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64화 (164/361)

164화 권현망 어업

다 삶은 멸치가 운반선으로 옮겨지기 무섭게 첫 조업을 마친 어탐선이 연기를 내뿜으며 서행했다.

잠시 후 어탐선 뒤를 본선 두 척이 따라가고, 본선 두 척은 어탐선을 따라 나란히 함께 움직였다.

첫 멸치 삶기 작업이 마무리될 시간은 6시 30분.

어느새 조리장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다.

“식사입니다. 선장님.”

“거기 둬.”

새끼 선원이 식사를 가져왔지만 강태준은 어군탐지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식사는 잘 구운 조기 몇 마리에, 멸치를 넣어 끓인 멸칫국.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하고 먹는 밥이라 시장기를 달래기에 그만. 저 멀리 불그스름한 태양 빛이 떠오르는 것이 꽤 운치 있는 광경이었지만 생각이 많은 강태준으로서는 경치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1.5kg들이 건멸치 1박스에 2백 원~3백 원꼴로 낙찰되니까. 그럼 하루 3,000발 이상 잡아야 타산이 맞는군.’

계산을 해 보니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투자비를 회수하려면 꽤 빡센 편.

냉동 운반선을 사지 말았어야 했나 약간 후회되는 강태준. 멸치 품질을 유지할 목적으로 기세 좋게 덜컥 사 버린 것이 원인이라 설까. 유류비에 인건비를 고려해 보니 한숨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투자금 회수까지 3년은 족히 걸리겠어.’

보통 새벽부터 저녁까지 7~8회 반복하니 하루 잡는 건멸치의 양은 보통 1일 평균 3,500~4,000 박스 분량에 불과.

사실 꽤 대단한 성과지만 최근 금어기를 법제화하는 등, 법규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인 만큼 언제 규제가 들어올지 모르는 노릇.

그나마 다행인 건 어탐기에 사람들이 조금씩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처음엔 선주를 의심하던 선장들도 실제로 실적이 극적으로 향상되자 적극적으로 새 문물을 배우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강태준이 식사를 하는 동안 어탐기에 긴 갈매기 모양이 잡혔다. 강태준은 몇 술 뜨지 않은 식사를 멈추고 곧장 무전기를 들었다.

“5시 방향. 지금 바로 전진해. 포위 즉시 투망 실시한다.”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척의 배가 서로 간격을 넓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로 승진한 천명호의 김재덕 선장이 꽤 일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는 것이다.

그 외에 저번에 새로 뽑은 갑판장 천정병은 부라쿠민 밑에서 일을 배웠던 잔뼈 굵은 뱃사나이로 보조 역할을 잘 수행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손발이 잘 맞아도 매번 목표대로 일이 풀리지만은 않는다. 오늘도 두 척의 어망선이 간격을 벌려 부지런히 고기를 낚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조황은 시원찮았던 것이다. 수온계 눈금을 보니 약 11도 수준. 조업 성과가 기대 이하인 탓인지 분위기가 좋지 않다. 잠시 후, 무전기가 치칙이는 소리와 함께 김요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첫 방을 제외하면 반도 못 채웠습니다. 500판도 되지 않네요. 이쪽은 못 쓰겠는데요?”

“그러게. 어황이 생각만큼 좋지 않군.”

“아무래도 파도가 세서 고기가 잘 안 잡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보다는 아마도 온도 때문일 확률이 높겠지. 멸치는 수심에는 별 영향을 받지 않는 생물이지만 온도에는 민감하거든 13도 이상의 따뜻한 수역을 선호하는 동물이니까.”

김요한이 추측하듯 말했다.

“언뜻 지나가는 어조로 들었는데 이쪽에 해파리가 출몰해서 돌고래 떼들이 한번 휘젓고 갔다 합니다. 아마도 그 이유에서일지 모르죠.”

“성가시게 되었군. 포식자 때문인가. 그렇다면 어군이 다른 쪽으로 이동했을지도 모르겠어. 일단 들 물로 옮기지. 어제 갔던 거기가 좋겠네.”

멸치 떼의 전조라 볼 만한 백파나 갈매기 무리가 보이지 않는 이상,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업 장소를 옮기는 것이 낫다.

지휘선에서 강태준은 키를 잡고 기관을 가동하자 부릉 소리가 들린다.

전진기어를 넣으며 가속 장치를 잡아당기자 배는 부르릉 소리와 함께 물살을 가르며 내달렸다.

배가 전속으로 달리자, 이어 어망선 두 척도 편대마냥 따라붙었다. 조타실에 앉은 강태준은 해도와 나침반을 보지 않고도 항로를 잡아 능숙하게 배를 몰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흥분한 듯 무전기로 차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갈매기 떼입니다!”

