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98화 (198/361)

198화 비즈니스 타임

청승맞은 분위기를 풍기는 노기철. 얼굴에 그늘이 진 것이 뭔가 생각이 많아 보인다. 최근 다시 살이 빠져서인가. 각진 얼굴에서 느껴지는 애수에 강태준이 물었다.

“거, 왜 혼자서 분위기 잡고 있어? 어울리지 않게?”

“그냥요. 갑자기 고향 생각이 나서. 순간 울컥했습니다.”

“거, 쓸데없는 생각을. 나도 한 대 주게.”

나란히 선 채 담배를 빨던 강태준. 담배 맛이 살짝 다른 걸 보니 북한산이 분명하다.

다시금 짠한 기분이 드는 강태준이었지만 이 부분은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할 일.

한동안 담배만 태우던 강태준이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넸다.

“그래, 식사는 잘했나?”

“네, 시장이 반찬이라서인지 술술 잘 들어가더군요. 안 이사가 역시 실력은 최고입니다.”

“그러게…… 요새 본업에 충실해서 그런지 의욕이 넘치더군. 확장 생각에 바쁠 텐데 고맙지 뭐.”

“뭐 듣자 하니 여기 말고도 여러 군데 음식점을 개소한다고 부지를 많이도 확보하셨다면서요.”

“뭐 겸사겸사. 일단은 여유가 있을 때 적당한 부지를 물색해 둬야지. 한꺼번에 개발하는 건 아닐세. 일단 부지 가운데 용도변경이 가능한 장소부터 개발하고 일부는 묵혀 둘 수밖에.”

그 말에 노기철이 다시 말했다.

“그럼 관리비도 많이 들 텐데 인력부터 충원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제 안 이사 혼자서 직원 몇 명이랑 관리하기에는 벅찰 듯싶은데. 고작 스무여 명도 안 되는 직원에서 노무관리, 건물관리, 창고관리, 제품관리, 탁송에 후생, 해충관리까지…… 지금도 포화인데 더 일을 추가하는 건 무립니다.”

“그 부분은 나도 동감이야. 그래서 일단 서울 본점과 부산 직영점은 본사 차원에서 직영으로 운영하고, 나머진 가맹점 형태로 외주를 줄까 생각을 하고 있네.”

노기철이 하루 새 까끌해진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가맹점이라. 확실히 인력 부담은 줄겠지만 품질 관리가 쉽지 않겠는데요. 점포 운영 노하우 전수에 시간도 필요할 테고, 가입비까지 내라 하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흔치는 않을 거 같은데.”

“가맹가입비는 입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교육은 철저하게 해야지. 그래서 아무나 가맹을 맡기지 않고 우리 쪽 애들 위주로 선발할 생각이야. 안 조리장 밑에서 제대로 배운 녀석이라면 그래도 한 사람 몫을 하지 않겠나.”

“그렇긴 하지만 과연 잘할 수 있을지…….”

“요식업은 본질적으로 변수가 많은 사업인 만큼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게 포인트일세. 원칙대로라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시켜보면 감이 오거든.”

“너무 기대하지는 마십쇼. 사장님. 저도 사람을 많이 보진 않았지만 사람의 능력이 모두 광필 형님이나 안 이사 같진 않으니까요. 사장님.”

강태준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하. 걱정 마. 터무니없는 기대는 안 하니까. 하지만 인재를 양성하려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지 않겠나. 이참에 수업료로 미리 낸다 생각하면 되겠지.”

“거시적으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인재를 키운다라. 사훈으로 딱이겠습니다.”

요식업이라는 것은 현금장사인 만큼 유동성 확보 측면에서 유리하다. 물론 강태준의 사업 전략은 요식업 자체보다는 부동산 확보로 인한 임대 수익 창출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

목 좋은 곳에 자리한 노른자 땅은 무조건 가격이 상승하기 마련이랄까. 실제 맥도날드의 사업 전략도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런 속내를 내뱉을 필요는 없지 않나. 강태준이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지. 본전 생각하면 리스크 있는 사업은 못 해. 그보다 요새 풍미 조미료 공장은 어때? 근래 많이 바쁜 거 같은데…….”

“다행히 순조롭습니다. 오성처럼 강력한 경쟁자가 없으니 편하네요. 수요도 꾸준히 늘어서 현재 증산을 검토 중입니다. 근래 사탕수수 수입 요건이 완화되었으니, 설탕 생산량도 조만간 늘릴 예정입니다.”

