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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54화 (154/361)

154화 야밤의 추격전

쥐 죽은 듯 엎드린 녀석들이 긴장한 사이 낚시용 분선에 탄 선원이 쌍안경을 들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수면 위에 뜬 통통배를 살펴본 녀석이 안도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냥 이 동네 어선인 거 같습니다요. 그냥 출조 나온 모양인데요.”

“아이 썅, 놀라게. 야밤에 할 짓 없음 잠이나 쳐 잘 것이지. 왜 지금 바다까지 기어 나와?”

당황했던 밀수꾼들은 꽤 마음을 졸였는지 쌍욕을 지껄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선에 탄 것은 얼룩덜룩한 방충복에 긴 낚싯대들까지, 영락없는 낚시꾼 차림새. 그러거나 말거나 오징어잡이처럼 휘황하게 카바이트 등불을 켠 황 서방은 노를 저으며 유유히 거리를 좁혔다.

어선이 다가오자, 분선 중이던 밀수꾼들이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야. 거기 뭐야. 여기 먼저 조업하는 거 안 보이나? 당장 안 꺼져?”

“아니 바다가 무슨 임자라도 있는가, 거 당신이 전세 냈소?”

“뭐야? 그걸 말이라고?”

“거, 까다롭게 굴지 마소.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디 뭐, 어황 좋으면 같이 좀 나눠 씁시다. 우리는 딱 몇 마리만 잡고 갈 테니, 신경 끄쇼.”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황 서방에 혈압이 오르는 밀수꾼들. 버킷햇을 눌러쓴 복만이도 미끼를 꿰는 진상짓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신안에 있을 때부터 강태준과 줄창 낚시질을 해 본 터라, 낚시꾼 연기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협박이 통하지 않자 분위기는 금세 험악해졌다. 말다툼이 길어질 듯 보이자, 심상찮음을 느낀 본선에서는 쌍안경을 돌린 채 사태를 주시했다.

그것이 강태준의 노림수였다. 양자가 실랑이에 정신이 팔린 사이, 슬그머니 등장한 감시선이 본선의 뒤편을 점거했다.

강태준이 짧은 모스 부호로 신호를 보내자, 목섬에 숨었던 서남현 일동이 출동했다. 숨어 있던 배가 급발진을 했다. 하얗게 갈라지는 물살. 뒤늦게 부릉대는 모터 소리를 듣고서야 사태를 파악한 사람들이었다.

“뭐, 뭐야!”

“밧줄 던져!”

작살총을 든 남자가 위협하듯 총구를 겨눈다. 뭔가 나쁜 낌새를 눈치챈 밀수꾼들이 당황한 듯 어버버거렸지만 이미 뒤쪽의 항로는 차단당한 다음이었다.

황 서방이 잽싸게 진로를 막아서자 복만이를 비롯한 대원들이 기다렸다는 로프를 던졌다. 수십 가닥으로 된 밧줄이 스쿠루에 얽어 무력화시킨 것이다.

녀석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안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배가 물살을 튀기며 지척에 도달했다. 선수에 납작 엎드렸던 서남현이 잽싸게 몸을 날려 쾌속정에 뛰어오르자 뱃전이 흔들거린다.

곧바로 달려는 남자.

관자놀이를 갈기는 순간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물 밖으로 떨어졌다.

서남현이 선수에 선 사나이의 목덜미를 향해 권총을 들이대고는 고함을 질렀다.

“이 새끼들! 손들어!”

밀수패들도 주먹으로 대항해 왔지만, 권총이 하늘로 불을 뿜자 그대로 얼어붙었다.

함께 탑승하고 있던 대원들이 일제히 총을 겨누자 밀수꾼들은 손도 쓰지 못한 채로 항복했다. 그러자 목선 뒤편에 숨었던 감시선이 환한 빛을 비추는 것이었다. 아니다.

헤드라이트의 환한 빛이 바다를 채우자 감시선에서 밀수선을 향해 확성기를 들렸다.

“우리는 여수세관 조사관이다.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순순히 항복하라!”

서남현이 큰맘 먹고 소환한 동료들인 만큼 그쪽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채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본선이 한번 들썩이는가 싶더니 전속력으로 도주하는 것이 아닌가!

“정지! 정지!!! 이런 제길!! 도망친다!”

“당장 발포하라!”

밀수꾼들의 판단은 기민했다. 감시선이 선수를 막고 있는 데다 선원들이 엄연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 키를 돌려 튀어 버린 것이다. 멈추라는 표시로 공포탄을 쏘았으나 애꿎은 총알만 낭비했을 뿐. 밀수선은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강태준이 목청을 높였다.

“출동해! 당장 도주하는 밀수선을 쫓는다.”

