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86화 (186/361)

186화 속는 자, 속이는 자

비가 쏟아지는 장례식장 안 계속해서 사람들이 들어온다.

와글와글 모인 인파 안 한쪽 차 속에서는 방문객들을 기록하고 있는 형사들.

영정이 보이는 사진 앞에 앞으로 향을 피워 올리는 문상객들의 모습이 그간 심익태의 공을 알게 한다. 장례식장의 풍경은 음울함의 극치.

상주를 맡은 부인은 눈물조차 말라 버린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처연한 모습이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지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향을 피우는 임직원들 사이로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자나 깨나 회사 걱정하던 양반이 이렇게 가시다니.”

“흉수는 찾았나?”

“아직 오리무중이라는군요. 형사들이 찾고 있습니다만 영. 진척이 없군요.”

한 이사가 중얼거렸다.

“심 사장님에 이어 갑자기 양 전무님까지 이제 회사가 어찌 되려고 참.”

“그보다 이 정도면 거의 원한 관계 때문인가?”

“모르지요. 양 전무님도 한 성격 하셨던 분이니…… 아주 그렇지 않다고는…….”

“말이 심하군요.”

순간, 턱 하는 소리와 함께 묵묵히 육개장을 내려놓는 오재갑. 평소와 달리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흐트러져 보이는 눈빛이 어딘지 메마르고 건조해 보인다. 꾸역꾸역 국밥을 욱여넣는 오재갑에 슬쩍 눈치를 보던 이사들이 은근슬쩍 자리를 옮긴다.

그 모양에 옆에서 상주를 지키던 김정욱이 다가오더니 그 앞에 앉았다. 힐끗 옆을 올려다보더니 다시 묵묵히 밥을 퍼먹기 시작하는 오재갑. 같이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 하던 김정욱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괜찮나?”

“거, 육개장이 맛이 없군요. 비싼 돈 주고 불렀는데 퀄리티가 영. 업체에서 돈을 떼어먹었나.”

은근히 돌려 까는 오재갑에 김정욱이 대꾸했다.

“장례식 식단이 다 그렇지. 요새 밤샘이라도 했나. 건강 챙기게나. 얼굴 상태가 말이 아니야.”

“잠이 오겠습니까. 사람이 쌍으로 죽어 나갔는데…… 기분이 싱숭생숭하군요.”

눈치를 보던 김정욱이 슬쩍 입을 털었다.

“강 선장은 좀 어떤가?”

“아직 의식불명입니다. 약혼녀분께서 극진하게 간호를 하고 있지만 회복해도 정상으로 복귀하는 건 어려울 거라네요.”

“힘내게. 그래도 강한 사람이니 곧 일어나겠지. 그보다 이제 다음은 어쩔기가?”

“뜬금없이 뭔 말씀입니까? 실없게.”

그러자 눈치를 보던 김정욱이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이 사람도 참.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는데 그럼 누군가는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하지 않나?”

그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오재갑이 다시 묵묵히 식사에만 열중했다. 말없이 국밥만 퍼먹는 오재갑에 몸이 달아오른 김정욱이 다시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겠네. 뭐, 주총에서 날 지지하는 게 어떤가?”

순간 숟가락을 턱 하고 내려놓은 오재갑. 움찔한 김정욱에 오재갑이 고저 없는 말투로 말했다.

“지금 농담하십니까?”

“농담 아닐세. 경영진이 비었으니 누군가 뒤처리를 해야지 않나?”

“거, 김 이사님께서 경영을 맡는다고 해서 회사가 정상화된다는 보장은 없지 않겠습니까?”

오재갑의 단도직입적인 대꾸에 순순히 긍정하는 김정욱이었다. 애초부터 한 번에 넘어오리라 생각하지 않은 만큼 목소리가 간절했다.

“그러니까. 자네 같은 베테랑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지. 나도 꼭 내 사욕만 채우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야. 어차피 회사 경영이란 게 혼자 할 수 없지 일이지 않나. 이렇게 회사의 대들보가 끊어졌으니 우리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거, 말은 번지르르하십니다.”

