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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78화 (178/361)

178화 함정 카드

이번에 또 뭘 선보일지 걱정이 앞서는 이사들.

그러나 가방에서 나온 것은 빼곡하게 찬 10달러 더미였다.

“오오!”

푸른 배춧잎의 향연에 다들 감탄을 흘리는 이사진들. 아까의 위협을 잊어버린 이사들이 황홀한 눈빛으로 곁에 모여들자, 어느새 사람 좋은 미소를 띤 심원효가 방긋 웃었다.

“뭐 아까는 농담이고, 이건 성의 표시차 준비한 금액입니다.”

“하하. 심 이사도 참. 하하!! 뭘 벌써 이런 것까지 벌써…….”

“이번 임시주총서 대표이사 선임 건만 잘 넘기면 추가로 사례하지요. 앞으로도 태동산업 경영에 저 좀 잘 도와주십시오.”

“하모. 우리 다 형제 아이가?”

“맞네. 심 이사야말로 우리 태동의 적통이지.”

금세 손바닥처럼 태도를 바꾸어 한 마디씩 추켜세우는 사람들.

어색해졌던 분위기는 돈이라는 마력 앞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한 가방씩 두둑이 액수를 챙긴 이사들이며 요트에서 내리자 심원효가 성가신 듯 중얼거렸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 떡 줄 사람은 생각은 안 하는데 욕심은 많아서는?”

“그래도 그런 자들이니 저리도 쉽게 더 회유된 거 아니겠습니까?”

덤덤하기 짝없는 비서의 대꾸에 심원효가 끄덕였다.

“뭐 그렇지. 그럼 저놈들 지분까지 포함하면 이제 지분비율은 대략 어느 정도지?”

“우호지분 포함하면 대략 47프로 선입니다. 최종적으로는 52프로까지는 받을 거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양 전무는?”

“아마 다해 봤자 45프로 선일 겁니다.”

“일단, 지분확보에는 역시 돈이 직빵이라니까. 정욱이, 아니 사촌 형은 뭐 하고 있나.”

“집에 누워서 숨만 쉬고 있슴다. 가끔 차 마시러 드나드는 것 말곤 특이한 게 없습니다.”

“병신 새끼. 이제 쫄리겠지. 아직 임시주총 끝난 거 아니니까, 잘 감시해. 그리고 이사 놈들. 믿을 만한 종자가 못되니 혹 누구랑 만나는지 확인하고.”

그러자 덩치 큰 떡대 하나가 그에게 물었다.

“걱정 마십시오. 근데 형님. 양재문 그 양반은 어쩝니까. 태동산업 접수해도 그쪽 놈들이 가만 안 있을 텐데요.”

“별거 있나? 노친네는 대충 이쯤에서 은퇴하셔야지.”

“네. 그 양반을 아주 잘라 버리면 선장들의 반발이 심할 텐데요?”

“바보야 남 좋은 일할 일 있어. 누가 바로 짜른 댔나? 한직에 돌렸다 적당히 기회 봐서 하차시켜야지. 어차피 지분 오래 갖고 있을 생각 없으니 일단 경영권 확보하는 대로 협상 시작해. 마침 발해 이억수 사장이 이쪽에 관심이 많다니 말이야.”

“회사를 팔아 버린다니 좀 아까운데요. 원양어선 쪽 실적이 급성장하는 것도 그렇고 태동 쪽 전망이 꽤 밝지 않습니까?”

“뭐 골치 아프게 원양어업 같은 걸 왜 해. 백번 잘돼도 한번 삐끗하면 망하는 게지. 혹시나 배가 침몰하기라도 해 봐. 그 손해가 얼만데. 차라리 이참에 실탄 챙겨서 땅 투기나 하는 게 나아.”

“땅 투기라. 그게 돈이 되겠습니까?”

“경제가 발전하면 결국 우리나라도 홍콩처럼 변모할 걸세. 4대 문 요충지나 강북 쪽에 적당한 토지나 이빠이 쟁여 두면 그게 최고 아닌가. 뭐 쓸데없이 개짓거리 할 이유 없지.”

“역시…… 영명하십니다.”

“그놈의 빌어먹을 성락원도 빨리 팔아야지. 아버지도 쓸데없는 데 꽂혀서는…….”

성락원. 말만 들어도 지겹기 짝이 없다. 그놈의 말도 안 되는 관광 사업에 투자한답시고 날린 돈이 얼만가.

심익태 본인은 사업차 투자한다고 하지만 비용 대비 편익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심원효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더욱이 어렸을 적, 두 명이 밀회를 즐기던 그때의 충격적인 장면은 아직껏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왜 병신같이 도망쳤을까.

‘마음 같아서는 완전히 헐어 버리고 싶지만 이번 지출이 컸으니 말이야.’