명령과 동시에 모터를 단 강철선이 덮치듯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출렁이는 무안호에는 강태준을 비롯한 1조가 승선하고 있었고, 뒤로는 군용 고무보트가 달려 있었다.

부우웅~~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 위를 가르는 보트 두 대.

늦여름에 열린 수상 보트 경주 대회처럼 추격전이 펼쳐졌다.

어느덧 속력을 내던 감시선이 멀어지자 두 배는 우측에 계절풍을 받아 속력을 냈다. 강하게 불어오는 북풍이 파도를 일으켜서인지 파도를 탄 배는 마치 튕기듯이 수면 위를 항진했다. 모터보트가 속도를 내자 함께 앞뒤로 심하게 흔들리는 밀수선.

강태준은 거센 저항에 배가 좌측으로 쏠려 항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키를 붙잡았다.

시속 30노트. 55킬로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모터에 귀가 먹먹해질 지경.

꽁무니에 불붙인 닭처럼 도망가는 본선이 재차 속도를 올리자, 강태준도 같이 속력을 올렸다. 그럼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거리에 광필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저거, 겁나게 빠른데요!”

“모터를 추가로 달았나 보군. 그래도 짐이 많으니 오래는 못 버텨! 이대로 계속 추격한다!”

강태준이 모터 속도를 올리자, 부릉부릉 소리가 강해졌다. 촤락~ 소리를 내며 갈라진 파도에서 물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잘게 부스러진 물안개가 옷을 흠뻑 적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뒤가 없다는 듯이 달리는 특공선에 도망치는 선장도 몸이 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미친, 놈들이 계속 따라붙는데요!”

“뭐야 저 새끼들은? 세관에 돈 충분히 안 먹였어?”

“보아하니 통영 쪽 놈들이 아닌 거 같습니다. 한데 남은 녀석들은 우얍니까?”

“지금 그걸 걱정하나? RPM부터 더 올려!”

“진작에 최대치입니다!”

시시각각 거리가 가까워지는 모습에 선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선박의 짐이 무거워서인지 속도가 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줄어드는 거리에 초조해진 선장이 결국 결단을 내렸다.

“젠장 할! 일단 그럼 수화물 중에 덩치 크고 무거운 것부터 던져 버려!”

“예? 그럼, 의뢰인들이 지랄할 텐데요?”

“염병, 잡히면 황인데 그게 문제야? 일단은 무게부터 덜어야 할 거 아냐? 뒤는 나중에 생각하자고.”

적발되면 형무소 행이 확실하니 욕먹어도 손해를 감수하는 편이 낫다.

궁시렁대는 선원들이 짐을 내다 버리는 모습에 대원 하나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어어? 저놈들이 지금 뭔가를 바다에 버리고 있습니다!”

“지금 밀수품을 버리는 건가? 실화야 그게?”

급해진 밀수선 선원들이 밀수품을 바다에 내던져 버린 것이다. 눈을 의심하기도 잠시. 큼직한 짐 덩이가 둥둥 뜬 채로 떠밀려 오는 모습에 강태준이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젠장, 꽉 붙잡아!”

키를 잡은 강태준이 방향을 틀자 급하게 회전하는 보트.

이어서 멀어진 밀수품은 꼬르륵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 광필이가 마치 제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으메. 저 아까운걸!”

“침착해라! 어차피 나중에 물에 뜨게 되어 있어. 수거는 뒤따라오는 감시선에 맡기면 된다.”

무게가 나가는 큰 물건이야 바닥으로 가라앉을 테지만 가벼운 수화물이나 보따리는 곧 수면 위로 뜨게 된다. 한결 가벼워진 밀수선은 남동쪽으로 방향을 선회해 바람을 등에 업고 달렸다.

액셀레이터를 밟고 있는 것 같이 올라간 속도는 아까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그에 강태준도 모터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올렸다. 타타타타 휘몰아치는 풍랑을 가르며 마스트가 펄럭였다. 배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파묻혀 버리는 본선의 항적을 따라 파도가 뱃머리에 부딪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범선은 거친 파도에 휩쓸려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처럼 보였다.

배가 심하게 한쪽으로 쏠리자 배의 용골이 수면 위로 드러날 정도였다. 궂은 날씨에 강철선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자 배 위로 선반 치는 소리가 났다. 속력이 빨라지자 몸을 꼿꼿이 세운 파도가 배의 고물에 부딪히면서 갑판을 거슬러 올라가 빠른 속도로 배수구로 흘러 들어갔다.

“정선하라! 지금 멈추면 유혈 사태는 없을 거다!”

“옘병, 니들이라면 서겠냐?”

