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북항 재개발 단지
북항 재개발 단지. 사람들의 행동은 분주했다.
시추장비를 찍는 기자들이 독촉하듯 작업자들을 몰아붙였다.
“다된 거 같은데. 물은 언제 나옵니까?”
“곧이요. 자자, 모두 물러나십시오!!”
우웅거리던 드릴이 작동을 멈추자, 울컥 물줄기가 솟아오르더니 김이 나는 뜨듯한 물이 튀어오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오오!”
기자들은 터져 나온 온천수를 앞에 두고 연신 셔터를 눌러 대었다.
김삼현이 약속했던 대로 강태준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이야, 역사적인 순간이군요. 이번이 세 번째 성공인데요. 북항에서의 온천 개발이라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운이 좋았습니다. 온천 개발에 밤낮으로 고생하시면서 노하우를 쌓아 오신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성과가 있는 것이죠. 부여 쪽에서 시행착오를 하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 성공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온천 개발로 시로부터 독점계약을 따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온천 개발과 관련해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
“그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니지만 여기는 애초에 난민들의 양보로 정부 수용된 지역이란 점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따라서 일부 시민들을 위한 친수공간을 조성하고 온천수를 활용한 시설들을 개발하는 게 순리라고 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뉴스가 흘러나왔다.
-백경 개발의 주도 아래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 지역 3곳에서 잇따라 대규모 해수 온천이 발견되면서 경기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온천수 개발이 가능해짐에 따라 북항 재개발 사업 지역의 투자가치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원큐에 촬영이 끝나고 나자 마이크를 거둔 여기자가 강태준에 악수를 청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강 사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거, 영 익숙해지지 않네요. 시선 처리가 잘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엄청 자연스러우시던데요. 물 튀어나오는 연출도 아주 좋았고요. 화면 잘 받으실 거 같습니다.”
“방영 일자는 언젭니까?”
“아마도 편집을 거쳐야 하니 한 달쯤 뒤가 될 거 같습니다.”
내심 홀가분해진 강태준이 최 교수를 돌아보며 공을 치하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최 교수님, 이번엔 추가 온천공 개발에 노고가 크셨습니다.”
“어인 말씀을. 당연히 할 일을 해야 했을 뿐이죠.”
“수고 많았습니다. 자자, 여기는 보너스입니다. 회식이라도 하십쇼.”
“아이구, 뭘 이런걸.”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넙죽 봉투를 챙기는 최 교수에 광필이가 슬쩍 끼어들었다.
“거참, 저 양반도 겨우 체면치레했군요.”
“그러게 저번에 체면 구기고 아주 이를 갈았는데 말이야. 그래도 다행이지 그래.”
이상리가 연타로 잭팟을 터트리자 한국대 연구팀은 그야말로 똥 마려운 강아지 분위기였다. 일개 풍수쟁이 따위에 실적으로 밀리다니.
한국 최고의 지질학자를 자부했던 최 교수의 자부심에 스크레치를 낸 것이다.
그런 경쟁심이 이런 엄청난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인터뷰를 마친 박형관이 고개를 흔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구 힘드네요. 땅 파기보다 기자들 상대가 더 힘듭니다.”
“그것도 다 한때지요. 그보다 수량은 좀 어떻습니까?”
“”와따. 진짜 콸콸 나오는구만요. 양수기가 제때 작동을 해 줘 다행입니다. 다 물바다가 될 뻔했지요.”
강태준이 물었다.
“온도는 괜찮습니까?”
“29도입니다. 뜨근뜨끈한 게 지지기에 딱 좋죠. 이거 손대는 것마다 터지니, 신의 손이 따로 없네요. 이러다 아주 전직하는 거 아닙니까? 타짜로 말입니다.”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근데 손모가지 잘라먹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지요. 하하.”
분위기가 밝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부산항 북항 3부두 입구에 이어 두 차례 더 온천수가 뿜어져 나왔다. 부산항의 온천은 수온과 수질이 뛰어났고 하루 양수량도 1,700t이나 되었기에 스파 단지를 조성해도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인터뷰를 끝낸 강태준이 뒤를 보니 다음 인터뷰어로 지목된 진중보가 마치 전문가인 것처럼 열띤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북항의 온천 수질 성분은 염화 물광천 온천으로써 근육통, 신경통, 동통 완화에 효과가 있으며 특히 마그네슘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아토피 등 피부질환에 의료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모든 것에 관여했다는 등 거들먹거리는 폼에 광필이가 쯧쯧거렸다.