탐지기를 확인한 강태준은 고민에 빠졌다. 일반적으로 보면 호재라 하겠지만 어군탐지기에 잡힌 모양을 보니 멸치 떼인지 아닌지 당최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어군의 밀도가 높으면 발신파는 강하게 반사되지만 움직임이 무질서한 것이 약간 의심되는 상황. 화면에 나타나는 크기가 수심에 따라 다른 만큼 강태준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걸 듣던 마음이 급해졌는지 무전기를 타고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로장님, 명을 내려 주십시오. 뒤로 멸치가 있습니다.”

“잠시 기다리지. 어군이 혼합된 거 같은데, 무슨 어종인지 정확하지 않아.”

“지금 고기 떼가 이동하고 있습니다. 일단 던져 봐야 하지 않습니까?”

차도윤과 김재덕 두 선장의 목소리에서 조급함이 느껴졌다. 실적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만큼 오늘의 어황이 부진했던 까닭. 레이더로 볼 때는 땅에 딱 붙어서 어군이 잘 들게 생겼지만 자칫 잘못하면 혼획의 우려가 있어 보이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쯤 와서 그물을 던지지 않는 것도 좀 아쉽긴 하다.

‘뭐, 한 번쯤 저쪽 의견을 따라 주는 것도 좋겠지.’

내키지 않지만 이대로 의견을 찍어 누르는 것도 추후 조업을 위해 좋지 않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 않은가. 속으로 장고하던 강태준이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좋아. 이번엔 그쪽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지. 각자 목표 위치까지 전진하게.”

“옛썰!”

강태준의 허락이 떨어지자 신이 난 예인선 선장들이 배의 속도를 올렸다. 선장들이 속도를 내자 쌍둥이 어망선이 거리를 좁혀가기 시작했다.

“엔진 회전속도 800입니다. 올릴까요?“

“아니, 슬슬 가두는 게 좋겠어. RPM 유지해.”

거세진 파도의 저항에 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사이 화면에서 고기가 어망 안으로 쏙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강태준이 투망 신호를 하자 그물배가 서둘러 투망을 시작했다……

자루를 투입한 끌배 두 척이 전진을 거듭하며 서서히 간격을 줄인다.

10m 정도 간격으로 좁힌 두 배가 그물로 어군을 가두자. 기다리던 선원들이 양망을 위해 기어 나왔다. 퉁퉁하게 불은 그물을 본 사람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와우, 그물 보게. 이번에는 많이 들었나 보이.”

“오늘은 빨리 퇴근하겠군.”

“그러게. 퇴근하면 간만에 당구나 한 게임 치자고.”

“그럴까. 그럼?”

“1점에 100원 빵 어떤가?”

“에이, 나는 되었네. 돌아가서 마누라 뱃살이나 만지작거리는 게 낫겠어.”

“이 사람 설마 자신 없나?”

시시덕거리는 사람들의 행동이 성가신 듯 김요한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거기 잡담 그만하고, 작업 시작 못 하나?”

“예이! 거 왜 또 신경질은…….”

이미 만선이라도 한 것처럼 들뜬 사람들이었지만 강태준은 걱정이 앞섰다. 바다 위에서 행운이란 놈은 생각보다 쉽게 걸려들지 않는다.

하지만 선주의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선원들로서는 마냥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물이 묵직하게 당겨지자 기대감에 눈이 번들거리는 선원들이었다.

“당겨! 잡고 올려!”

“밑에 봐 밑에! 여봐. 겁나 실한데 그래?”

갑판에 나간 선원들은 그물을 털기 위해 깃대를 바쁘게 움직였다. 부지런히 그물 밖으로 삐져나온 멸치를 털어 주는 사이 덜커덕거리는 소리와 올라가던 양망기가 작동을 멈추었다.

“뭐야?”

“젠장! 너무 무거운가 봅니다.”

“여여, 천씨. 그 크레인 멈춰! 잘못하면 배 넘어가겠어.”

어획한 고기 무게를 견디지 못한 크레인이 끼긱거리며 거친 숨소리를 토해 냈다.

납덩이가 든 것처럼 헛도는 모습에 강태준이 일단 조업을 멈추게 했다. 불행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다고 할까. 잠시 후 당황한 선원들이 소리를 질렀다.

“선장님, 이거 양망기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뭐. 아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고장인가 확인해 봐.”

신경이 날카로워진 갑판장이 소리치자, 밖으로 나간 김요한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그물을 살펴보았다. 잠시 후 그물 상태를 확인한 김요한이 낭패한 기색으로 신음을 흘렸다.

“젠장, 전어 떼가 섞였습니다요.”

