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기생충 박멸 운동
[파독 광부들의 충격 실태! 국가를 좀먹는 기생충 그 부끄러운 현실에 대하여.]
지난 12월 독일 노드라인-베스트팔렌주로 파견된 한국인 광부 1차 1진은 곧바로 갱도에 투입되지 못한 채 무려 5개월을 끈 뒤에야 갱으로 들어갔다. 본래 6주간의 현지 교육이 끝나면 실전투입하기로 된 일정이 왜 이렇게 늦어졌을까. 바로 ‘회충’ 때문이었다.
전언에 따르면 한국인 파독 광부들 대다수가 입항 전 실시된 신체검사에서 회충이 발견되어 뒤집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김삼현 기자
곧바로 기생충 박멸 협회에서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회충은 후진국병입니다. 독일 같은 선진국에서는 회충 같은 건 없습니다.”
“기생충으로 우리나라에서 죽는 사람은 일 년에 약 2천 명입니다. 인구의 7할 이상이 한해 한 번 이상은 위장 질환을 호소하는데 절반 이상이 기생충 문젭니다. 이로 인한 노동생산성 감소를 돈으로 환산하면 해마다 약 4백 80억 원입니다.”
“기생충만 없애도 생산성을 배로 높일 수 있습니다. 이건 한국인의 위신 문제입니다.”
서독 광부와 간호사 파견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경고는 물론이거니와 미8군이 한국산 채소 사용을 거부한 일, 기생충으로 인해서 공장 가동이 중단된 일 등등. 괴담의 향연에 사람들의 낯뜨거워질 정도였다.
한국에서 기생충 문제로 자아비판을 하는 그때, 사태를 지켜보던 일부 우익계열 신문에서도 자극적인 기사를 퍼다 날랐다.
-한국인은 태생부터 위생적으로 불결한 민족인가.
-한국 사람들은 온몸에 기생충을 달고 산다. 십이지장충에 빨리는 피가 매일 5백 60드럼이니 미국 원조 물량을 다 합쳐도 뱃속에 기르는 기생충의 피해를 보상하지 못할 정도다.
해당 기사의 주범은 요미우리 신문이었다. 마치 식민지 시대를 정당화시키는 논조의 기사에 뿔난 외교부에서 항의를 넣었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퍼지자 청와대에서는 곧장 보건사회부 장관을 호출했다.
김필중이 미리 도착해 부동자세로 있는 모습에 장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일이 터졌구나.’
호통을 직감한 장관은 바싹 얼었다. 일본에서 실린 기사와 한국 신문의 칼럼을 번갈아 보며 냉막한 표정을 짓던 박정명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불편한 듯 고개를 젓던 박정명이 불현듯 말을 꺼냈다.
“임자. 기생충 기사 이게 사실인가?”
“신문사에 연락해 바로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임자!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기냐 아니냐만 답하게. 우리 광부들이 이런 사정으로 제대로 채광에 투입되지 않고 치료받는다는 것이 사실이냐는 말이야.”
“예. 맞습니다.”
“어째서 바로 보고하지 않았나?”
“그게, 이미 서독 정부와 합의하에 해결된 문제입니다. 사소한 문제라고 판단되어…….”
“그걸 자네가 왜 판단해!”
박 대통령의 호통에 장관들의 태도가 새우 목처럼 움츠러들었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야. 국가의 얼굴에 먹칠하는 사건이란 말이야. 비단 광부들 문제가 아니야. 우리 한국인이 기생충덩어리라니 이거 해외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있나. 이렇게 초를 쳐도 되겠나?”
“죄송합니다.”
“안 되겠어. 당장 전 국민 상대로 채변 검사 실시하고, 기생충 박멸부터 시행하게.”
대통령의 명에 깜짝 놀란 장관들이 항변했다.
“예? 바로 말입니까? 그렇게 되면 다른 사업 예산이…….”
“아니 그래서 못 하겠다는 건가? 머리와 온몸에 기생충이 득시글대는데 국민 위생보다 중요한 게 있나?”
“아닙니다.”
“당장 개선안부터 올려!”