“그리, 뾰족하게 굴지 말게나. 친한 선배에 양 사장까지 나가리 돼서 기분이 뭣 같은 건 알겠지만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일단 닥친 일부터 수습하자고.”

김정욱이 오재갑을 설득하는 사이, 부둣가 근처로 쫓겨간 이사들이 옹기종기 담배를 태우며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펼쳐진 지평선 위, 안개처럼 펼쳐지는 연기에 한 이사가 뭔가 아련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사람 인생이 참 허망합니다. 그려. 그렇게 건강하던 사람이.”

“뭐. 누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애초에 인생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는 법이라고.

“그보다 이거 완전히 혼전이네요. 양 전무님께서 이렇게 되다니. 그럼 심씨도 양씨도 둘 다 아웃이네요. 주주 총회에서는 누굴 지지하실 겁니까?”

“글세. 대체 누굴 뽑아야 할지 골치 아프군. 그보다 애초에 뽑을 인간들이 있나? 다 들 고만고만해서리. 자네가 할 텐가?”

“뭐 시켜 주신다면야. 사양하지는 않지요.”

“이 사람이. 사양하는 시늉이라도 하지 그래?”

사이 좋게 껄껄대는 이사들이었지만 눈빛에 담긴 뜻은 알 수 없다. 서로 마치 상대를 탐색하는 듯 흘겨보는 시선들. 그렇게 신경전을 벌이는 이사들 뒤로 손바닥을 짝짝 치는 소리가 들렸다.

“거, 사이가 아주 좋으시군요.”

인기척에 불쑥 뒤를 돌아보자 양산을 받쳐 든 검은 옷의 미망인이 경호원들과 함께 서 있었다.

“다들 여기 모여 계셨군요. 한참을 찾아다녔는데.”

“아이구 사모님께서, 여긴 어인 일로.”

“사모님 소리는 되었어요. 남편 앞세운 미망인이 듣기엔 민망한 소리네요.”

그 말에 크흠 눈치를 보는 이사들.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이사들에 그나마 넉살이 좋은 한순호 이사가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그보다 여긴 어쩐 일로. 몸이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양 전무 장례인데 당연히 참석해야죠. 주총에 앞서 논의할 일이 많을 거 같기도 했고요.”

최미령이 이사들을 돌아보며 눈짓을 주자 함께 대동하던 비서가 이사들에게 봉투를 건넨다. 다들 뭐지? 하고 물음표가 쓰인 표정. 하지만 서류를 펼쳐보는 순간 창백해지는 이사진들. 애써 표정 관리들을 해 대는 이사들이 콜록이며 기침을 해 댄다.

“사모님 이건 오해가 좀.”

“남편이 남긴 자료니 변명은 하지 마세요. 이사님들께서 그간 꽤 여러 곳에서 딴 주머니를 차고 계셨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니까. 그런 걸 추궁하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거기 뒤편을 읽어 보세요.”

슬쩍 서류를 넘기자, 뒤에 붙어 있는 첨부 문서가 있다. 신중한 기색으로 서류를 살피는 이사들. 한 이사가 최미령을 돌아보더니 표정이 요상해진다.

“계열사 분리각서?”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저도 이제 회사의 주주가 되지 않았나요. 사장이 공백이고 임원들까지 저렇게 된 이상 정상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기 어려우니 적당히 계열 분리해야죠. 여기 이 서류대로 원양어업 쪽은 정욱이가 맡고 무역상사는 원효에게 주는 걸로. 자갈치 시장 내 수산물위판사업부는 친족들이 관리하는 걸로 정리하자고요.”

“그러니까 지금 말씀 요지는…… 저희보고 그 나머지 계열사 사장을 맡으라는 말씀이십니까. 지금?”

“그래요. 뭐 이사님들께서 딴 건 몰라도 경영 능력은 없지 않으신 거 같은데, 아무래 반발을 잠재우려면 연공서열을 따르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겠어요?”

상상 이상으로 좋은 제안에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들. 너무 좋은 조건이라서인가. 당최 믿는 구석이 아니다. 약간 떨떠름한 듯 이사 하나가 조심스럽게 반문한다.