아버지도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성락원을 계모에게 넘겨주겠다 미리 공증까지 했지만 법에는 유류분이라는 제도가 있지 않나. 성락원 지분을 팔면, 이번에 주주 매수차 지출한 비용을 메꾸는 데 꽤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계모는 그걸 지키려고 할까?

심원효가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박차고 들어서는 형사들.

급작스런 사태에 당혹스러워하는 심원효에 앞으로 나온 형사는 휘유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어이구야. 한국에 이런 배도 있었나? 때깔 좋네.”

“어이 뭐냐, 니들? 뭔 짓거리야?”

저만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뚜벅뚜벅 소리가 들리더니 신명부의 모습이 보인다.

“와따, 양아치 새끼들이 호강하는구만. 이거 회인가? 아침부터 이게 넘어가냐?”

형사들을 헤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는 신명부에 순간, 멈칫한 심원효였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한다.

“누군가?”

“대한민국 검사다 임마. 역시 부잣집 도련님이라 그런지 좋은 거 자시는구만. 내는 니들 잡느라 며칠이나 잠복 텄는데 말이여.”

이사들 접시에서 남은 회 한 점을 쿡- 집어먹은 그가 척- 코앞에 영장을 들이댄다.

이게 뭔데? 하는 눈길로 보다가 어이가 없는 듯 웃고 만다.

“좀 기니까 잘 들어. 심원효. 사기, 협박 갈취, 그리고 횡령…… 뇌물공여. 암튼 니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뭐…… 뭐야. 이거 입증할 증거는 있고?”

그 말에 신명부가 구겨진 영장을 코앞으로 가져다 대며 대꾸했다.

“눈깔 제대로 박혔으면 봐라. 이거 법원에서 정식으로 발부받은 영장이여. 잔말 말고 조용히 가자고. 저 새끼 수갑 채워.”

“따거!”

“쯔오시마!(找死吗)?”

형사들이 수갑을 꺼내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심원효 밑에 있던 수하들이 곧바로 연장을 꺼낸다. 분위기도 흉험해지자, 권총을 빼드는 신명부.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형사들도 곧바로 총기를 꺼냈다. 총신을 보고 곧바로 엉거주춤 움찔하는 녀석들. 신명부가 하찮다는 듯 녀석을 보며 이죽거렸다.

“어이구냐. 충신들 납셨구먼. 용기 있음 하나 나서 봐라. 내 친히 대가리에 총알 박아 줄 테니.”

“…….”

“줄줄이 같이 엮이고 싶지 않으면 꺼져.”

서슬퍼런 공권력에 찍소리 못하는 녀석들.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심원효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이거 누가 고변한 거냐? 설마 양재문 전무…… 그 자식이냐?”

“임마. 해코지하려고? 그거야 너 따위가 알 거 없잖나. 잔말 말고 끌고 가!”

대책 없이 끌려나가는 심원효.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심원효가 잡혀갔다는 소리를 들은 미망인 최미령이 귀를 쫑긋했다.

“원효가 구속되었다고요?”

“예.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는군요. 사무실을 털었는데 횡령, 배임에 뇌물을 공여한 증거가 빼박이라. 주주들을 매수한 명부가 있어서 일일이 참고인 조사 중이라는군요, 심원효는 바로 구치소로 이송조치 될 예정입니다.”

김정욱의 대답에 최미령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다니 자업자득이네요. 하지만 그 성격에 과연 가만있을지?”

“어차피 그쪽이 집권하면 우리는 끝장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해야죠.”

“하지만 심원효 그 녀석 그냥 당하고 있을 성격이 아니잖아요. 분명히 저희를 의심하고 있을 텐데? 잘못해서 칼부림이라도 나면.”

“그러니까 만나 봐야지요.”

“네? 가지 마요. 당신까지 잘못되면 난…….”

겁에 질린 최미령이 품 안으로 파고들자 김정욱이 그녀를 힘주어 안았다.

“걱정 말아요.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

“무슨 복안이라도 있어요?”

“양재문과 엮어서 처리할 생각입니다.”

“어떻게요?”

그 말에 귀에 뭔가 속삭이는 김정욱, 이야기를 듣던 최미령의 눈이 커졌다. 최미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위험한 일이잖아요. 그건.”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려면 이 방법뿐입니다.”

“정말 그 정도에 속을까요? 심원효가?”

“놈도 보통 인간은 아니라지만 상대는 정보부입니다. 원래 권력 앞에서는 이성이 흐려지는 법.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믿을 수밖에 없게 적절히 약을 쳐 놨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혹 잘못되면요? 그쪽이라고 믿을 수 있겠어요?”

“나만 믿어요. 태동에서 이윤을 뽑아 먹으려면 정보부 쪽에도 쓸 만한 대리인이 필요할 테니. 놈들도 그 전엔 절대로 날 버리지 못해요.”

“하지만…….”

“이번 일만 끝나면 우릴 속박할 사람들은 없지 않습니까. 일 끝나고 어디 조용한 데로 가서 같이 삽시다.”

