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65화 (165/361)

165화 사업 정상화

무전기를 든 강태준이 신호를 보냈다.

“어군 찾았다. 스탠 바이!”

강태준은 키를 잡고, 투망을 지시하자 서둘러 속력을 높이는 어망선들. 깊이 조절줄이 달린 부자를 건져 올리는 동안 어망선들이 어군이 위치한 수심에 자루그물의 입구가 위치하도록 조절줄을 움직였다. 어탐선의 선수 비트에 맨 그물을 예망 타이밍에 맞춰 끌려가야 하기 때문에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기관장, 홑줄을 더 위로 끌어올리게.”

“우현, 더 오른쪽으로!”

홀줄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안 집중하는 선장들. 수심에 맞추어 그물을 올리지 않으면 멸치가 제대로 들지 않는다. 아까보다 훨씬 신중해진 선장들도 자를 재듯 정확하게 수평을 맞추었다.

“지금 33미터인가?”

“조금 더 감아라. 아예 더 줘 버려!”

보다 못한 강태준이 건너가서 홑줄을 풀었다.

“900하이소 900…… 700, 700.”

나란히 달리는 그물배가 같은 속도로 그물을 끌었다.

그물을 끌던 배가 거대한 삼각형을 만들었다.

멸치 떼가 그물 안으로 모여들었다는 신호가 떨어지자 마지막 양망이 시작되었다.

운반선 2척을 제외하고, 지휘선 겸 어탐선 1척, 어망선 2척, 가공선 1척, 예인선 2척까지, 총 여섯 척의 배가 마치 손발처럼 움직였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하던가.

손발이 착착 맞은 사람들이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들어 올려진 그물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넘실거리는 멸치 떼가 담겨 올라오자 그제야 안색이 펴진 선원들이 한숨을 쉬었다.

“워허, 대충 4,000박스는 넘겠네. 이 정도면 꽤 양호하군.”

“오늘 못 잡으면 다음에 더 잡으면 되지 않나. 용왕님께서 그렇게 좀생이일 리는 없잖은가.”

“허허 불경하긴. 나랏님은 몰라도 바닷님은 욕하면 안 되는겨.”

마지막 조업은 꽤 성공적이었는지 은빛 비늘로 범벅이 된 선원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체면을 살린 강태준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항구로 방향을 돌린 배가 도착한 시점은 황혼이 부두를 물들일 즈음. 부두에 도착했다.

봄풀이 돋아나지 않은 방조제 옆으로 포구를 가로지르는 철교가 반기고. 만선의 기쁨 덕인지 무심하게 보이는 사물들조차 환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갈매기 몇 마리가 바다 위를 활주하다 부드럽게 날개를 흔들며 떠올라 선회하는 사이, 천천히 배를 몬 일행은 포구로 돌아왔다.

포구 앞에서는 수산물 공판업무를 관리하는 관리인이 오매불망 귀환을 기다리는 중이다. 춘삼이를 비롯해 어촌계에서 뽑은 사무장이 고개를 숙이는 가운데, 춘삼이는 제법 키가 자라 이제 청년 티가 났다.

“오늘도 역시 만선이시군요.”

“평소보다 조업 운이 별로였는데 마지막 한 방이 좋았어. 수덕이 따라 준 덕이라고 할까.”

“하하. 한두 번이야 운빨로 치부할 수 있다지만 이렇게 자주는 못 하죠. 수덕보다는 실력 아니겠습니까?”

“거 쓸데없이 아부만 늘었구만. 그보다 간만에 정비가 필요할 거 같으니, 확인 좀 부탁하이. 키가 전보다 뻑뻑하더군.”

“예. 알겠습니다. 배도 이참에 좀 쉬겠군요.”

운반선이 건조장으로 향하는 길. 선원들 간의 교대가 이루어졌다. 건조장으로 향하는 동안 정비를 마친 다른 1척이 임무를 교대하는 것이다. 배턴터치를 끝낸 강태준이 다시 거제 사무실로 도착하자 꽤 커진 공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장 2층에는 노기철을 비롯한 백경식품 연구원들이 열심히 연구에 매진 중이었다.

“다들 고생하는군. 이런 오지까지 짐까지 싸 들고 와서.”

“이렇게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원래 생물 연구는 현지에서 해야 제격이죠. 그보다 이번에 개발 중인 신제품인데 드셔 보십시오.”

표정이 좋아진 노기철이 소쿠리에 놓인 마른 멸치를 내민다. 내장이 있는 배 주위까지 바싹 마른 것이 꽤 상등품이랄까. 중멸보다 조금 큰 크기에 노릇노릇하게 익었다.