“좋은 제안이긴 하지만 그걸 어찌 믿습니까? 우리 목줄까지 이렇게 쥔 마당에.”

“이보세요. 애초에 난 경영에 미련없는 사람이에요. 생각해 보면 평생 주부만 하던 사람이 그럴 능력이 있겠어요? 감당할 수 있는 범위만 관리하는 게 탈이 나지 않는 법이죠. 더욱이 협의할 마음이 없었다면 애초에 여기 오지도 않았겠죠.”

“그건 맞습니다만.”

“이쪽으로서는 상당히 양보하는 거니,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마세요. 심원효랑 나랑 저울질하는 거라면 그건 좋은 판단이 아닐 거 같은데. 내 쪽에 설 건지 아니면 적이 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하세요.”

이사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김정욱이 사장이 된다라. 솔직히 혈통빨로 사장질을 한다는 게 배알이 꼴리는 게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양재문이나 심원효에 비하면 훨씬 만만한 상대 아닌가. 더욱이 심원효가 구속된 마당에 살인교사 용의자라는 둥, 별의별 소문이 다 돌고 있었던 만큼 복귀한다고 해서 대표로 나설 수 있는지 여부는 미지수 아니겠는가. 그러자 한 이사가 말했다.

“근디 사내 양재문파 인맥들이 가만있겠습니까. 아직 재갑이랑 다른 인원들은 멀쩡하잖습니까. 그래도 사내 최대 계파인데 강 선장이 혹여 깨어나기라도 하면 그쪽 애들끼리 똘똘 뭉칠 텐데. 그럼 컨트롤하기 정말 어려워집니다.”

“그 문젠 염려들 하실 거 없어요. 강태준은 깨어나도 당분간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닐 테니. 더욱이 오재갑 선장과 다른 실무진은 김정욱이 설득할 예정이고요.”

가만히 듣고 있던 한순호 이사가 의문 섞인 얼굴로 물었다.

“가능하겠습니까? 다른 녀석은 몰라도, 재갑이는 그렇게 쉽게 넘어올 녀석이 아닌데.”

“남자라면 다 욕심이 있는 법 아니겠어요. 어차피 일단 양 전무 수뇌부 쪽이 사고 통에 경황이 없으니 이 틈을 노려야죠. 일단 대표가 새로 선임되고 나서 정관 바꾸면 끝 아니겠어요? 사실 심원효가 한 짓을 보면 너무 선을 넘지 않았습니까?”

다들 심증으로만 생각하던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최미령. 어…… 하고 서로를 보는 이사들이 말문이 막혔다. 대답이 궁색해질 즈음, 총대를 멘 한 이사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뭐. 아무리 심 사장 아들이 적통이라고는 하나 살인교사는 좀 글쵸. 그런 사람이 사장이 되면 리스크가 너무 큰 건 사실입니다.”

“하모. 김정욱이가 그래두 나름 우리 회사 창립 공신이고, 게다가 심사장 조카 아이가? 막말로 그 정도 짬이면 사장 달 때도 되었지 그래.”

“그, 그래.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아.”

한순호가 한순간에 줄을 바꿔 타는 모습에, 곧바로 다른 이사들 역시 태도가 변한다.

옆에서 맞장구를 치는 소리에 최미령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럼, 다들 동의하신 걸로 알지요.”

* * *

그렇게 시간은 흘러 운명의 날, 부산 교도소 앞. 여명이 다가오는 새벽, 교도소는 고래같이 입을 열고 사슬을 풀었다. 둔중한 철문이 열리고 몰라보게 수척해진 심원효 앞으로 비서 하나가 다가온다.

“으, 춥군.”

“여기, 하나 걸치십시오.”

서둘러 어깨에 외투를 덮어 준 비서에 기대하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비서 한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마중 나온 이가 없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심원효가 어이없다는 듯 실망감을 표출했다.

“뭐기 이거? 왜 아무도 마중 나온 놈들이 없어?”

