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수맥 탐사
온양온천이 실제 온천의 역할을 수행해 온 기간은 600여 년이 넘었지만 자연적인 용출수 활용을 넘어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1927년 이후 상용화된 온천은 경남 철도주식회사가 경영하던 신정관과 일본인 소유의 탕정관 등 2개소가 전부였던 것이다.
“고생했네요. 자료 찾기 지난했을 텐데. 경우의 수가 한결 줄어들겠군요.”
“어인 말씀을. 당연히 할 일을 해야 했을 뿐이죠.”
기분이 좋은 듯 으쓱하는 박형관의 행동에 김광필이 실눈을 뜨며 지적했다.
“흐음. 결과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 한 10번은 넘게 들은 거 같은데. 이제는 한 번 터져야지요?”
“하하, 그러게요. 원래 온천이란 게 천운이 따라 줘야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곧 터질 테니 염려 마십쇼. 이번에 때마침 장비까지 업그레이드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머쓱한 듯 머리를 긁는 박형관이었지만 의욕만큼이나 자신감이 넘쳤다. 20~30m밖에 못 파는 구식 디딤장아식 굴착기를 쓰다 최신 기계를 쓰게 되었으니 의욕이 넘칠 수밖에.
웃는 낯으로 다시 작업에 돌입했지만 광필이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매번 성과는 못 내면서 거 말은 잘해요. 돈만 오지게 쓰는 주제에 저렇게 해맑아서야 원.”
“너무 그러지 말아. 저만한 사람도 또 없지 않나. 지하수 개발 이용 시공 면허와 그라우팅 공사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업체가 드물어. 거기서도 본점 소재지가 충남인 업체는 저짝이 유일하고.”
“한마디로 선택지가 없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자금 관리를 맡은 광필이는 못 미더운 듯 툴툴거렸다. 당시까지 온천공 사업은 일종의 투기나 도박처럼 여겨져 왔다. 헌데 온천장 개발에 남다른 의욕을 가진 박형관 대표가 새로운 온천장을 개발할 생각으로 전 재산을 때려 붓고 있었던 것이다.
실 역사에서는 5년 만에 결실을 봐서 기사회생했으니 그야말로 인생을 온천에 건 근성이다. 강태준도 그 근성을 믿고 박형관을 영입했던 것이다.
아무튼 정지작업이 끝나고 시멘트 타설이 완료되자 곧바로 착공이 시작되었다.
10m, 20m
50m쯤 파고 들어가던 중. 드릴의 속도가 느려졌다.
이어 검은색과 회색이 섞인 흙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쫀득해 보이는 찰흙은 공작 과제를 할 때나 쓰일 것마냥 점성이 짙었다.
“어이구 이거. 쪼대잖아.”
“아. 젠장. 뭔가 잘 풀린다 싶었더니.”
표정들이 심상찮은 작업자들이 웅성거렸다.
수북이 쌓인 흙덩이의 모습에 박형관이 민망한 듯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텄군요 텄어.”
“수분을 함유한 진흙인 거 같은데, 이게 안 좋습니까?”
“수맥 탐사를 하다 보면 이런 게 수맥으로 잘못 잡히는 경우가 많죠. 보통 이런 게 있으면 파쇄대를 타고 지상의 물이 지하 깊숙이 들어갈 때 암반 사이에 진흙이 있으면 물을 다 흡수하니 물이 지하로 파고 들어갈 수 없거든요.”
“그렇다면?”
“아쉽지만 그냥 철수해야죠, 뭐. 철수!”
헛짓거릴 하게 된 작업자들이었지만 작업은 이행되어야 했다.
투덜거리면서도 시추 작업을 계속하는 박형관이었지만 뭐 온천이란 게 열심히만 한다고 터지는 게 아니다.
시추할 족족 쪼대가 나오지를 않나, 착공 중 바위층을 만나 착암 드릴이 망가지는 경우도 부지기수.
시간이 지날수록 박형관의 자신감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고 말수도 눈에 띄게 적어졌다.
양수기로 끌어 올린 물 온도를 확인한 작업자가 눈치를 보았다.
“23도입니다.”
“꽝이군.”
크게 장탄식을 하는 박형관에 뿔난 광필이가 물었다.
