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14화 (214/361)

214화 백경 기계 공업사

“백경이 자동차사업을 한다? 그기는 그 풍미인가 뭐시기 만드는 곳 아니던가?”

“그려. 이번에 온천이 뻥뻥 터져서 억수로 돈 많이 벌었나 보더라고. 그래서 카발을 인수했다는구먼. 이번에 인력 개편하면서 사람들 많이 뽑는데 돈도 많이 준다디.”

“별걸 다하는구먼. 그 회사 완전 문어발인데. 그 회사 원래 조미료나 만드는 회사 아니냐?”

“그래서 그런가 그기 회사 밥이 와따시로 맛있다는구만. 그기 사장님이 어묵 장사도 해서 간식도 꼬박꼬박 주고. 명절 때는 굴비도 한 세트로 보내 준다더구먼.”

“거 땡기기는 한디, 어째 신삥회사라 불안한데? 가서 잘할 수 있겄냐?”

“여기보다는 훨 낫지 않겠냐. 엉, 선반이랑 밀링도 새 걸로 갔다 놨단다. 하물며 보루방까지 신삥이면 고장 나서 손 짤라 먹는 일은 적을 거 아닌가. 난 가늘고 길게 가고 싶다.”

“생각해 보니 그렇구먼. 그럼 나도 같이 가 봄세.”

뭐에 홀린 듯 몰려드는 기술자들 무엇보다 최신형 기계가 있다는 게 큰 매력이었다. 아무래도 기술자들 역시 최신 기계를 만져 보고 싶지 않나.

소문이 나자 나름 업계에서 명망 있는 인재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제품에서 몇 가지 기술 특허를 개발하면서 이름을 날린 기능공 정효식과 서면 인근에 자리한 철도 공작창 출신의 최팔구 같이 나름 잔뼈 굵은 기술자들이 지원서를 내니 이제는 월급 사장이 된 최창렬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보게. 기름밥 좀 먹던 놈들이 죄다 왔네. 내가 부를 땐 죽어도 안 오더만.”

“아시는 사람들입니까?”

“알다마다. 나름 이름 있는 놈들인데. 어쭈 근데 월급을 이렇게 뭘 당당하게 써냈어?”

“얼만데요?”

“기존에 받는 금액의 반을 더 달라는데? 이게 무슨 똥배짱이여.”

강태준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 최고 대우라고 했는데 약속은 지켜야죠. 그 돈.”

“참말인가?”

“뭐. 일단은 사람이 있어야 뭘 할 거 아닙니까? 능력 있는 사람들을 우대한다는 소문이 나야 인재가 몰려들 거 아닙니까.”

“알았네. 근데 그러면 진환이보다 더 받는 인원도 나올 텐데.”

“박형도 올려 줘야죠. 나름 개국공신인데. 저 그렇게 경우 없는 사람 아닙니다.”

“그러면 뭐부터 생산하나 우리?”

“일단 핀 종류부터 가지요. 아무래도 그쪽이 좀 만만하지 않겠습니까?”

“허긴. 원래 그쪽을 잘 만들긴 했으니. 굳이 어렵게 바꿀 필요는 없겠지.”

샤클핀이나 킹핀, 스프링, 차축 등 큰 부품을 연결하는 제품인 만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최창렬이었다. 그런데 작업 당일 강태준은 두툼한 책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아니. 이게 뭐시당까? 강 사장?”

“작업절차 메뉴얼과 제작 설계도입니다. 이제부터 모든 제작품은 설계도상 허용 공차 이내로 제작 가공해야 합니다. 제가 제품을 살펴봤는데 도면도 보지 않고 감으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래도 아무래도 예시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그럼 뭐 이런 종이 쪼가리만 보고 만들기엔 좀.”

수긍은 하면서도 영 맘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에 춘삼이가 물건을 가지고 왔다.

끙끙거리며 가져온 포대 안에서 쇳덩이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박진환이 물었다.

“그럴 줄 알고 만들어 왔지요. 특별히 제작한 샘플이고 지금 20mm에 길이 150mm로 표준화 허용 공차는 ±1/100mm 이내로 맞춥니다. 불량품은 모두 폐기처리 합니다.”

“깐깐하구만. 그래 그래서 물량 못 맞추면 어쩌려고?”

“그럼 뭐……. 야근해야죠?”

“니미……. 말이 쉽구먼 그래.”

“처음에만 힘들지, 이렇게 작업하면 나중에는 오히려 익숙해질 겁니다.”

