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58화 (158/361)

158화 꼬리 자르기

“밀수 특별반? 장승포세관을 중심으로 제2차 남해안 일대 세관에서 정예감시선 10척과 감시 요원 60여 명을 차출한다라?”

“아니, 이 상황에 수사를 독려하라 제정신인가?”

모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지만 김필중은 침착했다.

“지금 각하께서는 엄연히 국가재건회의 의장으로 임시적인 권한 대행일 뿐, 공식적인 정부 수반은 아니시지 않습니까.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의 무능으로 밀수 사범 단속을 못 해 벌어진 일을. 어째서 우리가 전부 책임져야 합니까? 이건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건…… 전적으로 맞는 말이지.”

“예산도 인력도 없이 통제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자본가는 애초에 정부와 지향점이 다릅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들은 득이 된다면 위험도 불사하는 법이지요. 지금은 애초에 터질 고름이 터진 거고요.”

서류의 의미를 알아차린 박정명의 눈에 흥미가 돌았다.

“그래서 이번 일은 군부와는 무관하니 전적으로 밀수를 지휘한 기업인이 책임질 사안이다?”

“법제를 악용하는 자들에게는 일벌백계가 필요한 법 아니겠습니까. 굳이 패거리로 묶여 욕볼 이유는 없지요. 애초부터 그쪽도 리스크는 각오하고 있었을 테니, 이참에 신 검사의 수사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정도로 국민들의 불만이 희석될까? 오히려 되려 의심하지 않겠나?”

“일단은 현 상황에서는 물타기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먼저 여수 밀수범 박멸에 공이 큰 조사관 모두를 승진 표창하고, 신명부 검사를 밀수 대책 반장으로 임명하겠다 우선 발표하십시오.”

“흠…… 그걸로 민심이 가라앉겠나?”

“각하, 대중에겐 영웅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비난의 화살이 우리 쪽으로 쏠리는 건 피할 수 있지 않습니까. 더욱이 그간 재계가 너무 무소불위였던 것은 사실이니 이 기회에 정부와 선을 긋는 것도 방법이지요. 이참에 기업인들 길들이기도 할 겸 명분을 얻으십시오.”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입을 닦으라는 발언에 모두 말을 잃었다. 다들 사태를 봉합하는 데만 급급할 뿐 국면 전환용 카드로 활용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형욱이 서둘러 반론을 제기했다.

“그렇다 해도 오성 쪽에서 다 불면 어쩔 생각입니까? 차라리 북측과 긴장을 조성하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한 해결책이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사업가는 손익 계산이 빠른 자들입니다. 잃을 것이 많다면 쉬이 경거망동할 수 없지요. 굳이 저희 쪽에 불만을 그렇게 표출한다면, 이참에 본보기를 세우는 것도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성을 날리자는 의미와 다름없는 소리에 주위가 술렁였다.

김필중의 도발적인 발언에 인상을 찌푸리는 남형욱. 그러자 박정명이 침착하게 타일렀다.

“자자. 다들 흥분하지 말고. 오성그룹은 명실상부한 국내 1위 기업일세. 이사장이 국가에 기여한 공도 있는데 그렇게 책임을 지우는 건 너무 과도한 처사야. 무엇보다 국민 경제에 좋지 않네.”

그러나 김필중은 뜻을 굽히지 않고 주장했다.

“각하, 어차피 오성그룹의 주력은 소비재 산업입니다. 딱히 엄청난 기술을 요하는 것도 아닌 만큼 일부 사업을 넘겨준다고 어디 대체할 회사가 없겠습니까? 애초에 그 정도 머리도 안 돌아가는 인간이라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흠…… 논리적으로 따지면 그게 맞긴 하지.”

“더욱이 처음부터 특혜를 받았으면 그에 파생되는 책임이 있는 법입니다. 그 정도 판단력도 없는 놈들이라면 되려 쳐 내야 할 적폐가 아니겠습니까?”

