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63화 (163/361)

163화 고대구리

그로부터 3개월 후.

쏴아아아아~!!

다도해 가장 동남쪽, 조류에 따라 대마도로 도착할 수 있는 장소 삼각편대를 이룬 배 세척이 달리고 있다. 후루노 전기에서 만든 어군탐지기가 달린 배. 다름 아닌 강태준이 모는 지휘선이다. 그때 이후로 강태준이 직접 어장을 감당하기로 한 것이다.

“오늘은 파도가 평소보다 파도가 세군요. 어로장님.”

“오전께에 비가 좀 오겠군.”

과연 강태준의 예상이 맞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슬비가 내렸다. 대형 그물을 이고 있는 두 척의 배가 양쪽에서 평행하게 달렸다.

약 3∼4m의 높은 파도에 흔들리는 뱃전. 뱃머리에 부딪혀 부서진 물살이 굵은 물안개로 화하는 와중에도 눈을 껌뻑이지 않는 강태준. 목적지는 항로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

고기가 있음 직한 포인트를 찾아 어슴푸레한 밤바다를 향해 나아가던 중 차도윤이 갑자기 욕설을 내뱉는다. 어느덧 선두의 손이 작은 빨간 불빛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 야간에만 후미진 바다에서 그물을 끄는 것이 몹시도 수상한 것이 밧줄로 연결된 모터 보터를 내려 조업하는 광경이 보였다.

“아따, 저눔 시키. 저거 뭐 하는 짓거린가?

“고대구립니다. 아무래도 대마도 쪽 놈들 같은데, 도둑 조업인 것 같습니다.”

차도윤의 말에 표정이 달라진 선원들. 고대구리란 코가 작은 후릿그물로 불법 어로를 하는 2, 3톤에서 4, 5톤 정도 되는 소형 저인망 어선으로 딱새우도 걸릴 만큼 그물코가 작고 촘촘해서 이놈이 바닥을 싹쓸이하듯 쓸고 지나가면 새끼 치어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말려 버린다. 이렇듯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어족 자원을 싹쓸이해 가는 만큼 어부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날강도 같은 놈이었다.

“아니, 앞마당 놔두고 여기서 뭐 하는 짓거리야!”

“빌어먹을. 놈들이 당장 꺼지지 못해?”

-당장 우리 해역에서 퇴거하라! 퇴거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무력 행사로 돌입하겠다!

확성기를 든 강태준이 퇴거를 종용했다. 대규모 선단이 나타나 위협적으로 주위를 돌자 화들짝 놀란 고대구리 어선들은 조업을 중단하고 서둘러 도망치기 바빴다. 꽁무니를 살피던 갑판장이 캬악 바다 위로 가래침을 뱉었다.

“쓰벌, 빌어먹을 놈들. 뭐 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떼거리로 몰려오다니.“

“시부럴 시키들. 거 어구까지 버리고 토꼈네요.”

“감시선에 서둘러 타전하게. 고대구리들이 6시 방향으로 도망치고 있다고.”

이미 낌새를 눈치챈 불법 어선은 저 멀리 사라지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쫓아가 해경에 넘기고 싶지만, 그물을 끄는 본선의 경우 원칙적으로 50t 이상을 넘을 수 없고 엔진출력은 350마력 이하여야 하기 때문에 불법으로 개조한 어선을 쫓기에는 역부족.

달아나는 어선이 저만큼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일행이 주위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도망갔군요.”

“일단 길목을 알려 줬으니 요령껏 잡겠지. 일단 어구부터 회수해서 폐기하자고.”

버린 그물이 엉겨 버리기라도 하면 추후 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다행히 근처에 떨어진 부이를 건지자 버려진 그물이 딸려 나왔다.

그물은 속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한 세망으로 이루어 있었는데

“이거 보십쇼. 새끼 치어까지 죄다 걸렸네요.”

“아주 싸그리 훑어가려고 작정을 했구만. 참. 제 살 깎아 먹인지 왜 모르고.”

그 모습을 보는 강태준은 착잡했다. 물고기가 지천이었던 남해의 어획량이 이렇게까지 줄어든 것은 이런 싹쓸이가 성행해 어족 생태계를 심하게 망가뜨렸기 때문. 산란 철을 가리지 않고 새끼 치어니 알밴 고기들을 회유로 길목에서 잡아 버리는 바람에 어획량이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던 것이다. 강태준이 크게 푸념했다.

“밀수선이 잠잠해지니 이번엔 일본 어선들이 난리일세.”

