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습격
손을 잡은 두 사람은 입이 단내가 날 정도로 무작정 달렸다.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두 쪽으로 컨테이너가 다시 보인다.
갈림길이 나타났을 무렵, 벌써 몇 명이 뒤로 가까이 따라붙었다.
탕 소리와 함께 불꽃 튀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컨테이너 뒤로 숨은 강태준. 곧장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응사하는 강태준에 주춤하는 녀석들, 그사이 설유하와 강태준은 잠시 숨 고르기를 했다.
“헉헉, 태준 씨, 이제 어떡하지요?”
“아무래도 여기서 결판을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유하 씨는 저기 반대편으로 무조건 뛰십쇼.”
철컥~ 총기를 다시 점검한 강태준이 다시금 남은 총알을 채우자 설유하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네? 저 혼자 도망가라고요? 지금?”
“저놈들 목표는 애초에 접니다. 유하 씨까지 인질로 잡히면 안 되니 어떻게든 몸을 피해요.”
“하지만…….”
“가요 지금! 당장!”
탕탕 들리는 소리에 강태준이 반격하며 총을 쏘았다. 입술을 깨문 설유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나가자 그 광경을 목격한 놈들이 새된 소리를 질렀다.
“시발, 계집년이 도망친다!!”
“잡아!”
추격을 서두르는 녀석들이자 강태준이 총을 쏘며 응전하자 쉬이 쫓아가지 못한다. 대치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몸을 숨긴 강태준은 빠르게 도망칠 곳을 물색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침 저 멀리 창고 하나가 보인다.
‘두 블록 거리. 비료 창고인가?’
순간 간헐적으로 들리던 총기 소리가 멈추었다는 것을 깨달은 강태준. 일순간의 정적과 함께 인기척을 느낀 강태준이 옆을 돌아보는 순간 코앞에서 마주친 얼굴에 곧바로 손칼을 찔러오는 녀석.
쭉 뻗어오는 칼에 반사적으로 손목을 비틀며 팔을 꺾었다. 큭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녀석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자 곧바로 싸커킥을 날리는 강태준. 목이 꺾이는 소리와 함께 뒤늦게 달려드는 동행인에 강태준이 팔꿈치를 들어 공격을 막았다.
엌!!~
의도치 않게 팔꿈치를 급소에 가져다 댄 녀석이 가랑이를 잡고 쓰러지자, 강태준은 총알처럼 달려 나갔다.
다시금 들려오는 총알이 귓가를 스치는 사이, 강태준은 아까부터 눈여겨보던 비료 창고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자물쇠가 잠겨 있지 않은가.
따라붙은 인원만 5명.
단단히 잠긴 쇳덩이에 초조해지려던 찰나. 마침 삽자루 하나가 눈에 띄었다.
깡깡!~~ 깡!~~
급한 김에 삽자루로 자물쇠를 후려갈기자 쇳덩이가 깨지며 창고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안쪽에서 풍기는 비릿한 쇠 냄새. 아직 내부 수리가 덜 끝났는지 어수선한 분위기의 창고 안엔 아직 쓰다 남은 시멘트 포대가 널려 있었다. 비료가 섞여 있어 쿰쿰하게 느껴지는 장소. 안으로 쑥 들어간 강태준이 얼른 시멘트 포댓자루 옆에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뒤따라 들어온 녀석들.
“이쪽으로 들어온 거 맞아?”
“확실해.”
강태준이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에 숨을 죽인다. 몇몇 실루엣이 문 앞에 몰린 모습에 강태준이 침착한 손길로 권총을 꺼낸다.
‘아까 총알을 너무 낭비했군.’
남은 총알은 고작해야 4발. 한 발에 1명을 끝장내도 한 알이 남는다. 나머지 무기로 쓸 만한 거라고 해 봐야 삽자루가 다인가? 사슬 낫을 움켜쥔 그가 숨을 죽이며 기다리자 들어온 녀석들이 한 마디씩 지껄인다.
“어휴, 여기는 뭐. 청소도 안 하나?”
“그러게. 스벌 물건을 팔려면 청결해야지.”
“사돈 남 말은. 어이, 강 사장님. 여기 좀 나오시죠. 우리 이야기 좀 하자고.”
“그래. 비즈니스 얘기 좀 하자는 거지. 설마 지가 죽이기야 하겠소?”
“우리도 먹고살아야지. 그보다 아까 도망한 여자가 약혼녀요? 아주 야들야들 피부도 투명한 게 하나도 안 비리게 생겼더만.”
“그라게. 듣자 하니 좋은 집안 공주님이라던데. 거, 밤일도 잘하려나?”
“밑에 깔리면 앙앙대겄지. 앙칼지게 말이야!”
되먹잖은 소리를 지껄이며 키득거리는 녀석들. 도발하는 것이 일부러 들으라는 소리인 듯하다.
‘히트맨은 대략 5~6명. 심원효가 보낸 건가?’
눈빛과 행동거지를 봐선 분명 프로들. 어둠 속. 손에 들려 있는 칼들이 서슬 푸른 빛을 낸다.
강태준은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이마를 만지작거린다.