경제 성장을 제1 목표로 한 박정명 입장에서는 국민들의 몸에 기생충이 득실거리고 있다는 사실은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레치를 안겼던 것이다.
‘기생충 박멸을 보건 최우선 사항으로!’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전국에 지시문이 하달되자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전국의 공직자는 물론 의무적으로 기생충 문제를 해결하라고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기생충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금 당장은 무립니다만.”
“이보게. 그 말 했다간 모가지야. 각하의 특별 지시니 어떻게든 해야 하오. 일단 초도 물량을 확보해 뿌립시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해라. 못 한다는 말은 이미 선택지에 없었다.
정권을 잡은 수뇌부들은 군인들답게 추진력이 대단했다. 급한 김에 추경 예산을 편성한 다음 효과가 검증된 약이든 뭐든 일단 쓸어 담았던 것이다.
그렇게 기생충 약을 대량으로 확보한 정부에서는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접종 구충제 배포 일정을 잡고 학교에도 명령서를 하달했다.
“기생충 약을 보급한다고?”
“일단 먹이고 봅시다.”
포스터 대회를 열었다. 선생님들은 기생충 약의 필요성을 강변한 다음, 칠판 모서리에 커다랗게 ‘똥!’이라고 써 놓은 다음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하나씩 채변 봉투를 내주면서 신신당부했다.
“자자, 알아들었겠지? 꼭 요기 자기가 싼 대변만 담아오는 거다. 많이도 필요 없어. 콩알 두 개 만큼만 담아 와라.”
“더 많이 담으면요?”
“해 보던지. 많이 가져와서 냄새를 풍기는 놈은 그대로 먹여 줄 거다!”
채변 검사 때마다 꼭 한두 놈 덜떨어진 녀석은 있기 마련. 채변봉투를 잃어버리고 비닐봉지에 대변을 한 뭉치 싸 들고 와 쑥 내미는 녀석에 선생님의 혈압이 팍 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임마, 어제 선생님 이야기 안 듣고 뭐 했어?”
“잃어버려서…….”
“그럼 너 먹으려고 이렇게 많이 담아 왔냐. 미련하긴. 당장 다 버리고 와.”
그런 헤프닝을 거쳐 검사를 끝낸 다음 선생님이 앞 번호부터 쭉 결과를 불러주었다.
“1번 회충 5마리, 2번 회충, 편충 12마리, 3번 십이지장충 3마리, 4번 촌충과 요충 4마리…… 6번 회충, 편충, 십이지장충, 촌충 40마리…… 너 뭐야? 사람 새끼야?”
“그게…… 제가 변비라서요.”
선생님의 추궁에 개똥을 대신 넣은 것을 털어놓은 아이였다. 배 속의 기생충 숫자까지 신기하게도 정확히 알아내는 마법에 아이들이 신기해할 무렵. 그런 다음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도착해 자연 교과서에 나오는 그 징그러운 모습을 보여 주며 기생충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촌충은 길이가 너무 길어 뱃속을 돌고 돌지. 사람의 목까지 올라와 입을 벌리고 있다가 음식을 받아먹는단다.”
“촌충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뱃속에 득시글하게 벌레가 차서 영양실조로 굶어 죽는 거다.”
잔뜩 겁을 준 뒤에 회충약을 먹이자, 변을 통해 벌레가 쑹쑹 빠져나왔다.
아이들은 나무젓가락으로 변을 파헤치며 수를 세었다.
죽지 않고 약에 취한 회충들이 꿈틀꿈틀 나왔는데, 한 번에 7~8마리가 뒤엉켜 나오기도 했다.
그런 일이 터지고 난 뒤에 학생들을 부르며 회충이 나온 마릿수를 적었다.
“자자, 몇 마리 나왔어?”
“전 6마리요.”
“전 10마리!”
“전 20마리요.”
“잘했구먼. 옜다. 상이다.”
한 마리라도 무조건 회충의 마리를 많이 부르면 선생님들은 환영하며 상을 주었다.
회충이 많이 나오는 게 실적인 셈이다.