“그러게요. 이렇게 파도가 높은데 저 조그만 배를 타고 여기까지 출항하다니. 목숨이 한 열 개쯤은 되나 봅니다.”

“뭐, 그만큼 남는다는 소리 아니겠나. 폭풍보다는 단속선이 무서운 게지. 날이 조금만 궂어져도 어업지도선들이 단속을 나오지 않으니 말일세.”

“빌어먹을 자식들 같으니. 그럴 배짱이면 차라리 원양어선을 타던가.”

“여권도 안 나올 놈들인데 무슨. 저러다 재수 없음 뒤지는 거지.”

단속을 피해 다녀야 하는 고대구리 배로서는 파도가 높으면 되려 안심하고 작업할 수 있으니 작정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물론 바다가 사정을 봐줄 리도 없으니 그러다가 침몰해 불귀의 객이 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지만, 애초에 고려했다면 애초에 고대구리를 타겠는가. 암튼 어구 수거차 조금 지체된 선단은 다시 순조롭게 목표지로 향했다.

거제도 동남단 쪽 해가 어슴푸레하게 떠오르는 것이 이제 막 아침이 되어 가고 있었다.

멸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낮에 활동하기 때문에 디 첫 방이 중요한 법이다. 해가 뜨는 시간, 어군탐지기에 기다렸던 고기 떼가 포착되자, 강태준이 슬쩍 무전기를 들었다.

“슬슬 투망 준비를 해야 할 거 같네. 조업 시작이 다 되어 가는데 운반선은 어디쯤 왔나?”

“30분 전에 구조라에서 출발했답니다. 곧 따라붙는다고 합니다.”

“아니 이런, 얼간이 같으니라고. 설마 늦잠이라도 잔 건가?”

“뭐 당연한 거 아닙니까. 또 술집에서 질펀하게 놀았겠죠. 뭐.”

“요한이 그 녀석 정신 빠졌네. 한마디 해 줘야겠구먼.”

강태준은 혀를 찼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그새를 못 참고 밖에서 노닥거렸나 보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이런 식이면 큰일을 맡기기가 힘들지 않나. 그렇게 운반선을 기다리던 중 고기가 점점 가까워지는 반응이 어탐기에 또렷하게 잡힌다.

기관장을 맡은 한동훈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어떡하실 겁니까. 운반선이 도착하려면 타이밍이 애매한데요?”

“일단 어쩔 수 없지. 다 잡은 어군을 놓칠 수야 없지 않나. 전원 투망 준비! 요한이 쪽엔 최대한 속력을 내라고 하게 조금이라도 늦으면 수당에서 깐다고 전해!”

“옙! 알겠습니다.”

선두의 투망 신호를 받자 두 대의 그물배는 좌우로 그물을 내리며 끌줄을 선체의 도르래에 걸어 올렸다. 배의 외측에 선 선원이 끊임없이 긴 망 끝의 종을 돌리면서 수면을 때려 멸치의 분산을 막자 어군탐지기를 보던 강태준이 서둘러 명했다.

“거기, 좌측 그물코 방향이 조금 삐뚤어졌다. 좌선 우현으로 10도 정도 돌려!”

오비기의 그물코는 무려 180cm에 이르기 때문에 고래처럼 큰 어종도 쉬이 걸려들지 않는다. 대신 어군을 위협해 감싸 안는 용도다. 멸치 무리는 그물이 다가오면 혼란에 빠져 오비기를 거쳐 도망치기 마련. 수비기를 거쳐 멸치 떼가 진입하면 그물이 촘촘해져 멸치 떼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예인선 하나가 어군이 있는 장소에 어망의 양 끝을 모아 어군을 포획할 자세를 취하자 어군을 레이더로 보던 강태준이 부표 높낮이를 조절하며 타이밍을 쟀다.

“어로장님, 자루그물 안에 어군이 진입했습니다.”

“대충 얼마나 지났지?”

“30분 정도입니다. 이제 빨리 끌어올려야 하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아직 운반선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일단 엔진 속도를 낮추게.”

배가 터지도록 들어오는 멸치 떼의 무게로 그물이 팽팽해진다.

‘젠장, 좀 빨리 좀 와라!’

예망에 걸리는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 담담한 척했지만, 강태준은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갓 잡은 멸치는 성질이 급해 물 밖으로 나오면 수 분 내로 죽어 버리기 때문에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로 삶는 작업이 필요하다.

언제 삶고 건조하느냐로 품질 차가 발생하고 가격 차이도 많이 난다.