강태준이 멸치를 조심스럽게 씹어 보자 불맛이 확 올라왔다.

“향이 잘 배어 있네. 이거 안줏감인가?”

“예. 소나무 훈연으로 해 봤는데 가쓰오부시마냥 향이 잘 배어서 반응이 괜찮더이다. 찍어 먹는 사이즈로도 좋더군요.”

“다들 맛 좀 보게.”

돌아온 김요한과 차도윤도 조심스레 맛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짠맛도 적고 살도 도톰해서 술안주로 인기가 좋을 거 같긴 합니다.”

“저도 이 정도면 오케이네요.”

“입맛 까다로운 김 과장이 합격이라. 이거 대단한 성관데? 노 이사?”

강태준의 농에 노기철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직 완성품은 아닙니다. 가쓰오부시처럼 개량해서 포로 만들어 보려고요. 다만 육수 개량과 관련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여러 멸치를 섞어서 육수를 만들어 보려는데 아직 최적의 비율을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하긴 그렇겠네. 지역별로 또 출하 시점별로 멸치 맛이 미묘하게 다르니 말이야.”

“예. 구수한 맛을 내거나 시원한 맛을 내는 멸치가 각각 다르니 황금 비율을 찾는 게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여기 최형묵 고문님께서 멸치 경험이 아주 풍부하셔서, 정말 큰 도움이 되셨습니다.”

“에이 무슨. 말씀을. 이 늙은이가 도움이 되었다니 기쁠 따름이지.”

지팡이를 짚고 있던 최형묵이 민망한 듯 고개를 저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 것이 흐뭇해 보인다. 강태준이 다시 말했다.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사죠.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연구가 잘 진행되고 있다니 기운이 나네요. 그보다 최 고문님. 판매량 추이는 어떻습니까?

“꽤 호조입니다. 상등품은 통영군 위판장에 경매로 보내고 나머지는 서울 쪽으로 보내는데, 품질이 좋아서 반응이 꽤 좋더군요. 비린내 없이 양품이라는 소문이 났는지. 물건 들어왔다 하면 금방 동이 납니다. 요새는 경쟁이 붙었는지, 상등품의 경우엔 거의 죽방렴과 비슷한 단가를 받을 정도죠.”

밀물과 썰물 차를 이용해 하루 두 번씩 후릿그물이나 뜰채로 떠 올리는 죽방렴은 그물로 잡는 멸치와 달리 비늘이나 몸에 손상이 없어 고급멸치로 특별대우를 받는 만큼 그만큼 품질을 인정받는다는 이야기다. 장사가 잘된다는 말을 들은 강태준도 내심 뿌듯했다.

“확실히 비싼 값을 들여 가공선을 산 보람이 있네요.”

“다만 근래 멸치 경매가가 높아지다 보니 중간에 손버릇 나쁜 놈들이 낀 것 같습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조합원들 가운데 물건을 빼돌리는 놈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추적 중인데 꼬리가 잘 안 잡히더군요.”

“저번에 단속해서 한번 솎아 낸 걸로 아직도 완전히 해결 못 했나요?”

“그게 품질별로 단가 차이가 워낙 커서 그런지 계속 벌레가 꼬이네요. 아무래도 경력자가 아니면 멸치가 크기나 질로 구분이 쉽지 않습니까? 그래서 종종 현물 대신 받을 물량을 다른 물건으로 바꿔치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합니다…….”

사실 이것은 특수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멸치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 상당수는 백경물산이나 백경식품 소속이라기보다 현지 수산조합 소속 파견직원들이기 때문. 한번 채용하고 나면 인력을 함부로 늘리기 부담스러운 관계로 수산조합 규약에 따라 판매는 조합원들이 전담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태준이 다시 물었다.

“좀 실망스럽긴 하군요. 추가 포상금까지 붙인 걸로 아는데.”

“이쪽 사정 아시잖습니까. 전부 한 다리 건너서 동네 사람들인 거. 서로 다 아는 사이다 보니 좀 실수해도 눈감아 주는 게 일상이라. 내부 고발 같은 건 눈치가 보여서 못하지요. 게다가 근본적으로 멸치 등급별 가격 차가 크다 보니, 계속 벌레가 꼬이는 걸 피할 수 없더군요.”

“아무래도 판매 부분은 상당 부분을 외주를 주는 셈이니 이 부분은 외면하긴 쉽지 않겠죠.”

