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97화 (197/361)

197화 투자 유치

“카야!~”

땀을 흘려 바싹 마른 몸에 흘러 넣은 탄산이 몸 안을 적시자 전신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하다.

차 회장이 저도 모르게 캬아 감탄을 토했다.

“크으. 찌릿찌릿하군. 이건 완전 예술인데. 이 새콤달콤한 건 처음 먹어 보는 맛이구먼.”

“솜씨 좀 발휘해 보았지요. 메추리알에 양파, 케이퍼를 마요네즈를 섞어 타르타르 소스를 곁들였습니다.”

결들이 하나하나 신경을 쓴 듯 잘게 다지듯 썰어 낸 양파 조림에 술의 궁합이 보통이 아니다. 작은 디쉬로 나온 자반연어는 짭조름한 것이 식욕을 자극한다.

오징어채와 고추기름을 올리거나 잔멸치에 매실장아찌로 맛을 낸 두부도 일품 중의 일품.

잠깐 사이 광필이는 큼직한 맥주잔을 반이나 비웠다.

“이게 뭔데, 계속 술이 들어가네.”

“난 이 문어가 좋아. 탱글탱글한 게 기가 막히군.”

오동통한 문어 살점을 젓가락으로 집은 강태준이 초고추장에 살점을 찍으며 대꾸했다.

“원래 문어란 놈이 바다의 미식가잖습니까. 맨날 최고급 새우나 전복, 성게 같은 고급 식재료를 마구 먹어 대니 맛있는 게 당연하지요.”

“그르게. 이놈 특히 다리가 탱탱한 게 맛이 좋구먼. 뭐 비결이라도 있나?”

잘 삶아 탱글탱글한 살에 초고추장을 묻히자 더 맛있어 보인다.

한입에 문어 다리를 꿀꺽한 강태준이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한 녀석이 맛있지 않습니까. 원래 문어는 빨판 뒷면이 까끌까끌한 놈이 좋답니다.”

“오 좋은 정보 참고하지. 이건 일반 제품과 맛이 다른데. 이게 당최 뭔가?”

“밀가루는 얇게 겉에만 입히고 통생선 살을 발라 만든 생선 고로케입니다. 맥주에는 튀김이 궁합이 좋으니까요.”

유심히 튀김옷을 살피는 차강진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일반 어묵과 달리 고급스러운 맛이 나네. 해운대 용호루 먹던 어묵보다 더 맛있는데.”

“그렇게 평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사실 이놈은 향후 프리미엄 제품으로 개발한 메뉴인데요. 일명 용궁 세트라 이름 붙였습니다.”

“용궁 세트라. 캬. 거창하구만.”

어묵이 구호 식품으로 영남과 전라 일대에는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아직 수도권 쪽에서는 잘 알려진 상황이 아니었다. 아직 보관이나 유통면에서 한계가 있는 탓에 내륙으로 갈수록 생선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일종의 선입견이었지만 강태준은 이점을 감안해 부여 같은 관광지나 주요 거점 교통 요지에 비치해 수요를 극대화할 생각이었다. 차강진 역시 무척 맘에 드는 듯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느글느글하지도 않고 바삭바삭하네. 역시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니까.”

“아무래도 가마보코 형식의 담백한 어묵은 조금 호불호가 갈릴 거 같아서 말이죠. 자자. 다음은 이제 면 요리입니다.”

에피타이저가 끝나자 곧바로 더운 김을 뿜는 우동을 대령했다. 맑은 국물에 유부와 함께 어묵까지 듬뿍 얹어낸 면 위 튀김가루와 파가 고명으로 얹어진 메뉴.

젓가락으로 면을 집자 탱글탱글한 흰 사리가 마치 새끼 치듯 길게 딸려 나온다.

면 치기를 하며 국물을 후루룩 들이켠 사람들이 후후하고 감탄을 토했다.

“아, 속까지 따뜻해지는군. 이 맛은 익숙한데……!”

“형님. 이거 오뎅탕 느낌인데요. 안 선생, 면은 이거 뭡니까? 뭔가 일반 면이랑 때깔이 다른데.”

“네. 생선 국수로 만든 겁니다. 달걀이랑 밀가루를 섞었지만 명태가 7할이죠.”

“호오 생선 면이라 특이하군요.”

새삼스럽게 면을 내려다보는 광필이. 차강진 또한 새삼스럽게 우동 그릇을 들여다보았다.

“면발이 쫄깃하면서 신선하구만. 예전에 먹었던 사누끼 우동하고는 비슷하면서도 좀 미묘하게 다른 것 같아.”

“바로 보셨습니다. 사실 우동 만드는 방식은 거의 비슷합니다만 육수는 가다랑어포 대신 갈치와 조기를 섞어 우려낸 게 차이죠.”

“갈치와 조기 육수라?”

“아무래도 가다랑어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생선이 아니니까요. 시간이 지나도 면발이 퍼지지 않게 개량하느라 오래 걸렸어요.”

“음, 과연. 참고로 난 이쪽이 더 취향이구먼.”