“저거 저거. 진짜 안면에 철판 깔았구먼요. 지가 뭐 한 게 있다고.”
“하하. 냅 둬. 저럴 때 말고 낙이 뭐 있겠나. 간만에 어깨 뽕 좀 넣겠다는데.”
“꼭 지가 한 것처럼 저러니까 그러죠.”
“아는 사람은 다 알아. 뭐 홍보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니지 않나. 항만과에서 알아서 장작 넣어 주면 좋지. 근데 부여는 요새 시끄럽다며?”
“옙. 아닌 게 아니라. 투기꾼들이 몰려와서 엄청 골치 아프답니다. 땅값이 오를까 봐 미리 주차장부터 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군요.”
강태준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아니 쓸데없이 주차장을 굳이 왜?”
“혹 모르잖습니까. 일단 알박기라도 하려나 보죠. 나중에 건물이라도 올릴 심산으로.”
“바보들 아닌가. 온천 사우나가 그렇게 쉽게 허가가 나지 않을 텐데. 나중에 일반 상업 건물로 설계를 바꾸기도 까다롭고 말이야.”
“돈에 눈이 멀었는데 애초에 그런 게 보이겠습니까? 수용당한다고 해도 그냥 살 걸요.”
강태준이 온양온천 주식회사에 양도 계약을 맺고 온천을 공식적으로 인수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부여 일대는 개발 호재로 들썩였다.
역시 부동산 투기가 국룰인가. 호재가 생기면 부화뇌동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벌써부터 움직이다니. 미리 땅을 매입해 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웃기는구먼. 그보다 직영 허가는?”
“곧 나올 겁니다. 안 나오면 담당자 모가지 매달아야죠. 3,000여 톤의 물이 쏟아져 나왔으니 차고 넘치지 않겠습니까?”
“잘 되었군. 건설비는 이걸로 반까이 하겠어. 용당 목재 쪽 지원금부터 갚아야지.”
“그쪽이 더 난리던데요. 신바람이 나서 투자를 늘리겠다고.”
“엉? 그래? 온천장 본관을 건평 2백 평에서 300평으로 늘리고 가족탕 대실 매점, 대휴게실은 물론 온천 주위의 소구 약 5만 평에 관상수를 식재할 예정이랍니다.”
“그거 듣던 중 고마운 일이구만.”
지분이야 정해져 있다지만 이렇게 자발적으로 투자한다는데 나쁠 것은 없지 않나.
그러자 강태준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쏠렸다.
“그보다 박진환 이 형님은 이렇게 말이 없나? 트럭 10대 주문 들어간 지가 언젠데 최소한 언제쯤 완성되는지는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게요. 왜 이렇게 답이 없는지? 제가 한번 확인해 볼까요?”
“아니, 그건 예의가 아니지. 바람도 쐴 겸 직접 찾아가 봐야겠군.”
그간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 강태준이 곧바로 카발자동차로 향했다.
가져갈 선물을 한 아름 안고, 강태준이 국제시장으로 향했다. 본사는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여기쯤인가?”
“변한 게 없군요. 여긴.”
그간 세월이 흘렀지만 분위기가 여전하다.
안에서 풍기는 비릿한 쇠 냄새에 반쯤 푹 곤 듯한 기름 냄새가 귀향을 알리는 듯 햇살.
한창 떠들썩해야 할 공장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왜케 썰렁하나 이거?”
“글쎄요. 잘못 왔나?”
여기저기 널려 있는 드라이버, 스페어와 렌치들. 아직 작업에 들어가지 않은 드럼통 몇 개가 굴러다니고 있다. 아까 경비도 없던 걸로 봐서 뭔가 일이 있는 걸까. 의문도 잠시 주위를 둘러본 강태준에게 누군가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앗 강태준 사장님?”
“자네는?”
저번에 방문했을 때 강태중에게 예전에 기술을 사사받았던 직원 아닌가. 상대도 그걸 아는지 아는 척을 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번에는 실례했습니다.”
“실례까지야. 반갑군. 이름이……?”
“신재일이라 합니다. 이제 과장입니다.”
“과장이라 많이 컸네. 근데 다들 어디 있나.”
“그게 휴가 갔습니다.”
“휴가? 이 시점에?”
“그게? 좀…….”
난감한지 말끝을 흐리는 신재일을 구원해 준 것은 박진환이었다
술을 한잔했는지 약간 코끝이 붉게 변한 모습에 강태준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뭡니까?”
