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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67화 (167/361)

167화 거제대교

메밀묵에 잘 익은 김장김치를 송송 썰어 넣은 메밀묵채에 톳과 쌀을 안쳐서 만 톳밥에 양념장을 넣어 쏙 튀김과 함께 먹으니 꿀맛이 따로 없었다.

“이 집 요리 잘하네. 쏙이 바삭하고 고소한 게 아주 그만이구먼.”

“쏙 튀김이라 저도 오랜만이군요.”

“그래 이게 바로 남해의 맛이지.”

물기를 제거하고 밀가루를 살짝 묻혀 튀겨 낸 쏙은 고소하고 바삭바삭하다.

추억을 회상하듯 장성량이 젓가락을 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나는군.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 식당을 해서 쏙잡이를 종종 했거든. 어렸을 때면 갯벌에 나가서 하루 종일 호미질을 하고 놀았지.”

“네. 호미로 뻘흙을 걷어 내면 밑쪽으로 동전만 한 구멍들이 나오는 게 신기하더군요.”

“그렇지. 간혹 어머님이 구멍 속에 물에 푼 된장을 풀고 붓으로 쑤셔 주면 열 받은 쏙이 집 밖으로 살금살금 기어 나오는데 그게 아주 가슴이 쫄깃했어. 어찌나 빠른지 잡는 타이밍 잡기가 어려워서 고생이었지.”

“저도 처음엔 한 시간을 삽질해서 겨우 한 마리를 잡았는데 잡혀 올라온 쏙이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놓친 적도 있지요.”

“자네도 뭘 좀 아는구먼. 놈들을 물을 탈탈 털며 오물거리는 그 손맛을 있을 수가 없지. 반나절 간 갯벌에서 힘들게 잡은 녀석들을 동네 아주머니께 갖다 주면, 잘했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쏙 볶음을 해주셨거든. 물론 갯벌에 옷 버렸다고 어머니껜 한 소리 들었지만 말이야. 이제는 다 지난 추억이지만 말이야.”

공유할 추억을 찾아서인지 데면데면했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음식은 향토적인 느낌이었지만 대체로 정갈하고 맛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후식으로 향긋한 유자차가 나오자 잠시 차향을 음미하던 장성량이 먼저 운을 띄웠다.

“이거 듣자 하니 강 사장과 내가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구먼. 자네도 이곳 출신이라던데…….”

“예 그렇습니다.”

“향토 유지분들께 들은 이야기로는 선친께서 대대로 멸치어장을 했다지. 아버지가 하던 사업을 다시 물려받았으니 감회가 남다르겠구먼.”

“다 조상님께서 굽어살피신 덕이지요.”

“하하 그런 게 어디 있나. 자네 수완이 뛰어난 게지. 운영하는 사업체만 벌써 여러 개라던데…… 그런데, 근래 좀 부정적인 소문이 들리더구만.”

슬쩍 운을 떼는 행동에 강태준이 차를 내려놓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근래 멸치 어선들이 부력부를 덧붙여 배 크기를 키운다 들어서 말일세.”

“그건 확대해석이네요. 부력부는 애초에 드럼통 속처럼 빈 공간이라 배를 물에 띄우는 역할이 전부지요. 뭐 파도가 세다 보니 배가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붙이는 게 뭐 잘못되었습니까?”

강태준의 대꾸에 장성량이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양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가? 내가 듣기로는 쓰임새가 좀 다른데, 선미에 부력부를 덧대면 갑판이 길어진다지. 더 큰 그물을 싣기 위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던데 말이야. 자네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물론 그건 일견 맞는 말씀입니다만 상당수의 어망선들이 부력부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배의 용적을 키우고 있습니다. 저희만 딱히 위법적인 일을 하는 건 아니지요.”

“그렇다고 불법이 합법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법규상 엄연히 톤수 제한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지킬 법규를 회피하는 건 좋지 않아. 사업 규모나 지역에 미치는 파장을 생각하면 강 사장 같은 사람이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훈수를 두듯 어르는 듯한 말투에도 강태준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트집을 잡는 이유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 처음부터 기선 제압차 나오시겠다는 건가. 강태준이 순순히 인정하며 말을 돌렸다.