그렇게 되자 아이들은 회충 수를 뻥튀기해서 부르기도 했다. 한 반에 보통 60~70명 남짓한 반에서 나온 회충을 모두 합산하니 수백 마리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기생충 보건 사업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백경그룹이었다.
일단 청풍에서 개발한 약이 단가가 싼 데다 효과가 제일 좋았기 때문이다.
해인초의 효과는 제한적이었고, 산토닌 합성제들은 대부분 독성 때문에 임상을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피폐라진을 확보하지 못한 다른 업체들에서 부랴부랴 원료처를 모색하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원료 업체들이 갑질을 했다.
돈 냄새를 맡은 원료 업체들이 일제히 단가를 올려 버린 것이다.
제약회사들이 원료 수급에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한 청풍제약에서는 안정적으로 재료를 수급해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포스터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선점 효과를 본 것이다.
미어터지는 주문량을 보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거, 공포 마케팅이 겁나 잘 먹히네요. 그게 촌충을 보여 주면서 겁을 줬더니 애들이 막 울더라고요. 이거 중독될지 모르겠습니다.”
“이 자식 안 되겠구먼.”
가운을 입고 파견된 사람들은 사실은 의사들가 아니라 출판사에서 파견된 영업사원들이었다. 이 중에는 너무 실감 나게 시연을 하는 바람에 트라우마가 생기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아, 그리고 희소식입니다. 카멜이 15세 이하 학급에 독점 공급하기로 정했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 애들의 힘이 무섭지.”
청풍에서 낸 약이 호응을 얻긴 했지만 대형 제약사들의 입김이 강했기 때문에 처음에 카라멜 코팅제가 보급된 곳은 부산 일대로 한정되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카라멜 맛을 경험한 아이들이 삐약거리면서 소문을 낸 것이 문제가 되었다.
뿔난 아이들이 맛없는 약을 먹지 않겠다며 꼬장을 부렸던 것이다.
“아니 이 자식들이! 처먹으라면 처먹지 말이 많아?”
“우우!! 저는 싫습니다. 싫어요. 나도 카라멜 먹고 싶다!”
“약이 맛없어서 싫습니다. 약으로 사람 차별하는 겁니까?”
“그래요. 이건 인권침해입니다. 인권침해!!”
“이런 망할 놈들이!!! 그딴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선생님들이 투입되어 아이들을 달랬지만 역효과만 생길 뿐이었다.
거기에 공급되는 약재의 효능조차 차이가 크다는 점이 불거지면서 지역 문제로까지 번졌다.
문교부에서는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 교육감은 대책회의를 열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서울지역의 효과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가?”
“그게 애들이 맛없는 약을 안 먹겠다고 꼬장을 부려서.”
“아니 그거 하나 통제 못 하나? 각하께서 보고 계시는데 우리만 이렇게 뒤처져서야. 그럼 딴 데 방역이 잘 되는 이유는 뭔가?”
“카멜이라는 구충제가 주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게 먹기도 편하고 효과도 좋다고.”
“좋아. 그럼 제약 업체한테 연락해서 기생충 약은 카멜로 통일하게.”
“예? 그럼 다른 업체들의 반발이…….”
“이보게. 지금 남 걱정할 땐가. 안 되면 우들부터 모가지인데. 자네 혹 제약 업체한테 돈 먹었어?”
“아, 아닙니다.”
“그럼 닥치고 시행하라고!”
군인 출신인 서울시 교육감은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고 덕분에 청풍의 카멜 구충제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사소한 부작용이 없지 않았지만 기생충 박멸 사업은 빠른 속도로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집집이 연례행사처럼 구충제 복용이 강요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채변 검사가 실시되자 기생충이 부끄럽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의 구충제 박멸정책에 힘입어 청풍제약은 급속도로 덩치를 불렸다.
구충제 단일 제품만으로 유한제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올라선 것이다.
“근데 약이란 게 진짜 많이 남네요. 거의 물 장사구만. 이거.”
“원래 제약이라는 게 그렇지. 인가받기 까다로워서 그렇지 말이야.”
갑작스러운 구충제 판매 폭증으로 과도한 폭리를 취하지 못하도록 가격 규제책을 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금을 석 달 만에 회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