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각자의 꿍꿍이
담배를 꺼낸 주맹덕이 겉장 위를 손가락 끝으로 툭툭- 치며 연기를 뿜었다.
“거 삼합회라고 혹 들어봤나? 죽련회(竹聯會)란 조직과 연계한 것들인데 홍콩 조직폭력배 사이에 꽤 유명한 놈들이지. 간략히 말하면 청나라 때부터 있던 유서 깊은 깡패조직이랄까. 조직원이 한 10만 명이 넘는다던가 장기밀매부터 도박, 무역, 안 하는 사업이 없다는군.”
“허, 그래서 원효 이 자식이 짱꼴라랑 손잡고 맹랑한 짓을 하고 있다?”
“뭐 화교 자본이 붙었다 이 말이지. 나머지 우호지분도 돈으로 구워삶았거든. 다시 말해 이대로 임시주총에서 붙으면 니들 파벌은 백 프로 져.”
잠시 주맹덕을 빤히 보던 강태준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 그래서 뭐? 설마 지금 이 녀석 찍어 낼 자료를 달라는 거요? 원효 그노마가 아무리 개망나니 같다지만 그래도 우리 식구 쳐내는데 칼 빌릴 생각은 없소이만.”
“설마? 우리가 그 정도로 무능할까? 다만 우리도 이쪽에 투자한 게 있다 보니 안심이 되지 않아 말이지. 그냥 모른 척하고 있을 순 없잖나?”
그가 다른 파일 하나를 툭- 밀어주며 말했다.
“이건 뭔가?”
“심심하면 읽어 봐.”
대충 좌르륵- 파일을 넘겨보는 강태준. 내용을 보니 그간의 비리 내역이 적힌 명부였다.
“총, 30억이라……심원효 이 자식 거 많이도 처먹었네.”
“그건 표면상의 금액일 뿐. 실제 횡령액은 얼마나 될진 며느리도 모르지. 뭐 한동안 콩밥 먹일 정도론 충분하겠지만.”
“근데 이건 대외비 아닌가. 직원인 나도 모르는 자료를 빼낼 정도라면 설마, 우리 쪽에 프락치 심었소?”
“뭐. 부인하지는 않지. 근데 이건 방어 차원이야. 애초에 회사에 공적 자금이 투여되었으니 관심을 안 가질 수야 없지 않나.”
“근데 기분은 더럽구려. 뒤 닦다 아래 보인 사람 느낌이야.”
“너무 삐뚤게 생각하지 말라고. 사실 우리가 작업하면 사실 그쪽에는 유리해.”
“그게 무슨 소리요?”
그 말에 주맹덕이 모르는 척하지 말라는 듯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지금이 기회라고. 여차하면 심 사장 아들 수술시키고 태동을 들어 먹을 기회.”
“허…… 이거 기분 나쁘네. 누굴 시체 뜯어 먹는 하이에나 새끼로 압니까?”
“뭐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자네도 욕심이 있잖은가. 욕심이란 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니겠나? 자네도 나름 사업가라며? 그럼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 아닌가?”
입가에 번졌던 웃음기가 싹 걷는 강태준이 그를 노려보았다.
“난 천성이 천한 뱃놈이라 정치는 잘 몰라. 근데 한 가지는 알지.”
“그게 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거.”
“하하 까칠하긴. 뭐, 좋은 게 좋은 게 아닌가? 심원효가 후계 레이스에서 아웃되면 그짝은 손도 안 쓰고 코 푸는 격 아닌가?
“허 고양이 쥐 걱정해 줘서 아주 황송하구만. 근데 애초에 댁들 하고 싶은 대로 진행하면 그만이지. 굳이 확인증까지 받을 이유는 없다 싶은데……?”
“뭐 우리도 명색이 공무원이라서 말일세. 작업 쳐 놓고 클레임 듣지 않으려면 수술 전 보호자 동의는 받아야지. 그럼 나갈까? 부하들 기다리겠네.”
주맹덕을 바라보는 강태준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뭐.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우릴 졸로 보는 건 알겠소. 헌데 당신도 알아야 할 게 있어.”
“뭔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 가른다고 황금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 말이지. 당신들이 사업할 거 아니면, 쓸데없이 손대지 말라고.”
“그 말 명심하지.”
강태준이 돌아오자 초조한 눈빛의 복만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과 차에 탄 강태준이 일행과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말을 듣던 오재갑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거, 심 사장이 꽤 위험한 줄을 물었군요. 설마 중정 쪽 라인에서 움직이다니.”
“확신은 못 하겠지만 대충 9할은 그쪽일 거 같아. 태도로 봐서 정보부서 출신인 거 같고.”
“우리 뒤를 팠다면 김필중 라인은 아닐 테고. 그럼 반대파일까요.”
