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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74화 (174/361)

174화 이권 다툼

강태준의 말을 듣던 정성택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혀를 찼다.

“거, 인생 피곤하게 사는구만.”

“뭐가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움직였다면 뒷조사부터가 리스크지. 만일 살인을 감추려는 세력이 있다면야. 그놈들 입장에서 거리낄 게 뭐 있나? 역으로 타겟에 포함될지도 모르는데?”

“그렇다면 더 알아봐야죠. 손 놓고 뒤통수 맞는 것보다는 알고 대비하는 편이 낫지요.”

“확대해석은 금물이야. 일단 경찰 발표는 사고사라 하지 않았나?

“짭새 놈들을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시신 부검도 없이, 사나흘 만에 전격적으로 실족사로 처리하는 게 정상입니까. 아무래도 의심스러워서 말입니다.”

“내 생각에는 꼭 그렇지도 않은데? 사업이라는 게 자네도 알다시피, 심력 소모가 상당하지 않나. 사람은 때론 과도한 스트레스로 죽을 수도 있는 법이야.”

잠시 고민하던 강태준이 다시 바둑돌을 움직였다.

“글쎄요. 심 사장님의 최근 행적에 따르면 인천과 홍콩과 마카오를 오가는 페리 사업과 그와 연계된 대규모 리조트 사업까지 진행할 생각이셨더라고요. 영화투자 건도 그렇고, 그렇게 바쁘게 사시던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 따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하긴, 그 후처 면상 보니 죽기도 억울하겠더군. 반반한 게 구미호같이 생겨서는. 남자 잡아먹게 생겼어.”

농을 하는 정성택의 말에 피식 웃는 강태준. 강태준이 다시 돌을 내려놓고는 말을 이었다.

“확실히 의심 가는 부분이 없지 않죠. 재가한 부인과 장남은 원래 사이가 안 좋았다더군요. 뭐 상속이나, 돈 문제가 엮였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죠.”

“경우의 수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두는 게 좋지.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 건데?”

“뭐 이해관계가 있는 쪽부터 파 보는 게 나을 거 같긴 하네요. 우리 심 사장님께서 유고 직전 영화 쪽에 발을 담그고 계셨더군요.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쪽 사람들과 트러블이 있지 않았나 살펴보려고요. 사채업자들이나 연예계 쪽은 예전부터 좀 그런 쪽과 엮인 일이 많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그쪽은 막가파가 많아서, 욱하면 칼 나오는 게 다반사긴 하지.”

“그렇다면 이렇게 추론해 볼 만하지요. 심 사장의 돈을 노리고 누군가가 해코지를 한 뒤 증거 인멸 차 버려 두었을지도 모른다?”

멈칫한 장성택이 한결 진지한 눈으로 강태준을 직시했다.

“의심이 아니라 반쯤은 확신이군. 자네.”

“실종 당시의 목격자가 하나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당일 행적과 당시 신었던 신발도 사라졌는데 버린 경위도 이상하고요.”

“장례까지 마친 마당에 그게 의미가 있을까? 이미 골든타임 지났어.”

“과연 그럴까요? 범인은 생각보다 근처에 있는 법인데요.”

그러자 강태준이 서류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여기 초동수사 때부터 물증 확보한 게 있더군요. 윗선에서 덮으려는 기색이 역력해서 오히려 의혹이 들었다고 합니다. 혹시나 몰라서 인화된 사진 몇 장을 쟁여 뒀답니다. 그래도 아마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건 또 어떻게 구했어?”

“형사들도 박봉인데 다 방법이 있지요. 돈 몇 푼만 찔러 주면 만사 오케이던데요. 장례 끝나기 전에 몇 장 빼돌렸습니다.”

정성택이 피식 웃었다.

“겁도 없군. 이거 걸리면 진짜 빼박인데? 뒷감당은 자신 있나?”

“그런 걸 생각했으면 시작도 안 했죠. 설마 무서우신 겁니까?”

“무섭지 임마. 윗선에서 압력이 들어올 정도면, 보통내기가 아닌데 말이야. 잘못하면 벌집 건드는 수가 될 수가 있다고.”

“그래도 하실 거죠?”

눈을 흘기던 정성택이 피식 웃었다.

“그럼 애들 일자리 좀 알선해 줘. 아님 사업권 하나 주던지.”