“희소식이구먼 그거. 그래도 방심하지 말라고, 언제든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당연하지요. 그래서 요새 신제품 개발 시 발효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중입니다. 다만 원료인 당밀에 함유된 고농도의 비오틴(Biotin)이 발효 시 글루탐산 축적을 저해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서 해결책을 찾느라 좀 고심을 하는 중입니다.”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못 알아먹었을 소리였지만 하도 귀가 따갑게 듣다 보니 강태준도 이제 대충 기술적인 이야기에 끼어들 정도는 되었다. 다시 말해 발효 시 잘 뭉치지 않아 과립화가 잘 안 된다는 것이 아닌가. 잠시 머리를 굴리던 강태준이 불쑥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발효균 증식이 문제라면 촉매 문제인가? 그럼 페니실린이나 계면활성제를 추가해 보는 게 어때?”

“계면활성제요? 샴푸에 들어가는 성분 같은 거 아닙니까? 그런 걸 넣으면 몸에 이상이 없을까요?”

“모액에 극미량을 추가하는 정도니 괜찮을 거 같은데, 인체 위해성 여부가 마음에 걸린다면 일단 동물성 사료에 넣어 확인해 보면 되지 않겠나?”

“흠.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충분히 고려할 만한 사안이군요. 함 시도해 보겠습니다.”

강태준이 눈을 찡긋했다. 모티브를 제공했으니 이제 연구는 알아서 할 테지. 사실 이 부분은 예전에 주식할 때 얻었던 지식이다. 씁쓸했던 기억을 털어 버리듯 강태준이 담뱃불을 털었다.

“앞으로도 신기술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입 검토하게. 우리 목표는 고작 국내 시장 제패가 아니니까.”

“저도 바라는 바입니다.”

이미 시장을 절반 이상 장악한 마당에 과도하다 느껴질 수 있지만 투자는 멀리 봐야 한다. 글루탐산 발효 기술은 단지 MSG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사료용이나 의약용 아미노산 개발과 간장 같은 유기산 발효 분야도 폭넓게 응용되는 만큼 향후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기술이었다.

‘더욱이 이병구 그 인간 성격에 설욕전을 걸지 않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지금은 은퇴한 척 자중하고 있지만 속으로 칼을 갈고 있을 터…… 그 늙은 호랑이가 복귀하면 분명 성가신 일이 터질 가능성이 큰 만큼 미리 대비해 두어야 한다. 마지막 연기를 빨아들인 강태준이 담뱃불을 끄며 말했다.

“자 들어가자고. 그럼.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실내로 돌아가 보니 광필이의 차력쇼가 이어지는 가운데 고성방가가 이어지고 있다. 주안상 옆에 붙은 작은 다다미방으로 가자 술에 취한 채 완전히 인사불성이 된 안연복이 꾸벅 졸고 있었다. 이미 오재갑과 춘삼이는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사이좋게 쿨쿨 잠이 들어 있었다.

“이것 참. 감기 걸리게.”

다 큰 성인들 주제에 손이 참 많이 가는군. 슬그머니 이불을 덮어 주는 강태준.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갔다.

* * *

숙취의 여운이 가시기 직전, 태동산업 사장실.

쿵!~

오크로 된 책상에서 양도 양수 계약 서류에 도장을 찍어 주는 양재문. 만년필로 쓴 필체가 꽤나 유려한 것이 마치 예술작품 같다. 강태준이 혀를 내둘렀다.

“이야. 싸인 쥑이네. 언제 연습하셨습니까?”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폼 나나? 이거. 자 되었나? 문제없는지 살펴봐.”

강태준이 받아든 서류를 꼼꼼히 살폈다. 계약서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 “갑”과 “을”은 양수도 대상 자산의 양수도 가액으로 각각 아래의 금액을 합의한다.

- 총액 2억 원.

(계약금 10% 2,000만 원, 매 분기 중도금 1,500만 원x10회, 잔금 계약만료일 3,000만 원)

- 토지대금 납부조건 3년 분할 납부

- 대지면적 : 1만 8770㎡

- 물건 주소 : 토지 조서 [별첨 2, 3, 4] 참조

- 기타 : 단 토지 조사 단계에서 사업 관련 기투입비용은 토지 대금에 포함한다.

(등기이전은 잔금 납부 후 1주일 이내 이전하도록 하되 양수자의 토지사용권 일체는 사전에 필요시 적극 협조한다.)

- 일자 : 1963.11.30

- 양도자 : 태동산업 대표이사 양재문 (인)

- 양수자 : 백경산업 대표이사 강태준 (인)

-인·허가 관련 일체 권리와 의무는 양수자 “을”에게 있으며 건설사업계획승인 및 사업계획 승인서상 사업 주체로서 부담할 일체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한다. 단 토지 조사 단계에서 사업 관련 기투입비용은 토지 대금과 별도로 한다.