“하필 이런 때에…….”

전어 철이 되면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되면 나가리다. 속으로는 장탄식을 하는 강태준이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 이내 표정을 수습한 강태준이 침착하게 명했다.

“일단 방생하는 수밖에, 그물 입구는 찾았나?”

“아직입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잡어들이 한꺼번에 낚여 올라온 터라 그물 입구를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입구 찾기를 위해 사투를 벌이던 찰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그물배가 덜컥 삐거덕거리며 심하게 출렁였다.

“아무래도 전어 떼가 이미 죽어 버린 것 같은데요?”

“젠장, 자크 어딨어 자크?”

배 한 쪽이 눈에 띄게 기울자 마음이 바빠진 선원들이 부산을 떨자 강태준이 주위를 서둘러 진정시켰다.

“호들갑 떨지 말게. 무게중심이 흐트러져서 그럴 뿐이야. 갑판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반대쪽으로 움직이게.”

“입구는 아직인가?”

“지금 차…… 찾고 있습니다.”

허둥대는 선원들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서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각파도가 몰려와 옆면을 쳤다. 파도의 리듬에 배가 출렁이자 균형을 잃은 선원 몇 명이 미끄러졌다.

고기가 바위처럼 무거워지며 그물이 꼿꼿이 서자. 강태준이 결단을 내렸다.

“이거 안 되겠군. 낫 가져와.”

“예? 낫이요?”

“일단 그물부터 째야지. 이러다 잘못하면 배가 전복될 수 있어.”

고기가 살아 있을 때는 어떻게든 끌어올려지지만 죽어 버리면 납덩이처럼 무거워진다.

하지만 어부들에게 있어 그물은 생명 그 자체.

미련이 남는지 어부들이 망설이자, 선장을 맡은 천명호가 다급히 외쳤다.

“하…… 하지만 아직 끌어올릴 여유가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명령일세. 당장 그물을 째!”

강태준이 일갈하자, 선장들도 더는 말리지 못했다. 강태준이 손수 칼날 달린 장대를 들어 그물을 쭉 째자 죽은 전어들이 기름처럼 바다 위로 둥둥 흘러나왔다.

엄청난 양의 전어 떼들이 쏟아지는 것이 마치 내장이 쏟아져 나오는 듯하다. 한참 고기를 쏟아 낸 선박이 서서히 중심을 찾아가자, 강태준이 다시 명을 내렸다.

“거, 뭣들 하나? 호스부터 넣고 남은 고기를 빼내게. 더 깊게 찢어 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선원들이 서둘러 그물을 찢어 내는 작업을 돕는다. 두 군데 칼자국을 더 내자 크레인은 그제야 끼익거리는 신음을 멈추었다.

운반선에서 가져온 호스로 고기를 빨아들이자, 창자를 쏟아 낸 그물이 홀쭉해졌다.

기우뚱거리던 배가 서서히 균형을 찾는 모습에 김요한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안도했다.

“휴, 조금만 늦었으면 전복될 뻔했습니다.”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군.”

일단 기울어지고 나면 리듬에 맞춰 살짝만 밀어 줘도 진폭이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

간발의 차로 전복되는 것을 면한 것이다. 사태를 파악하자 차도윤을 비롯한 선장들이 시무룩한 얼굴로 사과를 올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로장님.”

“그러게요. 저희가 제가 욕심에 눈이 멀었나 봅니다.”

“자자,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 배가 전복하지 않았으니 일단 다행이야. 게다가 아직 조업할 시간이 좀 더 남지 않았나?”

바다에서는 원망할 여유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물 수리에 소요된 시간은 한 시간 정도.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강태준이 시계를 재차 확인했다.

“일단 다 꿰맸나?”

“예. 완벽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쓸 수는 있을 겁니다.”

“아직, 한 방 정도는 더 던질 수 있겠군.”

조업 실패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잊고자 강태준은 손뼉을 치며 선원들을 독려했다.

“자자, 저번 일은 액땜했다 치게. 한 방만 더 놓고 귀환하지. 전진 우현으로 15도!”

“우회하시란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긴 했지만 이른 시간에 조업을 시작한 터라 아직 여유가 있었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라는 명령이 성가실 법도 하지만 아까의 실수 덕분인지 어망선 선장들은 죄다 군말 없이 지시에 따랐다.

강태준은 주의 깊게 물결을 살폈다. 날이 저물면 이제 철수해야 하니 신중해야 하는 시점.

고기떼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던 강태준의 눈에 도트가 늘어나는 것이 보였다.

수파기로부터 나오는 초음파가 반사되어 갈매기 모양으로 아치를 그리자, 다시금 올려오는 신호에 강태준이 서둘러 신호를 보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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