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반격 준비
삐뽀~삐뽀
차량 사이사이를 곡예 하듯 질주하는 구급차 한 대.
차량이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다급히 몰려드는 의료진들. 구급대원이 침대를 꺼내자 인공호흡기를 단 채로 숨을 몰아쉬는 강태준의 모습에 옆에 매달린 설유하가 애타게 부르짖었다.
“태준 씨! 정신 차려요. 태준 씨.”
“여기로 들어오십쇼. 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겹겹이 병실 앞을 지키고 선 경호원들. 날이 선 눈매들이 번뜩이는 가운데 이사들이 주변을 서성인다. 병실에 들어간 오재갑이 잠시 후 밖으로 나오자, 김정욱이 다급히 물었다.
“상태가 좀 어떤가?”
“모르겠습니다. 재수술이라니, 잘 되길 바랄 수밖에요.”
대답이 매가리가 없는 것이 낯이 어둡다.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는 김정욱이 한탄했다.
“백주 대낮에 무고한 시민에게 칼질이라니. 대한민국이 어찌 되려고 원.”
“그러게, 말입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썩어 비틀어진 건지.”
“양재문 전무님은? 아직도 의식불명인가.”
은근한 질문에 함께 있던 오재갑이 고개를 저었다.
“만신창이이죠. 뭐.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상황이라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출입을 제한하는 걸 보니 접견이 가능한 상태는 아닌 듯합니다.”
“허어, 흉수는 찾았나?”
“정황으로 볼 때 중국에서 넘어온 조직폭력배들 같습니다. 화교 놈들이던가?”
“중국이라니, 그게 확실한가?”
“한국 깡패들은 저번에 한 번 쓸려나가지 않았습니까? 군부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마당에 미치지 않고서야. 대낮에 집단 린치를 했겠습니까?”
“원효 그 미친 호로새끼가,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임원 셋이 한 번에 골로 가다니. 회사가 아주 작살 나게 생겨 부렀네.”
음울한 표정의 김정욱이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지껄였다. 직원들 역시 동요가 큰 것이 확실히 사건의 여파가 큰 듯했다.
잠시 후 수술실로 들어간 집도의가 침통한 얼굴로 나오자 광필이가 성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최선을 다했지만, 워낙 상처가 깊으셔서…… 회복 여하는 미지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쇼크를 워낙 심하게 받았는지라. 장기 일부가 괴사해 들어냈는데, 패혈증으로까지 번지는 바람에. 극적으로 회복을 하더라도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 그럴 수가.”
그 말에 무너지듯 주저앉는 설유하. 옆에 있던 김광필이 좌절한 어깨를 토닥인다.
물기에 찬 눈의 설유하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표정으로 울먹거렸다.
“그래도…… 살 가능성은 있는 거죠?”
“일단은 기다려 봅시다. 환자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가족분을 제외하고는 물러서 주십시오.”
주변을 물린 간호진들이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냈다. 수척해진 얼굴로 쥐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강태준. 의료진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며 체크를 하고 있다.
어둑어둑한 밤이 되자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던 군경들도 피곤한 듯 눈을 비빈다. 슬쩍 시계를 보던 설유하가 광필이에 눈치를 주었다.
“임무 교대 시간이에요.”
경비를 서는 녀석들에게 광필이가 미리 가져온 음료수병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고생이십니다. 이거 드시고 하시죠.”
“아니 뭘 이런 걸 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식사들은 하셨습니까?”
“아직.”
“그럴 줄 알았습니다. 마침 옆 방에 식사를 준비해 놨으니 요기라도 하시지요. 이쪽 경비는 저희 직원들이 보지요.”
그러자 경비들이 머뭇거렸다.
“아. 그건 안 되는데.”
“밖 경비가 삼엄한데 뭔 일이 있겠습니까? 자 음식 식어요.”
“하, 거참…… 이거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고.”
서로 마주 본 경비들이 못 이기는 척 광필이의 뒤를 따라간다. 설유하가 침대 옆을 두 번 치자, 슬그머니 눈을 뜬 강태준. 옆에는 비슷한 덩치에 같은 옷을 입은 남녀가 함께 서 있었다.
“갔어요?”
“네네. 시간 없어요. 자자, 이 뒤편이에요.”
비슷한 덩치의 남자가 강태준 대신 자리에 눕자 여자 역시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병실 밖에서 보면 깜빡 착각할 법한 모습.
휠체어로 옮겨 탄 강태준이 나무로 된 벽체를 밀자, 놀랍게도 벽이 열리며 통로가 드러났다. 유사시 탈출을 위해 만들어 둔 통로로 벽체부터가 조립식이었기에 가능한 일.
통로를 통해 내려가니 쭉 뻗은 복도가 나타난다. 미리 대기 중이던 간호사가 복도 끝으로 안내한다. 짙은 소독약 냄새가 풍기는 1인 병실에 들어서자 온몸을 붕대로 감은 채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양재문. 얼굴은 파리하지만, 숨이 멀쩡하게 붙은 모습에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오는 강태준이었다.
