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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215화 (215/361)

215화 자동차 산업

바리바리 선물을 챙겨 받은 강태준도 내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야 여기, 인심이 참 좋네요.”

그 꼬라지를 본 최창렬이 어이없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거 배신감 쩌는데 나랑 일하면서는 이딴 거 따로 준 적도 없는데 말이야. 꼬박꼬박 영수증도 쓰더만.”

“그거야 최 사장은 맨날 돈이나 깎으려 드니까 글치. 솔직히 면상도 좀 더럽지 않나.”

박진환의 팩트 폭격에 버럭 하는 최창렬이었다.

“뭬야? 이 사람이 지금. 나 멕이나? 월급쟁이 되었다고 괄시하는 거야 뭐야?”

“저거 또 피해의식하고는. 애초부터 고집부리지 말자고 했잖소? 옛날 방식이 다 옳은 건 아니라니까.”

“그러게. 자네한테 조언을 다 듣다니. 어이구 내 팔자야.”

신세 한탄을 하는 최창렬에 강태준이 엑기스를 챙겨 주며 말렸다.

“자자 뭘 먹을 거 갖고 뻘소린. 나눠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애초부터 제가 카발을 인수한 건 형님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옆에서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

“알았다, 알았어.”

“그러니까 노땅 티 내지 말고 저렇게 말 좀 예쁘게 좀 해 보라니까.”

그렇게 카발의 경영상태가 호전되자 강태준이 카발자동차를 회생시켰다는 소식이 증권가를 뒤흔들었다.

[카발자동차, 구원투수 영입!]

[백경그룹 강 사장, 카발차 인수 부활의 신호탄 쏘나?]

그간 하는 사업마다 성공시킨 강태준이었기에 경영 위기를 겪고 있던 카발차에 대한 신용등급도 상향 조정되었다 그렇게 되자 아쉽게 된 것은 신나라자동차였다.

“죽었던 카발이 살아나다니. 이걸 말이라고?”

“누구야. 어떤 놈이야.”

“주범은 그 여자입니다. 우리 의뢰를 반대로 이행했더군요.”

“백희연 이 늙은 것이! 감히! 나를 엿 먹여?”

노발대발한 남형욱이 와락 신문을 구겼다.

남형욱은 침을 튀기며 광분하자 옥관열이 그를 말렸다.

“참으십시오. 그 여자를 건드리는 건 별로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애초에 별로 믿을 수 없는 작자라 하지 않았습니까? 건드려서 벌집이 될 뿐입니다.”

“그럼 카발 놈들이 이대로 승승장구하는 걸 두고 보자는 건가? 이대로는 회사를 폐업해야 할 상황이야! 정부에서 우리 쪽에만 특혜를 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고 있다고.”

신나라자동차는 인천 부평에 조립 공장을 세워 반제품 수입 방식(SKD 방식)으로 완성차 조립한다고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실상 초반 400대는 완성차를 가져와서 파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SKD도 부품 조립 수준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카발이 망하면 그 인력을 고스란히 끌어들여 그걸로 수명을 연장하려는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차질이 생기자 화가 날 법도 한 것이다.

“이대로 가면 다 뽀록나게 생겼어. 각하께서도 꽤 기대를 하시는데 실적이 이렇게 안 나와서야 어떻게 하겠나? 각하께서도 부품 국산화를 추진하라고 하셨는데 이대로는 힘들어.”

처음에는 정권 잡기에 급급했던 박정명이었지만 권력 기반이 안정되면서 이제 실제로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서 산업 발전이 필요하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미래와 청우 쪽에서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특혜를 탈피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전 카발 공장장 출신인 원종표도 이번에 경제수석으로 전임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남형욱의 입지가 더욱 불안해졌다.

원종표는 원래 소속이던 카발에 조차 대출 금지를 때리는 등 시장에 투명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주의적 입장을 고지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추가 혜택을 주장하기도 어려웠다.

“이봐, 박노택이 어디 대안이 없겠나?”