“일자리요? 갑자기 왜? 그 정도야 형님 능력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요새 군식구가 많이 늘었거든. 가정 꾸린 녀석들도 많은데 수입은 줄어드니 견딜 수가 있어야지. 요새는 도박도 규제가 많아져서 말이야.”

“그럼 기술이라도 가르치고 독립시키시던지. 형님이 전부 책임질 이유는 없잖습니까?”

“젊은 혈기에 사고 친 놈들이 한둘이어야지. 정신 차리고 일을 배우려 해도 별 달고 전과자 딱지까지 붙인 놈들이 어디 취직할 곳이 마땅찮더군. 그래도 내 밑에 있던 놈들인데 어디서 빌어먹는 꼴은 보고 싶지 않더라고.”

6.25 이후 부모를 잃고 천애 고아가 되거나 주먹질이나 하며 감방 드나든 놈들이 한둘이던가. 하지만 한 번 빨간 줄을 긋고 나면 개과천선해서 사회로 복귀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만큼 적을 둘 보금자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거친 놈들을 직접 쓰는 것도 꺼림칙해지는 것은 사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강태준이 선심 쓰듯 말했다.

“음, 이건 제가 구상하는 건데. 오퍼상 일 좀 하시겠습니까?”

“오퍼상이라니 그게 뭔데? 또 뭔 일 벌이려고?”

“박 여사 말로는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군복 갈이를 하는데 그걸 받아다가 리폼해서 팔아볼까 생각 중입니다.”

“엥? 멀쩡한 군복을 왜 갈아엎어?”

강태준이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일종의 보은 행위죠.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바뀌면 군부 복식 규정을 바꿔서 선거 때 신세를 갚는 게 관례라는군요. 그럼 포장도 안 뜯은 군복 수십만 벌이 재고가 돼서 넝마 값으로 시장에 나오는데 이걸 따서 리폼해서 중동에다 팔아먹는 놈들이 종종 있다더군요. 저도 여기 한몫 끼어들어 보려고 합니다.”

“에이 진짜인가?”

“진짜요. 미국 놈들 체격이 좀 좋지 않습니까? 중동 쪽에 그걸 그대로 보급하려고 하니 영 핏이 안 산다고 할까? 정문 보초가 옷을 입고 있는데 군복 색깔이 다 다르니 좀 보기가 그렇다는군요. 소매는 한 뼘씩 길고 코트는 바닥에 질질 끌리는 마당이니 거기서 복색이랑 사이즈만 대충 맞춰 줘도 감지덕지 아니겠습니까?”

“흠…… 리폼이라 한국인이 그런 거는 전문이지.”

“그러니까요. 이 중동 놈들이 요새 석유 때문에 떼부자가 돼서 인심이 후하다네요. 깔 맞춤만 제대로 해 주면 돈도 두둑하게 챙겨 준답니다. 시장 돌아다니면서 상인들 보호비 걷는 일보다는 여러모로 낫지 않겠습니까?”

“흠. 확실히 근데 리폼을 하려면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닌가?”

“그까이 꺼.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남자면 물류 운반처럼 힘쓰는 일을 주로 하고, 여자는 재봉질 좀 배워서 실전에 투입하면 몇 달 안 걸릴 겁니다.”

“그거 뻥 아니지?”

“속고만 살았나? 거짓말이면 제가 손에 장을 지집니다. 원래 저 혼자 먹으려던 사업인데 형님한테만 알려 주는 겁니다.”

“그럼 약속한 거야? 너 그거 절대로 지켜야 된다.”

“예이. 의심병은? 그보다 대국에 집중 안 하십니까? 벌써 승기가 뒤집힌 거 같은데.”

“뭐라고?”

서둘러 다시 바둑판을 보니 완전히 흐름이 넘어간 뒤였다. 불현듯 몰려오는 허탈감에 정성택은 돌을 쥔 손을 떨구었다.

“허, 이런 젠장, 다 이긴 게임을…….”

“첫 기세는 좋았는데 뒷심이 약하시구먼요. 연습 많이 하셔야겠습니다.”

“에. 벌써 가나? 한 판 더 하지.”

“한동안 쉬었으니 다시 일해야죠. 경영권 관련해서 논의할 사안도 있고.”

슬쩍 바둑을 복기하던 정성택이 아쉬운 듯 돌아보며 어깨를 두드렸다.

“조심해. 설계 들어온 놈들 솜씨가 보통 놈들이 아니야. 조심해라. 혼자 다니지 말고.”