주위를 의식하며 얼른 표정을 수습하는 강태준. 느릿하게 심장이 뛰는 전자음을 듣던 강태준이 양옆에 조용히 양해를 구했다.
“다들…… 자리 좀 비켜 주시겠습니까.”
눈짓을 주자 조용히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 둘만이 남게 되는 병실 안 방안에는 색색 가쁜 숨소리만 난다.
“형님, 저 왔습니다. 이제 쇼 그만하십쇼.”
강태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순간 거짓말처럼 잠들어 있던 양재문이 실눈을 뜬다.
알 듯 말 듯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양재문이 옆에 앉으라는 손짓을 한다. 강태준이 다가서자 양재문이 산소 호흡기를 치워 달라는 표현을 해 보였다.
강태준이 호흡기를 떼어 주자 고통스러운지 바르르 떠는 양재문이 거친 숨을 토했다.
“쓰벌, 다신 못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억수로 반갑네…….”
며칠 새 얼마나 시달렸는지 피골이 상접해진 모습에 강태준은 자기도 모르게 목이 메였다.
“어떻게 좀…… 괜찮아요?”
“임마, 농담 까냐? 칼빵 맞고 몇 번을 꼬맸는데 시벌 아주…… 당장에 뒈질 거 같구만. 의사 말론 한 치만 더 들어갔어도 그대로 즉사감이었다는군.”
“그러니까 제가 분명 조심하라지 않았습니까?”
같잖다는 듯 강태준을 위아래로 흘겨보는 양재문.
수술복을 입은 모습에 피식하더니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사돈 남 말은. 니도 상태 보니 반쯤 죽다 살았구먼.”
“그래도 저는 움직일 만은 하잖습니까.”
“암튼 고맙다, 덕분에 목숨 건졌다.”
일어나려는 양재문이었지만 고통 때문인지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안색을 찌푸리는 모습에 다시 그를 눕히는 강태준이었다.
“무리하지 마십쇼. 습격한 놈들 신원은 확인했습니까?”
“짱깨 새끼들이지 뭐. 심원효 파벌. 흑사회 놈들인 거 같더구만. 시팔 존나게 독하데. 연막탄을 마빡에 처맞고도 그대로 찔러 오니 그래. 컥컥…….”
거친 호흡에 더욱 힘들어지는지 고통스러워하는 양재문.
강태준이 산소 호흡기를 대려 하자 턱- 하고 손길을 강하게 부여잡는다.
“됐고, 그보다 이제 어쩔 거냐? 이거 외통수인데. 우리가 뒈지든지 저쪽이 뒈지든지. 이건 갈 데까지 간 거 같은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대로 돌려줘야지 않겠습니까?”
“그래 생각해 낸 방법은 있어?”
“저희가 직접 폭력을 쓰는 건 어려우니 일단은 팽호상 쪽에 연락을 해 보려고 합니다.”
“팽호상? 그놈이 누군데?”
“천경물산 주총 때 만났던 화교 건달패 두목입니다. 그때 재미 좀 보면서 면식을 익혔죠. 밤 업계에서 힘 좀 꽤 쓰는 녀석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재문이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그놈이 과연 도와줄까?”
“아마 지금쯤 꽤 빡쳐 있을 걸요. 부산 쪽이랑 대구지역은 사실 그놈 관할이거든요. 팽호상 입장에선 어떤 잡놈새끼가 자기 지역구에서 허락도 없이 칼부림을 벌인 꼴인데, 이건 선 넘은 거죠.”
“흠…… 하지만 동생, 그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야. 잘못하면 역으로 당하는 수가 있어.”
“그러니까 작전을 짜야죠. 형님. 그래서 좀 양해를 구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양해?”
“쇼 좀 해 보려고요. 놈들을 제대로 요리하려면 방심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태준의 눈에 문을 열고 다가오는 의사 한 명. 백색의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놓은 것은 동그랗게 생긴 형태의 백색 알약이었다.
“펜타닐과 할로세인을 섞어 만든 경구투여용 제제입니다. 효력이 돌면 잠시간 가사 상태로 만들어 줄 겁니다.”
“이거 막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니지?”
“뭐 솔직히 없지는 않지만, 길항제를 함께 넣을 테니 크게 무리는 없을 겁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대충 무슨 뜻인지 눈치챈 양재문이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씨발…… 알았다.”
휠체어가 사라진 다음 눈치를 보던 녀석이 알약을 입안에 넣고 삼켰다.
잠시 후, 힘없이 뛰던 바이탈 사인에 서둘러 정맥에 주사를 놓는 의사. 이내, 가느다란 전자음에 멎는 순간 길게 뻗는 효과음에 덩치 큰 떡대들이 뛰어들었다.