박정명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코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애초에 나라까지 먹은 마당에 그깟 기업가 하나 손보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경제가 요동치긴 하겠다만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법. 방침이 일견 굳어지는 듯하자 위기를 느낀 남형욱이 안간힘을 쓰며 딴지를 걸었다.

“신중해야 합니다. 각하. 재수 없으면 정권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수가 있습니다.”

“애초에 공식적인 루트로 거래한 것이 아니니. 당사자가 입만 조심하면 딱히 문제 될 일이 있습니까? 이제 와서 오성과 거래를 파기한다고 해도 우리가 주도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오성그룹으로서는 무척이나 유감스러운 일이 되겠죠. 물론 그에 부화뇌동한 자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말입니다.”

스산하기 짝없는 말에 움찔하는 사람들. 남형욱에 편승하려던 사람들은 다시 입을 다문 채 눈치를 보았다. 그 모습에 잠시 고민하는 척하던 박정명이 곧 결단을 내렸다.

“좋네. 사건 지휘 총괄은 임자가 맡지. 수사에 있어 엄중을 기하도록 하게. 한 치의 어긋남이 있어서도 안 될 것이야.”

“각하!!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자자, 더 이상 소모적인 이견은 받지 않겠네. 김필중 고문이 특별수사본부를 지휘하도록 하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명하도록 해. 임자 외에……. 딱히 믿고 맡길 사람이 없군.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게. 이번 일은 전적으로 자네에게 일임하지.”

“명 받들겠습니다.”

흐뭇한 표정의 박정명이 입가를 씰룩이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남형욱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 이번 일의 전권을 부여받은 곧바로 김필중은 특별반을 조성해 여수세관에 특별수사본부를 창설했고 수주 후, 대대적인 단속반을 투입했다.

“오늘부터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출 선박을 총 검문한다. 예외는 없다.”

“그러면 수출입 업무가 반쯤 마비될 텐데요?”

“상관없다. 지금은 썩은 곳을 도려내는 것이 우선이다. 혹시라도 저항하는 자가 있으면 공무집행방해로 처리해.”

김필중은 작심했다는 듯이 수사에 나섰고 수사대상인 밀수·폭력조직은 물론, 여수시청, 경찰서, 세관, 해운국 등 관가까지 확대되어 대대적인 광풍이 불어닥쳤다.

시청의 양곡, 비료 등 돈이 될 만한 행정도 모조리 까발려졌다. 지역 기자들이 포마드를 바르고 다녀도 밀수 비호세력으로 몰릴 정도였다.

세관 안에 있는 보세창고 두 개가 임시 유치장으로 용도 전환되었고, 수사 기간 100여 명씩의 밀수 용의자와 각종 비리 연루자들이 줄줄이 붙잡혀 갔다.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한 국회 본회의가 열리자 ‘특정 재벌 밀수사건’에 관한 질문 안건의 상정 및 통과가 진행되었고 이재무를 포함한 관계인들이 소환되어 추궁을 받았다.

사안은 그렇게 유야무야되는 듯했지만, 국회 질의 마지막 날 본회의에서 이태섭, 김중대의 질의 직후 김한두의 질문이 시작되면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5.16이 혁명이랍시고 국민의 참정권을 갖다가 박탈한 행위까지는 용서할 수 있다고 칩시다. 지금 이 꼴을 보십시오. 이만승 정부와 무엇이 다른지! 민족의 대다수를 빈곤에 몰아넣고 몇 놈에게 특혜 조치를 준다는 부정의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고 있지 않습니까.”

열변을 토하는 김한두의 행동에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저 자식 아직 있었나? 제 놈이 개소리를 싸지를 처지야?”

“그 부정에 편승해서 뱃지라도 단 게 아닌가?”

시끄럽다는 듯 귀를 후비는 모습에 혼자 장광설을 늘어놓던 김한두가 뭔가가 든 바께스를 집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김한두의 목소리가 천둥같이 울렸다.