“그럼 저희도 완성차 조립 말고 부품 사업을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부품 사업을? 가능하겠나?”

“예. 어차피 통관에서 수혜를 보기가 힘들어진다면 조립 방식으로 완성차를 팔아 봐야 이문이 많이 남지 않습니다. 그럴 바에야 저희도 똑같이 자동차 부품용 샤프트 같은 걸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될까?”

“그냥 베껴야죠. 어차피 엑슬 샤프트 같은 제품은 제조방식이 쉽고 어느 차에나 통용됩니다. 그래도 카발에서 인력을 좀 데려왔으니 그 정도야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자신하는 박노택이었지만 옥관열은 오히려 떨떠름했다.

“이보게. 그거 돈 많이 들지 않나.”

“마침 공장 견학차 스즈키에서 기술자들이 왔잖습니까. 그걸 활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갸들이 우릴 도와주겠어?”

“돈 줘서 안 될 게 뭐 있겠습니까. 똑같이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주형 의뢰만 하면 됩니다. 투자비는 주물로 기본 베이스를 만드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남형욱 역시 추가 투자에 절로 인상이 쓰였지만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회사를 살리려면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좋아. 밀어줄 테니 그럼 해 보도록 해.”

“예!”

“대신 절대로 성과를 내야 하네.”

결단을 내렸으니 행동은 빨랐다. 썩어도 준치라고 남형욱이 아무리 중정부장에서 밀려났다지만 거래처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곧바로 주문하는 샤프트 물량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백경의 기계공업사 쪽에서 비상이 걸렸다.

“거래처들이 요즘 물량이 떨어졌는데. 이거 어떻게 된건가?”

“주문 취소가 벌써 4차례입니다. 이거 뭔가 조작 냄새가 나는데요.”

그러던 중 밖에 나갔던 춘삼이가 부품 하나를 들고 왔다.

“사장님, 이거 보십시오.”

“뭐야?”

“그 뭐냐, 신나라에서 샤프트 부품을 판답니다. 근데 기술이 보통이 아니더군요.”

춘삼이가 가져온 샤프트 상태를 본 박진환이 신음을 흘렸다.

“이거는 이너 샤프트군.”

“거, 수완 좋네요. 상당히 잘 만들었는데. 이게 국내에서 제작 가능한 거였나?

변속기와 연결되는 이너보드 조인트의 경우 23도 이내로 설계되어야 하는데 이게 꽤 각도 맞추기가 까다롭다. 더욱이 차체의 움직임에 따라 스플리트 기어가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는데 곧바로 이런 제품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건을 살펴본 최창렬이 대충 과정을 추론해 냈다.

“완전 국산으로 제작한 건 아닌 거 같고, 아무래도 이번에 공장 견학 겸 파견 왔던 일본 기술자들 도움을 받은 거 같네. 분하지만 잘 만들었군.”

“우리도 이렇게 만들 수 있습니까?”

강태준의 시선이 옆을 향하자 과장급으로 승진한 신재일이 대신 대답했다.

“가능은 합니다만 문제는 각도랑 품질이죠. 드라이브 샤프트 양쪽에는 각각 변속기와 연결되는 이너보드 조인트가 까다롭거든요. 움직일 때마다 마모되는 부분이라 일정한 내구도가 담보되어야 해서요.”

“바퀴벌레 놈들. 거 베끼는 건 알아줘야겠군.”

강태준은 헛웃음이 나왔다. 남들이 따라 하는 거야 예상했던 바지만 이건 너무 빠르지 않은가. 옆에 있던 최창렬이 걱정이 앞서는지 말했다.

“어떻게 할까. 이 단가대로 생산하면 저희로서는 무조건 손해일세. 원가를 맞출 수가 없어.”

“그냥 이쯤에서 철수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박진환의 말에 강태준이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철수하지 않습니다. 일단 저쪽에서 저가 정책을 계속 고수하는 건 우리를 고사시키는 수작일 텐데.”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다른 아이템을 잡으면 베낄 놈들입니다. 그럴 바에야 다른 아이템으로 가야죠. 다른 회사도 쉽게 베낄 수 없는 걸로 말이에요.”