“아니, 그럼 처음부터 다시 파야 된다는 건가?”
“뭐 그런 셈이죠.”
“그런 셈이라니. 이봐 박씨 지금 장난해? 뜨뜻한 물이 나왔는데 왜 온천이 아닌 건데?”
“저도 그러고 싶지만 25도가 기준입니다. 열수 온도가 낮아 온천법상 온천으로 등록이 안 됩니다. 더욱이 양수량이 기대 이하라. 어차피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그러자 다른 작업자들을 향했다.
“이봐, 저 말 진짜야?”
“예. 맞습니다.”
“정말? 절대 안 되나? 무슨 아무 예외도 없어?”
“예…….”
“무슨 법안이 그렇게 유도리가 없나. 어떤 자식이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었어?”
“제가 만든 게 아니라서…….”
다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는 얼굴이었지만 계급이 깡패다.
작업자들을 들들 볶던 광필이가 신경질을 부렸다.
“미치겠구만 이거. 대충 온천으로 퉁 치면 안 되나? 그냥 담당한테 뇌물이라도 먹여서…….”
딱!
뒤통수를 얻어맞은 광필이가 고개를 숙이자 강태준이 훈계했다.
“임마, 적당히 좀 해라. 그렇다고 온천이 아닌 게 온천으로 변하냐?”
“아니, 형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습니까. 무슨 돈 잡아먹는 하마도 아니고.”
“원래 어려운 일이니까 그렇지. 일단 중간점검부터 해야겠군요. 지금껏 소요된 비용이 얼맙니까?”
“8개월간 총 15개 공을 뚫었으니 개당 최소 500 정돕니다. 인건비에 군이랑 관청 납부한 금액까지 합치면 8천 6백만 원이 나갔군요.”
“허우. 뭔 놈의 돈이 그리도 순식간에 증발했나?”
광필이가 혀를 차자 머쓱해진 박형관이 어색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1개 공 굴착에 대략 1~2개월 이상 소요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온천법에 의한 적합 여부 확인을 위해 온천 전문검사하는 데 돈백은 쉬이 넘어가니 말이죠. 거기에 인건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말은 주저리주저리 길었지만 결론을 요약하면 하나였다.
일단 파 본 곳은 다 꽝이라는 것. 1억을 생으로 날렸다는 말에 어지간한 강태준도 신음했다.
“그럼 완전 생돈 날린 거군요.”
“하하.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정지 작업까지 하다 보니 비용이 더 들긴 해서.”
“그럼 용당 쪽 지원금을 봐야겠군요. 남은 비용이 얼맙니까?”
서류에 적힌 수치를 어림해본 춘삼이가 곧바로 답했다.
“2천만 원 정도 여유가 있긴 합니다.”
“이대로 가면 좀 위험하겠네요. 그럼 향후의 시추는 좀 더 신중할 거 같긴 하군요.”
“면목 없습니다.”
“아니, 이 양반아, 이게 미안하다고 해서 될 일인가. 결과를 내야지 결과를! 땅 파서 돈 만들라고 했나? 어째 수맥 하나 제대로 못 파는겨?”
타박하는 광필이의 지적에 박형관이 죄인처럼 고개를 수그렸다.
지질조사 용역을 맡았던 한국대 연구팀도 뜨끔한 건 마찬가지.
눈치를 보는 연구팀을 돌아보며 강태준이 한국대 최웅서 교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어째 변죽만 울리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정확한 착공 예정지를 다시 살필 필요가 있는 것 같군요. 지질조사소에서 물리탐사 장비를 빌려 오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최웅서 교수가 난처한 어조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거기는 이미 예약된 수요가 많아서 어렵겠습니까. 임대를 받으려면 몇 개월은 기다려야 합니다.”
“서두를 수 없겠습니까?”
“그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서. 광구를 기반으로 탐사한 결과니 실제 조사도 별반 차이 없을 거라 사료됩니다.”
“항공 조사 자료만으로 정확한 위치 파악이 되진 않잖습니까. 자력 탐사는 자연 전자기장을 송신원으로 사용하니 잡음에 취약하다고 들었습니니다만?”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게 자료의 정확성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이미 해당 자료는 개정 계수를 이용하여 IGRF를 구하고 이를 보정해서 나온 거거든요. 측량을 위한 자기 편각 규정과 지진 관측자료까지 동원했으니 신빙성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자 답답해진 광필이가 언성을 높였다.