“뭐 그건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보다 한 가지 여쭈어도 될까요?”

“뭐든지 편하게 물어보게. 내 아는 선에서 답해 주지.”

“해금강 일대에 풍향 계측기를 설치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뭐. 이제 와 뭘 숨기겠냐. 아무래도 이쪽이 도서 지역이다 보니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지 않나. 농어촌 전화사업의 일환으로 전력 보강 차원에서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는 쪽이 어떤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야. 뭐 구체적인 일정은 잡지 않았지만 꽤 괜찮은 계획이라 판단해 진지하게 검토 중일세.”

“흠.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그건 배보다 배꼽이 크지 않겠습니까? 풍력발전기는 그렇게 효율이 높은 발전방식이 아닌데 말이죠. 설치비만 해도 육상에 설치하는 풍력발전기보다 훨씬 고비용인 데다 소음을 동반하는 만큼 어장과 주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강태준의 날카로운 지적에 장성량이 곧바로 수긍했다.

“다소 피해가 없을 수는 없지. 하지만 도서 지역이라고 해서 계속 1차 산업에만 의존할 수는 없어. 이쪽 일대가 발전하려면 관광사업이 필수고 그러면 전력공급부터 선행되어야 할 걸세.”

“뭐, 필요성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만 다른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지역민에게 피해를 준다면 도로 아미타불 아니겠습니까?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 다만 전력 공급이 원활해지면 다른 산업을 유치하기 쉬워질 테니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날 걸세. 예컨대 조선 사업이라던지, 통조림 공장이라던지. 그런 회사가 들어올 수도 있고. 외도나 내도 같이 전경이 뛰어난 곳이 많으니 이쪽 일대를 관광 특구로 개발하는 데도 도움이 될 테니 말일세.”

“하지만 어업으로 먹고사는 인구가 대다수인 상황에 굳이 어장에 방해요소가 생기는 건 달갑잖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해상 풍력기를 설치한다고 반드시 어군에 피해가 생긴다는 근거는 없잖은가.”

“옆 나라에서의 논문이나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실제로 발전소를 설치한 지역에 어획고 감소율이 가시적인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하시면 근거 자료를 보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하.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겠지. 어장에 피해를 줄까 우려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가시적으로 보는 게 어떤가. 앞으로 이 지역이 발전하면 다른 방식으로 이득을 얻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게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은 안 되겠습니까?”

“허허. 나도 그러고 싶네만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군. 나도 나름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하는 일이라서 말일세.”

전혀 양보할 생각이 없는 듯한 장성량의 태도에 강태준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는 수 없네요. 유감스럽지만 정 그렇다면 저희도 사업 방향을 다각화를 고민해 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럼 현재 운영하고 있는 무안-여수간 항로 여객 운수업을 이쪽까지 증설하는 것을 한번 적극적으로 검토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뭐라고 했나?”

“뭘 그리 놀라십니까? 거제도에서 육지로 나가는 교통편은 무척이나 제한적이지 않습니까. 섬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오로지 정기 여객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인데 정기 여객선이라는 것이 한 척뿐이니 이참에 추가 노선을 확장하는 것도 해 봄 직한 일이죠.”

동요하는 기색 없이 장성량은 침착하게 물었지만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어쩌겠다는 건가?”

“현재로서는 장승포에서 선편을 이용해 부산이나 마산방면으로 향하거나 사등면 성포에서 통영을 통해 대도시로 나가는 것이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이죠…… 하지만 간헐적으로 지세포항까지 연장 운항을 하는 정도로는 좀 부족한 감이 있으니 장승포 쪽에 정기편을 마련해 보려고요.”

“음…… 굳이 리스크를 질 이유가 있겠나?”