이미 법무사가 한번 살펴본 데다 부경 법률사무소에서 교차검증까지 했던 탓에 매매 계약서와 토지대장 및 등기부 등본을 포함 관련 서류는 완벽히 구비되어 있었다.

“딱히 독소조항이나 문제 될 부분은 없을 거야. 만기는 3년 뒤 천천히 갚으면 된다. 부지양도금액은 현 시가대로니 거기 니 도장만 찍으면 돼.”

“뭐 완벽하네요. 근데 정말 이렇게 통으로 넘겨주셔도 되겠습니까?”

“뭐, 이제 와서 무르려고? 아쉽냐?”

“아니요. 그 반대죠. 현지를 살펴보니 이미 온천공도 확보했고, 공사만 들어가면 돈 될 거는 확실한 사업인데 태동도 같이 들어가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피식 웃는 양재문. 그가 어림도 없다는 양 고개를 저었다.

“임마. 물귀신 작전이냐? 대체 1, 2억도 아니고 수십억 이상을 도대체 얼마까지 꼬라박으라고?”

“투자 대비 효율을 생각하면 이만한 사업이 없잖습니까. 반드시 성공합니다. 이건.”

“임마 호텔 인허가도 안 났다며, 그럼 인허가 로비도 해야 하고, 추가로 들어갈 자금이 얼만데? 투자금 회수는 한 5년쯤 뒤? 아니 아직 삽도 안 푼 마당이니 10년쯤 걸릴까?”

“그것보다는 적게 걸리겠죠. 사업성은 충분합니다. 형님도 심 사장님 사업계획서 보셨잖습니까.”

“아서라 인마. 돈 꼬라박아서 안 될 사업이 어딨어? 그 사이 실적 개판 되면 누가 책임지고. 톡 까놓고 말해 계속 투자만 한다고 돈 끌어다 쓰면 주주들이 내 모가지를 그냥 냅두겠나?”

“그건 그렇긴 하지요.”

“나도 안다. 심 사장이며 네가 보는 눈이 있다는 거. 장기적으로 보면 옳은 결정이겠지. 하지만 지금의 태동은 그럴 여력이 없어. 심 사장님 살아 계실 때야 마당발인 사장님이 여기저기 돈 꿔와서 대출 돌려막고 땜빵 돌렸다지만, 난, 오너가 아니라 월급쟁이 사장이야. 더욱이 회사에 남은 쥐새끼들 정리도 해야 하고 말이야.”

냉정하게 말해 양재문과 심 사장은 자금 동원력 면에서 비교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양재문은 말만 사장이지 전문 경영인에 불과한 위치 아닌가. 더욱이 양재문 개인이 가진 지분은 고작해야 10프로 미만에 나머지는 전부 우호지분이다. 일단 실적부터 올려야 모가지가 남아 있을 테니 입지 강화를 위해서라도 단기 실적개선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양 사장으로는 현실적으로 많이 부담스럽겠지. 심 사장이 추진한 사업을 백지화하지 않고서는 사내분위기를 휘어 잡을 수 없을 테니.’

사실 양재문 입장에서는 호텔 사업을 투자해 성과가 빨리 나도 오히려 곤란해진다. 이걸 잘한다고 자기 입지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다 된 밥에 숟가락 얹기 수준밖에 안 되고 그래 봐야 전임인 심 사장의 선견지명만 빛내 주는 일이다. 오히려 심 사장과 함께했던 옛 가신단들이 입지가 강화되는 꼴이니 양재문으로서는 사업의 성패 이전에 사내 역학 구도상 배분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배려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잘 되면 잊지 말게. 나 퇴물 되었을 때 자리나 한 자리 주는 거.”

“어인 말씀을. 이제 시작인데요 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박살 난 재무제표를 보니 향후 태동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깜깜하더구먼. 심 사장은 이런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 왔는지. 뭘 할려 치면 공공기관장이니 국회의원이니 하는 놈들이 쿵쾅거리면서 와서는 떡 달라 재촉하지 않나. 밑에 놈들은 또 쭈르르 달려서 일 힘들다 징징대니 징글징글해. 심 사장이 제명에 못 간 이유를 알겠더구먼.”

겉으로 보기에는 티가 안 나도. 이래저래 일을 조율하느라 생각이 많았던 건가 사장 취임 후 부쩍 수척해진 양재문의 얼굴을 보며 강태준은 안쓰러움을 느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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