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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212화 (212/361)

212화 카발자동차 인수

묵묵히 첨잔하던 강태준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짝이 반제품을 팔아서 오래 버틸 수 없을 텐데? 설마 나 때문인가?’

신나라가 지금까지 살아남다니 역사와 다르다. 마진으로 정치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세운 회사가 외환 사정이 나빠진 지금에도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가 있나.

그렇다면 일본에서의 협상에서 추가로 정치 자금을 얻어 낸 것이 수명을 연장시킨 모양일지도 몰랐다.

맷집으로 근근이 버티는 중이지만 카발이 이대로 폭삭 망한다면 한국에서 자동차 기술 자립의 꿈은 한동안 멀어지게 된다.

실제로도 카발이 엎어지자 한국 자동차 산업은 기술 불모지가 되어 90년대 초중반까지 일본과 해외에 기술 의존의 길을 걷게 되었던 역사가 있었다.

“나보다도 사실 기술자들이 더 문제야. 다들 나이 먹고 재취업이 쉬운 것도 아니고.”

“어이구 걱정도 팔잡니다. 형님, 걱정이나 하시죠. 다들 제 앞가림은 하니.”

“갈 곳은 있고?”

“어디 제 한 몸 추스르지 못하겠습니까? 저도 나름 이 바닥에서 잔뼈 굵은 몸입니다. 다른 애들이 걱정돼서 문제지.”

박진환의 대꾸에 강태준이 술을 한가득 다시 따라 주었다.

“생각이 많으시나 본데, 사정이 그렇다면 적당한 사람에게 사업을 양도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게 말이 쉽나 누가 적임자 없을까 수소문해 보았네만 마땅한 업체가 없더군. 일단 정부에서 규제를 때린다고 소문이 나서 말이야. 게다가 빚더미뿐인 회사를 누가 인수하겠나 그래?”

“그래도 찾아보면 있지 않겠습니까? 적임자를 바로 눈앞에 두고서 그러십니까?

그 순간 세 명의 시선이 강태준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자네? 그거 진심인가?”

“네. 뭐 양도하신다면, 한번 살려 보고 싶습니다. 제 인생의 첫 직장이지 않았습니까?”

“정말 그럴 여력은 있고?”

“제가 빈말하는 거 봤습니까?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선입금도 돌려주시기 어려울 거 같지만……. 그래도 양도 조건이랑, 부채 현황 등 서류 보내 주시죠. 검토해 보겠습니다.”

“고맙네. 고마워!!!”

다음 날, 강태준은 회의를 소집했다. 폭탄선언에 놀란 김광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카발차를 저희가 인수한다고요?”

“그래. 카발차 하면 기술로는 알아주는 곳이잖아. 부품 국산화율도 높고 엔진, 타이어, 전조등, 바디도 만든 회사니 꽤 잘 팔릴 거 같은데.”

“하지만 형님, 카발은 아직 품질 문제로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번에 유리도 그래요. 강화유리나 이중접합유리가 아닌 일반 유리를 써서 비포장도로에서 깨지는 일이 잦다는군요.”

“그런 문제는 사소한 거지. 신한글라스에 주문해서 해결할 수 있잖아.”

“예를 들어서 하는 이야기지요. 그래도 굳이 카발의 빚까지 떠안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그냥 망한 다음에 사람만 뽑으면 그게 더 싸게 먹히지 않습니까?”

“그때는 인력이 다 뿔뿔이 흩어져서 의미 없어. 노하우와 기술자는 키우기 어려우니까. 장기적 관점에서는 유리해.”

강태준의 마음이 굳혀진 것을 깨달은 춘삼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거, 맞는 말씀이십니다만 저희가 인수할 자금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백화점도 아직 갚을 돈이 한참 남았고, 온천 쪽도 돈 들어갈 곳만 넘치고.”

“그래? 노 이사 유휴자금이 얼마나 있나?”

노기철이 대충 액수를 확인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선입금을 땅겨야 3천인데 그 이상은 어려울 거 같은데요. 게다가 지금 벌인 사업이 너무 많아요.”

“그러면 사업을 하나 정리하면 되지.”

“뭘 말입니까?”

“면도기 말이야. 그거 팔면 되잖나?”

“예? 면도기 사업은 지금껏 계속 흑자 아닙니까. 그런 알짜 자금원을 팔아먹겠다고요?”

“면도기 사업은 성장 한계야. 솔직히 지금보다 점유율을 높이는 건 물리적으로 어려우니 젤 비쌀 때 팔아먹어야지.”

