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18화 (218/361)

218화 의료사업 진출

불길함을 느낀 듯 춘삼이가 부르르 떨었다.

“뭐, 할 말 있으십니까?”

“아니다. 운전 잘하라고. 그리고 복만이 니는 언제 일 시작할 거냐? 군속 그만둔 지가 언젠데 아직도 백수여?”

“아니, 몇 달이나 됐다고 자꾸 보채셔? 글타고 내가 어디 일 안 한 적 있나?”

“파트 타임 말고 제대로 일해야지. 형이 사장인데, 뭐가 문제라고 니는 왜 일을 자꾸 안 하려고 하는 거냐?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는 말 몰라?”

“아니. 형 말 듣고 코 꿰일까 봐. 그라지. 그리고 돈 있는데 일을 왜 혀? 난 책임지기 싫어. 게다가 윗사람 되려면 자꾸 공부해야 하잖어.”

“이런 썩을.”

궁시렁대는 녀석의 말을 들으니 한 대 때리고 싶어진다.

갈수록 게을러지는 게 동기부여가 안 되는 놈을 보니 자꾸 고문관이 되는 것 같다니까.

그렇게 투닥거리다 보니 어느새 거제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새로 재개축 중인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활발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총상 사건 당시 주치의였던 킷 갑슨이 입원한 아동들과 놀아 주는 모습이 보였다.

“오셨습니까? 강 사장님.”

“선생님께서 오셨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하. 엄연히 겸사겸사해서 공무 차 온 겁니다. 유엔 민간지원단 한국(UNCACK)의 공중보건 업무를 처리할 목적으로 왔습니다.”

“공사 상태는 어떻습니까?”

“순조롭습니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서 골조를 그대로 살릴 수 있다는군요. 엄청난 결단이었을 텐데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죠.”

병원 재건축 비용은 박노태가 빼돌린 자금을 수거한 돈으로 충당했다. 도로 돌려주긴 했지만 그래도 찜찜한 건 찜찜한 것. 요새 나쁜 일이 좀 많았나.

이번에 베트남전까지 참여하게 되면 또 위험한 일이 한 다스는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액땜도 할 겸, 뭔가 뜻깊은 일을 해 보자는 생각에 병원부터 대대적으로 짓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쪽이 비겠네요. 장승포 부지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정리해야죠. 지역 의료 기관으로 탈바꿈할 예정입니다. 어차피 두 개 병원 운영은 무리라 마침 보건부에서 보조금과 퇴직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아 병원 운영이 힘들던 중이었거든요. 고맙게도 캐나다 선교부에서 병원 관리를 인수하겠다고 의향서를 전해 왔습니다.”

“흐음. 그 부분은 조금 아쉽네요. 현지 사정을 아는 국내인이 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요. 세브란스 의과대학을 졸업한 개업의(GP)가 병원 이사로 취임하는 게 베스트겠지만 아직까지 지원자가 없어서요. 섬이다 보니, 대체 복무 말고는 좀처럼 인력 수급이 어렵군요.”

“그거 큰일인데요. 그렇다면 이쪽도 수급이 쉽지 않겠는걸요.”

병원만 대책 없이 크게 짓고 정작 의료인이 없으면 큰일 아닌가.

그 말에 갑슨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그래서 한 명 전문가를 모셔 왔습니다. 여기는 제 동생 마리아입니다.”

“마리아 슈왈츠입니다. 처음 인사드려요.”

금발의 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금발에 금발 벽안이 인상적인 미녀였다.

“오, 이분은?”

“국경 없는 의사회 멤버로 주로 공중 보건 업무를 담당했죠. 전염병 유병률 확인이나 감염증의 환자 치료, 임상 검사 및 해부까지 못 해 본 일이 없는 베테랑입니다.”

“이거 든든하겠군요.”

확실히 개도국인 한국 입장에서는 누구보다 필요한 인력이다. 공사 중 필요한 부분이나 아쉬운 점을 세세히 점검했다.

“자잘한 건 네 선에서 처리하고, 면 단위 지원금은 장성량 의원에게 서류 정리해서 전달해. 그쪽에서 한마디 하는 게 결정이 더 빠를 테니.”

“예. 알겠습니다.”

“간만에 빨리 끝났군. 일정 없지?”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래 애들 불러서 식사나 할까?”

