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돌팔이가 별건가?
“흠흠……. 여기는 좀 손님 대접이 그렇군요.”
분위기를 눈치챈 이상리가 헛기침을 하자. 강태준이 슬쩍 핀잔을 주었다.
“자자. 뭘 그렇게 뒤에서 쑥덕대나? 손님을 앞에 두고 무안하게. 할 말 있으면 앞에서 나와서 하던가. 인사가 늦었군요. 강태준입니다.”
“이상리라고 합니다. 풍수쟁이를 부르셨다지요?”
마치 도를 닦는 스님처럼 합장하는 행동에 강태준도 마주 합장을 취했다.
“용한 도사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바쁘실 텐데 어려운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땅한 거처도 없이 하릴없이 쏘다니는 사람이 바쁠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그저 부르면 가고 밀어내면 시키면 행할 뿐이니 인연이 닿았을 따름입니다. 근데 이미 선객분들이 많이 계셨군요. 객들께서 이 몸이 많이 불편하신 듯한데…….”
빙그레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는 이상리의 행동에 무안해진 사람들이 눈을 피했다. 강태준이 웃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수맥을 탐사하는 전문회사에 의뢰해 천공할 자리를 잡아 놓긴 했습니다만 지금까지 성과가 없어서요.”
“그렇습니까? 그럼 어디 지적도랑 수맥부터 확인해 볼까요?”
지도를 살핀 이상리가 자리를 골똘히 살피더니 신중한 어조로 끄덕였다.
“열심히는 자료를 모았는데 아무래도 현장을 살펴봐야 할 것 같군요. 맥의 흐름이 뒤죽박죽이라서.”
“아니, 이보시오. 당신 같은 돌팔이가 뭘 안다고…….”
발끈하는 최웅서 교수였지만 강태준이 인상을 쓰자, 곧 입을 다물었다.
“그럼.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전 이걸로 충분합니다.”
이상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맥 탐지용 구리막대기를 들어 보였다.
그에 빈정이 상한 최 교수가 딴지를 걸었다.
“허어, 그깟 걸로 찾을 수 있겠소이까?”
“허허. 경험적으로 입증된 방법입니다. 최신의 비싼 장비도 좋지만 용도에 맞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수맥을 탐사하는 데 인체만큼 민감한 도구는 없지요.”
“자자, 노하우가 있으시겠죠. 일단은 맡겨 봅시다.”
최교수는 탐탁지 않았지만 의뢰인인 강태준이 두둔하고 나서자 어쩔 수 없었다. 구리막대기를 잡은 이상리가 수맥 탐사용 추까지 들고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위치를 살폈다.
“흐음. 수맥이 흐르지 않는 엉뚱한 곳에 천공할 위치를 잡아 놓으셨군요.”
“그래서 꽝입니까?”
“네. 이쪽은 계속 파 봐야 양수량이 안 나옵니다. 아무래도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할 것 같군요. 다음 천공 장소는 어딥니까?”
그날부터 이상리는 캠프에 머물렀다. 하지만 하는 꼴을 보니 영 정이 안 가기는 매한가지였다. 하는 짓이라고는 추 몇 번 던지거나 구리막대기를 여러 번 뒤지는 것이 전부였다.
털털하게 생긴 겉모습과 달리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은 탓에 죽어나는 것은 밑에 사람들이었다. 그저 돈 받고 산천 유람이나 다닐 법한 행동에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허 땡중 새끼. 아주 눌러앉았구먼.”
“저거 걍 해 먹으려는 거 아니여? 걍 호구 하나 물었다는 생각 같은데?”
“그러게 말이여. 언제까지 빈대 붙을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대체 언제까지 꾸물거릴 심산인가? 모두 그 모습을 눈꼴 사납게 여겼지만 이상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에 보다 못한 광필이가 나섰다.
“형님 저 인간 걍 두실 겁니까?”
“왜?”
“아무래도 하는 짓을 보니 그냥 시간만 때우는 것 같고. 뭐 그렇게 까탈스러운지 사람들 원성이 자자합니다.”
“너무 그러지 말아. 한국대 지질조사팀이 자꾸 삽질만 하니 대안이 없어서 데려온 거 아닌가. 일단은 기다려 보자고.”