“암튼 이번 일에 연루된 자들은 모두 똑같은 개자식들입니다. 최고회의장 각하께서 여기에 나왔다면 호되게 한번 따지고 싶지만, 여기 장관이 대리랍시고 나와 있으니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거 시발 똥이나 처먹으소. 이 새끼들아!

촤르르륵!!

누런 똥물이 의회장을 날아 국무총리의 얼굴에 처박히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정치깡패 출신인 김한두가 무슨 말을 하든 별로 관심이 없는 국회의원들이었지만 본회의장에서 똥물을 퍼붓는 만행까지 용인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이런 미친놈! 저놈을 끌어내!”

“이런 정신병자 자식을 봤나?”

순식간에 인분을 뒤집어쓴 국회의원들의 비명과 삿대질. 뒤따라 뛰어든 경비들과의 육탄전으로 국회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회의는 전면 중단되었다. 정면에서 이 인분을 직격탄으로 맞은 국무총리가 손을 부르르 떠는 장면이 사회 1면에 실리며 사태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한두, 민주주의를 향한 일격!

-인분 폭격, 정의의 철퇴! 깡패한테도 결기는 있다.

사람들은 모이면 모일 때마다 그 무용담을 떠들었다.

“자네들 들었나 국회에서 김한두 의원이 똥물을 투척했다는걸.”

“무식한 깡패 쉐리가 쓸데없이 밥만 축내는 줄 알았더니. 꽤 남자다워. 아주 간만에 속이 시원하지 그래.”

국회 똥물 투척은 국민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성그룹에서는 김한두의 오물투척 사건을 비난하며, 동정여론을 형성하려고 노력했지만, 국민의 반응은 되려 통쾌하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김한두는 근본 없는 깡패 자식에 불과하지만, 이번 일은 정말 잘했다! 라고 옹호 의견이 절대적이었던 것.

결국, 여론의 폭격을 견디다 못한 총리와 정부 내각은 총사퇴를 선언했다. 김한두 역시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직후 서대문형무소에 구속 수감되었다. 박정명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동원일보 쪽에서는 또 하나의 기사를 터트렸다.

오성이 미쓰이물산과의 이면계약을 통해 비료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며 정부는 지불보증을 서는 것으로 측면 지원하기로 한 사실까지 폭로된 것이다. 정관계 유착이 사실로 드러나자 들불처럼 일어난 국민들의 시위로 오성그룹 본사 앞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오성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매국노는 물러나라 물러나라!

시멘트와 달걀을 투척하는 등 성난 시위대로 인해 오성식품을 비롯한 오성그룹 계열사 직원들의 본사 출근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자, 경찰이 출동해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본사 건물 안에서 커튼 밖을 흘겨본 이병구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비서에게 물었다.

“아주 시끄럽군. 일본 쪽 반응은 어떤가?”

“그게. 자기네와는 상관없다는 분위깁니다. 아지노모토사에서는 자기들은 이번 일과 전적으로 무관하니, 손을 떼겠답니다. 임상무도 벌써 귀국한 마당이라……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임태웅의 대응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사태가 악화되기 무섭게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 일본으로 도피한 것이었다. 저번의 독단적 행동에 대한 앙갚음이었지만 오성으로서는 뭐라 항의할 처지도 못 되는 형편이라 속만 끓이는 수밖에 없었다.

“공장 설립 건은 당분간 포기해야겠군. 박 의장과는 아직도 연락이 닿지 않나?”

“예. 아무래도 사라진 것 같습니다. 남 부장도 당분간 연락하지 말라고…….”

“허, 결국 그렇게 되었나.”

송구스러워하는 비서의 답에 이병구는 질끈 눈을 감았다. 사실 최근 폭로된 조미료 공장 설립과 원당 공장 증설은 군부 정권과의 기초 합의사항이었다.

대선 준비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박정명이 홍보용 업적으로 내세우기 위해 추진한 사업이다 보니 규모나 투자금이나 엄청났고. 외자 교섭과 도입과정, 조건협상부터 이병구가 심혈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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