한쪽 무릎을 꿇고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문을 향해 총을 겨누는 강태준. 숨 막히는 순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했다.
“쥐새끼처럼 어디 숨었나? 하 시발 새끼. 사람 힘들게 하네.”
“남자답게 나오지 그래. 수고 좀 덜 들이자고. 강 사장. 애도 아니고 숨바꼭질합니까.”
시시덕거리며 도발하는 녀석들이 주위를 돌며 시선을 훑는다. 손아귀에 쇠몽둥이를 든 녀석이 고개를 힐끔댄다. 포댓자루 사이를 들여다보는 녀석들. 그 중 쇠 파이프를 든 놈이 휘파람을 불며 주위를 돌았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디 숨으셨나 그래?”
무슨 낌새를 눈치챈 듯 주변을 서성이는 녀석. 그 순간 휙 하고 날아오는 단검에 엉겁결에 맞을 뻔했다. 아슬아슬하게 칼날을 피한 강태준이 숨을 몰아쉬는 사이 코앞에 칼이 날아가는 걸 본 동료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 새끼가. 어디서 칼질이야?”
“아니, 뭔가. 있나 싶어서. 쏘리.”
“병신이. 설마 지렸냐?”
자기들끼리 낄낄대는 녀석들. 고개를 갸웃하며 단검을 회수하기 위해 포대 사이로 들어온 조직원이 떨어진 단검을 집어 드는 순간. 쇠로 된 갈퀴가 정확히 손등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끄아아아아아아!”
고통에 소리를 지르는 녀석이 전투 불능이 되기 무섭게 탕하고 총구가 서로 불을 뿜는다. 허벅지가 뚫린 녀석이 쓰러지자, 허걱! 기겁하며 피하는 놈들.
정맥을 뚫고 간 것인지 피범벅이 된 녀석이 신음하자 양쪽으로 피한 서로 욕지거리를 하며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다.
“시발 저 새끼. 총알 다 썼다며!”
“몇 발 안 남았어. 저거 어차피 6발짜리야.”
“이런 미친놈이, 짭새 온다니까? 시간 끌면 새 되는 거 몰라. 날래 움직이라우!”
시선을 주고받은 몇 명이 총을 겨눈 강태준의 눈빛을 살피더니, 순간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튀어 나간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포박하려는 수작이었다. 그러자 다시 날아가는 총알에 젖혀지는 머리. 다시금 연사하는 강태준에 한 놈이 무력화되었지만. 벌써 다른 놈이 코앞까지 접근했다. 그 놈이 도끼를 휘두르려던 찰나, 고개를 숙인 강태준이 석회가 든 포대를 찢으며 손에 가루를 뿌렸다.
“내 눈! 내 눈!”
생석회 가루가 눈에 들어가자 안구에 화상을 입은 녀석이 미친 듯이 울부짖는다. 광란 상태에 패닉에 빠진 녀석에 도끼를 풀 스윙으로 휘둘러 대는 모습에 고개를 숙인 강태준이 삽을 들어 곧바로 무릎을 찍었다.
컥!!~~
연골에 삽날이 찍힌 녀석이 바닥을 기며 괴로워하자, 달려드는 녀석의 머리를 풀 스윙으로 후려갈기는 강태준. 피를 흩뿌리며 나가떨어진 녀석이 부들대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춘다.
순식간에 두 명이 더 무력화되자 주춤하는 녀석들. 그러자 앞에서 달려든 깡패놈이 쇠몽둥이를 후려갈겼다.
큭!! 탕. 타앙!
어깨로 쇠 빠따를 받아 낸 강태준이 바닥을 굴렀다. 고통을 참으며 일어나는 동시에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강태준.
갑자기 작동하지 않는 총에 강태준이 멈칫하자. 다시 달려드는 녀석. 옆으로 고개를 숙인 강태준이 방아쇠를 재차 당기자, 격발음과 함께 팡 하고 총성에 가슴이 뚫린 녀석. 천천히 고개를 숙인 녀석이 샘물처럼 솟구치는 피에 비틀대더니 풀썩 쓰러진다.
이제 다 정리한 건가? 상황을 살피려는 순간 어디선가 휙 날아오는 칼날. 싸늘한 감각에 고개를 돌려 피했지만, 나머지 공격은 피하지 못했다. 퍽 소리와 함께 어깨에 올라오는 뜨거운 감각에 찌르르한 고통이 엄습했다.
“어때, 어깨가 졸라 화끈하지?”
방탄조끼를 뚫고 들어간 칼날이 꽤 깊이 들어간 듯 한쪽이 계속 아릿하다.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참아내는 강태준에. 그림자 뒤에서 걸어 나온 녀석. 뚜벅뚜벅 멜빵을 입은 녀석이 회칼을 들고 칼끝으로 그를 겨누었다.
“씨발 존내 반갑네. 내 얼굴 기억하나?”
“누구?”
“이거 기억 못 하면 섭섭한데. 우리 나름 찐한 사이 아니었나? 황학동에서 골동품 팔 때 만났잖아. 그새 잊었나?”
