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국책사업
정성이 넘치는 보고서에 장성량은 관심이 생긴 듯 신중하게 내용을 살폈다.
잠시 후, 입지를 확인한 장성량이 강태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
“흠. 나름 연구를 많이 했군…… 그래서 견내량 일대가 공사 예정지다?”
“예. 충무시에서 통영 쪽과의 연결로로는 이곳이 최적지 아니겠습니까?”
“연륙교 설치라 취지는 좋지만 과연 경제성이 있겠나?”
“지도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일단 그쪽이 해협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현재 거제에서 통용되는 교통로는 장승포를 기점으로 연초 고현을 거치거나 장승포에서 망치고개를 거쳐 거제면으로 가는 경로이지요.”
“맞아, 강 사장, 다만 연초를 거쳐 하청으로 오가는 시외버스 노선으로는 불어나는 교통량에 대응하기 턱없이 부족하지 않을까?”
“네, 바로 보셨습니다. 연륙교로 통영과 땅을 이으면 바로 직통이죠. 이렇게 되면 쓸데없는 시간 낭비도 줄어들 테고, 관광사업 활성화에도 견인차가 될 겁니다.”
실제로 65년 착공한 거제대교는 당시 통영군과 충무시 일대에서 유일하게 육지와 연결된 연육교였고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교통량이 매우 많은 지역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같은 지역 출신인 장성량은 곧바로 사업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부구조는 라멘형식이고 상부구조는 I형교 형식에 21경간인가. 게르만 강판형 공법이라니. 상당히 구체적으로 생각해 봤나 보군. 하지만 중요한 건 비용이지.”
“교량의 폭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단 거리인 700m를 기준으로 삼을 때 총건설비는 도합 200억에서 300억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허, 건설비가 상당하군. 기간도 너무 길고 말이야.”
“하하. 계획은 계획일 뿐,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산이 조기에 확보된다면 건설 기간도 더 단축될 수도 있고 말입니다.”
“흠. 비용 충당이 정말 가능하다 보는가?”
내심 의문 쩍어 하는 태도였지만 강태준은 자신감을 보였다.
“발전소나 대형 건축물 건립과 비교할 때 훨씬 경제적이지요. 발전소 같은 대형 구조물의 경우 인접성이나 계통 연계점도 양호해야 하고, 현장 조사에 결과에 따라 시공비가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까? 더욱이 전기세를 임의적으로 아무렇게나 올릴 수도 없고 말입니다.”
“계속해 보게.”
“네, 연육교의 경우에는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 발전소와 달리 완공 직후부터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합니다. 톨게이트를 설치해 통행료를 징수하는 건 전기세 인상과 달리 저항도 크지 않을 테고 말이죠.”
“확실히 대교 건설을 한다면 물류 증가 효과가 확실하게 피부에 와닿기는 하겠지.”
“네, 장 위원장님, 생각해 보십시오, 일단 지어지기만 하면 지역 주민의 일자리는 물론 외지인 유입도 늘어날 거고 그러면 지역 경제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논리정연한 말이었지만 장성량은 여전히 의구심 넘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을 추진하려면 추가 부지가 필요한데 아직 부지조차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 아닌가?”
“그건 걱정 없습니다. 이미 토지는 확보한 상태니까요. 국책사업으로 추진한다는 정부의 발표만 나면, 저희 쪽에서 건립에 필요한 토지를 공여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 부지를 이미 확보했다는 말인가? 어떻게?”
“예. 마침 징발 보상금조로 받은 대토가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지도를 다시 확인해 보니 교묘하게 전 지역에 걸쳐 있어 강태준을 배제하고서는 도저히 공사를 진행할 수 없는 수준. 노림수를 파악한 장성량이 눈을 흘겼다.
“허. 그러니까 자네 말은 자네 땅을 공여해 줄 테니, 사업 채택을 발주를 도와 달라?”
“예. 이런 대규모 사업을 민자로 진행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장 위원장님이 국회에 입성하실 때 지역개발을 위한 연육교 건설 사업안을 내놓는다면 좀 더 수월하게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까요?”
강태준의 은근한 제안에 빤히 보던 장성량이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강태준이 센스 있게 불을 붙여 주자, 장성량이 잠자코 숨을 고르며 연기를 뿜었다.
“후, 지나치게 뻔뻔하구먼. 그래, 주변 땅값이 오르면 결국 수혜자는 자네 아닌가?”
“그게 어디 저희들만을 위한 사업이겠습니까? 저희는 땅을 제공하고, 장 위원장님은 지역개발 공약의 명분도 서고 이것이 상부상조 아니겠습니까?”
“내게 기대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네만 나도 한계가 있어. 요즘 도청의 예산확보가 쉽지 않은 데다 지출은 늘어나서 감당 가능한 교량 건설비용은 한계가 있네. 국책사업으로 정부 예산을 따 오더라도 각 시도의 도움이 필요해. 도와 시 재정에 분담이 논의되고 있지만, 국비 확보를 장담할 수 없어.”
“그거야 다른 지역개발 사업에서 건설비용을 전용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미 지역개발 명분으로 예산은 확보하신 걸로 아는데.”