“당신만 믿어요.”

며칠 후, 서울구치소로 면회 요청을 한 김정욱. 며칠간의 구치소 생활이 고되었는지 며칠 새 초췌해진 기색의 심원효가 가시 돋친 어조로 비아냥거렸다.

“여긴 왜 왔소? 내 꼬라지 어떤가 구경하러?”

“이런 데를 구경 오는 사람이 있나. 그냥 안부 차 왔다.”

“세상에, 형이 날 걱정해 주시기까지 하다니. 이거 고마워해야 하나.”

“난 너한테는 별 유감 없다. 돌아가신 심 사장님께는 미안한 마음뿐이고.”

“그런가? 그럼 과연 내 정보는 누가 흘렸을까나?”

심원효의 비꼬는 말에 김정욱이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사나운 눈빛의 심원효가 으르렁거렸다.

“내가 바보인 줄 알아? 나 잡겠다고 이런 추잡한 짓까지 벌이다니. 울 아부지 없어지니 이제 댁 세상 같나?”

“거 참, 그건 적반하장 아닌가? 추하다 인마. 니가 뇌물 먹이다 제풀에 걸려놓고 대체 누구 탓을 해?”

그 말이 더 화를 돋웠었는지 심원효가 콧김을 뿜으며 씨근덕거린다.

“이 비겁한 새끼가. 이렇게 날 매장시키고 회사를 홀랑 털어먹겠다?”

“어이. 내가 움직였음 이렇게 티 나게 작업했을 거 같아? 나 그렇게 멍청한 놈 아니야.”.

“아니긴 이런 개 씨발!! 아가리 찢어 버리기 전에 그 입 안 닫아? 내 여기서 나가면 네놈을 손수 고기밥으로 만들어 주겠어,”

움찔하는 김정욱이었지만 이미 내친 김이다. 속으로 심장이 떨리는 김정욱이었지만 애써 내심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철판을 깔았다.

“머리가 있으면 니도 생각해 봐라. 원효 니가 나가리 된다고 내가 사장 될 확률이 있어 보이냐?”

“개소리 집어치워!”

“인마. 난 네 편이야. 솔직히 내 항해사 경력은 양재문 그놈이 쫑낸 것이나 다름없는데 내가 그놈이랑 편 먹겠냐 그놈이 집권하면 나도 모가지라고. 괜히 목 축나게 열 내지 말고. 현실을 봐.”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씨근덕대는 김정욱의 눈빛에 김정욱이 한숨을 쉬었다.

“믿거나 말거나. 암튼 변호사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참고 기다려 봐. 여기저기 약 쳐 놓은 데도 많으니…… 주총 일정은 연기해 달라 요청해 놨으니 너무 걱정 마라. 사람이 죽기야 하겠냐?”

“내가 댁 말을 어떻게 믿고?”

“그러면 누가 움직였는지 조사해 보던가.”

“엿이나 처먹어. 새끼야.”

심원효가 빈정대듯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김정욱이 고개를 절레 저으며 나가자, 분기를 참지 못한 심원효가 벽을 냅다 후려쳤다.

쾅!

* * *

그로부터 수 시간 후, 텅 비어 을씨년스러운 기운마저 감도는 부둣가.

한동안 해수면을 바라보는 강태준이 석양이 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은은한 노을빛에 한동안 감상에 빠져 있는 사이, 어깨를 툭 친 양재문이 물었다.

“뭐 지지리 궁상이냐 임마? 여기서는 왜 보자고 했어?”

“해장국집에서 보는 건 좀 아니다 싶어서요. 갔던 거래는 잘 되었습니까?”

“선주 놈 설득하느라 겁나 힘들었지. 누가 일본인 아니랄까. 아닌 척하면서 겁나게 계산을 돌리더군. 욕심이 덕지덕지 묻은 게 얼마나 깐깐한지. 그냥 벽창호더라고.”

“그래서 성과는 있으셨습니까?”

“내가 누구냐. 겨우 사정사정해서 계약 따냈지. 4연차도 3년밖에 안 된 배야.”

“독항선이라고 했죠? 덩치는 어느 정돕니까?”

“400톤급이야. 탑재모선식 선박이지. 캐처 보트까지 포함해 계약금 30만 불. 나머지 금액은 10년 분할 납입해 충당하기로 했어. 총 370만 불짜리 계약이네…….”

“큰 건 따시느라 고생하셨군요. 근데 외국까지 갔다 와서는 전리품은 따로 없습니까?”

뭔가 아쉬운 듯 까닥하는 강태준에 양재문이 준비했던 포장 상자 하나를 들이민다.

“그게 이겁니까?”

“나고야 지역 특산품이라는군. 자네도 먹어 봤나 모르겠는데 모양도 좋고 제법 맛나다네.”

주욱~ 상자의 포장을 벗기자 알록달록 예쁘게 자리 잡은 화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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