쫓아올 테면 쫓아오라는 듯 밀수선 선원들이 호기를 부렸지만 사정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라이트가 선미의 선원들을 비추자 상황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선내로 물이 많이 들어왔는지 사람들이 깡통으로 고인 물을 퍼내고 있었던 것이다. 높은 파도가 몇 미터 미끄러지듯 사라지며 물보라가 일었고, 먼 곳에 실루엣이 보이는 섬이 마치 짙은 녹색을 띤 동산처럼 보였다.

같은 시각, 절벽 꼭대기에서는 흰색 불을 뿜는 등대가 빙빙 원을 그렸다. 밀수품을 피하다 보니 다소 속도를 늦추기는 했지만 강철선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공격을 요리조리 피한 무안호가 뒤에 바싹 따라붙는 모습에 저쪽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소. 갑판장. 저놈들 포기할 생각이 없어 뵈는데요.”

“어쩔 수 없지. 그럼. 마지막 방법을 쓰는 수밖에…….”

선장이 명하자 갑판장이 선미로 향했다.

“자! 시팔 것들, 이거나 처먹어!!”

녀석들이 갑자기 천막을 걷어붙이자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녀석들이 보여 준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쓰던 98식 기관총이었다.

장식인 줄만 알았던 기관총을 꺼내 돌리는 모습에 대경한 김광필이 소리를 질렀다.

“저런, 미친놈들, 고개, 숙여!”

고개를 숙이기 무섭게 배에 장착된 기관총에서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고물 부근에서 드르륵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콩알과 팥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지 날아온 것은 총알이 아니라 단단한 팥이었지만 빠른 속도로 쏟아지는 자갈과 세례는 충분히 위협적인 수준이었다.

타타타타타!!

콩팥 세례야 단순히 아프다고 끝낼 문제였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잠시 후 선원들이 꺼내 든 것은 공기압축기 호스와 파이프를 이용한 수제 총.

콩팥 세례에 더해 단단한 쇠 구슬과 자갈이 섞여 있었고, 한바탕 사격이 이루어질 때마다 물방울이 거세게 튕겨 올랐다.

“미친! 이런 시펄 놈들!”

“고개 숙이고 맞사격해! 정통으로 맞으면 골로 간다!”

저항이 계속되었지만, 총기로 엄호하는 대원들의 도움으로 무안호는 밀수선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배 위로 로프를 걸 타이밍을 살피며 밧줄을 휘휘 돌리던 그때, 갑판장이 갑자기 무언가를 이쪽으로 휙 하고 집어던졌다.

긴 포물선을 그리며 무안호 안으로 떨어진 물건을 확인한 김광필이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미, 미친! 이게 뭐야!”

“시벌, 수류탄이다! 수류탄!”

강철선 안으로 떨어진 물건에 놀란 대원들이 기겁을 하며 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사제 다이너마이트.

심지에 불이 붙은 화약이 치직거리며 타고 있는 모습에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고도의 훈련받은 특전사들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다들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순간 키를 놓은 강태준이 기지를 발휘했다. 바닥에 떨어진 다이너마이트를 잽싸게 잡아 올려 힘껏 먼바다를 향해 집어 던진 것이다.

퍼엉~~!!

폭음과 함께 물보라가 치솟고, 마치 온천수가 터지듯 사방으로 물이 폭발하듯 비산했다.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밀려드는 파도에 핑그르르 돌던 배가 간신히 전복을 면했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지만,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이 식은땀이 주르르 흐를 지경.

그사이 저 멀리 사라지는 특공선은 도주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상황이 그쯤 되자 눈이 뒤집힌 일행도 더 이상 눈에 뵈는 게 사라졌다.

“이 새끼들이 선 넘었네. 진심으로 해 보자는 건가?”

“이 개자식들이 그냥! 잡히면 아주 포를 떠 주겠어!”

강태준이 배의 속도를 올리며 추격하자 반쯤 꼭지가 돈 방첩대원들이 카빈으로 대놓고 맞사격을 가했다.

밀수선은 저 멀리 기름이 떨어졌는지 속도가 점차 느려지자 약이 오른 대원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야, 개새끼들아 거기 안 서! 잡히기만 해라. 사지를 으깨 버릴 거다.”

“그래서 꼽냐? 등신 새꺄, 할 수 있으면 해 보던지!”

한마디도 지지 않는 상대방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광필이가 성을 내며 소총을 갈겼다. 그사이 특공대원들이 로프를 던지며 배 위로 올라타기를 시도했지만, 배수량 차이가 크다 보니 달리는 배에서 탑승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 한 번 잡히면 배는 압류당하고 철창신세가 될 것이 뻔한 이상 밀수꾼들 또한 필사적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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