“아니, 그래서 잘했다는 건가? 남은 천공 예정지만 60개가 넘는데 그걸 전부 다 하나씩 파 봐야 한다는 건 미친 소리잖소. 시행착오 줄여 달라고 당신네들 돈 주는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만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건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한 수준이라…….”
“아니 그럼 제대로 하는 게 뭐요. 밥 먹고 공부만 했다던 사람들이…….”
광필이가 한마디 더 하려는 순간 강태준이 인상을 팍 썼다.
“임마 가만있어라. 탄성파 검사를 하는 방법도 있지 않겠습니까?”
“표층 검사 시 지층별 파장 속도와 횡파 속도 측정이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시추공을 이용하여 심도별로 탄성파를 측정해야 합니다. 사실 그 조사를 할 바에는 차라리 파서 확인하는 게 낫겠지요.”
“그렇습니까?”
옆에서 핀잔을 먹은 광필이가 입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강태준은 답답함을 느꼈다. 이래서 양재문이 온천개발사업에 대해 순순히 양보해 준 건가? 뭔가 답이 안 나오는 모양새다.
‘GPS 장비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위성 항법장치를 쓰면 좋겠지만 그건 현존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렇다고 명동 꿀땅과 비견할 요지를 지금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잠시 고민하던 강태준은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정확한 탐사는 어렵다는 말씀이지요?“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그럼 대안으로 전문 다우져를 불러야겠군요.”
“다우져요?”
교수진에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다우저라 함은 수맥파를 찾아다니며 지하수나 광물을 찾아내는 사람들 아닌가. 약간 다급해진 교수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건 좀. 시간을 더 주시면…….”
“아 그래요? 한 일억쯤 더 써서요? 아재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아니라.”
광필이의 비아냥에 최웅서 교수의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강태준이 냉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용역팀엔 충분히 기회를 드린 것 같네요. 그쪽 방식은 존중하지만 지금은 전시예요. 어쩔 수 없이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겠습니까? 배 비서?”
“예. 사장님!”
“혹시 전국에 유명한 풍수 전문가가 있는지 수소문해 보게. 아, 특히 망우리 쪽 일대부터 주의 깊게 살펴보고.”
춘삼이가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망우리 일대요?”
“그쪽에 용한 지관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말이야. 예전에 지하수 공사 때 도움을 받았다는군.”
“알겠습니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강태준이 떠올린 것은 자생 풍수로 유명했던 이상리 교수였다.
한국대 개교 이래 최초로 자진 사직한 풍수 연구가로 교수를 때려치우고 전문 풍수인이 되어 화제가 되었던 사람.
물론 연구를 한다는 놈팽이들 중에 반쯤 사기꾼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기에 긴가민가했지만 지금은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대행이 연락은 쉽게 닿았지만 찾아온 사람을 본 사람들의 얼굴은 떨떠름해졌다.
‘이 사람이 전문가라고?’
마복에 삿갓을 쓴 것이 영락없이 도인이다. 괴나리봇짐에 지팡이를 든 손.
그걸 본 광필이가 못 미더운 얼굴로 귀엣말을 했다.
“야, 이건 좀 아니지 않냐? 전문가를 모셔 오랬지, 웬 걸뱅이를 데리고 왔어?”
“이분 맞습니다. 나름 명성이 높으신 분이에요. 팔조령고개 정상에도 수맥을 잡은 적이 있고 각사리에서도 명성이 높으신 분이라 신통력이 있는 사람이라 소문이 자자합니다.”
춘삼이의 변명에도 광필이는 별로 신뢰가 안 가는 표정이었다.
“야 임마, 장난해? 지금 온천을 찾는 거지 지하수를 찾는 게 아니잖나?”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일단 수원부터 찾아봐야 할 거 아닙니까?”
“아니, 사업이 장난도 아니고.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귀인지도 모를 인간을. 어디 재벌 집 묫자리나 봐 줄 것이지…….”
투닥거리는 둘의 행동에 다들 표정이 썩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