“하, 일이라도 제대로 해야 되는데. 이대로 가다간 몇 달은 또 허송세월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꼬라지가 영 거시기한 것은 강태준도 마찬가지였다.
합장을 하며 냉면에 얹은 고기를 음미하는 광경이 전혀 수도승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대화가 필요하겠군.’
강태준이 맞은편에 앉아 상대를 가만히 주시했다.
상대가 보든 말든 뻔뻔하기로는 강태준을 당할 도리가 없다.
육수를 깨끗이 비운 이상리가 꺼억 트림을 했다.
“아, 좋다! 맛이 아주 깊군요. 간만에 포식했습니다.”
“안 숙수님 요리가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이시군요.”
심기가 불편한 강태준이 은근하게 운을 떼었다.
“이 도사님, 이제 근 한 달이 되어가는데 이제 좀 성과가 있어야 할 텐데요. 그래서 수맥을 찾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거야 알 수 없습니다. 이 지역이 좀 넓은 게 아니라서.”
이쑤시개를 쑤시며 약간 거들먹거리는 폼이 니가 어쩔 건데 하는 티가 난다. 상대가 광필이었으면 이거 정신 못 차렸군 하며 따귀를 올려 줬을 싸가지에 강태준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쯤 되자 강태준도 강하게 나갈 필요성을 느꼈다.
“도사님, 이런 말은 실례인 줄 압니다만 이 팀을 유지하는 데만 인건비랑 경비가 줄줄 나갑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다 보면 피치 못한 사정으로 험한 사람들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 일에 높으신 분들이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죠. 엮인 이권이며 돈이며 뭐 아시지 않습니까? 기대가 클수록 실망할 때 배신감이 큰 법이 아니겠습니까?”
발끈하려던 이상리는 서늘한 기운에 입을 다물었다.
특히 도끼눈을 뜬 광필이가 살기가 등등한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잡아먹을 듯한 기세에 위축된 이상리가 눈치를 보자 강태준이 지갑을 꺼내 돈을 내밀었다.
“에?”
“이건 추가 사례금입니다. 아무래도 성의가 부족했던 것 같아서.”
“아니 이러실 필요까지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이상리에 강태준이 돈을 강제로 쥐여 주며 손을 잡았다.
“도사님. 저희는 이번 일에 사활을 걸고 있어서요. 근시일 내에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매우 곤란해집니다. 만약 일이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굉장히 불미스러운 일이겠죠. 이해하십니까?”
“예. 예예. 이해합니다.”
“여기에 목 걸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극단에 몰리면 허튼 행동을 하기 마련인데 저로서는 통제가 안 될까 걱정이 되네요.”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은 필요 없고 결과가 필요합니다. 온천공 찾을 수 있겠지요?”
“예. 찾겠습니다. 근데 이 손 좀 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상리는 손아귀에서 가해지는 압박에 땀을 뻘뻘 흘렸다.
경고가 먹혔는지 이상리는 다음날부터 빠릿빠릿해졌다.
대충 뭉개서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발이 땀나게 돌아다니던 차, 마침내 한 곳에서 멈추어 섰다.
“여깁니다.”
“여기?”
“엘로드가 교차하지 않고 평행이 유지되고 있으니 이곳이 분명합니다.”
그에 최 교수가 딴지를 걸고 나왔다.
“여기는 이미 예전에 팠던 자리인데 또 파라니 그게 말이 됩니까. 지전류파나 광물질에서 발산되는 파장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아니 이보세요. 그쪽만 전문가입니까? 이쪽도 전공이 그거예요. 지금 똥개훈련 시켜요?”
발끈한 최 교수의 언성이 높아졌다. 난처한 얼굴의 박형관이 양쪽을 뜯어말렸지만 아무도 듣지 않자 보다 못한 강태준이 언성을 높였다.
“그만! 다 큰 어른들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강태준의 말에 모두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됐고 거두절미하고 일단 팝시다.”
“예? 하지만 사장님!”
“제가 듣기로는 파쇄대를 감안해서 정확하게 시추하지 않으면 지하수를 끌어 올리기 어렵다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도사님 말이 맞을 확률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사장님. 이대로 작업하면 지반이 불안해서 그라우팅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지반이 약하면 지하에 수중 펌프를 설치할 때 주변이 관정으로 말려들어 갈 수도 있고요.”
최교수의 항변에 강태준이 이마를 좁혔다. 그러자 박형관도 지지하고 나섰다.