“뭐 저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해상 풍력기가 들어오게 되면 멸치어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 명백한데 그렇다면 대체재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아하니 이 근방에 물류 업체라고는 능포운수를 제외하곤 딱히 경쟁자가 없더군요.”

미세하게 눈가가 경련하는 모습. 부산에서 통영을 거쳐 여수로 오가던 배들은 대부분 부정기선들이다. 사실 전후 거의 십수 년간 정기선은 고작해야 영정호 한 척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 조금 늘어난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영정호 선주가 바로 장성량 당신의 메인 스폰서지. 근래 급성장을 했고.’

장승포를 거점으로 한 능포운수는 하청 부두에서 마산으로 가는 정기 여객선을 운용하는 유일한 회사로 고현 부두에서 마산으로 가는 물류 운항까지도 통제하고 있다.

그야말로 거제의 물길을 한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셈.

이렇게 된 데는 6.25에 전시 배를 징발당하는 상황에서 장성량이 정치적 수완을 발휘에 배를 한 척을 합법적으로 빼돌렸던 탓이 컸다. 덕분에 능포운수는 이 지역에서 나름 이름 있는 물류 업체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강태준이 이렇게 도전장을 내민다면 지금의 독점적 지위에 금이 큰 만큼 장성량으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자네 말은 거제도에서 새로 배편을 마련하겠다 이 뜻인가?”

“예. 기존엔 장승포를 출발하는 날은 부산에 가고, 반대로 돌아오는 날은 부산에서 출발해 저녁 무렵에 옥포부두를 거쳐 두모항에 입항하지 않습니까. 이런 격일제 운행은 굉장히 불편하지요. 차라리 역순으로 두모에서 출발해 옥포를 경유해 부산에서 장승포항으로 기항하는 루트를 상시 설정한다면 훨씬 편의성이 늘지 않겠습니까.”

“흠. 글쎄. 정기 운송편을 증설한다라. 해로가 충무시와 통영군 양쪽이 걸쳐 있으니 양쪽에서 허가받기가 쉽지 않을 텐데 말이야. 더욱이 운행한다고 해도 수요가 적어서 이득을 보기 어려울 걸세.”

“투자는 길게 봐야죠. 이쪽 지리에 밝은 선장만 몇 영입하면 잘 돌아갈 거 같은데요. 뭐 당분간은 적자운행이겠지만 관광이 활성화된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죠.”

“허허. 벌써 사업이 결정된 것처럼 이야기하는구먼.”

“뭐 동의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안 된다면 다른 대안을 생각해 보는 수밖에요. 이 정도 사안이면 적어도 선거에 캐스팅보트 역할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 밥줄을 건드리면 같이 똥을 뿌리겠다는 뤼양스에 장성량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감히 누구에게. 그러나 그 역시 노회한 정치인인 만큼 곧바로 웃는 낯으로 돌아온 장성량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강 사장 보기보다 화끈한 사람이군. 신중한 성격일 줄로만 알았더니.”

“빈말 없이 솔직해지는 게 좋습니다. 박 터지게 싸우기보다 양자가 원윈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윈윈이라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은 주의라서 말일세.”

“전 쓸데없는 전투는 사양하는 편입니다. 그럼 이것부터 보고 다시 생각해 주시죠.”

강태준이 미리 준비했던 서류를 내밀자, 아까까지 날이 서 있던 장성량이 흥미를 보였다…….

“이게 대체 뭔가?”

“어차피 해상운송 사업에 끼어들 수 없을 경우, 지역개발을 위해 연육교를 건설하는 게 어떨까 해서 마련한 초안입니다. 여기, 거제 대교를 건설하기 위한 타당성 연구 보고서인데 한번 살펴봐 주십사 가져왔습니다.”

“거제 대교 건설?”

고딕체의 제목에 호기심을 느낀 장성량이 보고서를 유심히 살폈다. 수십 페이지로 요약된 보고서 안에는 교량 건설과 관련된 기본개요부터 비용과 공정, 입지 루트 등, 대략적인 계획들이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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