음식에 대한 평가도 다들 호평일색. 가만히 식사에 열중했던 오재갑도 한마디 거들었다.

“네네. 이 면은 특히 서양 요리와도 잘 어울릴 거 같습니다. 스파게티나 크림 파스타 같은 걸로 말이죠.”

“그르게. 카레랑도 잘 궁합이 맞을 거 같은데.”

“하하. 이것만 준비된 게 아니야. 자. 그럼 이것도 드셔 보시지.”

강태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기다렸다는 듯 작달막한 조리사가 뚜껑 달린 트레이를 내왔다.

뚜껑을 열자, 뿌연 김과 함께 냄비 한가득 칼집을 낸 문어 소세지를 넣고 꼬들꼬들한 라면에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밀떡, 어묵과 계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빨간 소스에 녹은 치즈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보글보글 끓는 모습이 왜인지 위험해 보여서일까. 내용물을 살피던 광필이가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오오. 뭔가 엄청 매워 보이는 음식인데요.”

“그러게요. 이건 완전 고춧가루 범벅 아닙니까. 이게 뭡니까, 안 선생님?”

“떡볶이입니다. 이번 제품은 강 사장님께서 전적으로 아이디어를 주셨죠.”

피처럼 새빨간 색의 향연에 선뜻 손대기 망설이는 사람들. 치즈가 있다고는 하나 얼마나 매울지 예상할 수 없지 않나. 마루타가 되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 차강진이 아는 척을 했다.

“떡볶이라면? 그건 신당동 향토음식 아닌가? 신당동 궁중 떡볶이.”

“오 잘 아시는군요.”

“출장 가서 몇 번 먹어 봤지. 나름 그쪽에서는 유명한 음식이라. 근데 내 기억상 좀 시꺼먼 간장 양념이 기본이었던 거 같은데…….”

“그렇긴 한데 간장 베이스는 너무 진부하지 않습니까. 고추장을 떡과 같이 요리하면 뭔가 깔쌈한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실제로 떡볶이는 한국인이라면 미래의 누구나 아는 대표 분식으로 유명하지만 의외로 서민적 전통이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60년대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떡볶이는 새까만 간장 양념이 오히려 일반적이었다. 사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분식 붐을 타고 라디오에 소개됨으로써 붉은 빛깔의 떡볶이가 비로소 크게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다들 선뜻 손이 안 가는 모양이구만. 그럼 내가 한번 도전해 볼까? 한 그릇 주게.”

우물거리며 신중하게 맛을 보는 차강진. 자기 작품이라서일까. 처음으로 크게 긴장한 강태준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 어떻습니까? 맛이?”

“흠…… 이거 매콤한 고추장 맛에 달달한 물엿을 섞었나? 이런 맛은 처음이야. 뭐, 맛있는데?”

차강진의 반응을 본 사람들이 모두들 조심스럽게 후후 불며 입에 넣었다.

“흐음. 생각만큼 확 맵진 않는군요. 묘하게 감칠맛이 나는 게 땡기는데요.”

“후우. 맵긴 한데 묘하게 중독되는데요.”

“네네. 전 이 쫄면도 맘에 듭니다.”

“소싯적에 가끔 만들어 먹던 음식이지. 출출해서 남은 가래떡 몇 개에 고추장이랑 양배추 넣고서 비벼 먹어 보니 아주 간식으로 그만이지 뭔가. 그래서 안 조리장에게 한번 귀띔을 주었는데 다행히들 입맛에 맞는 모양이네.”

한참을 먹던 광필이가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거 쥑이네요. 한국인의 매운맛이랄까 코가 찡하게 매운데…… 뭔가 스트레스가 풀립니다그려.”

“글게. 처음엔 달짝지근하다가 매운 게 뒤에 올라오는데 계속 땡기네요. 상품화해도 될 거 같습니다.”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열심히 바닥까지 긁어 먹었다.

다들 맛있게 그릇을 뚝딱 비우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강태준에 안연복이 눈을 찡긋했다.

“거참 다행이군, 여기서 낙제점을 받으면 메뉴로 내놓기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그도 그럴 것이 떡볶이는 강태준이 선장이 되기 전 하꼬방 시절부터 매번 즐겨 먹던 음식이다.

그야말로 시그니처 메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지겹도록 해 먹은 전적이 있는 것이다.

사실 떡볶이를 메뉴로 내놓은 건 철저하게 상업적인 접근이었다. 떡볶이와 어묵은 영혼의 단짝과 같은 존재 아닌가. 퇴근길에 동네 포장마차 앞에서 떡볶이와 어묵꼬치를 들고 있는 사회인들을 보는 건 그야말로 일상이나 다름없는 풍경.

즉 떡볶이가 대중화되면 어묵 판매량도 덩달아 늘어나는 만큼 강태준도 이 부분에 대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무튼 호평 속에 신제품 시연을 마치자 멸치 산초를 넣은 구운 주먹밥에 잘 익은 참외가 입가심으로 나왔다. 적은 양이 아니었지만 식욕 왕성한 남자들답게 밥알 하나 없이 깨끗하게 비우는 사람들.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는 차강진에 강태준이 물었다.