“최 교수님말이 옳습니다. 판 데를 또 판다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 말인, 즉 케이싱 작업까지 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예. 굴착 중 연약지반으로 인한 시추공의 붕괴나 대량출수로 공벽의 붕괴할 수 있으니까요. 이대로 작업하는 건 안전관리상 불가합니다.”
150mm 백관을 관정에 박고 암반에 연결해야 하는 만큼 추가 비용을 감안해야 한다고.
그러나 강태준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결론을 내렸다.
“뭐, 필요하다면 해야죠.”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차피 대안이 없지 않습니까? 책임은 제가 집니다. 일단 시작합시다.”
명이 떨어지자 작업은 신속했다. 작업자들은 붕괴 방지를 위해 기초토목공사 및 침사지 설치 등을 진행하고 수중 모터를 설치했다. 8인치 아연 도금관을 용접 이음으로 케이싱 작업을 하는 동안 강태준도 세심하게 주위를 점검했다.
“케이싱 설치 끝났나?“
“네네. 암반 착정 시작해!”
준비가 끝난 작업자들은 곧바로 착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한 것처럼 쉽지 않았다. 500m, 1000m대에 도달했지만, 먼지밖에 일지 않는 모습에 사람들의 표정도 구겨졌다.
“쓰벌, 이거 망하는 거 아닌가? 왜 이렇게 안 나오는데?”
“이봐 풍수 양반, 여기가 맞나? 물 안 나오면 우리 다 한강 가야 된다고.”
대략 1000m가 넘어서도 먼지만 풀풀 날리자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작업자들의 이제 얼굴에도 짜증이 솟구치고 있었다.
“안 나오는뎁쇼?”
“분명 백미터만 더 파 내려가면 분명 지하수가 나올 겁니다.”
“지금 심도가 1킬로인데 더 파라고? 백미터가 누구 애 이름인가?”
박형관까지 좀 짜증이 난 기색이었다. 강태준이 차분하게 물었다.
“왜 힘듭니까?”
“그게 여기서 추가로 더 깊이 파려면 콤프레셔랑 부스터가 필요합니다.”
“이미 수고한 거 조금만 더합시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퍼뜩 가져오십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 봐야 한다는 말에 다른 사람들도 더는 반대할 수 없었다. 콤프레셔와 3대 이상에 부스터 1대 이상을 조인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굴착업자는 마지 못해 굴착작업을 계속했지만 100미터가 지나도 물이 터지지 않았다. 흉흉한 분위기에 이상리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 자식 물이 안 나오면 단매에 때려죽여 버리겠어!’
최 교수를 포함한 일동이 단단히 벼르는 폼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분위기가 흉험한 것이 온천이 안 터지면 목이라도 걸어 버릴 분위기.
그러나 다행히도 지하공을 150m쯤 더 내렸을 때쯤 거짓말처럼 뜨거운 김과 함께 콸콸 물이 뿜어져 나왔다.
“아 물입니다!”
“거, 뜨끈하네요. 온천 맞습니다.”
“허허. 드디어 터졌군요!”
온도를 확인해 보니 25도가 넘었다. 간만에 터진 물줄기에 박형관의 목소리가 밝았다. 손으로 만져 보니 매끈매끈한 느낌이 드는 게 약수처럼 느껴졌다.
빠른 작업을 위해 공무원 입회하에 장기 양수 실험를 했다.
시료지를 확인한 춘삼이가 희소식을 전했다.
“합격이랍니다. PH가 7.84 정도의 약알칼리성으로 철분과 스트론튬이 함유된 광천수라는군요.”
“그게 좋은 건가?”
광필이의 질문에 강태준이 대신 답했다.
“온탕이나 야외 물놀이에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사업성이 있다는 소리지. 진짜 다행이구먼. 표출온도가 너무 낮을까 싶어 결정했는데.”
“그러게요. 이제 호텔도 무리 없겠습니다. 몇 년간 지긋지긋했네요.”
박형관은 시원섭섭한 표정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나름 인생을 걸고 진행한 사업이니 내심 홀가분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태준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반문했다
“무슨 소립니까. 난 계속 팔 건데?”
“예?”
“지금까지 퍼부은 투자비는 회수해야지. 온천공 한두 개로 되겠어요?”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