적당한 크기로 절단된 철봉을 선반으로 가공하는 방식이었다. 박진환과 연구원들은 똑같은 크기의 샘플을 가지고 버니어켈리퍼스를 들고 실물 모양을 측정해 가며 가공 방법 연구에 매진했다.

직급 면에서도 개편이 있었다. 부사장으로 내려앉은 최창렬은 영업 관리, 공장장 박진환은 제작 관리, 행정과 기획 업무는 수산대 어로학과 후배 강상구 총무 부장, 그리고 새로 입사한 기능장 정효식과 최팔구는 현장 기술자 중 주축이 되었다.

출근은 오전 8시, 퇴근은 오후 6시였지만 작업 특성상 연장근무가 잦았다.

물론 강요는 전혀 아니었다.

추가 작업 수당을 받기 위해 너도나도 야근과 일요일 휴일 근무에도 들어간 것이다.

부서 간 경쟁을 붙이니 다들 자존심상 대결 구도가 된 것이다.

‘아무래도 외부인들한테 밀릴 수야 없으니.’

굴러온 돌들과 경쟁하게 된 박진환도 역시 자존심상 실적에서 밀릴 수 없었기에 자발적으로 모범을 보였다. 작업이 안정화되자 강태준은 폭탄선언을 했다.

“지금부터 거래처와의 할인 결제 관행은 없습니다.”

“할인 결제를 안 하겠다면 그냥 현금 결제 하겠다는 소리요? 강 사장?”

“지급금은 최대한 늦게 주고 수금은 최대한 빨리 받는 방식으로는 시장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아마 업체들도 말은 없었지 불만이 많을 겁니다.”

지급금의 일부를 저당 잡는 결제 관행이 바로 할인 결제였다.

예를 들어 100원을 결제하게 생긴 상황이라면 상대방에게 80프로만 결제해 주고 다음 거래 때 대금에 얹은 금액으로 할인 결제를 했다.

일시적으로 투자 여력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고 거래 업체가 도망갈 때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최창렬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봐. 강 사장이 이쪽 놈들이 얼마나 양아치인지 몰라서 그래. 거래처가 한눈팔 수도 있지 않나. 돈 떼먹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도망갈 놈은 어차피 도망갑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걸러 내는 게 낫지요. 게다가 최 부사장님께서 지금까지 해 온 가닥이 있잖습니까?”

“글치만…….”

그 말에 광필이도 수긍했다.

“뭐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그러셔. 도망가면 제가 지옥까지 끝까지 쫓아가서 잡아 올 테니 걱정하지 마십쇼.”

“거참. 이참에 거래처랑 관계도 개선하면서 저희 지분도 늘려 보지요.”

그러던 사이 곧 정부에서는 수출 전환업체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여기 경망공업, 대일금속, 오성전기, 협성공작소, 천진자동차 등이 자동차 부품 사업에 돌입했다.

때마침 상공부에서는 그해 12월 30일 자동차공업 협동조합을 자동차 부품 수출검사 기관으로 지정했다. 조합 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아 검사필증을 받은 제품에만 수출 통관 절차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덕분에 카발자동차가 포함된 한국 자동차 공업 협동조합도 몹시 바빠졌다.

* * *

화륵!~

공장의 일과는 가열로에 불을 붙이면서 시작된다.

“온도는? 충분히 달궈졌나?”

“적당합니다. 바로 작업 시작해도 됩니다. 여기 이번에 작업할 물량입니다.”

트럭 두 대에 가득 실린 재료를 본 천대광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헐 기차 차축이구만. 능력 좋네, 이건 또 어디서 구했나?”

“저희 부친께서 예전에 철도 쪽 투자했다 쫄딱했는데, 그거 정리하면서 보니까 아직 서류가 남아 있지 뭡니까. 정부 쪽으로 원래 요구했던 대금을 요구했더니 반환금 돌려주긴 그렇고 대신 현물로 주겠다네요. 이번에 노후된 철도차량 차축을 전면 교체하면서 뜯어서 주겠다나. 그래서 이번에 샤프트 제품은 이걸로 충당하기로 했습니다.”

“하 자식들 겁나 쩨쩨하게 구는구먼?”

“어차피 돈으로 돌려받기 힘들 거 같아서 그냥 타협했지요. 이참에 철도청에 등록 업체로 만들어 두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샤프트 제작용으로 딱이라 추가로 품이 적게 들겠군요. 대충 녹 제거하고, 재가공하면 되겠네요.”