“그건 별건으로 받은 예산일세. 그렇게 전용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십니까? 국책사업 선정 시 정부 예산에서 지난 연도 특별회계 항목에 슬쩍 끼워 넣어 배정을 받으면 되잖습니까. 예비비 전용은 재무부의 협조를 받으시면 되지요.”
“그래 그렇게 잘 풀렸다 치자고. 예비비를 받아도 턱없이 부족할 텐데. 나머지 추가 사업비 예산은 어떻게 마련할 건가?”
“대신 마중물은 되겠지요. 추가로 소요될 사업비는 정부 승인 후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PF(프로젝트 파이낸싱)를 하여 조달하면 되고요. 미래 같은 대형 건설사를 중간에 끼면 잡음 정도는 잠재울 수 있을 겁니다.”
국책사업이 확실하다면 사업비 조달에서 은행 보증을 받는 거야 껌 아닌가. 턱을 괴었던 장성량이 찻잔을 티스푼으로 빙글빙글 저었다.
“그러니까 대형 건설사를 끼고, 우리랑 컨소시엄을 구성해 진행하자 이건가?”
“일단 다리가 만들어지고 나면, 물류는 백 퍼센트 그쪽으로 집중될 겁니다. 거제에서 부산 등 타 도시로 가기 위해선 다리를 지나는 게 필연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제대교 근처는 상당한 번화가가 될 것이 분명하지요.”
“흐음…… 일리가 있긴 하구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찻잔에만 시선을 맞추고 있었지만, 장성량의 머릿속은 이미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속으로 흔들리는 것을 파악한 강태준이 다시 말했다.
“50kw급 풍력발전기를 아무리 많이 설치해 봐야 원가 빼고 전기료로 수익을 창출하기에는 어불성설입니다. 중간에 상납할 금액을 고려하면 이윤을 많이 남기기도 어렵고요. 개발 예정지 인근 땅을 미리 수매해 둔다면 최소 서너 배는 남지 않겠습니까?”
“그건 풍력발전도 마찬가지 아닌가? 별로 새삼스러운 지적은 아니네만.”
“사업 과정에서 반발이 다르겠죠. 참고로, 육상 풍력발전의 경우, 경과지가 여러 곳이라 어민들이 드러눕는다거나 시위를 할 경우 사업이 엎어질 위험성도 있지 않겠습니다. 게다가 대교 건설은 더욱이 30~40년 동안 통행료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은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지요.”
“흐음…….”
말을 고른 강태준이 쐐기를 박듯 말했다.
“교량이 지어지면 선거용으로 홍보하기도 좋고 어필할 요소가 충분하지요. 더욱이 이 일대는 꽤 경관이 수려하지 않습니까? 여행지로 각광 받을 수 있는 여지가 높다고 선전한다면 근처 상인들도 끌어들이기 쉬울 겁니다.”
경치 좋은 지역에 여관이나 호텔을 건립하고, 근처 시장을 활성화된다면 충분히 가능성 넘치는 계획이다. 장성량도 지역 출신답게 지리에 빠삭한 데다, 도시 계획에 관심이 많았던지 그럴듯한 구상이 연이어 나왔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장성량이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지금 당장 확답은 줄 수 없지만 확실히 검토할 만한 계획이긴 하군.”
“그렇다면 동의하시는 겁니까?”
“일단 자네가 작성해 준 FS 보고서 사본 부탁 좀 해도 되겠나. 사업제안서가 그럴듯하다면 일단 통과할 확률이 높겠지. 사업 선정은 내 힘닿는 대로 추진해 볼 테니. 향후 사업 진행이 가시화되면 사업자 선정과 발주형식은 별도로 협의함세.”
“천천히 하셔도 괜찮습니다. 사업을 실질적으로 지휘할 기술자를 물색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테니 말입니다.”
입안 계획과 관련한 안은 국회의원 선거 공약에 포함시키는 것이 꽤 유리할 수 있는 만큼 해당 안건과 관련된 구상은 그때 언론에 터트리기로 했다.
합의를 마치고 난 후, 춘삼이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사장님. 언제 그런 사업까지 구상하셨습니까?”
“뭐, 사실 대교 건설은 우리 고향의 숙원 사업이었거든. 우리 아버지께서도 생전에 꼭 추진하고 싶었던 사업이기도 했고, 대토 받기 전부터 오고 가며 좀 알아보긴 했지. 마침 시기가 맞아떨어지더군. 한창 인프라 구축 사업이 한층 진행되는 중이니, 정부 정책 기조랑도 맞아떨어지고 말이야.”
그러자 뒤따라온 복만이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좀 꺼림칙하긴 하군요. 만약 혹 저쪽에서 저희 계획과 다르게 공사 예정지를 바꾸기라도 한다면 저희만 새 되는 거 아닙니까? 혹시 사업자 선정 요건을 바꾼다든지…….”
“그러게요. 정치인 놈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놈들인데.”