깡말랐지만 어디서 본 듯한 외모에 그 순간 강태준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엄석대?”
“하하, 알아보긴 하는구먼. 이거 진짜 오랜만이지?”
생각해 보니 이놈은 예전에 동대문 시장에서 대장 노릇을 하던 녀석이 아닌가. 예전과 다르게 살이 쪽 빠진 녀석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의문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살기를 번득이며 피 묻은 회칼을 뽑아 드는 녀석에 철컥- 맨 앞의 이마에 겨누어지는 총구.
“움직이지 마.”
총을 겨누는 강태준의 위협에 녀석이 피식하고 웃었다.
“병신아. 이미 총알 다 쓴 거 모를 거 같냐. 자.”
이미 쓰러진 부하가 놓은 칼을 발로 슬쩍 앞으로 밀었다. 강태준이 그 모습을 보며 이마를 좁혔다.
“뭐 하자는 건가 지금?”
“뭐, 나도 가오가 있지. 무장 해제한 일반인을 그냥 죽이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뭔가 앞뒤가 안 맞군. 1대 6은 정정당당한 거고?”
“니도 총 쐈으니 겸사겸사 아니겠어? 적당히 뭐 이제 좀 클린해진 거 같은데.”
칼을 든 녀석이 좌우로 목을 뚜두둑 꺾었다. 거리를 벌린 강태준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동생도 하나 있었던 걸로 아는데…….”
“기억력 좋군. 동생은 빵에서 맞아 죽었지. 내는 사형 판결받고 그간 노역장에서 뺑이쳤고. 탄광 일 해 봤나? 근력 운동에 아주 죽이더군.”
“자업자득이지. 근데 사형수 주제에 어떻게 나왔냐?”
그 말에 엄석대가 클클 웃었다. 쇳소리에 가래가 섞인 듯한 기괴한 웃음이었다.
“세상이 원칙대로 돌아가지만은 않지. 뭐. 이유를 말해 줘야 하나?”
“아니. 궁금해서.”
“일단 예열 좀 하고. 자 일단 몸의 대화부터 해 볼까?”
눈치를 본 강태준이 슬쩍 칼을 집어 들려는 순간 곧바로 총알처럼 튕겨 나오는 녀석. 칼을 집은 강태준이 간격을 벌리기 무섭게 곧바로 하체를 노린다.
날카로운 칼날이 서로의 몸을 찢고 찌르고. 순식간에 펼쳐지는 공방에 칼날이 강태준의 볼을 스쳤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칼날에 피가 주르륵 흘린 강태준. 칼날에 묻은 피를 혀로 할짝거리며 엄석대가 이죽거렸다.
“야. 좋은 것만 먹어서 딴 놈들이랑 맛이 다르네. 피가 맑아.”
“미친놈. 그보다 실력이 장난 아닌데. 어디서 배웠냐 이거?”
“빵에 들어가 보니, 할 수 있는 게 운동밖에 없더라고. 강태준 네 소식은 간간이 전해 들었지. 꽤 출세했더만. 덕분에 동기부여는 확실히 되었지.”
“거 웃기는군. 그래서 한다는 게 고작 심원효 따까리냐?”
“심원효라니? 날 그 정도 수준으로 보면 섭하지. 아 그 병신이 무슨 능력이 있다고 날 빼 주겠나. 지 깜빵 뺄 능력도 안 되는 놈이…….”
“그럼 중정 쪽이군. 부산지부? 아니면 그 위? 뭘 약속했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강태준의 말에 인상을 구긴 녀석은 대답 대신 피 묻은 칼을 다시 역수로 쥐었다.
“네 새끼 처리하면 사면으로 빼 준다던데? 어차피 너 땜시 내 인생이 꼬였으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게다가 알아서 뭐 하게? 어차피 니는 여기서 뒤질 텐데…….”
“죽어도 그냥 죽으면 억울하잖나. 그 정도야 알려 주는 게 예의 아닌가?”
“입만 살았군. 그럼 뒈질 때 가르쳐 주마. 그건.”
더 할 말 없다는 듯 덤벼드는 녀석에 마주 자세를 잡는 강태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칼을 휘두르는 두 명. 한 합의 교환으로 명백히 손해를 본 쪽은 강태준이었다. 어깨에서 아릿하게 느껴지는 고통에 강태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호신술 연습 안 했음. 바로 뒈졌겠군.’
인정하긴 싫지만, 상대의 기량은 명백히 위다. 지혈할 시간이 없이 칼을 힘주어 쥐는 강태준에 도발하듯 칼을 핑그르르 돌리는 엄석대. 엄석대가 다시 공격을 시도하자 다시금 솟구치는 핏줄기. 강태준도 이번엔 피륙을 스치긴 했지만 강태준은 이번에도 유효타를 먹이지 못했다.
“어이 벌써 끝인가. 재미없게? 고작 이 수준이야?”
“아직은 길고 짧은 건 대 봐야지.”
호기를 부리는 강태준이었지만 이미 다친 한쪽 팔은 감각이 사라지고 있다.
근육이 상한 건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이대로 가다간 무조건 필패. 결심을 굳힌 강태준이 과감하게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