“잔소리는 삼가게나. 채권자들이 한바탕하고 가서 정신이 없거든. 작업자들도 다 휴가 갔어.”
“어찌 된 영문입니까?”
“뭐 돈 때문이지 회사가 급여가 밀린 게 몇 달이거든. 자발적으로 야근한다는 걸 애들 휴가도 겨우 달래서 보냈다.”
비척비척 걸어온 박진환이 자연스럽게 사무실 의자에 다리를 올렸다.
그걸 본 신재일이 난처해하자 박진환이 손을 까닥였다.
“뭐 우리끼린데 내외하나. 자 들어와서 자네도 한잔하든지?”
“여기서 이래도 됩니까?”
“뭔 상관인가. 어차피 일할 사람도 없는데. 우리 강 사장 술 세지?”
강태준이 말없이 잔을 받아 들이켰다. 미지근한 것이 영 맛이 없었다.
“크으…… 쓰구만. 이게 인생의 맛이지.”
“상태가 말이 아니군요. 최창렬 사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지금 돈 빌리러 갔지. 단기로 막아야 할 돈이 3천이거든. 안 그러면 파산이야.”
“뭔 일 있습니까?”
“윌리스사에서 지프 엔진 기술을 도용당했다고 소송을 걸었어. 덕분에 완전 대가리 깨지게 생겼지 뭐야.”
“소송이요? 아니 분명 허락을 받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몇 년 전에 미군 사령부랑 이야기도 잘 된 거 같은데?”
“그땐 그랬는데 사정이 바뀌었다 통보하더군. 아무래도 일본 이스즈와 제휴한 것이 밉보인 모양이야. 덕분에 정부 보조금도 중단되었고 외자 유치 건의도 반려되어 버렸어. 그래서 지금 아무것도 못 하게 생긴 상황일세.”
사정이 그렇게 안 좋을 줄이야. 그때 먼지를 뒤집어쓴 차 한 대가 안으로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최창렬은 강태준을 보더니 멈칫했다. 신재일이 일어나려 하자 최창렬이 손을 저으며 자리에 걸터앉았다.
“됐네. 예의 차릴 게 있나. 자네도 힘들 텐데. 그보다 결국 왔구먼? 강 사장도?”
그러자 박진환이 옆에 술을 따라 주며 물었다.
“가신 일 어떻게 되었습니까?”
“원종표 공장장,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출세하더니 변했어. 추가 융자도 힘들다는군.”
“나 참…… 너무하네. 그래도 같이 기름밥 먹던 사이에.”
“뭐 어쩌겠나. 지도 눈치를 보느라 머리 아프나 봐. 얼굴이 반쪽이 돼서 솔직히 말도 못 꺼냈네. 정황상 아무래도 신나라 자동차에서 태클을 건 모양이야.”
“신나라요?”
“그래. 이번에 부평공장 설립 후 반제품으로 만든 닛산 블루버드 판매가 시원치 않나 보더구먼. 그래서 그쪽에서 아주 경쟁자를 밟아 놓을 생각인가 보더라고.”
당시 재일참사관이었던 박상태가 부족한 혁명자금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소형자동차의 부품을 수입하여 한국에서 조립 제조하자 한 것이 신나라 자동차의 모태다.
일본 차 차체를 그대대로 수입했던 만큼 처음엔 꽤 호응을 얻었지만 애초부터 특혜를 전제로 세워진 회사인 만큼 운영에 문제가 많았다.
그러다 경쟁사인 카발이 잘 버티자 이번에는 철퇴를 꺼내든 것이다.
“미친 것들이지. 13만 원짜리 차를 25만 원에 팔아먹으려니 탈이 안 날 수 있나? 그것도 보아하니 조립이라면서 완제품 따다 파는 모양이더만. 그러니 수익성이 날 리가 있나.”
“견제구를 날린다고 없던 수요가 생기지는 않을 텐데요?”
“글쎄 말이야. 암튼 윌리스를 움직인 덕분에 라이센스 없이는 물건을 생산할 수 없다고 하더군. 일단 재심사를 청구하긴 했지만 이거 아주 골 때리게 되었어.”
강태준이 슬쩍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실 요량이십니까?”
“할 수 있는 대로 해 봐야지만 모르겠네. 솔직히 말하면 이대로 회사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어. 허허. 이대로는 자동차 업계가 망해 버릴지도 몰라.”
최창렬은 볼살이 빠진 것이 몇 년은 늙어 보였다. 속이 타는지 소주를 원샷으로 들이켰다. 말은 그러려니 했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