“오늘 하루가 어떠셨습니까?”

“뭐 굉장히 인상 깊었네 그래. 간만에 포식했군. 몇 년 새 이렇게 만족스럽게 먹어 보기는 처음이구먼.”

“맘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손수건으로 입을 닦은 그가 빙그레 웃더니 이내 넌지시 물었다.

“뭐. 그래서 얼마를 원하나?”

“예?”

“이 깐깐한 늙은이를 여기까지 굳이 모셔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자네가 청사진을 보여 주면서까지 이렇게 브리핑을 한 데는 이유가 있을 테고. 직접 눈으로 사업성이 있나 확인해 보란 뜻 아니었나. 보아하니 구상하는 사업 규모가 엄청나던데?”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허허, 늙은이도 짬이란 게 있네.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인간이 그 정도 눈치도 없으면 쓰나. 그래서 얼마나 투자가 필요한가? 자네가 원하는 구상을 실현하려면?”

뜸 들이지 말라는 듯, 강태준을 주시하는 차강진의 눈. 주름은 자글자글했지만 눈동자는 총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20대 청년을 연상케 할 만큼 맑고 열정에 불타는 눈.

그래. 이런 사람에게는 쓸데없는 미사어구나 잔재주는 필요 없다. 잠시 숫자를 어림해 본 강태준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설비 투자비로 10억 원, 온천공 개발비용으로 최소 2억은 추가로 확보해야 합니다. 수익이 날 때까지 마케팅 비용까지 합하면 향후 3년간 최소 60억 규모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허허, 60억이나? 포부가 거창하구먼. 그걸로 본전은 뽑을 수 있겠나?”

“5년, 5년 안에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마 부동산 인상분만 해도 투자비는 뽑고 남지요. 그리고, 아산 도심개발 사업의 시작점으로 온양온천상권과 터미널 권역, 신용화동 중심축을 통합하면 하루 유동 인구를 4,000명 이상 확보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개발로 돈 버는 건 어쩌면 일회성이지. 게다가 그렇게 따지면 온양 말고도 투자할 곳이 많아. 난 사업을 통해서 어떻게 수익 창출할지 묻는 걸세.”

“압니다. 그래서 일단 이곳을 신혼여행지로 띄워 보려 합니다.”

“신혼여행지라 그게 통하겠는가?”

“네. 반드시 통합니다. 해외여행을 가기 어려운 특성상 도심에 가까운 곳 가운데 색다른 느낌의 허니문을 즐길 만한 곳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온천이라는 지역 특성상, 색다른 신혼여행지로 각광받기 좋고 주변 지역에 둘러볼 볼거리도 많지요. 추후 사거리 코너형 상가를 흡수하고, 시청, 법원 등의 공공시설이 인접한 지역까지 확장을 고려하면 배후 수요 증가 또한 기대할 수 있습니다.”

강태준의 패기 어린 답변에 차강진이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좋네. 내가 투자한다면 지분은 얼마나 줄 수 있나?”

“최대 3할까지 드릴 수 있습니다.”

“허허, 좀 더 쓰지? 60억 투자에 고작 3할 지분이라 너무 짠 조건 아닌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서운합니다만? 사실 이건 무조건 될 사업입니다. 저야말로 우리 차 사장님께 역사적인 사업에 투자할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이것 봐라 하는 표정의 차강진이었지만 강태준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거 없이 눈빛이 허공에서 얽혔다. 양쪽은 밀고 달기는 줄다리기 끝에 양자는 초기 투자금 12억에 3년간 40억. 3할 7푼까지 지분을 주기로 타협을 보았다.

“투자계약서는 조만간 보내 주게나. 법무팀에서 세부적으로 검토를 할 부분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사장님.”

악수가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 사이에 불쑥 끼어드는 광필이. 취기가 반쯤 올라왔는지 이미 볼이 벌겋게 변한 광필이가 술병을 들며 호기롭게 외쳤다.

“자자. 이렇게 좋은 날에 그냥 넘어가셔야 되겠습니까? 자 짠 하시죠!”

우악스럽게 나선 광필이가 폭탄주 말기를 시전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불붙은 양주잔을 맥주 컵 사이에 세우고 도미노처럼 빠트리는 묘기를 시작으로 맥주가 가득한 잔에 휴지를 한잔 덮은 후 천천히 양주를 부어 만든 금테주, 숟가락, 회오리, 카푸치노 등 갖가지 화려한 기술을 선보였다.

“You ain’t nothin’ but a hound dog, Cryin’ all the time~~”

반쯤 꽐라가 된 광필이가 넥타이를 머리에 두르고 탬버린을 치는 사이,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비서가 Hound Dog를 시끄럽게 불러제끼며 개다리춤을 추었다.

그렇게 일행이 흥겹게 웃고 즐기는 사이,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강태준.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테라스에는 노기철이 홀로 바람을 쐬며 담배를 태우는 중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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