

“당연하지. 헛소리 말고 다들 이거 써…… 머리에 철모 꼭 쓰고.”

“아놔. 더운데 무겁게…….”

미리 싼 전투용 가방을 나누어 주자 모두들 투덜거렸다. 묵직한 가방에 탄띠를 멘 광필이가 한탄했다.

“젠장, 이 나이에 또 행군이라니. 그보다 목적지는 대체 어딥니까?”

“여기, 닥또현(Huyện Đắk Tô)이라고 중부 고원지방이라는군. 꽤 선선한 지역인 모양이야.“

“거기가 어디요?”

“북베트남 군이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곳이긴 하지만 군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는 아닙니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지는 않으니 격전지에서는 거리가 멉니다.”

연락 장교의 대꾸에 강태준의 호언장담에 광필이가 쓰게 웃었다.

“거참, 위안이 되는군요. 그래서 우리가 회수할 물량은 얼마나 됩니까?”

“3톤짜리 SUV 차량 5대분. 대형 낙하산 2개가 동원되었으니 장갑차 자체의 무게에 트렁크에 실린 탄약의 무게를 합치면 꽤 무거울걸.”

“거, 많이도 투하했구먼요. 근데 조종사도 모르는 물건을 어떻게 찾습니까? 숲이 무성한 데다 뒤질 수도 없고.”

부지런히 발을 움직이던 강태준이 짐짓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한국 전쟁 때 기억 안 나? 미군이 낙하산으로 식량 투하했을 때 잘 보이라고 대공 연락 포판을 깔았던 거.”

“뭐…… 다양하게 깔긴 했지만 보통은 백색으로 칠한 정방형 목재판막이나 십자로 된 알루미늄판이 주로 쓰이긴 했죠.”

“그렇지 식별이 뚜렷한 구조물이 없는 경우에는 빛 반사가 잘 되는 곳을 표적지로 삼거든. 아마 조종사도 순간적으로 그 부분을 착각했을 거야.”

“아.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네요. 확실히.”

“그러게. 경우의 수를 좁혀 보면 돼. 분명 공중에서 오인할 만큼 눈에 띄는 곳이 있지 않겠나?”

항공에서 찍은 흑백사진을 보여 주었다. 무성하게 수풀이 우거진 가운데 강 근처에 대나무로 지은 전통가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곳곳에 드문드문 프랑스식 가옥들이 널려있고, 양철 지붕을 두른 곡물 창고들이 보였는데 특히 지붕 모양이 크게 눈에 띄었다.

“앗, 진짜네요. 장방형으로 된 게 진짜로.”

“멀리서 보면 대공 표지랑 비슷하게 생겼지?”

“그럼 슬슬 하나씩 소거해 보자고.”

강태준의 지휘 아래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연락장교인 부관이 큰 도움이 되었다. 미리 그 지역에 미군의 끄나풀을 심어 두었던 것이다. 대민 접촉을 최소화하고 수색하기를 며칠. 드디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찾았습니다. 보스.”

강태준의 예상대로 강에서 멀지 않은 대공 포판으로 보이는 창고 지역 일부에 떨궈져 있었다. 문제는 주변에 베트남인들이 널려 있었다는 것이다.

검은 파자마에 농라를 입은 베트콩들이 Ak-47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포장도 안 뜯었군.”

“저놈들도 처음에는 폭탄으로 알았나 봅니다.”

“벌써 알아채다니 이거 곤란한데,”

그러자 주위를 둘러보던 응우엔 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행히 북베트남 정규군들은 아닌 거 같습니다.”

“확실합니까?”

“네네. 확실해요. 군복에서 계급장만 뗀 놈들과 다르게 무기가 빈약하지 않습니까?”

실제 베트콩은 중공과 소련 측으로부터 피복, 무기 등의 물자나 교육 훈련 등 각종 지원을 받은 만큼 절대로 전투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 숫자는 대충 가늠이 되나요?”

“게릴라라…… 얼마나 있는지는 확인이 안 되는군요. 일단 위치를 파악했으니 지원 요청을 하는 것이.”

“지원 요청? 여기서 작전을 세우고 자시고 할 게 있습니까? 어때? 핸더슨? 자네가 보기엔.”

“이 정도 숫자는 해 볼 만합니다.”

“네? 뭐가 해 볼 만하다고요?

아직은 어색한 한국어로 대꾸하는 핸더슨에 응우옌은 사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다음 순간 응우옌의 표정이 급변했다.

“지금 뭐 하는?”

“귀 막으십쇼.”

로켓포를 든 핸더슨이 영점을 조준하고 자세를 취한 것이다. 폭탄이 터져 나가는 순간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베트콩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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