“뭐. 조심할 것은 그쪽이죠. 저는 한 번 죽다 살아난 놈이라 눈에 뵈는 게 없어서 말이죠.”

“썩을 놈. 패기 부리지 마라.”

밖으로 나와 보니 기원 반대편에 위치한 마트 앞에는 난닝구 차림의 노인이 무료한 듯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있다. 반대편엔 노숙자처럼 수염이 텁수룩한 중년 남자가 신문을 읽는 중이다.

평화로운 일상에 시선을 거둔 강태준.

얼른 차 문을 열던 춘삼이가 귀엣말을 건넸다.

“좀 전에 양 선장님께서 전화 주셨더군요. 기원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또 바둑 배우는 중이냐고…… 나중에 다시 전화 주신답니다.”

“알겠어. 오늘은 좀 거시기 하니 나중에 보자고 전해.”

눈을 힐끔거리던 강태준이 남자들에게서 눈을 떼었다. 서둘러 차를 출발시키는 강태준.

부릉 소리가 들리자 주변에서 구구거리던 비둘기가 깜짝 놀란 듯 푸다닥 날아오른다.

그사이 신문을 거둔 남자가 그 뒷모습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 * *

쿵!! 쉬이이잉~

수원의 어느 한 폐차장.

철거가 진행되다 만 늘어선 을씨년스러운 공간. 노란 완장을 찬 청년이 문 앞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다.

한쪽에서 유압 실린더 소리와 함께 거친 마찰을 일으키며 짜부라지는 차. 추의 무게에 견디다 못했는지 바스러지는 부품과 철판이 연신 비명을 질러 대었다. 형태도 없이 참혹하게 뭉개져 버린 승용차는 이내 고철로 화했고. 절단기로 차를 뜯어낸 직원들이 고철을 분류하고 있다.

그때 때마침 건물 앞에 끼이익- 거칠게 들어와 멈춰 서는 차.

기름에 절어 더럽기 그지없어 보이는 바닥에 인상을 쓰는 김정욱. 하지만 김정욱에게는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소장님은 어디 계신가?”

“뭐. 언제나처럼 안에 계십니다.”

빗자루가 가리키는 쪽에는 네모지고 허름한 건물 하나가 있다. 예전에 양어장으로 쓰이던 곳일까. 글씨가 변색되어 너덜너덜해진 것을 보니 꽤 오래전에 세워진 듯.

회색빛으로 변한 시멘트벽에는 ‘출입 금지 - 철거 예정’이라고 크게 쓰인 종이가 나풀거린다.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자 안은 한낮인데도 채광이 되지 않아 어둑어둑했다. 저만치에 홀로 자리를 잡고 앉아 한가로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주맹덕의 모습이 보였다.

“워이, 문 여는 소리가 요란하구먼. 고기 다 도망가겠어.”

주맹덕의 심드렁한 어조에 김정욱이 가타부타 따졌다.

“이게 뭡니까, 뭐 하자는 거냐구요?”

“이 새끼, 밑도 끝도 없이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심 사장은 왜 그랬습니까? 말로 하기로 했잖아요? 근데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입니까?”

무심히 낚싯대를 스윽- 올려 보는 주맹덕이 찌를 드리우며 중얼거렸다.

“워허, 그건 사고야 사고. 의욕이 넘치다 보면 돌발사태가 터지는 법이지.”

“무슨 인간 백정도 아니고. 사람을 소 잡듯이 잡아요?”

“어허, 우리도 뒷수습하려고 시나리오까지 써 주지 않았나.”

“그래요. 그 시나리오 때문에 왔습니다. 쪽대본도 아니고 이거 조 국장 작품입니까? 아니면 그 위입니까?”

그 말이 불쾌한지 주맹덕이 핀잔을 주듯 대꾸했다.

“그건 내 작품이야. 임마, 글고 싸가지 없는 새끼. 조 국장이 니 따까리여? 말본새하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태연하게 찌를 쓰다듬는 모습에 김정욱이 입술을 깨문다.

“저 더는 협조 못 합니다. 이건…… 선 넘었어요. 약속대로 정리해 주십쇼.“

“왜. 대본이 맘에 안 드냐? 우리 애들이 나름 공들여 만든 내용인데 그러면 섭하지. 그거 소설로 출판하면 노벨문학상은 떼놓은 당상인데 말이야.”

낚싯대를 만지작거리던 주맹덕이 다시 찌를 던지자 수면 위로 꼬륵 소리가 나더니 기포가 솟아 나온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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