“걱정 마라. 그 정도면 사업을 하지 말자는 거지.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돌아갈 리 없어. 게다가 계획서 검토를 누군가에게 다시 의뢰하는 것도 부담스럽지 않겠나?”
“그렇게 될런가요?”
“혹시나 딴마음을 먹는다 해도 여기 있는 지방업체는 고만고만한 수준이라 사업을 진행할 역량도 안 되고, 특히 교량 설계 능력이 없으니 서울 쪽 교량 설계사에 외주 처리할 수밖에 없어. 그렇게 외주를 여러 곳에 나눠 주면 설계비 감당이 될까. 해협을 가로지르면서 측량을 하기도 힘들 테고, 실제 공사와 관련된 직선거리가 대략 800m이지만 접합 부분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1㎞는 될 테니 말이야.“
그 말에 묵묵히 경청하던 춘삼이도 깜짝 놀랬다.
“실제 공사 거리가 1km가 넘는다고요? 그럼 처음 이야기한 거리의 거의 1.5배도 넘지 않습니까?”
“당연히 실 건설비는 비용 인플레와 현장 조건에 따라 달라지지 않나. 교량 건설에 부수하여 방조제 축조도 진행돼야 할 테니 말이야. 아마 일부는 간척공사까지 진행될 수도 있으니 말이야.”
“에휴, 스케일이 점점 커지는군요. 눈이 팽팽 도는데 저희 역량으로 진행 가능하겠습니까?”
복만이의 우려 섞인 발언에 강태준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시공 능력이 있는 회사를 끼는 것이 관건이지. 그래서 미래건설을 파트너로 데려올 생각일세. 아무래도 큰 공사를 수행하려면 그만한 역량이 필요하니까. 일단 우리도 토건회사부터 하나 물색해 보게. 토건 쪽과 친분 있는 인사들도 몇 명 섭외해 보고.”
“흠. 그렇다면 국토건설국 사람들을 볼까요. 다목적 개간사업은 주체가 농림부에서 국토건설국으로 이관되었다고 하는데.”
춘삼이의 예리한 지적에 강태준이 칭찬했다.
“요새 영업을 다니다 보니, 꽤 보는 눈이 늘었군. 맞는 말이야 하지만 실세는 바뀌지 않았어. 실제 지방도로나 연육교 건설사업을 주관하는 부서는 중앙국토건설국이 아니라 각 지방관리청이니 말이지.”
“아! 그렇군요.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습니다.”
“아무튼 일단 아군을 늘려 놓는 게 이득이지. 교량이나 도로와 같은 SOC 사업을 추진하려면 밑밥을 잘 깔아 둬야 하지 않겠나?”
강태준은 이참에 건설부처에 있던 공무원 중 고위급 명을 추가로 섭외할 생각이었다. 건설부 중앙 국토 건설국과 기술 자문 지원 및 용역 계약을 맺고 있는 동화토건 설계사는 관련 부처 공무원들을 영입하여 정부 SOC 사업 마스터플랜과 공사 발주청의 예가를 산출하는 정보력을 매개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보다 사업 계획서는 어떻게 준비하려고요? 정부 예산을 따 오려면 그래도 전문가가 필요한 거 아닙니까?”
“우선 설 중령 지인 중에 국토건설국 과장을 맡던 정하기 씨가 최근 동화토건 상무로 이직하면서 몇 명 토건과 직원과 함께 이직했다고 하니 한번 만나 봐야지. 이쪽 기술자들 자문을 받아 정보를 입수한다면 수주 과정이 한결 수월해질 거야.”
그렇게 풍력발전소 문제를 일단락한 강태준은 새로 잡은 멸치를 박스째로 트럭에 싣고, 김해로 향했다.
도로변 녹지로 작은 표지석을 따라가 보니 늘어선 논밭에 비닐하우스들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대나무를 실은 트럭이 줄지어 대기하는 중이다. 아직도 작업이 끝나지 않았는지 쿵덕 쿵덕 하고 온실 비닐하우스 농장 마당에서는 덮을 가마니를 짜느라 기계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작업이 바쁜가. 아주 요란하구먼요.”
“지반 보강이 아직 안 끝났나? 기초 콘크리트 양생 중이었나 보군.”
트럭에서 내린 강태준이 농장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이곳 해표농장은 공업용 비닐로 터널형 온실을 설치해 한국 최초로 비닐하우스 농장을 건설한 곳으로 강태준이 찾아갔을 무렵, 기둥 기초 위에 파이프 설치 작업 검측을 하고 있었다.
상부 파이프를 연결해 가마니를 덧씌운 다음, 카시미론 솜과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차량 소리를 듣고 온 것인지 작업 중이던 최달건이 서둘러 손을 비비며 달려 나왔다.
“아이구야. 강 사장. 오셨소이까?”
“최 목수님. 이거, 제가 방해되었나 모르겠는데요.”
“허허. 그럴 리가. 마침 거의 끝나 가는 참이니 잘 왔어. 자 이리로 오시게.”
이제 제법 숙련된 조수티가 나는 철민이의 안내에 따라 비닐하우스 안쪽으로 들어가자 냉기가 사라지고 후끈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