“그거야 모르지. 보아하니 군인 출신인 거 같았는데 중정에 군 출신이 한둘이나? 얼굴로 보니 연식은 꽤 되어 보이더군.”
“일종의 경고일지도 모르겠군요.”
“그건 모르겠네. 알고 부른 건지. 아니면 일방적으로 통보하러 부른 건지.”
광필이와 재갑이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광필이가 다시 말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심 사장 일은 분명 유감이지만 목적이 일치한다면야 한배를 탈 수도 있고. 도와준다면 경영권 승계도 수월해질 테고 말이죠.”
“그렇게 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꿍꿍이를 모르지 않나. 난 너무 당당한 게 오히려 의심이 가더군. 혹 그쪽이 심 사장을 날린 범인일 수도 있다고 말이야.”
“설마……그렇게까지 뻔뻔할 리가.”
“돈 앞에 장사 없어. 심 사장 정도 재력이면 누구나 탐내지 않겠나. 죽일 이유야 천 가지는 댈 수 있지.”
오재갑은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심해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사람도 죽여 본 놈들이 뭔들 못하겠습니까? 언제든지 안면몰수하고 등에 칼을 꽂을지 모릅니다.”
“그건 그때 가서 대응할 수밖에. 일단은 사건 개요 정리하고 조사부터 서둘러. 김필중 본부장님 쪽에도 연락 돌리고.”
“뒤를 파 보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혹 우리 쪽이 타겟이면 앉아서 당할 수야 없지. 적어도 방어할 패를 쥐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만약 진짜로 상대가 이쪽을 적대시한다면 출혈을 각오해야 할지도. 결심을 굳힌 강태준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남해.
호화스럽게 생긴 요트 안. 한쪽으로 고급스러운 바가 설치되어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낚싯대가 매달려 있었다.
글래스 로드(FRP)로 만든 최고급 낚싯대들이 줄지어 늘어선 가운데, 심원효를 비롯한 일행이 수면 위를 주시하는 중.
잔물결이 번져 가는 물 위 변함없는 풍경에 지루한 듯 하품을 하는 이사진들.
그때 심원효의 찌가 불쑥 움직였다.
“왔다!!”
금새 팽팽해지는 반응에 힘주어 낚싯대를 잡아당기는 심원효.
힘 싸움을 하던 물고기가 끌려오자, 옆에 있던 이사들이 덩달아 소리를 질렀다.
“오오오! 힘 좋은데.”
“월척이구먼!”
팔뚝만 한 크기의 감성돔이 뜰채에 걸렸다. 퍼덕거리는 고기가 위로 올라오자, 심원효가 뒤를 보며 씨익 웃는다. 요트에 탄 선객들이 죄다 부러운 얼굴로 한마디씩 덕담을 했다.
“벌써 세 마리라니, 오늘 용왕님 편애가 심하시구먼.”
“아따, 선배님들. 분발 좀 해 보시죠.”
그 말에 멋쩍은 듯 변명하는 이사들이었다.
“젠장. 요새 출조가 좀 뜸해서 실력이 녹슬었구먼. 근래 심사가 편하질 못해서…….”
“그래요. 사장님 돌아가시고 통 정신이 있어야지. 그동안 운동할 시간이 있나?”
“아따, 그 말씀은 좀 거슬리는군요. 내가 지금 되다만 후레자식이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 말에 빈정이 상한 듯 뻐금거리는 고기를 내려놓는 심원효에 당황하는 이사들.
언뜻 말실수를 깨달은 듯 아까 그 말을 했던 원 이사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녀, 그런 의도가 우들이 뭐가 꼬였다고 동생을 까겠나?”
“그래, 요새 심 이사 쪼매 예민한가 보군. 혹 심기가 불편한 게 있으면 너그러이 용서하게. 같은 식구끼리 말 한마디에 그래 반응하면 섭하지.”
하지만 변명이 더 화를 돋웠는지 심원효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식구……? 근데 그럼 그동안엔 왜들 그러셨어요? 응? 나 홍콩 있을 때는 저기 처박아 두고. 왜 딴 놈만 쪽쪽 빨아 댔냐고? 응?”
심원효의 서슬 퍼런 태도에 식은땀이 삐질 솟아오르는 이사들.
곧바로 그중 나이 꽤나 있는 이사가 눈치를 살피며 변명한다.
“아니 저기 동생…… 그건 오해네, 오해. 자네가 외국통이고 언어도 능통하니. 선친이신 심익태 사장님 의중도 강하고 그런갑다 허고…….”
“그래…… 아이구 심 이사 내가 정말 잘못했어, 그래.”
“뭐. 다 지난 일이니. 내 너무 흥분했네요. 쓸데없이.”