따라서 가공선에서 바로 삶아 육지로 옮겨 건조해야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투망 후 그물을 끌던 예인선 2척이 나란히 현측을 맞대고 붙인 채 조명을 밝혔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바다에서는 너울에 출렁인 배가 흔들거렸다.

“그물 속도는?”

“500에서 600입니다.”

아직도 운반선은 감감무소식.

양망이 계속 늦어지자, 참다못한 그물배 선장 하나가 버럭 성질을 부렸다.

“이러다 고기 다 뒤지겄네! 김요한 이 자식 어디 있어?”

물억새처럼 꺼끌꺼끌한 머리칼의 선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찰나, 무전으로 치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요한, 도착했습니다.”

“오케이! 양망 시작해!”

구조라를 출발한 운반선이 드디어 본선을 따라붙은 것이다. 어군탐지선이 운반선 건너편 본선 옆으로 멈춰 서자마자 강태준이 무전기로 “양망 시작!”을 외쳤다.

“따르릉.”

조업 개시를 알리는 벨소리에 눈을 뜬 선원들이 잠이 부족한 듯 길게 하품을 하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그 행동에 주의를 주는 갑판장이었다.

“발 감겨들지 않게. 조심하게.”

“뭐. 이 짓 한두 번 하나.”

쌍둥이 어망선이 간격을 좁히며 달려오는 어군을 손바닥처럼 감싸 안자 배와 배를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 선원들은 긴 장화에 갑바로 무장을 하고 나왔다.

배를 단단히 고정하자 2척의 배에 나눠 탄 선원들이 선미 쪽으로 한 줄로 서서 자세를 잡고 멸치 떼를 맞을 준비를 했다. 네트 드럼이 돌아가며 그물이 올라왔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먼저 날개그물 부분이 먼저 올라왔고, 두 척의 그물배에 끌려 올라오던 날개그물에 이어 부표가 보였다.

파워블럭이 설치된, 어망선에서 그물을 끌어 올리자 장대를 든 선원들이 줄지어 섰다.

“올라온다! 올라와!”

“조심해.”

자루그물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부산해진다. 물을 뿌리고 장대로 찔러 그물에 붙은 멸치를 털어 내는 작업. 물양기의 쇠바늘 앞에서 밧줄을 먹이고 있었다. 선원들이 온몸으로 수비를 감싸 안고 사이드 드럼으로 모았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양망이라 할 수 있다.

그물의 총길이는 길게는 1km.

쌀 대여섯 가마 만큼 큰 그물이 퉁퉁하게 어획물을 담은 채로 공중으로 솟아 올리자 은빛의 비늘이 보석처럼 번쩍였다. 희열에 찬 선원들이 소리를 질렀다.

“와! 대어입니다.”

“1,000발은 족히 되겠어!”

한 발에 담긴 멸치량은 약 2kg 정도.

위판 박스 한 상자가 대략 1.5㎏ 정도니 적어도 1,300박스는 넘는 양이었다. 은빛의 멸치가 싱싱하게 펄떡이는 것이 선원들이 자루그물에 걸려든 멸치를 한쪽으로 모았다.

먼저 올려진 자루그물은 갑판 후미에 쌓은 다음. 자루그물 끝부분이 양망한다.

양망이 끝나기 무섭게 현측으로 그물을 옮겨 둔 선원들이 자루 입구를 열고 팔딱팔딱 뛰는 멸치를 피시 펌프(Fish Pump)로 빨아들였다.

“자자, 빨리빨리 옮겨!”

피시 펌프로 흡입된 멸치는 바로 옆 가공선으로 보내졌다. 옮겨진 멸치 가운데 덩치가 작은 멸치는 롤러 아래 어창으로 떨어지고 비중이 혼획물은 롤러에 남는데 덕분에 운반선 어창 바닥엔 은빛 멸치가 한가득 쌓였다.

그사이 가공선 선원들은 어창에서 삽 모양의 뜰채로 부지런히 멸치를 퍼 올렸다.

가공선의 멸치 삶기 작업조 선원 2명이 멸치를 고르게 편 뒤, 판 위에 쌓은 멸치를 팔팔 끓는 자숙기 안으로 보내는 것이다.

영차! 영차!

마치 찐빵을 굽는 가마솥마냥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자, 익숙한 향이 풍겼다. 발에 담겨 뜨거운 천일염분에 삶긴 멸치는 레일을 따라 선미 쪽으로 옮겨가고, 가공선 지붕 아래에 차곡차곡 적재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사이 그물배에서는 그물을 다시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다음 화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