“그게 다들 급한 일이 생겼다고. ”

“급한 일? 시발, 지금 나 멕이나? 내가 어떻게 나왔는데? 이사들한테는 연락 안 했어?”

울그락불그락해진 얼굴에 비서가 쩔쩔맸다.

“답변이 없어서. 바로 한순호 이사한테 연락 돌리겠습니다.”

“아니 되었어. 천하의 심원효도 쥐X이구먼. 이제 아주 끈 떨어졌다는 건가?”

“공식적으로 구속 풀린 건 아직 대외비로 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일단 시간이 없습니다.”

비서가 어떻게든 기분을 돌리려고 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설마 아무도 안 나올 줄은. 심원효가 이를 빠득 갈았다.

“좋아. 돈 받아먹은 게 있음 돈값부터 해야지. 우린 주총장으로 바로 간다.”

“알겠습니다. 일단 이리로 오시죠.”

비서가 대기 중이던 차량 문을 열어 주자 안에 타는 심원효. 그 순간, 갑자기 덜컥 소리와 함께 양쪽의 문이 잠겼다. 순간 함께 탄 비서가 녀석의 입을 손수건으로 가렸다.

“뭐. 뭐야? 유 비서 너?”

“죄송합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읍읍!!”

발버둥 치던 녀석이 금세 축 늘어지자. 곧바로 출발하는 차. 그사이 저편에서 군복을 입은 누군가가 차창 너머를 주시하며 무전기를 들었다.

“예, 지금 막 나왔습니다. 예…… 납치 후 모처로 이동 중입니다.”

“예상대로군, 오키, 그럼 작업 시작해.”

강태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다리던 방첩대 출신들이 일제히 복면을 썼다. 장갑을 낀 녀석이 시동을 켜고, 뒤따라 나서는 차들. 그 뒤로 지프 차 세 대가 다시 따라붙었다.

* * *

같은 시간, 출근 준비를 하는. 오재갑. 양복을 챙겨 주는 아내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눈길이 마주치는 두 사람. 신혼인 아내가 세심하게 넥타이 모양을 잡아 주었다.

“임시주총이 오늘이죠?”

“그래. 대표님 일도 있고 오늘은 좀 늦을지도 몰라. 너무 늦으면 먼저 식사해.”

“네. 중요한 일이니 잘 해결하고 오세요.”

“그럼. 다녀올게.”

볼에 뽀뽀를 하자 얼굴을 붉히는 아내. 현관을 나서는 오재갑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아직 발그레함이 가시지 않은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결혼한 지 고작 2개월.

중매로 맺어진 사이였지만 금슬은 매우 좋은 두 사람 하지만 밖으로 나온 오재갑의 낯빛이 금세 흐려졌다. 코앞에서 다름 아닌 김정욱이 손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얼른 여기서 티를 내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짓. 얼른 표정을 수습한 오재갑이 미소를 지었다.

“아침인데 부지런하구먼. 벌써 출근인가?”

“예. 일찍 나오셨네요.”

“그럼 잘 되었군. 내 차로 함께 가지. 가면서 슬슬 할 얘기도 좀 있고 말이야.”

평소와 다르게 깔쌈하게 차려입은 얼굴에 광채가 난다. 오재갑이 순순히 차량에 올라타자 김정욱이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기세 좋게 출발한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흡족해진 표정의 김정욱이 콧노래를 부르며 팔을 뻗었다.

“오늘따라 바람도 선선하고 날씨가 참 좋아. 그렇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 일도 이렇게 잘 풀리면 좋으려만…….”

“그래. 주총 끝나면 이사진들도 전면 개편될 텐데, 앞으로 어느 부서에 근무할 건가?”

“모르겠습니다. 배는 꽤 오래 탔으니 뭍 생활이 끌리는군요. 신혼인데 일단 가정에 충실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요새 너무 무리한 거 같아 당분간 쉴까도 생각 중입니다.”

“쉬기는.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 자네 같은 인재가 내빼면 쓰나. 우리 오 이사가 중심을 잡아 줘야지.”

은근슬쩍 직급을 높여 주는 김정욱에 오재갑이 그를 돌아보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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