버럭 화를 냈던 심원효가 인상을 풀더니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암튼. 그럼 담주 임시주총은 하나 마나겠군요. 양재문이 그 인간, 우호지분 다 합쳐 봐야 여기 우리 식구들 지분엔 못 미칠 테니 말입니다.”
“그거야 당근이지. 근디…… 동생. 아, 우리가 동생을 미는 건 당연헌건디…….”
“돌아가신 선친을 생각해서도 당연히 그래야지. 근데 말이여. 그라믄 우리한테도 뭔가 생기는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허허.”
은근슬쩍 욕심을 드러내는 이사진들의 행동에 불편한 듯 눈썹을 치켜뜨는 수하들. 하지만 심원효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했다.
“보상요?”
“하하. 서로 신뢰를 가지려면 메리트가 있어야지. 우리는 자네를 믿지만 그래도 성의라는 게 오고 가는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아이구. 그거야 당연하지요. 설마 제가 맨입으로 그 큰 걸 바라겠습니까?”
은근한 기대에 찬 눈길로 심원효를 보는 이사들. 심원효가 편한 자세로 수하들에게 손짓을 한다.
“야, 그거 하나 가져와.”
“옙.”
뭘 하려나…… 싶어 긴장하는 이사들에 나무 상자를 하나 가져오는 부하들.
상자를 열자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이 모습을 드러낸다. 입을 벌리는 이사들의 모습에 밑도 끝도 없이 숯돌을 대령하는 수하들. 그 자리에서 칼을 갈기 시작한다.
드르륵. 드르륵……
시퍼렇게 선 사시미를 숫돌에 가는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는 이사들. 무슨 까닭인지 모르는 이사들은 예고 없는 행동에 당황했다.
시퍼렇게 갈린 날을 살펴보던 심원효가 갑작스럽게 예고도 없이 생선을 향해 내리쳤다. 탁! 소리와 함께 잘려나간 생선 대가리가 단번에 잘려 나간다.
파악 튀는 피가 사방으로 튀고, 일순간 얼어붙는 이사들.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도마까지 찍혀 나갔다.
심원효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직 퍼덕거리는 생선을 잡고 슬슬 살을 슥슥 발라낸다.
“이렇게 살아 있을 때 쳐야 살이 야들야들해서 비린내가 없지 말입니다. 특히 이 눈깔이 정력에 그만이랍니다. 거, 한 이사님.”
“예? 네네!”
“이거 한잔 쭉 들이켜십쇼. 정력에 진짜 좋은 물건입니다.”
파낸 눈알을 잔에 푹 담가 건네는 모습에 혐오스러운 표정을 하던 이사들. 뜨악한 눈빛의 한 이사가 난감한 얼굴로 좌우를 돌아보았다.
“허허. 저는 괜찮으니 좀 부실한 사람이 먼저 드시는 게…….”
“어이, 사람 성의를 뭘로 보고, 정력에 그렇게 좋다니 꼭꼭 씹어 드십쇼.”
한 이사가 도움을 청하듯 옆을 돌아보았지만 다들 고개를 돌리며 딴청만 부릴 뿐.
결국 재촉에 못이긴 한 이사가 잔을 들이키지만 비릿한 피가 섞인 맛에 절로 표정이 일그러진다. 오만상을 찌푸린 한 이사가 끝까지 잔을 비우자. 만족스러운 듯 껄껄 웃는 심원효가 다시 술을 홀짝였다.
잠시 후 초고추장에 찍은 회를 한 점 입에 집어놓은 그가 자화자찬을 했다.
“음. 제가 잡았지만 살이 탱글탱글한 게 신선하군요. 뭐 드시오들…… 뭐 다들 한 자리씩 챙겨 드릴 테니 걱정 마십시오…… 여기 있는 분들 짬밥이면 계열사 하나씩 맡을 역량은 되지 않습니까?”
“그게 정말인가?”
그 말에 심원효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술술 말했다.
“뭐 약속만 지킨다면야 섭섭잖게 해 드리지요. 뭐 근데 배신이라도 할라치면……바로 이렇게.”
옆에 있는 사시미칼로 팍 하고 퍼덕대는 생선 하나를 그대로 찍어 버리는 심원효. 부르르 떠는 생선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경련하자 마치 자기가 찔린 듯 움찔대는 이사들. 심원효가 날을 태양에 비추어 보며 고저 없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확 사지를 잘라내서 젓갈로 만든 다음 남해에 뿌려 버릴려카니까요.”
안색이 창백해진 이사들의 등에서는 땀이 삐질 흘러내리는 중. 그 사이 밑창으로 내려간 부하들이 다시 서류 가방 세 개를 들고 왔다. 또 가방에서 뭐가 나올지 몰라 불안하게 눈을 굴리는 이사진들.
다시금 딸깍 소리가 들리는 순간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꿀꺽!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