“예.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수령할 급여 전부 중 일부를 내부판촉에 참여하는 것으로 갈음하니 판매 역량에 따라 실수령액의 차이가 발생하니까요.”

어구 공동 구입은 백경 쪽에서 도맡아 하지만 판매를 직접 담당하는 것은 조합원들이다. 판매에 필요한 인프라를 빌려주고 손실보전 준비금으로 융통을 독려하다 보니 실적 상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금전적인 유혹이 생기려야 안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약간 고민하던 강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앞으로 현물 지급은 지양하도록 하지요. 앞으로 임금은 전액 통화로만 지급하는 걸로 바꿉시다.”

“예에? 갑자기 지급방식을 변경하면 반발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만…….”

“원래 인건비는 현금으로 주는 게 원칙이지요.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금 일부를 공제하거나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인건비를 현물로 지급하는 건 회사 재량이라는 겁니다.”

사실 이런 규정은 법규상 임금을 회사의 과잉제품 등으로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한 규약이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심한 현실과 현금지불보다는 현물 지급으로 유동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회사의 이해가 일치했기에 일부 금액을 현물로 지급받아 왔던 것.

하지만 최형묵은 약간 우려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을 바꾸면 혼란스러워할 텐데. 반발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거야 감수해야죠. 이미 충분히 자정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것이 사람 생리 아니겠습니까. 행정비용 아낀다고 너무 주먹구구로 운영을 한 건 사실이잖습니까?”

그러자 잠자코 있던 차도윤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선장님 신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이윤이 많지 않은데, 그렇게 큰돈이 한꺼번에 나가면 자금 융통에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몇 달 새 적자행진도 멈추었고, 유보금도 좀 쌓였으니 지금이 체질을 바꿀 타이밍이지. 이참에 수산조합원들 중 우수한 인력을 따로 뽑아 상용직으로 전환할 기회를 주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근로자들이 소속감과 향상심을 가지려면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지 않겠나?”

“확실히. 그런 당근을 제시한다면 반발이 줄어들긴 하겠습니다.”

그간 여러 사업을 병행하다 보니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용한 측면이 있었지만, MSG 시장을 장악한 이상 더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최근에는 건설 경기가 호재라 고물상도 쏠쏠했고, 면도기 사업도 시험 군납에 들어갈 만큼 순항하고 있지 않은가. 고철 단가 급등까지 겹쳐 재정적인 여유가 생긴 만큼 눈치를 볼 필요는 없는 상황. 결심을 굳힌 강태준이 강조하듯 말했다.

“이참에 누가 돈 주는 사람인지 뇌리에 새겨 줄 필요가 있겠어. 아예 날을 정해서 정신 교육도 병행하는 것이 하는 게 좋겠지. 혹 회사의 행정조치에 반항하는 사람이 있으면 따로 체크해 두게. 이참에 시범 케이스로 일벌백계하는 것도 방법이니.”

“그럼 이 일은 누가 전담합니까?”

“뭐 멀리 갈 거 있나. 이 일은 우리 차도윤 선장이 맡도록 하지.”

깜짝 놀란 차도윤이 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 제가 말입니까?”

“뭐. 싫은가?”

“아닙니다. 다만 제가 그런 중임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무슨 소리를 자네도 이쪽 출신이니 현지 돌아가는 사정에 빠삭하지 않나. 업무 성과가 개선되면 응분의 보상이 따를 테니 수고하게. 천 갑판장에게도 미리 이야기해 두었으니 같이 협조해서 십분 능력을 발휘해 보라고. 최 고문님도 서포트 부탁드리겠습니다.”

“거, 물론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실 강태준으로서는 이번에 발생한 트러블이 오히려 반가웠다. 그간 현지 수산조합과 협조하면서도 아니꼬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던 만큼, 적절한 꼬투리가 필요했던 것. 그간 생산지부터 소비지까지 판로를 일원화하려면 확고한 명분이 필요했던 만큼 이번 일로 시스템을 개편할 빌미를 잡은 셈이다.

추가로 공정상 위생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을 마친 강태준은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이제 제법 비서 티가 나는 춘삼이가 옷을 받아 걸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거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시네요.”

“아, 피곤하군. 뭐 들어온 새로 소식은 없나?”

“아, 설인모 중령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대토로 받을 토지가 정해졌다는 소식입니다.”

“오 드디어. 오래 걸렸군. 보상받을 지역이 어디란가?”

“그게…… 충무시 농수직판장 일대라고 합니다.”

외투를 넘긴 강태준이 넥타이를 매던 손을 잠시 멈칫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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