“피곤하실 텐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번에 학교에서 수석 했다며, 그 정도면 뭔가 격려도 해 주고 그래야지. 이왕이면 백화점이라도 들렸다 가자고. 임마 뭐 먹고 싶냐? 회, 고기?”

“아무거나?”

“뭐, 너 갑자기 왜 그래?”

음식을 두고 관심이 없다니. 얼타고 있는 것이 약간 멍해 보인다. 복만이가 약간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형, 나 말이요. 사랑에 빠진 것 같소.”

“엉? 니가?”

“아까 그 여자 말이요. 아까 만나는 순간 뒤끝이 찌르르 한 게 전기가 팍 오더라고. 이건 운명 아니겠소이까?”

“그건 날이 건조해서 그렇고 뭐 잘못 먹었냐?”

완전히 먹는 건 뒷전인 듯 열띤 이야기를 했다. 한참 동안 살 빼야 한다는 듣도 보도 못한 횡설수설을 늘어놓더니 곧바로 차에서 내리고 사라졌다.

“저 자식이 아주 미쳤나.”

“봄날이군요. 복만 형님도.”

“거, 올라가지 못할 나무에는 오르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시도도 안 해 보는 것보단 낫지요. 백번 찍어서 안 넘어갈 나무 있겠습니까?”

“무슨 무서운 소리를. 그러면 스토커야 임마.”

둘은 강태준과 함께 제일고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둘이 도착한 장소는 고깃집으로 유명한 백춘옥이었다.

미리 준비한 룸으로 들어가고 얼마 후 명문고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 학생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동안 키가 많이 자랐는지 꽤 훤칠해져 있었다.

“오빠! 왔어요?”

“삼촌.”

“오냐. 잘 지냈고.”

“덕분에요. 근데 오늘은 연복이 아저씨네 집이 아니네요.”

“맨날 똑같은 데 가면 쓰나. 예의상 피해 줘야지.”

도끼로 토막을 내서 그 크기가 어른 손바닥만 한 양갈비가 나왔다. 옆에서 각을 잡은 종업원이 손수 갈비를 뒤집어 가며 불판에 구워 주었다.

숯불 냄새와 함께 구수한 향이 사방으로 풍기자 절로 식욕이 돋는다.

고기는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좋았다.

침을 꿀꺽거리면서 얌전히 기다리는 모습에 강태준이 손으로 갈비를 잡았다.

“먹는 데까지 예의 차릴 거 없지. 깨작거리지 말고, 들어.”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아~.”

그제서야 덕배가 먼저 갈비를 하나씩 잡았다. 두툼하게 붙은 고기를 시원하게 뜯어 먹는 덕배와 달리. 점례는 약간 갈등되는 표정으로 살점 붙은 고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뼛조각을 손에 움켜잡고 후후 불어 가며 열심히 뜯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잘 먹네. 맛있니?”

“네 맛있어요!”

“잘 좀 먹여야겠구먼, 학교생활은 할 만하고?”

“기숙사 밥이 잘 나와서 괜찮아요”

“어디 건드는 애들은 없어? 선생님들은 괜찮고?”

“네네. 애들도 착하고 다들 좋으신 분들이라 잘 대해 주세요.”

“혹시 문제 있으면 끙끙대지 말고 바로바로 말해라. 이 삼촌이 혼내 줄 테니.”

그 말에 춘삼이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에이 누가 감히 우리 덕배를 건드립니까? 학교의 자랑인데. 우리 덕배가 공부를 잘해서 학교 선생님들도 얼마나 이뻐하는지 몰라요. 이번 모의고사에서도 전국 10등 안에 들었다네요.”

“이야, 대단한데. 그럼 앞으로 어디 갈 거니?”

“일단은 한국대 법대를 지망하고 있어요.”

“법 공부하게?”

“네. 저도 숙모님처럼 판사가 돼서 법률 지식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일전에 방문했던 설유하가 꽤 깊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다. 일찍 철이 들어서일까 은근히 믿음이 간다. 강태준이 체면도 잊은 채 갈비를 열심히 뜯고 있는 점례를 돌아보았다.

“좋은 생각이구나. 그럼 점례 니는 뭐 할 생각이냐?”

“뭐 지는 공부 머리는 아닌 거 같디요. 그래서 졸업하고, 의상이나 배울까 해요.”