“양 전무님! 갑자기 와 이러십니까? 사람 무섭게.”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의사 양반. 멀쩡한 양반이 왜 이래?”
“저도 그건 좀. 갑자기 사태가 악화하는 바람에.”
“뭐요? 의사 양반이 모르면 어쩌라고. 형님! 정신 차리십시오. 형님. 눈 좀 떠 보세요!! 제발!”
몸을 거세게 흔들어도 보았지만 야속하게도 양재문은 아무런 생체 반응이 없었다. 잠시 후, 사방에서 흐흐흑 하는 통곡과 함께 함께 오열이 흘러나왔다.
* * *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실내 낚시터 문 앞 ‘출입금지 - 철거 예정’ 포스터가 붙어 있다.
안쪽의 벤치용 의자에 길게 파묻혀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주맹덕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철거를 하다 만 흉물스러운 건물들 사이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
대낮이지만 귀신이라도 나올 듯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끼익하고 열리는 문에 인기척을 느낀 주맹덕이 눈을 감는다.
찌를 드리운 채 움직이지 않는 주맹덕에 뚱한 표정의 김정욱.
본체만체하는 주맹덕에 김정욱이 투덜거리며 신발의 먼지를 털었다.
“취향 한번 독특하구만. 하필 불러내는 곳마다 다 이런 곳이요?”
“아이구 이거 미안하구만. 미래의 대 태동그룹 총수를 이런 누추한 곳으로 불러내고 말이야.”
“또 왜요. 용건이 뭡니까?”
“응, 용건이라? 내가 꼭 무슨 용건이 있어야만 널 부를 수 있는 사람이던가?”
정색하는 주맹덕이 지껄이자 바로 움찔하는 김정욱. 그러자 주맹덕이 앞으로 스윽-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앞으로 장소를 바꿔야 할 거 같아서 대충 리스트 올렸어. 이 장소도 너무 오랫동안 써서 말이야. 출장소 새로 세팅될 때까지 당분간은 다이렉트로 보고 올려.”
짤막한 말투에 파르르 떠는 김정욱. 내민 서류를 슬쩍 확인하는 척하더니 주맹덕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쓸모없어지면, 나도 양재문이처럼 처리할 건가?”
김정욱으로서는 꽤 용기 있게 꺼낸 이야기였지만 주맹덕은 코웃음을 쳤다.
“이런 병신, 쫄았나? 암만 뭐래도 우린 합법적인 정보기관이야. 이번 일은 심원효가 혼자서 생쇼한 거고.”
“퍽이나, 그쪽에서 나서지 않았는데 심씨 혼자 풀발기해서 칼춤을 췄다? 그걸 내가 믿으라고?”
“믿거나 말거나 니 자유지. 굳이 생각 같은 거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다음 주까지 태동산업 전체 사업 현황과 임원진 명단, 사내 조직도 전부 올려놔.”
그 말에 안색이 나빠지는 김정욱이었다. 입술을 깨무는 그였지만 더 추궁할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 알고 싶은 거요?”
“지금까지 니 선에선 알 수 없었던 정보들, 혹여 바뀌거나 수정된 내용들 있음 섬머리(Summary)해서 알았어? 특히나 태동 쪽에서 관리 중이던 금뱃지 명단 빼먹지 말고.”
“알았소다. 그럼.”
한시도 더 있기 싫다는 듯 바로 자릴 털고 일어서는 김정욱의 행동에 주맹덕이 다시 찌를 드리우며 말했다.
“참 그리고 심원효 그 새끼 조만간 나올 거야.”
“뭐…… 뭐라고요? 세상에 그 난리를 쳐 놓고 풀어 준다고?”
“증거 불충분이다. 못 박아 두겠는데, 그놈은 절대 건드리지 마. 알았어?”
불만스러운 듯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이었지만 동의하는 기색이 아니다. 김정욱의 차가 동네를 빠져나가는 모습에 부하 하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무래도 신뢰가 안 가는데 저놈 믿을 수 있겠습니까? 혹 딴마음이라도 먹으면 ”
“어차피 한 번 써먹고 버릴 새끼 아닌가. 어그로 끌 놈도 필요하고. 어차피 돈 챙기고 나면 더 볼일 없지. 원한 관계로 깔끔하게 정리해 버리면 되니까.”
“역시 지 부장님.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아직 끝난 건 아니지. 혹시 딴마음 먹는 놈들 있나 감시 철저히 하고, 부정 타지 않게 조심해.”
“옙!”
생각보다 순조로운 진행에 여유가 생긴 주맹덕.
제일 어려운 문제는 정리되었으니 이 일만 제대로만 마무리하면 출세는 스트레이트다.
강태준이 걸리긴 하지만 병신 다된 놈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겠나.
그렇게 며칠 후, 양재문의 장례식이 열렸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