소비자일 때는 잘 몰랐지만 면도기 사업이란 굉장히 품이 많이 드는 사업이다.

각도 하나라도 엇나가거나 혹은 면도대에 스크래치가 생기면 제품을 그냥 버려야 할 정도.

강태준으로서는 나날이 높아지는 연구 개발 비용과 고공 행진하는 철값에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럼 어디에다가 파시려고요?”

“어디든 상관없네. 현찰로 바로 인수 가능한 업체에 팔아야지. 일단 군납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봐.”

그러자 강태준이 사업을 정리한다는 소식을 접한 천대광 영감이 부리나케 달려와 항의했다.

“강 사장 어떻게 이럴 수 있소? 면도기 사업을 정리한다니 그게 뭔 소리요? 나한테 한마디도 없이 그게 진짜요?”

“아니, 곧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빠르시군요. 그래서 화가 나셨습니까?”

“당연하지! 납득이 안 가서 하는 말이요. 잘만 되는 사업을 팔려는 이유가 뭐요?”

콧김을 뿜으며 씩씩대는 것이 그냥은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그러자 강태준이 미리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달랬다.

“자자, 흥분하지 말고 이것부터 보십시오.”

“이게 뭔가?”

“몇 년 전 시크에서 개발된 테프론으로 코딩된 스테인리스 날입니다. 3년 전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더군요. 이 제품을 사용 시 마찰을 감소시켜 혁명적인 효과를 낸다는군요.”

“이건…… 우리도 만들 수 있네.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암요. 알죠. 자재를 어떻게 구하느냐죠. 날을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려면 단가가 올라가겠죠. 시크에서는 여기에 얇은 크롬 막을 면도날에 접착시켜 내구성을 올리려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군요. 그리고 사실 진짜 경쟁자는 요놈입니다.”

강태준이 내려놓은 것은 기존의 제품과 차별화된 면도기였다.

“이건 뭔가? 모양이 약간 다른데?”

“2중 날 면도기입니다. 뷜레트에서 개발 중인데 안전면도기의 변형이죠.”

강태준이 슬쩍 앞의 버튼 같은 것을 누르자 날이 분리해서 나왔다. 설마 날이 그렇게 쉽게 분리될 거라 예상하지 못한 천 영감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아니, 어떻게 한 건가? 이게.”

“분리형 카트리지입니다. 편의성이 높은 2중 날 카트리지 면도기가 나온다는데 이거 천 영감님이 만드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천 영감은 면도기 제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물건을 요리조리 살펴봤지만 워낙 고난도의 기술이 적용되어서일까 쉽사리 따라 만들 자신이 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말문이 막혔던 천 영감이 고개를 흔들며 반박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이놈들이 들어오려면 아직 멀지 않았나. 정부에서도 국내 시장을 뺏기는 걸 좌시하지 않을 테고 말이야. 문을 걸어 잠그고 버티는 동안 우리도 기술 개발을 하면 되지 않나?”

“상대는 공룡입니다. 뷜레트나 젠킨슨 소드 같은 전통의 업체와 경쟁하려면 막대한 기술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데 저희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일단 기술 격차를 줄이는 건 고사하고 점유율 유지만 해도 선방하는 거죠. 제가 보기에는 확장은커녕 기존 시장을 지키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대답이 궁색해진 천 영감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으음. 그렇긴 하지만.”

“면도기란 게 사실 보기에는 작고 별로 복잡하지 않지만 지금도 공정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경쟁이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환경이 좋아질 일은 없어요.”

추후 등장하는 3중 날과 5중 날, 굴절 기능을 적용한 애트라와 윤활 밴드 등등 크기는 작지만 적용되는 기술과 공정이 높아지는 것이 면도기 사업의 특성이다.

‘거기에 날 품질 경쟁까지 포함하면 답이 없지;

이쪽에 투자하는 건 치킨게임이다. 실제로 수입 업체가 들어온 후에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한국 면도기 업체가 부활에 성공한 것은 들어 6중 날을 개발한 뒤였다.

논리에 풀이 죽은 천 영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알겠네……. 그럼. 내 자네 말을 따르겠네. 그럼 우리 부서는 어떻게 되는 건가. 애들은?”

“걱정 마십쇼. 미세 가공 기술을 이용할 분야는 많으니까요. 우리 천 영감님 놀리기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

“네. 품질에 관해서는 믿을 분이 달리 없지 않겠습니까. 앞으로도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허허. 말본새하고는. 그래, 나만 믿으시게나.”