가로세로 11㎝ 정도 되는 쇠 막대를 일정한 길이로 절단해 가열로에 집어넣은 다음 본격적인 단조 공정에 들어간 것이다. 프레스기를 발로 누르고 쇠막대를 집게로 요리조리 돌려가며 성형을 했다.

샤프트 머리를 틀에 넣어 찍어 내면 붕어빵처럼 가공된 제품이 나왔다.

“이 자식아 박자 안 맞춰?”

“예예. 기계가 너무 빨라서 속도 조절이 안 됩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작업자들은 빠르게 새 환경에 적응했다. 샤프트 가공법은 선반을 이용해 기계 가공 후 표면을 깨끗하게 다듬은 뒤 연필 깎기처럼 나사산을 내는 방식이다. 샤프트가 완성되면 양끝단 중앙에 상표를 박아 넣었는데 상당량은 이스즈라는 일본 브랜드가 부착되었다. 그걸 본 강태준이 꺼림칙한 어조로 물었다.

“이거 그냥 이렇게 박아 넣어도 됩니까?”

“그게 업체에서 요구한 거야. 중간 마진이라도 더 챙기려는 거지. 미스즈도 알면서 용인하고 있다고.”

“아, 이런 거 좀 찜찜한데요. 지들이 좀 하던가?”

“그냥 모르는 척해 줘 어차피 짜고 치는 고스톱인데. 어차피 알아볼 놈들은 알아보니 걱정 말라고.”

그러고 보니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직접 유통하는 샤프트에는 미쓰시오 제품과 유사하게 다이아몬드 대신 붉은 삼각형 세 개를 파낸 브랜드가 붙여져 나온 것이다. 차량용 샤프트는 선반에서 모양을 다듬고 도금을 거쳐서 시장에 공급되었고 엑슬 샤프트는 새끼줄에 포장되어 자동차 정비소로 팔려 나갔는데 생각 이상으로 초기 판매량이 좋았다.

“역시 품질이 좋으니, 시장에 쉽게 적응하는군요.”

“짬이 어디 가나. 나 정도 되는 사람이 만드니까 괜찮은 거야.”

박진환을 포함한 자동차 정비인력들이 업력만 해도 십수 년이 넘는 베테랑들인 만큼 제작 가공에서의 노하우로 치면 여느 유명회사 못지않았다.

심지어 마감 실력이 엄청나서 품질이 원조보다 좋은 경우도 많았다.

강태준으로서는 좋은 게 좋은 일이었다.

“부품업체들과는 어떻습니까? 반응이 그럴듯합니까?”

“채권 회수하고 일단 현금으로 주기로 한다니까 처음엔 안 믿더구만. 2할 떼먹는 게 관행이 되어서 그런가.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더구먼. 서로 부도 날 리스크가 없어져서 사람들이 몰려들더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자네 말대로 할 걸 그랬어.”

“이쪽에서 양보하는 게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원래 신용을 쌓으려면 감수해야죠. 그게 다 무형적인 자산입니다.”

워낙 현금이 부족한 시대다 보니 어음 결제가 생활화되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강태준은 달랐다.

백화점운영과 MSG 조미료나 설탕 같은 생활필수품은 전부 현금 장사 아닌가.

당연하겠지만 캐쉬플로우가 좋아 실적이 돋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금 결제 시 현금 결제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방식으로든 입금이 늦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강태준이 방문할 때면 부품 업체에서는 버선발로 나와 맞았다.

“오늘도 제작품이 들어왔습니다.”

“거참 빨리도 왔구먼.”

“근데 대금 정산이 조금 늦을 거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아무래도 대금 결제일이 한 달에 두 번이라, 경리가 좀 실수를 해서 다음 달 초로 이월되었는데요.”

“걱정 마시게나. 강 사장과 거래하는데 차용증이 따로 필요 없지. 거 싸게 가져가!”

“감사합니다.”

그러자 종종걸음으로 온 여비서가 슬쩍 커피를 내려놓았다.

“매번 고생하십니다. 이것도 마시고 가세요.”

“아 고맙습니다.”

“글구. 이거도. 홍삼인데 몸보신에 좋대요.”

“인마. 내껀 없고?”

“아저씨는 그냥 물이나 쳐드시고 가세요.”

“허…… 사람 차별이야?”

“어차피 살도 빼야 한다면서요. 영양 과다인데 또 몰 욕심부리고 그래 그쪽은 좀 굶어도 되지.”

매정하게 떠나는 여자는 최창렬과 20년 지기 친구인 부품업체 사장 딸이었다.

몸에 좋은 거라며 홍삼 액기스까지 따로 챙겨 주었던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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