“패션 스쿨 같은 거 말이냐?”

“뭐 그런 거창한 거 말고 동대문에서 떼다 파는 것도 좋고. 그냥 장사하는 게 재밌을 거 같아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덕배가 핀잔을 주었다.

“뭔 소리야. 그냥 공부하기 싫은 거잖아 누나는.”

“이게! 또 기어오르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게 좋지. 사람마다 다르지 않겠니.”

“봐 들었지.”

“네네. 알았습니다요.”

“호야, 그 녀석은 어때?”

“완전 집순이죠. 돼냥이가 되어 버려서 움직이기도 귀찮아하더라고요. 밥 먹을 때 기어오기도 귀찮아서 굴러다니는데 꼴이 아주 가관이에요.”

패션에 관심이 있다라. 확실히 그런 쪽에 관심을 가져서일까.

예전에 촌티가 확 벗으니 옷맵시도 살고 예뻐진 거 같기도 하다. 어디 좋은 데라도 알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식사가 순서대로 나왔다.

고기완자에 냉면, 된장찌개까지 거하게 비우고 나자 빵빵해진 배를 두드렸다.

“아, 배부르다.”

“간만에 포식했네요.”

“혼자 3인분을 먹고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누나?”

“간만이 아니라 매일 이렇게 먹는 거지. 돼지가?”

“이런 예쁜 돼지 봤어?”

“아 진짜 양심 없네. 누나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아?”

강태준이 웃으며 투닥거리는 아이들을 중재했다.

“자자, 고만 놀고 이제 들어가자. 그리고 이거, 덕배 수석 선물이다.”

“선물요?”

강태준이 꺼낸 것은 파키 만년필이었다. 매끈한 바디에 시가형 배럴, 튼튼한 몸체, 후디드 닙. 투박하게 생긴 녀석이었지만 그걸 덕배의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파키 Parki 51이잖아. 이거 한정판 아니에요?”

“골드필드 모델이라는구나. 공부 열심히 하라고 주는 거야.”

“감사합니다.”

그걸 본 점례가 심통이 나는지 입을 빼쭉 내밀었다.

“오빠! 덕배만 치사하게. 나는 선물 없어요?”

“그냥 공짜로 주는 건 좀 아니지 않니. 너도 성적 오르면 주마.”

그 말에 덕배가 으스대며 말했다.

“어차피 공부도 안 하는데 왜 필요해 누나가?”

“이게! 사람 약 올려? 에잇!”

“아이구 사람 죽네.”

배를 때리는 점례의 행동에 죽는시늉을 하자, 새우처럼 허리를 구부렸다.

“억!! 왜 그래.”

“장난치지 마. 갑자기 왜 그래.”

“아니 진짜 아파서 그래. 억 아프다고. 아파.”

땀을 뻘뻘 흘리더니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강태준이 복부를 만지자 자지러지듯이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나 죽네.”

“병원!! 당장 병원으로!”

* * *

수술실 앞.

심각한 표정의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춘삼이는 안절부절못했다.

“아니,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고. 급성 장폐색이라니.”

“제가 때려서 그런 걸까요?”

점례가 울먹거렸다.

“설마. 그럴 리가. 아까 시늉만 했잖니. 아까 너무 많이 먹었나?”

“이상하군. 혈압, 맥박은 정상이었고 열도 없었는데 말이야.”

“어찌 된 건지 모르지만 수술이 잘 되었을 텐데.”

워낙 급박했던 터라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진 덕배는 진단을 마친 후에 바로 수술실로 직행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수술을 마친 의사가 마스크를 벗고 나왔다. 춘삼이가 곧바로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수술은 잘 끝났습니까?”

“네 무사히 끝났습니다. L-tube 삽입을 하고 수액공급을 시작했으니 곧 회복될 겁니다.”

“갑자기 왜 그런 건가요?”

“그게…… 회충 때문입니다.”

“회충 말입니까?”

의문도 잠시, 간호사가 갖고 나온 양동이를 보자 강태준은 구토가 나올 뻔했다. 양동이에 담긴 것은 큰 감만 한 것들이 덩어리지어 있었다. 심지어 개중 아직 몇 마리는 살아 있는지 희끄무레한 몸뚱어리가 뒤엉켜 느리게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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