천 영감이 순순히 물러나자 다른 반대의 목소리는 없었다.

그렇게 강태준의 말대로 인수 업체를 수소문하던 중 춘삼이가 소식을 전했다.

“매수자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 벌써? 빠르구만.”

“예. 그런데 저희가 이미 아는 사람이네요?”

“누구?”

“백 영감님 말입니다. 그쪽에서 사고 싶다는데 제물포 쪽에서 한번 보자는데요.”

“제물포? 그 양반은 언제 거기 갔나?”

약속이 정해진 곳은 대서원이라고 불리는 어느 한 중식당이었다. 당산역과 영등포구청역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예전부터 맛집으로 명성을 떨쳤다. 붉은 금실로 된 줄이 늘어져 있었다.

“신기하군요. 여기는? 분위기가 묘하네요.”

“여기는 보통 곳이 아니지. 소위 말해서 근본이라는 곳이랄까?”

“네?”

“네. 무협에 소림파, 화산파가 있듯이 4대 문파라는 곳이 있지. 여기도 나름 요리 업계에서는 대선배들이 모인 곳일세.”

“오 그렇습니까? 그건 몰랐습니다.”

실없는 소리를 하며 실내로 들어가자 향긋한 차 냄새가 풍겼다.

차파오를 입은 종업원의 뒤를 따라 사립문을 열자 백 영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왔나?”

“영감님. 아직 정정하시군요.”

“간만이군. 서울 아서원에서 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그쪽은 경영인들이나 여당 인사들 땜시 눈치가 보여서 말일세. 비밀회합이라도 열렸다 연루되는 건 사양이라서 말이야.”

잔에는 금이 위에 하나 아래에 두 개로 ‘?’라는 한자가 적혀져 있었다.

“이거 특이하군요.”

“신이라고 읽는데 글자 그대로 금이 많다는 ‘미의 재물이 흥성하다’라는 뜻이지요. 중국에서는 부의 상징으로 통하는 한자야.”

“그렇습니까?”

“그보다 뭘 먹고 싶나?”

“아무거나요. 저보다 미식가 아니십니까? 게다가 여기는 처음이니까요.”

그 말이 기분 좋았던지 백 영감이 클클거렸다.

“여기는 오향장육이 최고지. 이보게!”

“예! 부르셨습니까?”

“늘 먹던 대로 내와 주게. 오늘 제일 신선한 메뉴로.”

“옙. 대령하겠습니다.”

잠시 후 곰 발바닥, 노루 꽁지 같은 진귀한 재료를 넣은 음식들이 줄지어 나왔다. 다소 순화된 맛이지만 중식도로 숭숭 썰어 넣은 오이의 아삭한 식감에 부드러운 고기가 어우러져 씹는 맛이 그만, 고추기름을 머금은 대파채와 마늘 다짐, 고수와의 어울림에 미소가 지어졌다. 절로 깐뻬이를 외칠 정도의 맛에 까다로운 강태준도 만족했다.

“이런 것도 맛있군요.”

“역시 돼지고기에는 빼갈이 제맛이지. 여기는 옛날 전통방식이라 좋아. 추억을 되새기는 맛이랄까.”

“근데 이렇게 홀을 다 쓰셔도 되는 겁니까?”

“걱정 말게. 여기는 내가 전세 낸 곳이니까. 여기 주방장인 노인네, 마작을 참 좋아했거든. 점심때 바쁜 거 대충 끝나면 가서 마작 한 바퀴 하는데 돈 따면 흥흥거리는 녀석이었거든. 한 번 거하게 잃은 뒤로는 찍소리도 못하지.”

두루 흠잡을 데 없는 정갈한 것이 아주 기똥차다.

부드러운 맛의 누룽지탕을 보니 설유하가 생각나서 수저를 멈추었다.

미국에서 돌아오면 꼭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든 강태준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다 배를 채운 강태준이 본론을 꺼냈다.

“근데 백 영감님께서 골동품 말고 사업에 관심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럴 리가? 내가 아니라. 사실 여기 이 양반이 사려는 걸세.”

“누구요?”

“나일세. 이거 초면인데 실례하는군.”

뒤에 있던 발을 걷어 내자 수수한 옷차림의 여자가 한 명 나타났다.

소소한 옷차림이었지만 뭐라 말할 수 없는 우아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중년의 부인이었다.

강태준은 정말 소스라치게 놀랬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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