“그런 게 있으면 좋겠지만 가능하겠나? 무슨 아이템으로 말이야?”

슬쩍 카발에 있을 때를 떠올리던 강태준이 문득 생각난 듯 손바닥을 쳤다.

“그럼 볼 조인트를 생산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볼 조인트?”

“볼 조인트는 자동차로 치면 관절에 해당하는 부분 아닙니까? 여러 각도로 움직이면서 마모가 심하니 매년 한 차례 의무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부위니 이왕이면 한 번 팔아먹는 부품보다는 여러 번 자주 팔아먹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2000년대가 넘어서는 볼 조인트 기술이 발달하면서 수명도 길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기술이 되지 않아 교체를 해 주어야 했었던 것이다.

‘후지 제록스의 판매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지 그래.

프린트 자체보다 소모품인 잉크나 종이 등 판매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랄까.

“볼 조인트라 그럴듯하구먼. 그거는 확실히 따로 수입하는 거 외에 방법 없지. 그건 국내에서 손대기가 어려우니까.”

“가격이 좀 돼서 밀수품도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불량률도 많고요.”

그러자 박진환이 말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네.”

“무슨 문제요?

“볼 조인트는 현실적으로 우리 기술력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거지. 솔직히 말하면 아직 우리 기술자들이 그 정도 실력은 안 돼.”

“굳이 저희가 기술을 자력으로 개발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일단 기술을 보유한 업체에서 도입하는 방법을 택해야죠.”

“자네 말은 라이센스 생산을 하겠다는 건가?”

“그래도 남지 않겠습니까? 일본 도요타에서 만드는 해외 수출용 자동차의 볼 조인트는 일본 중앙 자공에서 만들고 있다는군요.”

“일본 중앙 자공에서 뭐가 이쁘다고 우리랑 협업을 하겠나?”

“상황이 일반적이라면 그렇겠지만 일본도 한국 시장에 관심이 많아요. 경제가 성장한 만큼 저쪽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말입니다.”

당시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통해서 대내외에 위상을 과시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생각이었다. 올림픽의 중요성과 경제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늘어나기 시작했었지만 60년대인 당시에는 이만한 홍보처가 또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빛이 있으면 명암도 있는 법.

경제 수준이 급성장하면서 평균 임금도 상승했고 기술력은 급성장했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눈높이도 높아지면서 자연히 기업에는 부담으로 돌아온 것이다.

“일본 중앙 자공도 해외 진출 욕구가 없지 않을 겁니다. 일본 내 제작비 단가가 점점 상승하고 있으니까요. 한일 기본 조약으로 일본인이 경영하는 기업도 국내 투자할 수 있게 되었지 않습니까? 지금이 호기예요”

“흐음. 자신은 있고?”

“없으면 시작했겠습니까?”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중앙 자공에서 만나 줄 리야 없지 않겠나?”

“그거야 일본서 알고 지내던 로비스트가 있습니다. 마침 천경물산 일과 관련해 이번에 일본 공작 기계 수출 진흥회에서 초청장이 왔으니 그 타이밍을 노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오 그래. 그거 좋구만.”

며칠 후, 대일금속 회장인 나연채를 단장으로 하는 시찰단이 출발할 때 강태준도 간신히 말석에 낄 수 있었다.

“요새 해외 나가는 게 많이 까다로워졌는데 비자 발급을 빨리해 줘서 다행이네요.”

“그러게. 담당 인력부터 충원해야 할 텐데 말이야.”

“그런데 해가 갈수록 달라지는군요. 일본은.”

“올림픽 덕이지. 이번에 아주 작정하고 투자 중이니까?”

강태준은 여러 번이었지만 이번에 회사 기술자로 동행한 강상구와 박효건은 발달된 일본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곳곳에 서 있는 마천루에 번화가. 산니와 쥬콘 등 전자 기업들의 광고지와 현수막들이 널려 있는 모습이 선진국이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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